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과연 어느 정도 결핍되어야 서로 협동할까?

지리산인문학여행에서 박승옥 한겨레두레공제조합 대표 강연

등록 2012.10.19 15:35수정 2012.10.19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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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연 어느 정도 결핍되어야 서로 협동하는 힘을 가질 수 있을까?'


지리산인문학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구례에서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지리산 사람들'이 주최하는 연속 강좌에 두 번째 강사로 박승옥 한겨레두레공제조합대표를 초대했다. 지리산인문학 여행은 총 4강을 하게 되는 데, 지난주에는 홍세화 선생 강의가 있었다.

12월 1일이 되면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된다. 이 법의 시행을 앞두고 전국 여기저기에서 '협동조합법 설명회'가 개최되고 있다. 간단한 검색어로 '협동조합기본법 설명회'라는 것만 입력해봐도 전국에서 얼마나 많은 설명회가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10여 년 전 쌀수입개방을 앞두고 전국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던 '영농조합법인'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할 정도이다.

현재 개별법으로 인정받고 있는 '농축임업 협동조합, 생활협동조합 등'을 제외하고 누구든 어떤 목적이든 5명 이상의 조합원으로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 아마 현재 임의 단체로 활동하고 있는 많은 사회단체가 협동조합이라는 법인격을 가지는 것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사회적 협동조합이라는 규정은 사회단체의 법인격 취득을 전제로 만든 것이다.

박승옥 대표는 강의에서 여러 번 협동조합이 만들어질 수 있는 조건은 '결핍을 느낄 때'라고 말한다. 뭔가 문제가 있고 그 결핍의 문제를 풀 수 있는 합리적인 길을 찾아보면 협동조합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한겨레두레공제조합은 '우리나라의 장례'는 대표적으로 거짓을 기반으로 성립된 사업이라는 자각에서 시작했다. 실제 한겨레두레공제조합의 기준으로 장례를 치러본 결과 일반적인 장례에 비해 비용 절감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들을 위로하고 고인의 마지막을 평안하게 모시는 힘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문제와 결핍을 자각하는 힘이 있고, 그것을 가치를 중심에 두고 풀고자 하는 길에서 협동조합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협동조합은 영리 기업과 목적과 동기가 다른데 영리 기업이 이윤을 목적으로 한다면 협동조합은 편익과 잉여가 목적이다. 잉여는 이윤과 다르게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조직을 유지하고 확대하기 위한 것이다. 협동조합은 돈이 아니라 사람의 힘으로 사업하고, 지역공동체를 기반으로 한다.

한국의 1997년 IMF와 비슷한 정도의 국제적인 규모의 위기는 2008년 금융위기였다. 한국에서는 1997년 IMF의 경험이 워낙 컸기 때문에 그냥 지나간 것 같지만, 2008년 위기는 미국과 유럽을 휩쓸었고, 그 여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유럽에서 협동조합을 꾸준히 유지했던 기업들은 2008년 위기에서 대부분 살아남았다. 많은 은행이 무너졌지만, 유럽의 신용협동조합은 위기에서 오히려 살아났다.

왜냐면 '자산을 담보'로 대출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신용을 담보'로 대출했기 때문에 자산 가치 하락의 영향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1997년 IMF 시기에 많은 신용협동조합이 무너진 것은 그동안 한국 신용협동조합이 '사람이 아닌 자산 담보 대출'로 전환되고 있었다는 뜻이다.

신협은 늘 '사람의 결사체로서의 성격과 사업의 성격' 두 가지가 내부에서 대립하고 있다. 두 가치는 충돌하기도 하고 조화롭기도 하면서 현실의 문제에 대응해 가고 있다. 이런 대립과 충돌 속에서 '썬키스트, 제프리, FC 바르셀로나, AP 통신, 일본 생협 등' 무수한 기업들이 국제적인 수준의 조합으로 성장해 왔다.

박승옥 대표는 우리에게 협동조합의 시대가 열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석유 생산 정점의 도래'를 들고 있다. 50여 개 산유국 중 30개국 이상이 석유 정점을 지났음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이미 석유 정점이 지났다는 입장을 가진 전문가도 많고, 넓게 봐도 2020년 이전에 지난다는 데는 대부분 합의한 상태이다. 석유 1리터에 만 원하는 시대가 온다고 봐야 한다.

석유로 유지되는 사회가 여러 곳에서 문제가 발생할 것이고, '결핍이 발생'할 것이다. 협동조합이 시작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의문이 든다.

'우리는 과연 어느 정도 결핍되어야 서로 협력하는 힘을 가질 수 있을까?'

석유 가격이 1리터에 만 원이 되어도 우리는 쉽게 협력해서 문제를 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청년 세대가 등록금과 실업으로 인해 극도의 경제적 궁핍 속에 살고 있고, 미래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데도 고시원 쪽방에서 혼자 살지 주거 문제를 공동으로 푸는 실험은 극히 두려워한다. 죽을 정도의 결핍이 와야 겨우 옆집 문을 두드려 '밥 좀 주세요' 할 수 있다.

곡성에 왔던 10년 전 이곳에서 나는 유토피아가 현실화된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마을에서 주민들은 한 가족처럼 살았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10년 전 내가 봤던 수준의 마을 공동체를 하며면 사회복지사 2∼3명이 한 마을에서 지속 관리해줘야 겨우 가능하다. 농촌에 돈이 없어서 어려워진 것이 아니라 알게 모르게 서로를 도울 수있는 힘이 없어져 간 것이다. 10년 사이에 몇 분이 돌아가셨고, 이제 대부분 70살이 넘어가면서 자기 한 몸 유지하기도 어려워 졌기 때문에 서로 돌아볼 여유가 없어진 것이다.

도시든 농촌이든 협력하고 도와서 잉여를 만들 수 있는 힘이 극히 약해진 상태에서 결핍이 왔을 때, 우린 그 결핍을 보완할 힘을 '협동의 가치'로 만들 수 있을까? 그 힘이 정말 남아 있을까? 우리도 북한 주민처럼 조용히 앉아서 지본가와 국가의 도움만 기다리다가 굶어 죽게 되진 않을까?

쿠바와 북한이 1982년 구소련의 붕괴 이후에 겪었던 석유 공급 중단은 너무나 다른 결과를 드러냈다. 국가와 수령에 의지하던 북한은 굶어 죽었고, '바리오'라는 자율적인 지역 공동체가 살아있었던 쿠바는 다양한 농업을 스스로 기획하고 쿠바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위기를 넘겼다.

꾸준한 지역 사회 활동 없이 '협동의 가치'는 살아나지 않는다.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지역에서 뭐라도 해야 하는 이유는 이걸 놓으면 우리 삶이 말할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석유 정점은 곧 온다. 우리 삶은 심각한 결핍에 시달리게 된다. 대안은 '지역 공동체의 자율적 힘'이다. 협동조합은 이 경험을 충분히 한 사람들이 만들어낼 새로운 미래의 비전이다.

12월 1일, 지금은 아무리 작은 조직도 회사라는 조직을 만들어야 법인격을 가질 수 있는데
드디어 우리나라에서도 협동조합이 기업처럼 우리 삶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엄청난 변화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협동조합기본법 #박승옥 #지리산인문학 #죽곡농민열린도서관 #김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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