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평균 수명 58.8세... 이유가 있었다

[정기자의 하루愛] 부산 해운대소방서 화재훈련 참가기

등록 2013.05.15 11:34수정 2013.05.15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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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못지 않게 더웠던 14일 한낮에 벌어진 소방 훈련 직후 소방관들의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 정민규


"진짜 할라고예?"

힘들어도 좋으니 시쳇말로 '빡센' 체험을 시켜달라는 기자의 말을 고영국 소방경 (해운대소방서 지휘조사담당)은 우려로 되받았다. "그럼 어디 한번 와보이소"라며 그가 점찍어 준 날이 5월 14일이었다. 대형 백화점 지하 7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가정 하에 실시하는 진압훈련이 예정된 날이었다.

덜컥 약속은 잡았지만 뒤따라 온 건 걱정이었다. 구조훈련을 하러 들어갔다가 구조가 되어 나오는 볼썽사나운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일정이 잡힌 4월부터 저녁마다 동네 공원을 5km씩 뛰었다. 그리고 바로 그날이 왔다.

부산 기장에 설치된 무인 기상관측소의 최고 온도는 섭씨 28.7도. 봄이라고는 믿기지 않게 무더운 날씨에 옷이라고는 믿기지 않게 무거운 특수방화복을 입어야 했다. 소방관들은 이 특수방화복을 달리는 차 안에서 30초 만에 입지만 기자에게는 30분을 준다면 모를까 30초는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겨우 두터운 방화복을 입자 이번에는 산소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들춰 메는 순간 '헉' 소리가 나는 무게였다.

"무슨 놈의 공기가 이렇게 무겁냐."

신음부터 터져 나왔다. 하긴 코끼리도 풀만 먹는데 몸무게는 몇 톤이랬다. 장비를 모두 갖추자 초등학생 3학년 정도의 평균 몸무게인 30kg이 더해졌다. 여기에 문을 부수기 위한 도끼와 로프, 무전기 등까지 더하면 장비 무게만 40kg에 육박한다.


"백화점 지하 7층 화재발생, 진압팀 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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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화재 진압 훈련을 앞두고 부산 해운대소방서 소방관들이 <오마이뉴스> 정민규 기자가 쓴 산소호홉기 상태와 압력 게이지 등을 점검하고 있다. ⓒ 해운대소방서


장비를 갖춰 입자 곧바로 진입 명령이 떨어졌다. 기자와 한 조를 이룬 해운대소방서 반여119안전센터 소방관 3명이 지하로 내려가는 백화점 비상계단 문을 열어젖혔다. 들어선 비상계단에서는 대피유도등과 손전등만이 유일하게 빛을 밝혔다. 산소호흡기와 안전모로 가뜩이나 좁아진 시야에서 빛마저 없으니 답답함이 커졌다.

쇅-쇅-.

산소호흡기의 호흡음이 텅 빈 비상계단을 가득 채웠다. 만약 실전이었다면 여기에 자욱한 유독가스와 방화복을 녹여 버릴 듯 한 열기, 때론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더해진다. 소방관들도 인간인 만큼 이럴 때 두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특히 지하에서 일어난 화재는 문을 열고 들어가기가 너무 겁이 난다고도 했다. 그래도 그들이 화마 속으로 들어가는 이유를 묻자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다.

"안에 사람이 있을 수 있잖아요!"

기자와 소방관들이 지상에서 지하 7층에 도달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2분 37초. 뛰지 않고 걸어 내려왔는데도 생각보다 빠르게 발화점에 도착했다. 여기서 다시 연결 송수관을 찾아 소방호스를 잇는 데까지 5분을 넘기지 않았다. 이후부터는 탈출이다. 내려왔던 계단으로 지상까지 올라오자 전자 초시계는 8분 32초를 찍었다. 성취감은 있는데 몸이 한증막에 온 것 마냥 덥다.

비로소 애벌레가 탈피를 하듯 방화복과 호흡기를 벗었다. 온몸이 물에 담갔다 꺼낸 듯 흠뻑 젖었다. 분명 살아있는데도 새삼 살아있다고 느껴지는 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올해로 29년차 소방관인 정사효 소방위(55)는 "훈련이라 그나마 이 정도지 실제 상황에서는 심리적 압박이 엄청나다"고 말했다.

단독으로 현장에 투입됐다면 특히 더 그렇다. 실제 이번 훈련에서도 해운대 소방서는 1인이 단독으로 지하 화재에 나설 때를 가정한 훈련도 실시했다. 현장에서 소방관이 겪는 공포를 알아보기 위해 실시한 훈련에서 혼자 투입된 소방관은 특수부대 출신인데도 팀을 이룬 소방관들보다 진입에서 탈출까지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최다 초고층 건물 밀집지역 해운대를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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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부산 해운대소방서는 해운대구 우동 소재 백화점 지하 7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가정하에 진압 훈련을 실시했다. 발화점에 도착한 소방관이 소방호스를 늘어트려 화재진압을 시도하고 있다. ⓒ 정민규


이런 식의 소방훈련으로 초고층 건물이 많은 해운대 지역에 맞는 소방 대책을 세우고 있다. 50개층 이상의 건물만 22개동이 있는 부산 해운대는 고층건물이 전국에서 가장 많이 밀집된 지역이다. 지난 2010년 발생한 해운대 주상복합아파트 '우신골든스위트 화재 사고' 이후 초고층 건물에 대한 소방대책 마련도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최근에는 80층이 넘는 아파트까지 들어서면서 소방장비도 첨단화 하고 있다. 국내에 처음으로 도입된 고성능 펌프차와 굴절사다리차는 모두 합해 20억 원이 넘는 초고가 장비들로 해운대 소방서만이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장비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지난 3월 실시한 초고층 건물 모의 화재 훈련에서는 80층까지 계단을 오르며 산소호흡기 성능을 시험했다. 결과적으로 턱없이 부족한 산소량 탓에 화재 현장에 도달하기 전에 산소가 고갈되는 문제점을 발견했고, 보조 산소통 구비와 중간 전진기지 구축 마련 계획을 수립했다.

4월에 실시한 67층 건물 주민 대피 훈련에서는 헬기가 건물 벽을 타고 솟아오르는 상승기류와 강한 바닷바람으로 옥상에 착륙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얻었다. 헬기에 바구니를 매달아 주민들을 대피시키는 방법과 주민들의 일사불란한 대피를 돕는 훈련의 필요성도 커졌다.

이날 훈련은 종전까지 지상에서 한 훈련을 지하로 내려가 실시했다는데 의의가 있다. 훈련을 실시한 백화점의 주차장만 해도 1만㎡가 넘는다. 지하주차장 뿐 아니라 지하철 등 각종 지하 시설물에서 발생하는 화재도 새롭게 대비해야 하는 화재 유형이다.

대한민국 소방관의 평균수명 58.8세..."그래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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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소방서 구조대원들이 14일 오후 화재 진압 훈련 중 지하에서 지상으로 탈출하기 위해 비상계단을 오르고 있다. ⓒ 정민규


훈련이 끝이 났지만 소방관들은 쉴 틈이 없다. 훈련 중에도 병원에서 자살을 하겠다며 소란을 피운 환자 때문에 구조대는 훈련을 접고 긴급 출동을 했다. 훈련을 마치고 소방서로 돌아오자마자 50층 규모의 빌딩에 화재 이상신호가 발생해 소방대원들이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뛰쳐나가는 일이 벌여졌다.

이상신호는 단순한 오작동으로 밝혀졌지만 소방서 전체가 한때 가슴을 졸였다. 이렇게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도 있지만 허탈하게 하는 일도 많다. 술 먹고 빠트린 반지와 휴대폰을 하수구에서 꺼내달라는 전화에서부터 쥐를 잡아달라는 신고까지 사람들은 119를 누른다. 그래도 소방관들은 일단 출동해야 하는 게 원칙이다.

이런 대한민국 소방관의 평균 수명은 58.8세. 많은 소방관은 이미 알게 모르게 마신 유독가스로 폐 기능 저하를 겪고 있다. 이날 훈련에서 기자는 산소통의 산소 70kg/㎠을 소비한 반면 대부분 소방관은 100kg/㎠이상을 소비했다. 같은 활동량에도 산소 소비량에 차이가 난 이유에 대해 고영국 소방경은 "소방관들의 폐기능이 그만큼 떨어져 있다는 반증"이라고 말했다.

화재 현장과 구급 현장에서 봐야만 하는 끔찍한 광경에 고통을 호소하는 소방관들도 부지기수다. 동료의 죽음을 목격했다면 충격이 더 크다. 고영국 소방경도 먼저 떠나보낸 동료들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런 이야기를 하던 고 소방경에게 "후회하지 않느냐"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절대 후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명감 아닙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고 소방경뿐이 아니었다. 이날 함께했던 소방관들은 한결같이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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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부산 해운대소방서 소방관들이 화재 진압 훈련을 끝내고 소방서로 복귀하고 있다. ⓒ 정민규


#소방훈련 #소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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