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써야 살아남는다"

[중국어에 문화 링크 걸기 11] 寫

등록 2013.08.09 17:02수정 2013.09.25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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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다는 것은 단순히 베끼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논리를 정교하게 가다듬는 일이다. ⓒ 漢典


독서는 생각을 풍부하게 하고 글쓰기는 생각을 정교하게 한다고 한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논리를 가다듬는데 글쓰기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대학 진학에 필요한 포트폴리오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학습플래너, 체험활동 보고서  등 다양한 진로 준비 사항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 그래서 수험생들 사이에 적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의미로 '적자생존'이란 말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글을 쓴다는 표현은 중국어로 베낄 '사(寫, xiě)'이다. '집 면(宀)'과 '까치 석(舃, xì)'자가 결합한 것으로 물건을 여기서 저기로 옮긴다는 의미였다가 점차 옮겨 베낀다는 의미로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인들은 기록을 매우 중시하여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역사기록물들을 남겨 놓았다. 한자의 원형으로 삼는 가장 오래된 한자인 갑골문자 또한 왕의 판단이 옳음을 증명하기 위한 점술의 결과를 기록한 것이었다.

한자가 지닌 상형적인 성질 때문에 문자를 붓으로 쓰는 것 자체가 하나의 예술로 인정받는데 그것이 바로 '서예'이다. 서예의 성인으로 불리는 왕희지(王羲之)는 거위를 매우 좋아했는데 그 사실을 안 산음(山陰) 지방의 한 도사가 왕희지를 불러 거위를 줄 테니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을 써 달라고 했다. 거위가 너무 탐난 왕희지는 <도덕경>을 써주고 거위를 받는데 바로 사경환아(写经换鹅, xiějīnghuàn'é) 이야기이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 <왕희지관아도(王羲之觀鵝圖)>이다.

<도덕경>의 저술도 우연한 글쓰기에서 이뤄졌다. 쇠퇴하는 주(周)나라를 한탄하며 은퇴를 작정한 노자가 서방(西方)으로 떠나려고 할 때 관문을 지키던 관문지기의 요청으로 상하 2편의 책을 우연히 써 준 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고대 중국의 인재 선발방식은 과거제도였는데 응시생의 답안지 필체를 채점관이 알아볼 수도 있기 때문에 채점의 공정성을 위해 응시생의 답안지 전체를 글씨를 잘 쓰는 관리가 똑같은 서체로 모두 필사하여 채점을 했다고 한다.


20세기 초 중국에서는 고전에 나오는 문구를 근거로 글을 쓰는 문언문(文言文)이나 엄격한 규율과 형식을 강조하는 팔고문(八股文)을 지양하고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을 글로 그대로 쓰자(我手写我口, Wǒ shǒu xiě wǒ kǒu)는 백화(白話)운동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글을 다 쓴 다음에 수정, 보완, 정리하는 작업을 퇴고(推敲)라 하는데 이 또한 당나라의 시인 가도(賈島)와 당대 최고의 문장가였던 한유(韓愈)의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중국의 대학 입학시험인 까오카오(高考) 제1교시 어문(語文)시험의 마지막 문제는 작문(作文)문제다. 150점 만점에 60점에 해당되니 적지 않은 비중이고 한 주제에 대해 800자를 써야 하니 짧지 않은 글쓰기다.

중국 대입 응시자가 약 600만 명이나 되고 채점의 공정성에 어려움이 있음에도 모든 응시자를 대상으로 글쓰기를 요구하고 평가한다. 이는 일부 상위권 학생들에게만 논술을 요구하는 우리나라 입시제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생각과 논리를 정교하게 가다듬는 글쓰기 교육에 대한 대안이 마련되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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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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