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혜여랑위의 코트 깃에 진한 가을이 물들었다

[정치풍자소설 '대권무림' 34] 에피소드 4 - 묵언의 바다, 백성들의 소리 없는 외침

등록 2011.09.28 10:59수정 2011.09.28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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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되었다. 들판에 황금색으로 무르익는 알곡이 태양의 밝음과 충돌하여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처럼 발정 난 금빛을 자랑하고 있었다. 새벽 기운이 제법 차가운 금속성의 체온계를 더듬고, 간혹 넘실대는 바람의 입김에 장난기 어린 한기가 묻어나오지만 그래도 대낮의 햇살은 이마와 목덜미에 쉼 없이 땀을 생산해내는 초가을이었다.

 

수행원도 거의 없이 전용 리무진도 마다하고 우이동 산길을 오르는 대쪽공주 근혜여랑위의 이마에도 예의 몸 국물은 쉴 새 없이 흐르고 있었다. 재재거리며 가던 걸음을 멈추고 잠시 이마와 겨드랑이의 담을 닦으며 여랑위가 앞 서 가는 여성 수행원에게 외쳤다.

 

"얘, 같이 가자. 왜 그리도 걸음은 빠르냐? 아직도 멀었느냐?"

"조금만 더 올라가면 동굴을 파서 만든 암자가 나올 것입니다. 대한 무림국 최고의 신공을 자랑하는 동자보살이 공들여 상을 봐놓고 치성 준비를 잘 마쳤을 것이니, 공주님은 그저 가셔서 대신원력의 신도(神道)를 체득하고 천부경의 삼신 사상을 온몸으로 완성한 살아 있는 삼신할미이자 동자보살인 '선청무진보살'의 염력만 믿으면 될 것입니다.

 

삼신에게 부여받은 산진의 어법을 깨달아 느낌, 호흡, 접촉의 삼도, 삼문을 인간의 어리석은 육신 위에 제대로 구현하는 보살의 위력은 이미 국내 유수 대기업의 사모들은 물론, 제황 위를 노리던 역대 사모들도 다녀가서 체험한 바 있습니다. 세상은 물론 측근들도 모르게 기획한 일이오니 여랑위께서는 그저 소저만 믿으시옵소서."

 

앞서가던 수행원이 재게 말을 놓기가 무섭게, 인왕산 형제바위가 한 눈에 들어오는 중턱 동굴 입구가 눈앞에 나타났다.

 

"어서 오십시오. 여랑위님. 감식촉(感息觸)으로 삼도를 구현하고, 악탁박(惡濁博)과 선청후(善淸厚)의 기운으로 성통완공의 기공을 확장하여 홍익인간, 제세이화의 세상을 펼치는 신불 '선천무진' 인사 올립니다.

 

무림인의 자주성과 원칙의 준수함을 스스로 견인하시고, 대중에 인간 본성과 바른 경제의 내공 있는 이상 국가를 세우시려는 여랑위님의 뜻을 받자와 이 신불 치성을 다하여 한바탕 신나게 놀아보겠사오니, 여랑위께서는 그저 편안히 이 늙은 보살의 복본지청을 정성껏 받자와 주십시오."

 

해가 뉘엿 서녘의 하늘 근처로 매복하는 듯싶더니, 더위에 언제 올라왔는가 싶게 산 중턱의 기온은 급격히 금속의 차가운 바람을 비수처럼 날리고 있었다. 여기가 서울인지, 산골인지 인왕산을 오르기 전 뉘 눈에 뛸까 저어하여 인적이 드문 소로로 돌아오던 길 곁에는, 어느덧 가을의 전령인 들국화가 틈을 비집고, 희고, 붉고, 분홍으로 머리를 곱게 단장한 코스모스가 넘실대고 있었다.

 

여느 야트막한 담 벽을 기대고 졸고 있는 감나무 사이로 이제는 보기 힘든 고욤나무도 몇 그루 본 것 같고, 담벼락 곁에는 자취가 사라진 까마중의 정겨운 검은 열매도 본 듯했다.

 

"여보게, 내가 이렇게 찾아온 것은 결코 나 한 사람만의 영화를 도모하려 함이 아닐세. 자네도 살 만큼 살았으니 우리 아버님이신 정희철태황제의 업지(業誌)를 기억할 테지?

 

나는 아버님의 빛나는 백성 사랑의 지극한 무림도의를 계승하여 전 세계에 찬연히 빛을 발하는 무림 대국을 재현하려고 하며, 내부적인 모순이 지천으로 남벌한 대한민주무림대국의 안위와 영원무궁한 평화, 그리고 내 아버님의 최대 업적인 경제 무림의 자주권을 회복하고자 하네.

 

그러나, 선창에 드나드는 괭이갈매기의 풍요로운 노랫소리처럼 질서 정연하게 나아가던 항해 길에 마치 율리시즈가 돌아가던 항해 길에서 폴리페모스나 키르케의 고난을 받듯이 때 아닌 시민 무림의 거센 도전을 받게 되었네.

 

여보게, 자네가 알다시피 나, 여랑위의 '원칙준수권'에는 어떠한 사심도 들어 있지 않네. 그야말로 오랜 기간의 수련으로 완성한 100% 순수 내공이지. 그러나 정치 무림의 어지러운 질서와 부패에 환멸을 느낀 백성들의 원성은 극에 달하더니 급기야는 아침 햇살의 화사함처럼 천공을 울리던 내 목소리에 파열음을 놓았네.

 

아름다운 경제 무림으로 세인의 찬사를 받던 진성백신 철수바이러스공이 '완전백신권'이라는 가공할만한 비권을 앞세우고 강호에 등장한 지 불과 과일(寡日). 정치 무림의 본질에 염증을 느낀 백성의 함성이 나의 귀에도 또렷하게 들리네.

 

여보게, 선청무진. 나에게 길을 주게. 내 지난 날 도방 맹주들의 과오를 되새기고 싶지 않고, 또한 하늘이 내게 내려주신 '천명'을 거슬리고 싶지 않으이. 자네의 지난 40년의 신천명제가 나를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것인가?"

 

근혜여랑위의 말이 진행되는 동안 묵묵히 눈을 감고 듣고만 있던 무속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마치 어둠이 다가오기 전 먼 수평선에 내리는 석양을 바라볼 때의 그 스잔함 같은 그 미소에는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알뜰하고 살뜰하게 다 마친 그녀의 이력에, 구만리 장천 포구에서 날아온 갈매기 떼들이 울음소리가 깃들어 있었다.

 

이윽고 천천히 동굴로 여랑위를 안내하는 신불의 정련된 걸음걸이는 신중했다. 밤을 세워 기도를 올리고도 무언가 모자라 눈 뜨기를 저어하는 신자처럼 신불은 마련된 굿청에 꽂혀 있는 초에 불을 붙이며 그리스 신화의 잠의 신 힙노스와 어둠의 신 에레보스와 필적하는 대한국 창세기의 어둠이 신들의 정령을 불러 모으며 깊디깊은 동굴을 차례로 점령해나갔다.

 

"덩덩 덩더쿵, 돼지 대가리 내꺼다. 쉬이 물렀거라. 천지개벽의 신이시여. 창세신이시여. 여기 청초한 한 떨기 민들레 같고, 가을녘 들판을 수놓은 코스모스의 창연함 같은 꽃 이파리 파르르 소리가 들리지 않으십니까?

 

옥황상제, 천지신명이시여, 용왕님, 박달님, 일월성신님. 들리시면 들린다고 대답해주십시오. 어허이 박수, 그 박자 소리 봐라. 이래서야 어디 우리 동자보살님, 파도에 부딪치는 방파제 같은 귀에 정성이 전달되겠느냐? 더 크게 울려라. 허윗, 허윗."

 

고수의 북소리에 맞춰 강신무 내림굿을 받던 시절의 순수로 돌아간 듯한 선청무진 동자보살의 신 내림은 리듬을 타면서 고조에 달해 눈동자에는 흰자위가 돌고, 목소리는 어느새 어린 여자아이의 그것으로 변해 있었다. 악귀를 몰아내기 위해 치르는 여느 무구의 자리와는 다르게 여랑위의 의식에는, 북과 징이 고조되며 혼령을 부르고 나중에는 작두를 타는 절차 없이 동자보살의 어린 목소리를 향해 천상의 목소리가 전달되면 그것으로 여랑위의 몸피를 감싸는 시민 해풍성 조류를 방어하는 의식이었다.

 

"언니, 게 있수? 있으면 손들어봐. 진성백신의 혼피가 이 나라 도처에 가득한 것은 사실이나 제석천님은 느긋하셔요. 오방신님께 기도를 정성껏 올리고 조상신님의 혼백을 위로해드리면 당분간은 만사무결 하다고 백두산과 묘향산, 그리고 지리산과 태백산의 신령님들이 말씀하시네.

 

추석도 지났으니 제천이나 곱게 올리고, 천지신명님과 옥황상제님께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고 기다리면 다음 일은 다음에 해결될 일. 자, 언니. 어쩔텨, 부족하시면 천지천황계의 대제황이신 단군 조상님이라도 다시 불러드릴까?"

 

동자보살의 주문은 짧았으나 거의 한 시간에 이르는 대장정 끝에 끝난 무속 의식은 마치 한 없이 고요한 바다를 항해하다 느닷없이 만난 풍랑에 좌초되던 여랑위의 난파선에 돛을 다시 올려주는 듯했다.

 

만나고부터 거의 두 시간여의 정성이 끝나자 근혜여랑위는 가늘고 긴 날개짓으로 창공을 수놓는 괭이갈매기가 비상을 멈추고 뱃전에 내려와 쉴 때의 고요처럼 사뿐히 일어나 동굴을 나섰다. 선천무진보살의 묵직한 목례를 등 뒤로 받으며 골짜기를 내려가는 여랑위의 베이지 코트에 반구형으로 변해가는 달빛의 정령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비슷한 시각, 서울특별방의 대리 맹주를 향한 불꽃 튀는 비무 대결의 예선 라운드인 당내 예비경선에서 민주공방의 새로운 여전사, 꼬장미령 영선나발구로진이 승리, 시민 무림의 절대 강자 원순희망제작창에게 유탄을 날리며 진군의 나팔을 힘차게 울렸다.

 

또한 최대도방인 한나라방에서는 원조모모스 중구진방 경원미모령이 예비 비무 없이 무혈 입성하여 법치수호 석연몽테스키외령을 압박하자, 희망제작창과 몽테스키외령의 가슴에 붙은 기폭 장치에서는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장치가 뇌관을 자극하고 있었다. 바야흐로 강호 무림의 절대자를 옹립하는 카운트다운은 침묵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묵언수행의 밀물처럼 밀려들고 있었다.

2011.09.28 10:59 ⓒ 2011 OhmyNews
#박근혜 #나경원 #박영선 #박원순 #이석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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