남학생 키 1cm가 천만원이라는 이상한 셈법

[김승일 시인의 학교詩끌 3] 실제적인 폭행 있기 전에 말 폭행 선행된다.

등록 2019.01.21 18:08수정 2019.01.22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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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 시인의 학교詩끌'은, 학교가 폭력으로 시끌시끌하다는 뜻, 시(詩)로 학교를 끌어당기거나 끌어준다는 뜻, 결국에는 좋은 의미에서 학교가 시끌시끌 했으면 좋겠다는 의미입니다. 이 글이 학교폭력 예방 문화를 만들어 나아가려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기자말

'청소년의 아침'이라는 대안학교에 매주 나가고 있다. 안산 소재의 초·중·고등학교에서는 갖가지 문제들(방화, 폭력, 교사지시불이행, 결석, 지각, 음주, 흡연 등)을 일으킨 학생들을 이곳으로 보낸다. 나는 이곳에서 한 달에 5명 이상의 학교폭력 가해학생들을 만나곤 한다.

"친구를 왜 때렸니?"라고 진지하게 물어보면(가끔 선생님을 때린 학생들도 섞여있다), 그들은 '그냥 또는 열 받아서 때렸다'고 말한다. 10명 중에 8명이 다 이렇게 대답한다. 정말 어떤 일관된 사고체계로 묶여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가령 안산에 있는 학교에서 매주 5건의 학교폭력 사건이 일어났다면, 이는 안산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반증한다. 이것이 '요즘 가해학생들의 심리'를 보여주는 빅 데이터이다.
 

치유하는 시 쓰기 안산에 있는 대안학교에서 여러 학생들과 시 쓰기를 통한 치유 활동을 하고 있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솔직한 감정과 생각 들을 문학적으로 이야기하고 그것을 시와 산문으로 표현해낸다. 생각지도 못했던 진솔한 이야기에 선생인 나 자신도 반성을 하는 계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 송하규

  
무서운 것은, 즉각적으로 누군가를 때리고 괴롭히는 일들이 학생들 사이에서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묻지마'식 폭행은 이미 사회적으로 커다란 문제가 되고 있다. 결국 폭력이 '흥미롭다거나, 재미있어서, 쾌감을 주기 때문에'라고 생각하는 것을 넘어 '그냥, 열 받아서' 약해보이는 사람을 때릴 수도 있다는 의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생각이 학생들의 무의식 속에까지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할 때, 이 사회의 도덕적 해이는 거의 막바지에 온 것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준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이유가 없는 일이란 없다. 왜 가해학생들의 마음은 이렇게 망가져 있을까.

무심코 내뱉는 말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심각하게, 우리는 소급해 생각해봐야 한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는 것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선생님'의 '말'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선생님의 말이 학생들에게 주는 '영향력'이다.

어떤 선생님에게 어떤 말을 들으며 학교생활을 했느냐에 따라 학생들은 저마다 완전히 다른 인격을 갖게 된다. 선생에게서 발생된 '어떤 말'은 한 사람의 '평생'을 따라다닌다. 이를테면 (학생과 선생 모두의 입장에서) 좋은 말은 학생과 선생 모두를 감동시키고 그들의 인생을 좋은 쪽으로 바꾼다.

그러나 그런 '권위를 갖는 말'이 정도를 벗어나 '폭력적인 말'로 변질되면, 더 이상 그 말은 존경받을 만한 말이 되지 못한다. 내가 속칭 '문제아'라고 불리는 학생들을 만나면서 알게 된 사실 하나가 있다. 그들은 선생님들의 '말'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상한 방식으로 '자신들을 단정해버리는 말' 때문에, 그들은 늘 '문제아'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살아가는 '규정된' 인간이 되어버린다고 말한다.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선생님들은 자신들에게 문제 가득한 말만 내뱉는다는 것이다. 그런 말들이 발생되는 곳 중 하나가 교무실이다. 교무실에서 폭행을 당하는 선생님들도 생겨나고 있지 않은가. 스스로 그 공간의 가치를 격하시킨 것은 몇몇 몰지각한 선생님들의 더 몰지각한 '말' 때문이다. 그런 말들이 쌓여서 위와 같은 현실을 만들어낸다.


말 한마디로 한 사람의 전 인격을 포괄해낼 수 있을까? 절대로 그럴 수는 없다. 인간을 해석하는 데 한 권 분량의 A4용지도 모자랄 지경이다. 그런데 단 한 마디 말로 한 사람의 인격을 무너뜨릴 수는 있다. 이것이 말의 위험이고, 말이 그만큼 어려운 것임을 증명한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 어려운 말을 다 잘 할까? 우리는 보통 인격적인 말에 능통한 사람을 선생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모든 면에서 무엇을 가르칠 수 있는 대단한 선생이 아니라, 어떤 한 과목을 겨우 겨우 가르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겸손'이 삶에 배어 있는 선생님일수록 말을 더 조심한다.

인류에게 혁신적인 생각을 하게 만든 공식들이 있다. '인류의 삶을 좋은 쪽으로 바꾼 공식'들 덕분에 우리는 그 혜택을 누리면서 살고 있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그런 공식은 더 만들어져도 좋다. 그런데 대한민국 교육계에 몸담고 있는 한 선생이 만든 이 공식은 정말 '쓰레기 같은 공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공식에서는 '공헌'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악취'가 나온다. 우리의 삶을 이런 공식들이 마음껏 망치고 있다.

일반적인 중학교 교무실에서 황당한 사건이 있었다. 교무실에 청소를 하러 온 학생이 학생부장 선생에게 이상한 질문을 받았다. "키 1cm에 얼마일까?"라는 질문이었다. 나는 그 질문이 하도 신기해서 (아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선생을 오래 쳐다보았다. 그는 그것이 한참 잘못된 질문이라는 것을 정말 몰랐을까? 이를테면 자기 자식에게도 그런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교육적이지 않다'는 말 정도로는 비판조차 되지 않는 '폭력'이었다. 말로 하는 폭행이었다. 가해학생들이 피해학생에게 가하는 그런 폭력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었다.

선생은 먼저 이런 서두를 자기 말 앞에 세웠다.

"너는 방학 동안에 키 좀 커와라. 남학생은 성적을 올리든지 키가 크든지 둘 중 하나는 반드시 해내야 해."

"한국 남자들은 키가 크든지 공부를 잘하든지 둘 중 하나는 반드시 해야 결혼을 할 수 있어"라고 학생부장 선생은 상세하게 풀이까지 해주었다.

"그러니까 남학생 키 '1cm'는 돈으로 환산하면 1천만 원이야. 그러니까 '5cm'는 얼마겠니? 5천만 원이겠지?"

나는 정말 할 말이 없었다. 저 폭력으로 가득한 말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저 말을 듣고 선생의 저의를 살필 한 학생의 모든 감각과 느낌 속에서 나는 방황했다.

하물며 나도 그런데… 사춘기도 오지 않은 그 어린 학생은 얼마나 당황했을까. 나는 청소를 마치고 다시 교실로 돌아가려는 그 학생을 뒤따라가서 한 시간은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저 선생은 멍청이라고. 그러니까 그 멍청이의 말은 믿지 말라고.  
 

학생들이 만든 시극 서울 소재의 중학교에 문학특강을 갔을 때 보았던, 학생들이 준비한 시극 영상의 첫 장면이다. 내가 발표한 시 '어른들은 좋은 말만 하는 선한 악마예요'를 읽고 만들었다고 한다. 겉으로는 선한 척 하지만 실제로는 악한 우리 시대의 어른들의 자화상을 표현해보고 싶었다고 학생들은 전했다. ⓒ 김승일

  
한 가지 시선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다 연결되어 있다. '갑질'이라는 단어는 '학폭'이라는 단어와 어디선가 만난다. 조금만 들여다봐도 그 둘을 연결시키고 있는 점선들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시스템은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실선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정육면체의 입체 구조를 생각해보자.) 점선처럼 보이지만, 저 안쪽에 서로 닿아 있는 모든 실선들이 존재한다. 모든 외곽의 더 깊숙한 안쪽에 자리한 '입체로서의 폭력'이 거기 먼저 존재한다.

이런 것들은 여러 층위에서 우리 삶에 관여하고 있다. 선생님의 한 마디 말 속에서도 나는 이런 보이지 않는 폭력들을 목격한 적이 많다. 교무실에 자주 드나드는 나로서는 그런 말들을 쉬 접할 수가 있다. 그런 말들은 내가 학생 시절에 만났던 막돼먹은 선생님이 내뱉던 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조금 세련되어졌을 뿐 폭력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키, 외모, 성적, 대학, 미래, 결혼, 배우자, 직업, 돈, 연봉. 특히 연봉이라는 말은 우리 때는 들을 수조차 없던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특강을 가면 연봉이 얼마냐고 학생들은 자주 물어본다. 나는 그 질문 앞에 자리한 '말들'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물질, 서열, 등급, 순위, 계급, 우열 중심주의의 사고체계를 만드는 '말들'이다. 문제의 핵심! 문제의 정곡을 찌르는 어떤 법이 학교 안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법은 누가 그런 잘못된 체계를 심어놓았는가를 똑바로 보는 데서 만들어져야 한다. 폭력을 폭력으로 되갚는 일이 교실에서 무수하게 일어난다. 그런 일은 선생과 학생이 번갈아가면서 하기도 한다. 평범한 대화 속에서 그런 무지막지한 개념들이 어떤 통제도 없이 학생들의 귀를 드나든다. '공부=직장=연봉=성공'으로 이어지는 공식을 만들어서 그것을 학생들에게 '내면화'하는 일이 거의 연쇄폭발처럼 일어나고 있는 현실 자체가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다.
 

내 안의 폭력이 무엇인지 의심하라! 경기도 용인 소재의 중학교에서 문학 강의 때 학교폭력의 주제 한 가지를 칠판에 적어보았다. 좋은 반응이 나왔다. 매학기 더 많은 학생들과 만나서 실제적인 이야기들을 해오고 있다. 학교폭력이라는 다루기 어려운 주제를 문학적으로 접근하면 학생들로부터 더 많은 이야기들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김승일

 
무너지고 있다면 지탱하려는 힘도 더불어 필요하다. 활력은 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데 일조해 왔다. 행복의 일조. '폼 나는 인생'이 아니라, 정말 '인간의 폼'이 나는 인생이 무엇인지 알려줄 수 있는 끝없는 본질의 일조량이 요즘의 학생들에게 필요하다고 나는 믿는다. 햇빛을 보지 못한 학생들의 얼굴에는 늘 그늘이 있지 않은가. 어디 가서 그 그늘을 다 씻을 수 있겠는가.

난도질당한 마음으로 결국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결과들이 반복되고 있음에 나는 개탄한다. 탄식하는 마음으로 마음을 어루만진다. 폭력이 차지한 그 자리를 본다. '폭력의 재료'로 채워진 그 자리에, 먼저 당도할 수는 없을까. 아무리 현실적인 것이 중요한 시대라 할지라도, 진정한 선생님의 (현실적) 주머니 속에는, 폭력보다 더 빠르게! 가서 담기고 싶은, '인간적 재료'가 들어있지 않을까.

'김수영'의 시가 생각난다.
바람보다 더 빠르게 일어나는 풀들이 생각난다.
절망보다 더 빠르게 거기 도착해서
사랑과 위로의 말을 건네는 어른들(선생님)을 떠올려본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김수영의 「풀」 부분.
시인으로서 폭력을 와해시키고 싶다. 시로써 폭력과 대면하고 싶다. 그리고 수만 시간의 대화를 통해 그 폭력이 저절로 무너지게 하고 싶다. 단단하게 말라붙은 밀가루가 물속에서 풀어지는 것처럼, 다시 최초의 인간적 부드러움을 알게 하는 일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

단단하게 말라붙은 폭력을 냄비의 바닥에서 천천히 떨어뜨려 놓는 일. 폭력을 불려놓는 일. 그런 접근법이 자꾸 요구되는 시점이다. 어른들이 당장 해야 할 일은 가해학생을 노려보는 일이 아니다. 잘 생각해보자. 왜 가해학생들이 생겨나는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은 이 세상에 절대로 없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 2019년 1월호에도 실은 글을 다듬은 것입니다.
#학교폭력 #가해자 #선생님 #학생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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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이 없는 학교를 소망합니다. 제 첫 시집 『프로메테우스』를 학교에서 낭독합니다.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피해학생들을 치유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강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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