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김직원', 고문기술자 이근안 떠오른다

[게릴라칼럼] '종북 척결'에 복종한 국정원과 경찰 증인들

등록 2013.08.21 17:26수정 2013.08.2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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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16일 오후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해 증인 선서를 거부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 남소연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가 19일 청문회를 끝으로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현재까지의 상황만 보자면 국정조사가 원만하게 정리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5공 청문회에 대통령이던 전두환-노태우도 했던 선서를 거부한 채 시종일관 "대답할 수 없다", "기억나지 않는다", "오해다",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다"를 반복하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그리고 시종일관 모범답안대로 답변하는 이른바 '국정원 댓글녀'와 국정원 간부들.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을 제외하고 짜맞춘 듯 같은 답변을 내놓는 경찰측 증인들. 그들에게서는 '영혼'이 느껴지지 않았다.

국정원과 경찰청의 국선변호인을 자처하면서 감싸는 데 집중한 새누리당은 '양심'이 없어 보였고, 야당은 목소리와 의지는 높았지만 결정적인 한방, 즉 '결정타'가 없었다. 증인들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이들의 변호인으로 대놓고 나선 새누리당의 방해 때문에 한계가 있기는 했겠지만 준비와 실력 부족이라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애초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국정조사가 시작될 때부터 새누리당과 민주당-통합진보당은 목적 자체가 달라 성과를 내기 어려웠던 측면이 있다. 결정적으로 핵심 증인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선서를 거부하고 주요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를 반복하면서, 그리고 또 다른 결정적 증인인 김무성 의원(당시 박근혜 캠프 총괄본부장)과 권영세 주중대사(당시 박근혜 캠프 상황실장)의 청문회 출석이 거부되면서 원천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한 달 반 동안의 이번 국정조사, 특히 청문회 과정을 보면서 두 인물이 떠올랐다. 바로 고문 기술자였던 이근안 경감과 나치 독일 장교로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이다. 왜 국정원 대선개입 청문회를 보면서 아이히만과 이근안이 떠올랐을까?

이근안과 아이히만이 떠오른 이유

이근안 경감은 <남영동 1985>라는 영화를 통해서도 널리 소개된 바 있지만, 김근태 전 의원 고문기술자로 악명을 떨친 인물이다. 그는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하던 일제 경찰 노덕술의 후예였고, 그 이근안의 후예들이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의 주인공이었다.


지금도 국민들은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며 단순 쇼크사로 덮으려했던 경찰이 국민들의 분노에 마지 못해 손을 들고 당시 고문 관계자들이 연행되던 장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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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가 자정무렵 청문회 산회후, 국정원 관계자들의 비호를 받으며 국회 본관을 나서고 있다. ⓒ 남소연


모자를 쓰고, 얼굴을 가린 채 동료 경찰들의 호위를 받던 고문경찰들의 모습은 이번 청문회 내내 가림막 뒤에서 모범답안을 읽던 국정원 직원들의 모습과 묘하게 닮았다. 청문회장에 나서고, 퇴장할 때 서류봉투로 얼굴을 가리고, 동료 국정원 직원들이 에워싸서 보호하던 그 모습 역시 이근안의 후예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고문기술자로 악명을 떨치던 이근안은 10년을, 그것도 자기 집에서 숨어 살다가 1999년에야 자수를 한다. 이 때 그는 "그 때는 그것이 애국이었다" 그리고 "나는 철저히 '상명하복' 원칙을 지켰고 조직을 위해 십자가를 졌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청문회를 보면서 이근안 이외에 떠오른 또 한 명의 인물은 나치 독일의 장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Adolf Otto Eichmann, 1906~1962)이다. 그는 나치 친위대 중령으로 근무하며 유대인의 홀로코스트에 기여한 공로(?)로 훈장까지 받았다. 그는 주로 유대인을 모아 관리하고 집단수용소로 보내는 일을 했으며, 유대인 박해의 결정권자라기보다 실무책임자였다.

아이히만은 제2차 세계 대전 후 전범으로 수배되자 지구 정반대편인 아르헨티나로 도피하여 리카르도 클레멘트라는 가짜 이름으로 15년 동안 기계공으로 살았다. 1960년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에 발각되어 체포돼 이스라엘로 송환된 후 재판을 받고 1962년 처형되었다.

그는 재판에서 "자신이 유대인 박해에 참여한 것은 상부 명령과 지시를 따른 것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변명했지만 사형을 피하지는 못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청문회를 보면서 아이히만이 떠오른 첫 번째 이유는 그가 했던 이 변명 때문이다.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기소하면서 국정원 댓글녀를 비롯하여 직접 일을 실행한 국정원 요원들과 경찰들을 기소유예 처분했다. 상명하복을 생명으로 하는 국정원과 경찰청이라는 조직 특성상 상관의 지시 명령을 거부하기 힘든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아이히만은 자신이 하는 일이 나쁜 일이라는 의식도 없었으며, 자신의 국가 독일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점 역시 국가 안보를 위해, 한점 부끄럼 없이 최선을 다했다는 국정원 요원들과 경찰들의 항변과 상당히 유사해 보인다.

맹목적 복종, 얼마나 위험한가

이근안과 아이히만도 아마 부모에게는 착한 아들이고, 자식들에게는 좋은 아버지였을 것이다. 평범하기까지 한 이근안과 아이히만이 어떻게 죄 없는 민주인사와 학생들을 고문하고 유대인들을 집단학살한 악마가 되었을까?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르포 형식의 책에서 아이히만이라는 평범한 인간이 어떻게 끔찍한 홀로코스트라는 거악의 주인공이 되는지를 추적했다.

아렌트는 악에 대한 의식이 없는 평범한 인간이 한 번 부당한 명령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이후에는 무비판적으로 그 명령을 계속 수행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달리 말하자면, 거악을 저지르는 인간은 도덕성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인간의 가치와 권리를 억압하는 사회·정치적인 구조적인 악에 대한 사유가 없고, 그 악에 대한 저항의식이 없기 때문에 거악을 아무런 문제 의식 없이 수행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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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광석 전 수서경찰서장이 위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이 전 서장의 왼쪽 안경쓴 이가 최현락 전 서울경찰청 수사부장. ⓒ 남소연


현재 불법 대선 개입 댓글사건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국정원 요원들과 진실은폐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경찰청 간부들과 일부 직원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볼 일이다. 과연 대선 관련된 댓글을 다는 것, 이것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는 것이 상부의 지시 명령이 아니라 자신의 사유와 판단에 의한 것인지 말이다.

상관의 명령에 대한 맹목적 복종은 아이히만을 괴물로 만들었고, 절대적인 국익을 앞세우는 맹목적 애국은 이근안을 고문기술자로 만들었다. 이번 국정원 댓글 사건도 맹목적 복종과 국익으로 포장된 맹목적 애국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여기 지금 상부의 명령에 절대복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국정원과 경찰, 그리고 국가안보와 국익을 명분으로 촛불을 비난하며 법과 질서를 말하는 보수세력이 꼭 들어야 할 목소리가 있다.

"인간의 길고 어두운 역사를 돌이켜보면, '반란과 저항'보다 '복종'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끔찍한 죄악이 훨씬 더 많음을 알 수 있다. 가장 엄격한 복종률 속에서 훈련된 독일 장교단은 복종의 이름으로 세계 역사상 가장 사악한 대규모 전쟁행위에 동조하고 참가했던 것이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과학자인 스노(C.P. Snow)가 한 말이다. 그러니까 인류에게 가장 사악하고, 큰 범죄는 반란이나 혁명이 아니고 맹목적인 복종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이고, 그 단적인 예가 바로 나치 독일의 전쟁 범죄라는 설명이다.

우리 사회에는 뿌리 깊은 '복종 강권 문화'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내부고발자가 배신자로 낙인찍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잘못에 대한 책임을 개인이 아니라 집단에 돌림으로써 끔찍한 범죄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이를 "모두가 유죄인 곳에서는 아무도 유죄가 아니다"라고 표현했다. 자신이 범죄자가 되기 않기 위해서 모두와 함께 범죄자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하는 말이다.

1932년 히틀러에 열광했던 독일과 2013년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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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8차 범국민촛불대회 17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국정원 정치공작·대선개입 규탄 제8차 범국민촛불대회'가 열리고 있다. ⓒ 권우성


"우리나라는 지금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거리와 대학들은 시위를 일삼는 자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우리나라를 호시탐탐 파괴하려 하고 있습니다. 소련은 무력을 동원해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안과 밖, 양쪽으로부터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에게 법과 질서가 필요합니다. 법과 질서가 없다면 우리나라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1960년대 하버드 대학 졸업식에서 한 법대생이 이렇게 연설을 하자 졸업생들과 학부모 등  청중들로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 순간, 연설을 하던 이 법대생은 청중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인용한 연설은 1932년 아돌프 히틀러가 한 말입니다."

미국의 청중들은 자신들이 가장 증오했던 히틀러의 연설에 박수 갈채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애초 이 학생의 연설을 소련의 위협이 온존한 냉전 상황에서 미국 국내의 베트남전 반대 시위와 파업을 하는 학생들과 노조를 비판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박수를 치던 청중들은 자신들이 히틀러의 연설에 박수를 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깜짝 놀랐다.

흑백차별을 반대하는 인권운동가들에게까지도 공산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이던 불행한 시대였다. 하버드 대학생의 이 연설은 '법과 질서' 또는 '애국과 국익'이라는 미사여구 뒤에 감춰진 위선의 위험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더 섬뜩한 것은 이 하버드 대학생의 졸업 연설이 지금 우리 사회에 그대로 적용된다는 점이다.

이 연설에서 '공산주의자'를 '종북주의자' 혹은 '빨갱이'로, '소련'을 '북한'으로 바꾸면 2013년 바로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현재 국정원이 댓글사건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종북주의자들의 존재이고, 북한의 위협이라는 외적 위험이다. 히틀러가 법과 질서를 명분으로 비판한 시위와 소요는 현재 국정원과 새누리당, 보수세력이 '난동'이라고 비난하고 있는 바로 '촛불시위'다.

1932년 공산주의의 위협을 앞세워 법과 질서를 주장하던 히틀러의 연설에 환호하던 독일 국민들의 그 모습이 2013년 종북주의자와 북한의 위협을 내세우며 법과 질서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의 말에 박수를 치고 있는 모습은 아닌지 되돌아 봐야 한다.

국정원 댓글녀와 요원들, 경찰청 간부들과 수사요원들은 지금 이근안과 아이히만이 되어가고 있지 않은지, 우리도 지금 혹시 법과 질서를 열변하던 히틀러에게 박수치던 독일 국민들처럼 그 광장에 서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성찰해봐야 할 때다.
#국정원 #대선개입 #아이히만 #이근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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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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