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왜'놀토'가'공토'인가요?"

등록 2012.03.10 12:05수정 2012.03.10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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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만 되면 얼굴에 함박웃음입니다. 일주일만에 엄마 얼굴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요일 점심 먹기 시작하면 얼굴은 이내 먹구름이 끼였습니다. 일주일 동안 엄마 얼굴을 또 다시 볼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때는 하룻밤을 더 잡니다. 하지만 월요일 아침 버스 기사는 얼굴이 울그락불그락입니다.


"왜 일요일에 안가고, 월요일에 가느냐. 너희들 때문에 손님을 더 태울 수 없다. 다음 주에는 반드시 일요일에 가라."
"아니, 엄마와 아빠하고 하룻밤 더 자는 것이 그렇게 잘못이예요?"
"그래도 이 녀석들이…. 잔말 말고, 다음 주는 반드시 일요일에 가야 한다. 알겠어?"


엄마 품에 하룻밤 더 자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그 다음 주는 눈물을 머금고 일요일에 집을 나서야 했습니다. 저는 1979년 중학교 입학부터 1985년 고등학교 졸업까지 6년을 이렇게 살았습니다. 집에서 중학교까지 워낙 멀어 학교 밑에서 자취를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올해 '울면'을 먹고 태어난 우리 집 예쁜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딸 아이를 자취를 시킨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도저히 떼어놓을 수가 없습니다. 아마 요즘 중학교 1학년 딸을 자취시키면 '정신나간 부모'라는 소리를 들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그렇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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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년. 일요일이 아닌 월요일에 자취방으로 가고 싶었지만 버스기사는 어림없다고 했었다. ⓒ 김동수


제가 토요일을 기다린 이유입니다. 그리고 저는 '토요일도 학교가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동무들끼리 나누기도 했습니다. 엄마 얼굴을 하루라도 더 보기를 그토록 바랐던 일이 이제 현실이 되었습니다. 올해부터 토요일에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부터 놀토였는데 이제는 토요일마다 놀토입니다. 그런데 놀토가 '공토'가 되고 있습니다.


놀토가 왜 공토인가요?

"아빠, 왜 토요일에 공부를 해요?"
"토요일에 공부를 해? 올해부터 놀토아니니?"
"아니예요. 공부한다고 했어요."
"토요일에 모든 아이들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아이들 하는 건데 뭘."
"그래도 놀토는 놀토가 되어야지 왜 공토가 되는지 모르겠어요."


올해부터는 토요일에 학교가지 않는다고 제일 좋아했던 우리집 막둥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학교가지 않는 날인 막둥이. 그런데 학교에서 토요일 공부프로그램을 받고서는 놀토가 공토가 되었다고 불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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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공부프로그램이 예체능이 많지만 아이들에게 역시 부담입니다. ⓒ 김동수


가져온 교육프로그램을 보니 막둥이가 말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국·영·수같은 학과 공부보다는 축구, 배구, 컴퓨터, 수영, 미술 따위였습니다.

"김막둥이. 토요일 공부하는 날 아닌데. 배구, 축구, 컴퓨터, 수영, 미술이잖아."
"아빠는 이것이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나는 공부하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학교에 가잖아요. 놀토인데 왜 학교를 가야해요?"
"아빠와 엄마처럼 토요일에 일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친구 부모님들 중에는 토요일에 일하는 분들이 많아. 그 분들은 아이들과 함께 있을 수 없으니까. 학교에서 축구같은 것을 가르치면 좋잖아."


막둥이가 학교를 얼마나 가기 싫은지 단박에 알 수 있었습니다. 축구를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방과 후 학습으로 축구를 시켜달라고 조릅니다. 그런데 토요일 축구교실은 싫다고 합니다. 말로는 이들 과목들이 공부가 아니라고 했지만 아이들은 학교가는 것 자체가 공부하는 것으로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토요 프로그램 과연 잘 정착될까?

토요일 직장 생활을 하는 학부모들이 많습니다. 이분들을 위해 놀토에 아이들을 학교에서 돌보고 가르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놀토 프로그램이 얼마나 정착될지 의문입니다. 매달 둘째 주와 넷째 주 토요일마다 놀토를 시작했을 때도 토요프로그램이 있었지만 결국 유야무야 되었습니다. 잘 정착되어 학생-학부모-학교 모두에게 좋은 결과가 있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33년 전 그 때 엄마 품이 그리워 하룻밤 더 자기를 간절히 바랐던 그 꿈이 이제 실현되었습니다. 막둥이 말처럼 놀토가 공토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놀토 #공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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