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조합을 만들겠다고 결심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3년 전쯤 노조를 만들려고 시도한 친구가 있었다. 회사에 불만이 많은 친구였는데, 그 친구의 시도는 결국 실패했다. 회사의 압력 때문에 실패한 게 아니라, 노조를 같이 만들 사람을 못 모아서 실패한 거였다. 아는 사람이 많아야 하고, 그들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하는데, 그런 조건을 갖추지 못했던 거다. 그런데 그 친구의 사정을 보면서 '내가 할 수 있겠는데?' 싶었다. '내가 노조를 만들어야지'는 아니었지만, 노조 만드는 게 불가능은 아니겠다는 생각을 한 게 중요했다. 그런 자신감 같은 게 있는 상태에서 보니 부당한 게 자꾸 눈에 띄었다."
- 그렇게 내부의 힘을 본격적으로 모으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인가?
"본격적으로 노조를 만들기 시작한 건 노사위원회를 거치면서부터니까 두어 달 정도밖에 안됐다. 주 52시간 시행 대책으로 회사와 교섭을 하며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니, '아, 이게 몇몇이 외치는 걸로만 안 되겠구나, 다 같이 뭉쳐야 하겠구나' 싶었다. 노사위원회에서 포괄임금제가 폐지되었다면 굳이 내가 힘들여가며 노조를 만들 생각을 안했을지도 모른다."
- 노조 설립 이후 회사(넥슨)의 반응이 다른 사업장들과 달리 상당히 우호적으로 보이던데?
"법이 정한 절차대로 성실히 교섭에 임하겠다고 했다. 노조도 교섭공문을 보냈고 단일교섭창구가 마련되면 상견례 때부터 노조전임자, 노조사무실 등 정상적인 노조 활동을 위한 요구를 할 작정이다."
- 직원들의 분위기는 어떤가?
"한창 울분이 터져 나오고 있다. 두어 달 노조 준비하다 조합원 모집한 지 일주일 됐는데, 직원 4천 명 중 20%인 800명이 노조에 가입했다. 뜻밖에 성원이 엄청나고, '노조도 만들어졌으니 뭔가 바뀌겠지?' 하는 동료들의 기대도 느껴진다."
- '공짜 야근'의 원인으로 포괄임금제를 지목했더라.
"포괄임금제는 게임업계에서 20년 넘게 관행으로 지속된 악습으로, 한마디로 야근 수당을 안주는 제도다. 법적으로는 '야근수당을 미리 줬다'는 꼼수를 쓴다. 예를 들어 연봉 2천만 원에 야근수당 1천만 원, 합이 3천만 원에 포괄임금으로 계약하는 거다. 이러면 연봉이 뻥튀기되어 보여서 좋고, 일일이 야근 신청하고 그 시간에 맞춘 수당을 계산해 지급하는 수고를 덜어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건데…. 실제로는 무제한 야근을 해도 수당이 나오는 법이 없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는 근거가 됐다."
비정상적 관행... "다 같이 뭉쳐야겠더라"
▲ 배수찬 지회장은 "조합원 모집한 지 일주일 됐는데, 직원 4천 명 중 800명이 가입했다"며 "노조도 만들어졌으니 뭔가 바뀌겠지? 하는 동료들의 기대도 느껴진다"고 말했다. ⓒ 참여사회
- 최근 네이버에서는 IT업계의 오랜 관행이었던 포괄임금제가 폐지됐다. 넥슨에서도 폐지될 수 있다고 보나.
"사실 별난 묘수가 필요한 건 아니다. 사람들의 의견을 많이 모아 폐지해 달라고 요청해 회사와 합의하면 폐지된다. 명분은 이미 충분하다. 야근을 엄청나게 시켜도 돈 한 푼 안 줘도 되는 건 이미 너무나 비정상적인 일이니까. 터무니없게도 일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오히려 시간 대비 임금이 줄어드는 구조 아닌가? 이런 비정상이 업계 관행이라서, 즉 다른 데 가도 똑같으니까 그런 계약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만, 이젠 이런 비정상적이고 불공정한 계약을 거부하겠다고, 강력한 힘을 보여주면 없앨 수 있다고 본다. 네이버도 그렇게 없앴으니까."
- 아직 노조 전임자가 없는 상황이다. 직접 개인시간 쪼개가면서 활동하고 있는데, 조합원들의 요구는 주로 어떤 것들이 있나.
"고용불안 해소다. 옛날에는 이직이 자유로운 게 업계의 장점이라고 했지만, 이제는 사람을 쉽게 자르는, 고용불안의 요소가 되었다. 결정적인 징계 사유가 있지 않은 다음에는 고용이 보장되어야 하지만, 이제까지는 회사에서 사실상 나갈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 사람을 잘랐다."
-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준다면?
"게임 개발은 언제든지 접힐 수 있다. 20명 되는 팀이 매달리던 게임이 접히고 나면, 그 20명이 각자 제 살길을 찾아야 한다. 회사가 나서서 그 20명을 다른 팀으로 배치시키는 게 아니다. 명목은 '전환배치' 신청이지만, 회사 내의 다른 팀에 구직하는 절차를 직접 해야 한다. 회사 내 다른 팀에 이력서 넣고 면접도 봐야 하는 거다. 그런데 면접에서 탈락하면? 일이 없어져 버린다. 구직에 성공한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고, 실패한 사람들만 그 자리에 남아 일 없이 지내야 한다. 주변에 아무도 없고.
모든 게임업체에서, 팀이 접히면 일상적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상황을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때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제안한다. 그러면 보통 다 받아들인다. 회사에서 "넌 필요 없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셈이고, '이 상황에서 내가 버티다 나가면, 회사에 대항한 사람이 되는 셈인데, 그런데도 다른 데 이직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절로 든다.
방송에서도 예컨대 예능팀이 접히면 엇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하지만 방송에서는 고용보장이 된다. 회사에서 다른 일거리를 주는 식으로 전환배치를 해주니까. 사실 회사가 그렇게 보장을 해준다면, 직접 구직하는 한 달은 어느 정도 숨 쉴 공간 역할도 할 수 있다. 망가진 프로젝트로부터 자신을 수습하고 다른 일을 모색하는 시간으로 충분히 쓰임새가 있을 테니까 말이다."
- 포괄임금제 폐지, 고용불안 해소, 그밖에 다른 이슈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
"넥슨 네트웍스라는 자회사가 있는데, 여기 근무환경이 정말 열악하다. 그런데 건물이 다르고 날마다 보는 접점이 없다 보니까, 열악하다는 말만 듣지 얼마나 열악한지 파악도 잘 안 되고 있는 실정이어서 안타깝다.
또 다른 문제로는… 게임은 잘 나가는 게임 하나가 나머지를 먹여 살리는 구조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넥슨 내부의 가령 10개의 개발사가 따로 쪼개져 있다보니 흑자를 보는 개발사는 잘 나가는 게임을 만든 단 한 군데뿐이고, 나머지는 다 돈 못 버는 회사가 된다.
그런 회사에서 일하면 '돈도 못 버는 회사에서 내가 노조를 만들어?'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거기든 여기든 노동자는 다 게임 관련 일을 하는 똑같은 노동자다. 이런 회사 구조가 노동자 쪼개놓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똑같은 업무를 하고 있는데, 왜 회사를 나눠놓아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든다."
- 노조 명칭이 '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넥슨지회'다. IT업종인데 왜 상위노조가 화학섬유식품산업인가?
"유사한 질문을 정말 많이 받는다. 그 첫째가 '왜 민주노총인가?'이고, '왜 화섬노조인가?'라는 질문이 이어진다. 노조는 아마추어가 절대 만들 수 없다. 최고의 노동전문가들이 같이 붙어야만 한다. 재무제표 분석하려면 회계전문가가 필요하고, 조직, 언론홍보 등의 분야별 전문가가 꼭 필요하다. 그래서 민주노총과 함께하며 큰 도움을 받았다.
그다음은 왜 화섬노조인가인데, 우리를 이해할 수 있는 상위노조, 젊은 노동자들의 고민과 조직 만들기를 이해할 분들을 만나고 싶었다. 화섬노조는 네이버, 파리바게뜨의 노조 만들기를 지원하며 우리 나이대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대화가 통한다는 게 아주 중요했다."
게임업계 노동문제, '스타팅 포인트'에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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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게임회사 최초의 노조가 된 넥슨 노조 '스타팅 포인트'의 로고. ⓒ 스타팅 포인트
- 젊은 구성원들이 주축이 되는 노조만의 특색이 있다면?
"온라인 위주의 활동이 활발하다. 카톡 플러스친구, 홈페이지 활용이 많다. 가입원서도 온라인으로 제출하는 분들이 훨씬 많다. 노조 운영진 회의도 온라인에서 메신저를 활용하고 있다. 퇴근 후 집에서 새벽 두 시까지 카톡을 하는 식이다."
- 앞으로 엔씨소프트나 넷마블 등 동종업계와도 연대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게임업계 최초의 노조니만큼 같은 고민을 안고 노조를 만들고자 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쌓인 노하우가 많다. 홈페이지 등을 통해서든 연락 주시면 적극 도와드릴 작정이다. 화섬노조와 연결시켜 드리는 일까지 패키지로 가능하다."
- 스마일게이트에서는 노조를 '길드'라고 부르고, 넥슨에서는 노조를 '스타팅 포인트'라고 부른다던데?
"이제까지 없었던 게임업계 최초의 노조라는 의미로 '시작점'을 삼고 싶었다. 또 게임용어로서 스타팅 포인트는 캐릭터가 딱 등장해서 게임이 시작되는 지점을 가리킨다."
입사 8년 차 배수찬 지회장. 한창 일할 때는 일에 치여, 지금은 또 노조 만들고 꾸리느라 개인생활이 더 없어졌다는 그. 그도 이제 결혼을 앞두고 있고, 20대만 있던 회사가 그새 40대에 접어든 동료들도 많은 회사로 성장했다. 그런 회사에 노조가 만들어졌고, '스타팅 포인트'라는 의미심장한 이름을 내걸었다.
산업화 이후 지난 압축성장 과정은 노동자의 희생 위에 소수 재벌에게 부가 집중되는 특징을 보였다. 대기업 노조의 전투적 노조활동은 그 반대급부였다. 넥슨은 그런 회사들과 달리 최근 급성장했고, 젊은 구성원들도 회사와 함께 성숙해가고 있다.
출발점에 선 넥슨 노동조합을 보며 균형과 성숙을 생각한다. 그들이 힘을 모아 넥슨 안에서, 나아가 게임업계 전체에서 만들어내고자 하는 '워라밸'. "우리나라에서 노조활동이 가장 활발한 게임업계가 되었으면 한다"는 배 지회장의 바람대로, 노조와 회사의 밸런스가 일과 삶의 밸런스로 성숙해 가길 기대한다. 노조활동이 활발해야 행복한 회사라는 새 시대의 이정표를 세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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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업계도 마침내... "7일만에 직원 20% 노조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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