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자살도시 (Suicide City) - 64

열여덟고개 입관(入棺) - 2

등록 2010.10.27 14:21수정 2010.10.27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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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일곱 개의 성문이 있는 테베(Thebes)를 세웠는가......"

  

   나른하지만 장엄한 웅심(雄心)이 베인 음성을 유니트가 토했다. 필생의 당락이 달린 결단을 완수한 자만이 토로할 수 있는 울림이자 위광(威光)이었다. 그 문구는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쓴 <어느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에서 따온 고사(故事)였고 라이즈도 읽은 책이었다. 라이즈는 그 표현을 참을 수가 없어 냅다 소리를 질렀다.

 

   "왜 하필 이 순간에 그딴 현학적인 텍스트를 인용하는 거야? 선량한 양민들을 죽여 놓고 자기한 한 짓이 아니라고, 그들 스스로가 자행했다고 발뺌하려고? 아니면 백성들의 피가 당신의 왕궁을 준공(竣工)한 성분이었다고 강조하려? 당신이 뭔데 이들을 선동해서 자살로 몰고 가냐구!" 

 

   라이즈는 노환(老患) 들린 미네르바(Minerva)의 허위(虛威)를 질타하며 유니트를 갈기려했다. 유니트는 그의 타박을 듣더니 찬찬히 무릎을 세워 일어났고 라이즈를 향해 돌아섰다. 유니트의 안구와 뺨은 눈물로 범벅됐고 희열에 벅찬 듯 연방 눈물을 쏟아냈다. 눈물을 제어할 수 없는, 일부러 통제하지도 않겠다는 감정으로 들떠 있어 되려 라이즈가 위축되는 것 같았다.

 

   "지금 우리는 누구도 도달하지 못했던, 꿈속에서도 서까래조차 덮지 못했던, 월식(月蝕)에도 내비치는 걸 꺼려했던 신천지의 건설을 목도하고 있다네. 이제 저들은 자신을 방위하고 진전시키는 진정한 의무와 권리가 무엇인지를 최초로 성찰했어...... 구습(舊習)에 굴복하지 않고 금력(金力)을 무위로 퇴화시키며 악의 본토에 직격할 수 있는 개안(開眼)과 개명(開明)을 일거에 달성했네. 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허나 내 심장을 뜨겁게 달군 감동은 빠르게 식혀지고 독수리의 날카로운 부리가 쪼아대는 각혈(咯血)로 격심하다네...... 저들은 언젠가는 잊을 거야. 지금 저들이 감명한 여기 격세(隔世)의 전당을 말일세. 우리가 남긴 지엄한 유훈과 처절했던 투쟁은 매몰되고 연도와 지명(地名)만을 기억하겠지. 그런 수심(愁心)에 차 내 가슴은 활화산이 되어 미어터질 것 같다네."

 

   유니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미아라도 곁에서 울먹이며 비분한 통찰에 감응했다. 라이즈는 목이 메였다. 그는 승자도 패자가 아니었건만 유니트의 비장한 절개에 녹아들었다. 나도 세상과 하직할 때 묘비에 박힐 이름과 연도가 다이려나. 라이즈는 남길 게 아무것도 없는 자신이 누추해서 서글펐고 그들은 각기 다른 통한(痛恨)으로 상념에 빠졌다.

 

   "거기까지야!"

 

  예배소에 누군가 들어와서 외쳤다. 침몰하는 함선을 인양하려는 호출처럼 화급을 다투는 세기라 시름에 빠진 유니트, 미아라, 라이즈를 단박에 깨웠다. 로빙이었다. 예배소 뒤편이 열려 있었고 승강기에서 나온 로빙은 노기에 차있었다.

 

   "미아라! 정신병자한테서 떨어져. 우리 세대의 영욕(榮辱)은 나와 유니트가 지고 가겠다. 삼십분 뒤에 자살도시는 폭파돼. 저 승강기를 타고 탈출해라."

 

   로빙의 호통에 미아라와 라이즈는 화들짝 풀쩍였다. 미아라는 삼촌의 결심에 놀랐고 라이즈는 네버폴리스로 귀환하는 찬스라 귀가 확 뜨였다.

 

   타앙!

 

   총성이 울리며 로빙이 고꾸라졌다. 탄환이 로빙의 하복부에 박혔고 흉탄(凶彈)을 쏜 자가 회랑에서 건들거리며 나타났다. 휘휘 휘파람을 부는, 토멘이 예배소로 들어왔다.

 

   "시장님이 자살도시를 날릴 테러범이셨네. 하지만 미수에 그칠 테니 죄는 감해줘야겠지. 셀프 존에서 종신형으로 썩으시죠. 다들 그대로 있어! 올챙이들이 여기 다 모였군. 한 번에 장사(葬事) 치르기 딱 좋게 말이야. 미아라. 아기를 이리 넘겨."

 

   토멘은 횡재를 얻고 출감하는 기분이었다. 아기 재림자를 볼모 삼으면 네버폴리스에서 입지를 강화하고 레믹스폴리스와 골드폴리스를 줄다리기시키는 가교(架橋)가 될 수 있다. 대역전극. 그는 흐뭇해서 총을 겨누며 미아라에게 접근했다.

 

   딱! 악!

 

   토멘의 광대뼈를 돌멩이가 가격되며 충격으로 총을 놓쳤다. 맞은 곳이 금세 부어올랐고 살갗이 찢어져 피가 터졌다. 토멘이 우거지상으로 눈을 뜨니 예배소 양옆의 신도들이 돌을 든 채 버티고 있었다.

 

   우우우. 우우우.

 

   그들은 낮은 소리를 발하며 조금씩 음량을 높여갔다. 휙. 누군가 돌을 던졌다. 이번에는 가뿐히 피할 수 있었다. 휙휙. 2개가 연달아 날아왔다. 하나는 피했지만 뒤의 돌이 장딴지를 때렸다. 확확확. 4개였다. 미간에 맞았다.

 

   살려줘!

 

   표범을 사냥하는 투창(投槍)처럼 수를 셀 수 없는 돌팔매질이 이어졌고 토멘은 뭇매에 피와 멍투성이 되어 기진했다. 뻑! 최후의 일격은 토멘을 난간으로 몰았고 그는 비틀거리다 아래로 떨어졌다. 광장에 수북한 시체더미 위로 네이팜탄 쏟아지듯 거푸 자살하는 사람들에 묻혀 토멘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2010.10.27 14:21 ⓒ 2010 OhmyNews
#자살 #현존(現存) #재림자 #집단지성 #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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