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도움 안 받았다" 박 대통령, 너무 안이하다

[게릴라칼럼] 박근혜 정부 6개월, 멀어지는 민주주의

등록 2013.08.26 15:29수정 2013.08.26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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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불통', '오만', '독단', '일방'.

출범 6개월을 맞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세간의 평가 키워드들이다. '나홀로 인사'를 강행하면서부터 예상했지만 순리와 상식, 소통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보수신문과 그들의 종합편성채널(종편), 공영방송사들이 나서서 '그래도 외교성과는 눈부셔', '역대 지지율 2위' 등의 민망한 제목과 레토릭으로 아부경쟁을 펼치고 있지만, 민주주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았던 이명박 정권의 5년과 비교해, 별반 나아진 게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전국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국정원 대선개입 관련 시국선언과 촛불집회는 MB정권 출범 직후 전국으로 확산됐던 '미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과 성격이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출범 배경과 특징, 정부와 여당의 대응이 비슷하다.

세 가지 측면에서 닮았다. 우선 정부와 여당이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흡사하다. 거기에다 터무니없는 색깔공세로 상황을 호도하며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매우 닮았다.

국가 정보기관의 대선개입과 경찰의 은폐·축소가 조직적으로 이뤄진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감추기'에 급급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어 충격과 분노가 커지는 양상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위험한 1인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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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9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 청와대


공무원이 선거에서 여론을 호도하는 것은 명백하게 헌법의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다. 더욱이 국가 정보기관이 개입됐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국격을 훼손한 중대한 사건이다. 그런데 청와대와 여권이 드러내고 있는 작금의 인식은 너무 안이하다. 새누리당은 민주당의 장외투쟁과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시민들의 촛불집회를 '대선 불복의 정치공세'로 싸잡아 치부하고 있고, 가장 큰 수혜자인 박근혜 대통령은 2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고 선거에 활용한 적도 없다"고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보다 못해 대학생들이 들고 일어난 시국선언은 시민사회단체, 학계, 종교계, 문인, 일반 시민들에 이르기까지 들불처럼 확산되고 있음에도 대통령은 "도움을 받지 않았다"며 똑같은 이야기만 하고 있다.  분노한 시민들의 함성을 향해 "2008년 대선에 불복해 촛불집회를 일으켜 나라를 어지럽힌 전례가 있다"는 허무맹랑한 소리로 방패막이를 해주는 여당과 보수언론들이 있으니 굳이 대통령이 나설 필요가 없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


'나홀로 인사', '수첩 인사' 등 불안한 박근혜표 리더십은 취임 6개월이 지난 지금, 참담한 결과를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다. 합리적 보수주의와 젊고 유능한 인사들이 퇴조하는 대신, 대통령 주변엔 군인출신, 공안통 검사출신, 심지어 유신시절 사람들까지 포진하여 아버지 '박정희 독재'를 닮아가려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주고 있다.

유신헌법 초안 작성에 참여하고 "우리가 남이가" 등의 망언으로 지역감정의 대명사격으로 불리는 김기춘 비서실장 임명은 '나홀로 정치'의 대미를 장식했다. 이로 말미암아 박근혜 정부 출범 6개월을 맞은 우리사회는 빛보다 그림자가 넓고 짙게 드리워지고 있는 형국이다.

오죽했으면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두고 이상돈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만기친람'이라고 꼬집어 비유했다. '모든 일을 직접 챙긴다' 뜻으로 적극적인 소통의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강조한 말이다. 갈수록 더해가는 불통, 오만, 독선으로 뒤엉킨 1인 리더십은 정부 부처와 여당이 전문성·소신을 갖고 역할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저해하고 대국민 설득·소통에서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

출범 초기부터 창조경제를 강조했지만 6개월 동안 경제분야의 별다른 성과를 찾아보기 힘들다. 박근혜 정부는 4대 국정기조 첫번째 과제로 '경제 부흥'을 설정해 추경편성과 4·1부동산 대책, 고용률 70% 달성 로드맵, 투자활성화 대책 등을 연달아 쏟아냈다. 하지만 국민 피부에 와 닿는 성과는 보이지 않는다.

대선기간 내내 강조했던 복지공약 이행에 필요한 135조 원의 재원 마련은 여전히 불투명한 가운데 경제민주화 공약은 당초 목표에서 후퇴했다는 부정적 평가가 나올 정도다. 경기침체와 전·월세난 등으로 서민·중산층 삶은 더욱더 고단해졌다.

일자리 또한 늘지 않고 가계 소비나 기업 투자도 살아나지 않고 있다. 가계부채는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우며 1000조 원에 성큼 다가섰다. '박근혜표 창조경제'는 이 바람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무려 22조 원 이상의 엄청난 혈세를 들여 강행한 4대강 사업은 거대한 녹조현상과 수질악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음에도 정부는 바라만 보는 형편이다. 모두가 인과응보의 결과다.

교육분야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교육부는 장고 끝에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을 내놓았지만, 발표이후 교육현장의 반발이 거세다. 개별적으로 제기돼오던 불만과 반발이 공동대응으로 전환되면서 불똥이 번지고 있다. 더욱이 지난 21일 발표 예정이었던 교육부의 대입전형 간소화 방안도 자료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연기돼 비난이 잇따르고 있다.

국정원 사건 외면하는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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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규탄 촛불집회, '박근혜가 책임져라'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규탄 제9차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가 새누리당의 방해로 전모가 밝혀지지 않았다며 특별검사 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박근혜 정부 6개월 동안 국내 언론자유의 퇴보는 무엇보다 끔찍하다. 국내외적으로 '최악'의 수준으로 평가받았던 MB 정권시절의 언론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오히려 더 후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최근 한국기자협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잘 나타났다.

현직기자들은 우리나라의 언론자유 수준이 지난 이명박 정부 때와 비교해 어느 정도 수준이냐는 질문에 67.4%가 "비슷하다"고 응답했다. "더 나빠졌다"는 응답자는 23.7%(매우 나빠졌다 6.9%, 나빠진 편 16.8%)를 기록했다. "나아졌다는 응답"은 8.7%(매우 나아졌다 0.9%, 나아진 편 7.8%)에 그쳤다

그도 그럴 것이 언론정책의 핵심인 방송통신위원장에 친정부·친여 성향의 인물로도 모자라 수구·보수언론 출신을 앉혀 편향된 시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특정 방송사 수신료 인상에 골몰하며 망가진 공영방송사의 공정성과 독립성 훼손에 대해선 수수방관한 채 오히려 친정부 체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지난 정권 5년 내내 이루어졌던 낙하산 사장 투하와 방송장악 정책으로 공영방송은 심하게 훼손됐다. 이 바람에 공영방송사들은 친정부 성향의 보도를 노골적으로, 수미일관되게 내보내고 있다.    
     
국정원 국정조사가 파행으로 끝나 시민들의 분노가 더욱 확산되고 있는 데는 보수신문들 함께 이들 공영방송의 책임이 크다. 국정원 규탄 촛불집회를 애써 외면해 오던 보수신문과 공영방송사들은 국회 국정원 댓글 국정조사 청문회를 '가림막 청문회'로 비하하거나 연신 선서거부와 거짓·불성실 답변을 일삼은 증인들의 태도에 대해 '의견대립' 프레임에 가두거나, 관대함으로 일관했다. 대통령의 나홀로 인사가 불러온 유신회귀와 소통부재에 대해서도 이들 언론은 침묵의 카르텔을 유지하고 있다.  

들끓는 민심과 거세게 타오르는 촛불도 이들 언론은 외면하고 있다.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진상 및 축소은폐 의혹 규명을 위한 시민사회 시국회의'가 서울을 비롯해 부산,대전,대구 등 전국에서 열리고 있고 심지어 보수성향이 짙은 대구·경북 지역의 천주교 신부 500여 명이 시국선언에 나설 정도로 각계각층의 동참이 줄을 잇고 있다.

하지만 보수신문과 그들의 종편, 공영방송사들의 보도는 인색하기 짝이 없다. 단 한 줄도 다루지 않다가 비판의 목소리가 높자 단신으로 처리하거나, 분노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벌이는 촛불집회를 '민주당 장외투쟁'으로 축소시켰다.

방송사들은 특히 국회 국정원 댓글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와 관련한 보도에서 양측 주장을 무비판 중계하기에 급급해 '정치 냉소주의'를 부추겼다는 따가운 비판을 받았다. 그러고도 '국민의 방송', '대한민국 최고의 언론'이라고 말할 자격이나 있을까?

정치의 본령은 국민의 목소리를 수렴해 이를 정책으로 실현하는 것이고, 언론의 본령은 정치권력과 정부정책에 대한 견제와 비판이 우선이다. 특히 언론은 주장의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가치판단의 기준과 근거를 명확히 제시해야만 한다. 그래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민의의 바람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고, 보수신문과 지상파방송사 등 주류언론들은 정권에 대한 감시견 기능을 포기하고 애완견 노릇만 하고 있으니 도대체 이 나라 민주주의가 어디까지 퇴보할지 암담하기만 하다.

헌법을 유린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훼손한 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고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것은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국민의 도리다.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질문에 대해 이제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답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 #출범 6개월 #보수신문 #공영방송 #종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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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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