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서 일해 좋겠어요"...두 얼굴의 SK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 그 속 이야기

등록 2015.01.15 13:31수정 2015.01.15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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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본사를 찾은 노동자들 지난 6일,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간접고용을 철회하고 원청 직접고용을 해달라며 SK 본사를 찾았다. ⓒ 황윤희


회삿돈 456억 원을 횡령, 징역 4년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최태원 회장. 아직 형기의 반도 살지 않았지만 가석방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말이 정·재계 인사들을 사이에서 오가는 중이다. 거기엔 '경제활성화를 위해서'라는 명분이 따라 붙는다.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그가 좀 일찍 출소하면 이 나라의 경제가 대단히 활성화될 모양이다. 어떻게 횡령 말고, 엄청나게 국내투자라도 해서 그나마 얼어붙은 내수를 좀 살릴 거라는 건가? 아니면 사재를 털어 기부라도? 그것 말고는 딱히 활성화할 방법이 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그 반대에는 이런 풍경이 있다. 자신들을 원청 직접고용으로 해달라며 SK 본사에서 농성을 벌이던 케이블 기사 221여명이 지난 6일, 체포·연행되었다. 이날 이들을 포함한 600여 명의 노조원들은 1층 로비와 4층 휴게소 등지에서 SK와의 면담을 요청하던 중이었다. 그들은 SK브로드밴드 로고가 박힌 옷을 입고 바닥에 앉아 구호를 외쳤고, 또 면담이 성사됐다는 소식을 듣고는 자진 해산하던 중이었다.

기물 파손도, 몸싸움도 없었으며 그들이 농성을 벌인 건 겨우 3시간 남짓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00여 명 중 221여 명이 연행되었고, 장장 49시간 동안 수사를 받았다. 또 주모자를 구속 수사하겠다는 방침 아래, 3명의 노조 간부에 대해 영장을 신청했다. 이들에겐 공동주거침입, 업무방해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정부가 이렇게 강력한 처벌에 나서는 것이 의아하다. 누구는 가석방을 논하는 마당인데 말이다. 혹시 정부는 이런 호통을 치고 있는 건 아닌가? '비정규직, 이 근본도 없는 것들이 감히 대기업 본사에 발을 들였어? 한 번 혼쭐이 나야겠군.' 이런 느낌, 나만의 과한 해석인가?

대한자본민국이 만든 '근로자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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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기사들의 시위 케이블 기사들은 자본이 그저 근로기준법만 준수해줘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을 거라고 말한다. ⓒ 황윤희


SK브로드밴드에서 수년째 케이블 기사로 일하고 있는 한태웅(41)씨는 이날 처음으로 체포, 연행이란 걸 당해봤다. 지난 10일 만나 기분이 어땠느냐고 묻자 대뜸 눈시울부터 붉어진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있어 무섭지는 않았지만 내가 정녕 범법자가 되는 건가, 하는 질문이 일어 한없이 막막했다"고 했다. 건전한 시민이자, 국가경제의 기초로서 성실히 살아왔던 한 노동자는 이날 국가로부터 그러한 대접을 받았다. "언론이든, 어디든 우리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 세상입니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지난해 3월, 인터넷 개통과 수리를 담당하는 기사들이 노조를 만들었다. 티브로드, SK브로드밴드, 엘지유플러스 소속 기사들이 속속 조합원으로 가입해, 이들은 결국 '민주노총 희망연대노동조합 케이블방송 비정규직지부'를 세웠다.

이 신생 노조는 지난해 11월 20일부터 총파업 중이다. 파업이 50일을 넘어가고 있지만  20여 차례에 이르는 교섭에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원청이며,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대기업이 교섭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덕분에 노조원들은 두 달 가까이 단 한 푼도 못 벌고 버티는 중이다. 

케이블 기사들이 설치 혹은 수리를 위해 고객의 집을 방문하면, 흔히 사람들은 말했다. "대기업에서 일하셔서 좋겠어요." 그리고 기사들의 살뜰한 친절도 그런 대기업의 넉넉함과 좋은 노동환경에서 비롯됐으리라 으레 짐작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사정과는 멀어도 너무 멀었다. 그들은 대기업의 이윤을 위한 소모품과 비슷했다. 사실 이들의 왜곡된 고용구조와 급여체계를 이해하기 위해 한 시간 가까이 판서를 겸한 설명을 들었다. 그렇게 들어도 다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러니까 듣도 보도 못한, 복잡하고 난해한 고용관계, 급여체계였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살펴보면 이렇다. 원청(SK브로드밴드, 티브로드, 엘지유플러스 등)은 고객센터를 1년 계약으로 외주를 준다. 1차 하도급이다. 그러면 계약을 딴 고객센터에서 기사들을 고용한다. 그런데 고용형태가 다양하다. 정직원이 있고 개인사업자가 있고 소사장이 있다. 2차 하도급이다. 소사장은 또 자기 아래 기사를 고용한다. 3차 하도급이다. 이런 상황이지만 정직원이며, 개인사업자며, 소사장이며, 그 아래 기사까지 모두 실상은 케이블의 설치, 수리를 담당하는 다 같은 '기사'들일 뿐이다. 같은 일을 하는데 신분이 모두 다른 셈이다.

또 그들은 아무 생산수단 없이 그저 몸을 놀려 노동으로 임금을 버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신분은 대부분 '개인사업자'로 되어 있다. 그들이 영업을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기형적'이란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기사들끼리는 자신들을 '근로자영자'라고 부른다고 했다. 노동자인데, 고용이나 급여는 자영업자 체계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근로자영자, 세상 어디에서도 없는 새로운 표현이다.

일주일 70시간을 일해도 적자인 가계

급여도 온갖 경로로 다양하게 매겨진다. 이들은 고객센터로부터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급여를 1차로 받고, 이후에 설치 및 수리 실적에 따른 급여를 2차로 받는다. 월급을 한 번에 받지 못하고 나눠 받는 것이다. 또 4대 보험에는 모두 가입돼 있지만, 정직원을 제외하곤 모두 노동자 자신이 보험료를 지불한다. 2차 급여가 들어올 때 보험료가 전액 차감되어 들어오는 것이다. 이런 복잡하고 난해한 급여체계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살펴볼 일이다. 

여기다가 또 각종 평가지표가 적용돼 급여의 삭감이 이뤄진다. 예를 들어 한 달 동안 IP TV를 3건 이상 유치하지 못하면 급여 삭감, 고객의 서비스 만족도가 낮으면 급여 삭감, AS 24시간 처리율이 낮으면 급여 삭감, 야간장애 처리율이 낮으면 급여 삭감 등등. VOC라는 지표도 있어 서비스 처리한 고객에게 한 달 내 재문의가 들어오면 그것도 급여삭감 대상이라고 했다. 고객의 재문의가 온전히 다른 이유라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직원 평가지표라지만 듣자하니 대단했다. 게다가 개인사업자나 소사장 등은 일을 하는데 드는 비용, 즉 기름값, 휴대전화료, 설치 및 수리에 필요한 자재비까지 모두 자신이 부담해야 한다고 했다. 놀라운 일이다. 어디 더러워서 해먹겠는가? 어쨌든 노조가 생긴 이후로 이런 평가지표는 많이 사라지고 있는 추세라고 했다. 노조의 힘이 그런 것이다.

이런 평가지표들과 급여체계 덕분에 기사들의 실질임금은 계속해서 하향세를 기록해왔다. 물가가 오르고 자식들은 자라는데 임금은 계속 낮아진 셈이다. 임정식(39)씨는 아내와 세 자녀를 건사하는 가장이다.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케이블 기사 일을 하고 있는 그는 월 평균 230~240만 원쯤 벌고 있다고 했다. 생활이 되느냐 물었더니, "안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1년 전부터 마이너스"라고 했다. 가계 적자는 부모님에게 기대 근근이 메워오고 있었다.

앞서 이야기를 나눈 한씨도 마흔이 넘었지만 미혼이다. 미혼이어서 향후 어느 날 '싱글세'를 내게 될지도 모를 그는 혼자 살아서 적자는 없다. 하지만 3년 사귄 여자친구가 있어도 결혼생각은 없다고 했다. 결혼과 이후 생활에 따르는 경제적 부담을 책임질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실제 수익은 매월 200만 원이 좀 넘을 뿐인 이들의 일주일 평균 노동시간은 65시간~70시간에 이른다. 아침 8시 반에 출근해 오후 7시까지 일하는 게 기본이며, 토요일은 없고 일요일과 공휴일도 3주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근무한다.

게다가 각종 지표가 있으니 점수가 깎이지 않으려면 점심시간이든, 야간이든 고객요청이 있으면 달려가야 한다. 그렇다고 시간외수당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앞서 한 씨는 집회하던 날 처음으로 토요일, 일요일을 연달아 쉬었는데, "너무 생소한 경험이라 뭘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고 했다. 일주일 70시간 노동은 살인적이다. 이들은 사람으로 산다기보다는 일하는 기계로서 사는 중이다.

노동자로 다시 태어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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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기사들의 시위 지난해 3월 출범한 케이블기사들의 비정규직 노조는 현재 50일 넘게 총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 황윤희


앞서 한씨는 자신이 당연히 SK브로드밴드 소속 직원이라고 생각했다. 고객의 전화를 받을 때도 '네, SK행복센터입이다'라고 말하라고 교육받았고, 명함에도 기업의 이름이 있었다. 또 SK브로드밴드에서 진행하는 직업교육을 주기적으로 받았으며, 그곳에선 때마다 우수사원 표창도 진행했다.

고객에게 기사들의 서비스만족도를 묻는 '해피콜'도 SK브로드밴드에서 운영했고, 기사들의 복장에도 기업의 로고가 떡하니 박혀 있다. 그러니 고객들도 당연히 기사들이 그 기업의 소속일 거라 판단했던 것. 하지만 정작 그들은 SK와 교섭을 할 수 없다. SK는 자신들이 고용한 이들이 아니라고 발을 빼고 있을 뿐이다.

임씨는 이전에 평범한 시민이었다. 그는 케이블 기사 일을 하면서도 먹고 살기 바빠 자신이 노동자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일들을 겪으며 자신이 노동자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다고 했다. 이전에 노동자들의 파업집회를 보면 '왜 저래' 하고 지나쳤던 것을 반성한다고 했다. 그는 시민에서 노동자로 다시 태어나는 중이다. 하지만 그들은 노동자의 신분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노동을 해 먹고 살지만 노동자가 아니다. 그게 오늘날 대한민국의 수수께끼다.

어쨌든 그들은 이제 노조원으로서, 노동자로서 새로운 길을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로 사는 게 어때요"라고 질문했다. 두 사람은 한 목소리로 조금씩 등 떠밀리는 느낌, 낭떠러지 앞에 선 느낌이라고 했다.

"프랑스, 독일 같은 대우는 바라지도 않아요. 그냥 사람 가지고 장난이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니, 그냥 근로기준법만 지켜줬으면 좋겠어요. 법은 잘 만들어놨는데 말이에요."

임씨와 한씨가 고개를 끄덕여가며 한목소리로 말했다. 그랬다. 이들이 원하는 건 대단한 게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근로기준법, 전태일 열사가 45년 전에 외쳤던 바로 그것을, 지켜달라는 얘기였다. 얼마나 소박한 바람인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일반인들이 왜 당신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까?" 잠시의 침묵이 이어지고 대답이 건너왔다.

"지금은 아닐지 몰라도, 우리의 이야기가 당신의 자녀가 다니는 직장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공명심이라도 있던 자본도 사라지고...

참 해도 너무 한다. 착취를 해도 정도껏 해야 사회가 돌아가는 법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본에게는 열심히 뛰어 나라 발전시키고, 자기 사원은 확실히 먹여 살리겠다는 공명심조차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게다가 자본의 그런 근시안적인 착취는 장기적인 경기침체를 불러오는 원인도 된다. 즉 분배에서 이뤄내지 못한 정의가 성장의 발목도 잡는 것이다. 서민들이 쓸 돈이 없으니 내수가 실종되고, 내수가 없으니 대기업은 수출과 단기적 이윤에만 목을 맨다. 그러면서 국내노동자의 임금을 자꾸 깎으려 발버둥 친다. 아귀지옥의 무한반복이다.

이제 집에 케이블 기사가 방문하면 응원의 말이라도 해줘야겠다. 그리고 고객만족도를 묻는 질문에는 무조건 만점을 줘서 하나마나한 조사가 되도록 시민들이 보이콧하자. 그것이 이 추운 겨울, 맨바닥에서 합숙농성하고 있는 저들을 조금이라도 응원하는 길이리라. 이제 대한민국에는 케이블 기사들의 노동조합도 있다. 주의 깊게 살필 일이다. 
#SK #케이블 기사 #비정규직 #엘지유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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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강사, 전 안성신문 기자, 전 이규민 국회의원 보좌관, 현)안성시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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