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게임에 빠진 부모, 쇠파이프로 맞는 아이

[특집] 어린이를 위한 나라는 없다③ 학대받는 아이, 결국은 우리 사회의 책임

등록 2016.05.04 09:32수정 2016.05.04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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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의 가해자 대부분은 친부모이다 ⓒ 참여사회


아이들에게 집은 '가장 안전한 장소'인가?

지난 연말, 16Kg의 11살 여아는 앙상한 몸으로 기아 상태가 되어 먹을 것을 찾아 가스배관을 타고 맨발로 집을 나왔다. 아니 생존에 이끌려 '그 곳'을 탈출했다. 부모는 인터넷게임에 빠져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쇠파이프 등으로 폭행당한 아이는 늑골이 부러진 상태였다. 사건 발생 하루 후, 뉴스에서는 그 아동이 '안정'을 찾았다는 보고가 나왔으나 안정이 그렇게 쉽게 찾아질 수 있는 것인지, 만일 그렇다고 하더라도 왜 우리 사회는 그렇게 빨리 이룰 수 있는 것을 외면했는지 궁금해졌다.

이 경악스러운 아동학대사건이 발생하고 학교 장기결석자 아동들에 대한 일제 조사가 실시된 뒤로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 뉴스를 보는 것이 괴롭고 가슴이 아렸다. 그간 학교에도 다니지 못하고 소리 없이 죽어간 아동들이 이제야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되어 넋을 위로받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급기야 친정어머니는 전화를 하여 우리 아이들에게 뉴스를 보여주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딸의 눈높이에 맞게 우리사회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설명하고, 아동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물어보는 쪽을 선택했다. 7살짜리 딸에게 "어떤 부모님은 아이를 보호해 주지 않고, 때리거나 나쁜 말을 해서 아이를 울리거나 몸의 소중한 부분을 함부로 만지거나 음식과 옷을 안 챙겨주기도 해"라고 말하며, "아이를 앞으로 어떻게 보살펴 주면 좋을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딸은 "만일 엄마가 아이를 때렸으면 엄마를 벌주고 교육시키면서 따로 살게 하고, 아빠가 그랬으면 아빠를 벌주고, 부모님 둘 다 그랬으면 다른 좋은 아줌마 아저씨들이 그 아이를 부모님 대신해서 보살펴줘야 해"라고 대답했다. 어찌해서 이 7살짜리 아동도 알고있는 기본적인 조치도 지켜지지 못하는 것일까?

아동학대의 현재 모습

우리 사회는 2000년 아동복지법 전면개정으로 아동학대를 심각한 '사회문제'로 규정하며 아동학대 예방과 보호에 대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아동학대 신고를 공식 집계하기에 이르렀다. 2001년에 약 2600건이었던 아동학대의심사례는 2014년에 1만5000여 건으로 계속적으로 증가하였는데, 더 심각한 점은 아동학대 범죄 특성상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 많아 이 역시 허수(虛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일제조사로 아동학대의 가장 치명적인 결과인 죽음이 몇 년 만에 노출이 된 것이 그 증거 중 하나이다.


아동을 학대하는 가해자의 대부분은 부모이다. <신데렐라>나 <콩쥐팥쥐> 얘기처럼 주로 계모가 아동을 학대할 것이라는 고정관념과는 달리, 전체 학대사례의 77%(보건복지부·중앙아동보호기관, 2014)는 친부와 친모에 의한 학대이다. 부모와 친밀한 관계에서 사랑받고 보호받기보다는, 면밀하고 반복적으로 학대받아 왔다는 사실은 아동에게 너무나 큰 고통과 상처이다.

감히 말하건대, 만연하지만 드러나지 않고, 치명적인 결과를 낳기도 할 뿐 아니라 보호자에게서 주로 이루어지고 있는 아동학대에 대해 우리 사회는 여전히 덜 심각한 것 같다. '원가정보호'라는 명목 하에 2013년까지 학대행위자가 고소·고발된 비율은 10% 미만이었고, 이마저도 법집행기관의 미온적인 태도로 불입건·불기소처분 등을 받음에 따라 실제로 기소되어 법원의 유죄판결을 받은 수는 더 적어 이세원(2015)은 이에 대해 "아동학대사건이 여러 단계를 거치며 사라져 버리고, 희석되고 있다"라고 보았다. 또한 위 연구에 따르면 지난 15년 동안 아동복지법위반 사건 중 피고인이 실형을 선고 받은 비율은 평균 20%에 불과했다.

얼마 전 한 신문사의 기자가 전화 인터뷰를 하면서 나에게 물었다. "통계를 보니 재학대가 10% 정도 밖에 안 된다는데, 얼마 안 되는 것이 아닌가요?" 나는 벌컥 화가 치밀어 말했다.

"학대를 받던 아이가 다시 그 공포스러운 집으로 돌아갔는데 다시 학대를 받았다고요! 재학대는 전체의 10%가 아니라 단 한 명도 있어서는 안 되는 결과에요!"

생태학적 모델에 근거한 아동학대에 대한 대처의 필요

과거에는 아동학대의 원인을 피학대아동의 특성에서 찾거나, 학대가해자의 정신병리학적인 특성으로 돌리거나, 가정환경 등의 사회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보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결정론적이고 단순모델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개인, 가족, 그리고 개인과 가족이 포함되어 있는 지역사회와 문화에 의해 다중적으로 결정되는 것(Belsky, 1980)"으로 보는 생태학적 모델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사후대처는 여전히 피학대아동과 가해자의 개인적인 특성에 집중하는 과거의 관점에 머물고 있다. 특히 피해자인 아동의 심리치료나 상담에 주력하고 있을 뿐, 학대를 행한 가해자 교정이나 환경의 변화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생태학적 모델에 근거하여,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하면 이웃과 어린이집·유치원·학교와 같은 상시 등원기관, 지역사회, 관련 제도와 정책 모두가 상호작용하여 피학대아동을 돌보고 가해자와 환경에 대한 교정 및 개선을 지원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아동학대가해자에 대한 형사처벌도 범죄자를 벌하는 것으로만 생각한다면, 형사처벌은 아동과 부모의 관계를 방해하는 요소로만 생각되어 원가정보호와의 딜레마에서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형사처벌은 가해자인 부모에 대한 교화와 재학대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거시체계인 법과 제도의 역할 중 하나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아동과 관련된 일을 한다면 누구나 들었을 법한 이 아프리카 속담은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내가 육아에 지쳤을 무렵에는 단순히 '아이를 키우기 힘드니 같이 키워줘야 한다'쯤으로 생각하고 내가 감당하고 있는 육아의 짐을 덜어주기만을 바랐던 때도 있다. 물론 우울증, 실업, 낮은 소득 등으로 육아가 힘에 부쳐 그 반작용이 아동학대로 이어지는 가정에게 이웃과 사회가 육아의 부담을 나누는 것은 아동학대의 예방책이 될 수 있다.

아동이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이웃, 아동이 상시적으로 등원하고 있는 기관, 또래친구, 지자체와 정부-가 주의 깊게 아동을 지켜보고 아동의 목소리를 듣고 아동과 손잡아야 한다.

기본적으로 아동이 잘 먹고 있는지, 적절하게 입고 있는지부터 아동이 행복한지, 슬픈지, 슬프다면 왜 슬픈지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학교는 비단 교육의 일차적 역할만 갖고 있는 곳이 아니다. 아동의 상시 상태를 관찰하고, 제 철에 맞는 옷을 입고 있는지 살피고, 아동의 부모와 소통하며, 무엇보다 아동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아동에 대한 이와 같은 관심이 부모에게도 충분히 전해져, 때로는 지원으로 때로는 무분별한 학대와 훈육을 남발하는 것에 대한 제재로 생각될 수 있게 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이세원님은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아동학대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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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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