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이 시대정신에 맞냐?"고 묻는 안철수에게

[주장] 시대정신이란 시대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함께 하는 정신

등록 2016.04.10 12:54수정 2016.04.11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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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씨에게

봄이 완연합니다. 구석진 자리마다 노란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었고, 거리는 벚꽃으로 화사하게 물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진달래 꽃망울이 조금씩 터지기 시작합니다. 진달래가 아름답다는 것을 아마도 나이 서른이 넘은 이후에 알았던 것 같습니다. 80년대에의 교정에서는 진달래의 아름다움을 볼 여유도 없었거니와 진달래는 늘 슬픈 빛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운동권이라고 지칭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진달래는 4월 혁명과 5월 민주항쟁으로 쓰러져간 사람들의 영혼으로, '평등과 평화의 그 날'에 이르지 못한 남은 자의 부끄러움으로, 아직도 서럽게 다가옵니다.

지난 5일 TV토론에서 인철수씨께서 황창화 후보에게 "운동권이라고 스스로 선언하셨는데 지금 시대정신에 맞나?"라고 했다는 보도를 접했습니다. 황창화 후보는 "적어도 내가 살아온 것에 대해 부끄럽지 않다."고 답했던데, 황 후보와 같은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부끄럽습니다. 운동권이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아직도 진달래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이 있습니다. 80년대의 운동권이었지만 이제는 평범한 가장으로 살아가는 삶의 무게에 밀려 세상을 외면하고 살아가는 부끄러움도 있습니다.

시대정신이란 시대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함께 하는 정신입니다. 예수의 시대정신은 갈릴리 민중의 억압된 삶에 동참하는 것이었고, 장준하 선생님의 시대정신은 일제의 핍박에 시달리는 민중의 삶에 동참하는 것이었습니다. 4월 혁명의 어린 학생들은 불의에 항거하는 시대정신을 보여주었고, 5월 광주는 독재정권의 억압에 자유를 잃어버린 시대의 아픔에 자신을 던졌습니다. 그럼에도 세상은 여전히 불평등하고 평화롭지 못합니다. 맹자는 군자의 덕을 논하면서 無羞惡之心, 非人也라 하였습니다. 그들의 영혼 앞에 부끄럽지 않다면, 시대정신은 뒤로 하고 먼저 인간으로서의 정신상태를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희생위에 서있습니다. 한국 경제가 오늘의 성장에 이른 것은 소위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탁월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저임금, 저곡가에 시달리면서도 자식들을 학교로 보낸 우리네의 부모인 노동자·농민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다시 한없이 후퇴해버렸지만 이 땅의 민주주의 수준은 노태우가 '6.29선언'을 결단해서만이 아니라 당신이 운동권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무수한 '죽임 당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당신이 오늘 국회의원 후보가 될 수 있었던 배경입니다. 만일, 그들이 없었다면 당신은 지금 군인출신 대통령 후보에 투표하기위해 체육관을 향하고 있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부끄러워 하셔야 합니다.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멧등마다 그날 쓰러져 간 젊음 같은 꽃 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 위엔 하늘이 무거운데 연련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

당신은 아마 이 노래와 노랫말를 모를 것입니다. 당신이 운동권이라고 지칭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80년대의 4월에 교정에서 눈물을 흘리며 이 노래를 목 놓아 불었습니다. 지금도 우리에게 진달래는 부끄러움과 서러움으로 다가옵니다. 진달래에는 이제 세월호 2주기를 맞는 아픔도 더하여 졌습니다. 이 아픔과 부끄러움에 자신을 던지는 것이 나는 올바른 시대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철수씨,
아마도 당신이 운동권이라고 지칭하는 우리들은 이번 선거가 끝나고 나면 한참 동안 진달래에게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이번 선거에서는 당신과 당신의 정당을 지지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시대정신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80년대를 추억해보면, 당시 우리는 82학번들을 똥파리라고 불렀습니다. 대학입시가 학력고사로 치러진 두 해째, 대부분의 명문대학에 미달사태가 발생해서 수학능력이 떨어지는 합격생들이 많았기에 생긴 별명이었습니다. 부디 이번 선거를 전후한 국면에서 똥파리로 불리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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