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먹고, 기절까지... 그래도 태권도를 하는 이유

태권도의 '태'자도 모르던 내가 태권도에 빠진 이야기

등록 2018.12.01 15:22수정 2018.12.01 15:22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처음에는 그저 운동이 좋아서, 태권도가 궁금해서, 단을 따고 싶어서 대학교의 태권도 동아리에 가입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한 태권도 동아리와는 너무 달랐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운동 동아리만의 분위기, 예절, 실력 없는 나. 머릿속의 나는 멋있게 턴 발차기를 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앞차기도 제대로 차지 못하고 있었다.
 

매일같이 반복되던 연습이 지루해질 때쯤 이미 내 몸은 태극 6장을 외워버렸다. 그리고 실전에서 한번도 틀리지 않고 끝마쳤다. ⓒ Pixabay

 
처음에는 '난 그냥 태권도가 배우고 싶어서 가입했는데 하는 게 왜 이렇게 많지?'라는 생각을 했다. 학교 축제 때 무대에서 태권도를 보여줘야 했고, 단을 따기 위해 시험기간에도 품새를 연습해야 했다. 


여름방학에는 제주도로 수련회를 가야 했고, 정식 부원이 되기 위한 행사도 준비해야 했다. 전국대학 태권도동아리 선수권 대회를 위해 매일같이 겨루기 연습을 해야 했고, 그 대회를 위해 6kg이나 빼야 했다. 이 외에도 태권도부에 할애해야 하는 시간은 너무나 많았다.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어느샌가 나는 웃으며 그 일들을 끝마쳤다. 심지어 뿌듯함을 느끼기까지 했다. 축제 때는 무대에서 태극 6장과 손, 발 격파를 보여줬다. 당시에는 태권도라는 것을 처음 해봤기 때문에 그 간단한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해 매일 늦은 밤까지 연습했다. 

매일같이 반복되던 연습이 지루해질 때쯤 이미 내 몸은 태극 6장을 외워버렸다. 그리고 실전에서 한번도 틀리지 않고 끝마쳤다. 너무나도 뿌듯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아마 나는 그때부터 태권도의 매력에 빠졌는지 모르겠다.

여름방학에는 제주도로 여름 수련회를 갔다. 여름 수련회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경험이었지만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첫날 저녁부터 밤까지 13kg의 배낭을 메고 약 21km를 걸어간 것이다. 죽을 만큼 힘들었고 당장 포기하고 싶었지만 내 앞과 뒤로 동기들과 선배들이 함께 힘들어 하고 있었다.

그래서 묵묵히 끝까지 걸었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알 수 없는 묘한 감정과 함께 눈물이 차올랐다. 이런 감정을 어느 누가 느낄 수 있을까? 그리고 일주일 간 매일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운동만 했다. 비가 와도 비가 들어차지 않는 곳을 찾아 운동을 했다. 너무 힘들어서 '여길 왜 왔지?'라는 생각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기들과 운동을 하고, 같이 밥을 먹고, 울고, 웃으면서 버텼다. 동기들이 있기에 버틸 수 있었다. 딱히 서로 힘이 되는 말을 하지 않아도 옆에 있다는 사실이 힘이 되었다. 나는 일주일 동안 엄청난 동기애를 느꼈다. 그때부터 태권도부에 엄청난 소속감을 느낀 것 같다.

태권도부의 가장 큰 행사는 매년 개최되는 전국대학 태권도 동아리 선수권대회라고 할 수 있다. 올해도 대회가 개최되었지만 작년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이 대회는 한 대학교에서 총 책임을 맡아 대회를 주최하는 형식이다. 작년에는 우리 학교에서 대회를 주최했다. 대회를 준비하는 기간에는 선수 명단 확인과 같은 작업을 도왔다. 쉽지는 않았지만 대회 당일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였다.

대회 당일에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밤 늦게까지 일했다. 심지어 스태프로 일하다가 나의 경기 차례가 되면 경기를 뛰고, 시간이 남으면 또 일하고, 경기 차례가 되면 또 경기를 뛰었다. 정신없고 피곤했다. 그 와중에 내가 은메달을 땄다. 태권도의 '태'자도 모르던 내가!

체급을 맞추기 위해 약 6kg을 감량해야 했다. 약 한 달 간 매일같이 샐러드, 달걀, 고구마만 먹었다. 몸이 많이 지친 상태였음에도 운동까지 해야 했다. 몸이 힘들었는지 어느날은 운동을 마치고 기절하기까지 했다. 무서웠다. 이 대회가 뭐라고 이렇게 힘들게 못 먹고, 죽을 만큼 운동을 하고, 기절까지 해야하는지. 그러나 나는 이미 시작했다. 나날이 발전해가는 실력에, 나를 칭찬해주는 주변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욕심이 났다. 잘하고 싶었다.

그래도 목표가 메달은 아니었다. 그저 다치지 않고 한번은 이겨보는 게 목표였다. 그런데 대회 날 운이 좋았는지 계속해서 이겨나가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얼떨떨했다. 얼떨떨해하다가 어느새 결승전에까지 올랐다. 너무 욕심을 냈는지 마지막 순간에 지쳐버렸고 은메달로 마무리를 했다.

아쉬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내가 너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메달이 목에 걸리는 순간, 1년 동안 태권도부를 위해 힘썼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태권도의 '태'자도 몰랐다. 앞차기도 제대로 할 줄 몰랐고, 품새는 너무 하기 싫었고, 겨루기는 잘 하지 못했지만 재밌었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태권도 자체가 너무 재밌었다.

지금도 태권도부에 시간을 많이 쏟아야 할 때는 부담스럽다. 운동도 힘들다. 그렇지만 내가 계속 태권도부에 남아있고 태권도를 하는 이유는 그냥 태권도 자체가 좋기 때문이다. 열심히 노력하면 결과에 상관없이 느낄 수 있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감정, 뿌듯함, 울컥함, 벅참 등... 이건 아무도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재미없고 다 똑같은 대학 생활에서 나만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감정이다. 이게 내가 태권도를 하는 이유다.
#태권도 #동아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4. 4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5. 5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