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예쁘게 닦아줘"...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

장례지도사들 시신닦기 봉사

등록 2014.04.26 22:08수정 2014.04.26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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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에 마련된 임시 시신안치소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8일째인 23일 오후 사고 해역에서 수습된 희생자들의 시신이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마련된 임시 안치소로 운구되고 있다. 정부와 실종자 가족들은 합의하에 180구 규모의 임시 시신안치소를 설치했다. ⓒ 남소연


"우리 아이, 꼭 좀 잘, 예쁘게…."

25일 오후, 실종자 가족들이 대기 중인 전남 진도 팽목항. 세월호 침몰사고로 실종된 아들을 기다리던 아버지가 한 장례지도사의 눈을 바라보며 간곡히 부탁했다.

지난 16일 세월호 침몰사고 발생 이후 구조 작업이 길어지는 가운데, 희생자와 유족을 위해 시신을 정성스레 수습하는 자원봉사자들이 있다. 광주 등 전국에서 모인 장례지도사들은 팽목항에서 인양되는 시신들을 닦아 사망자 신원확인에 도움을 주고 있다.  

진도 팽목항에서 만난 한 장례지도사는 "(실종 학생의) 눈 위에 점이 있다는 등 인상 착의를 설명하면서 아이를 잘 부탁한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사고가) 너무 안타깝고 슬프다"며 "여기 있는 봉사자들은 다 같은 마음 아니겠나, 제가 할 수 있는 일로 도우려 왔다"고 말했다.

3일간 진도에서 머물며 실종자 가족과 함께한 심리치유전문가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도  25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자원봉사를 소개하는 글을 올렸다.

정 박사는 "실종자 가족들은 자기를 돌볼 여력이 손톱만큼도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가장 치유적인 일을 하는 자원활동가는 우리같은 심리상담자들이 아니라 천주교 광주대교구에서 오신 장례지도사 신도 분들이었다"고 썼다.

그는 "장례지도사들이 아이들의 손가락·발가락까지 얼마나 정성껏 닦아주는지 마치 갓난아기 목욕시키듯, 시집가기 전날 딸과 함께 목욕탕에 간 엄마인 듯하셨다"며 "마지막엔 아이들이 다들 예뻐졌습니다, 고마워할만한 어른을 아이들이 세상 떠나기 전엔 만난 것 같습니다"라 전했다.


정혜신 박사 "생존자들에게 우리가 '아빠' 돼 줘야.."

정 박사는 "신원확인 중에 어머니들은 거의 실신하시고, 아버지들은 쓰러지는 아내를 돌보느라 제대로 울지도 못한다"면서 "아빠라고 슬프지 않겠나, 이제는 우리가 생존자와 유족들에게 '아빠'가 되어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이번 사고로 힘겨워하는 국민들에게 "함께 슬퍼할 수 있으면 많이 슬프지 않다"며 분향소를 찾는 등 더 적극적으로 슬픔에 동참하기를 권했다.

실종자가족 지원센터(상황실)에 따르면 26일 팽목항에는 총 24명의 장례지도사들이 교대하며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이들은 가능한 침몰사고 실종자들을 다 찾을 때까지 자원봉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세월호 침몰사고 11일째로 접어드는 현재, 조류가 약해지는 소조기가 끝나고 풍랑주의보가 내려지는 등 진도 해역의 수색 작업은 난항을 거듭하는 상황이다.
#세월호 침몰사고 #정혜신 #장례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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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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