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토'란 말 들어보셨어요?

등록 2010.07.11 10:02수정 2010.07.11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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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두 번, 둘째 주와 넷째 주 토요일은 학생들이 노는 토요일입니다. 학교에 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다들 '놀토'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 토요일을 '놀토'가 아닌 '봉토'라고 명명하여 부르고 있습니다. 특히 둘째 주 토요일이 그렇습니다. '봉토'는 '봉건 영주에게 주는 토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봉사하는 토요일'을 줄여 '봉토'라고 한 것입니다.

 

오늘(7월 10일) 오전 7시 조금 넘어 박철희 권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오전 일찍 전화를 할 때는 무슨 일이 생긴 것입니다. 저는 기쁨 반 걱정 반으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목사님, 저 박 권사입니다. 시간이 어떠신지요?"

 

아주 정중한 말씨입니다.

 

"예, 무슨 일이 있으세요? 무슨 급한 일이라도... ."

 

"아닙니다. 오늘이 임마누엘보육원 목욕봉사 가는 날이잖아요? 그런데 차편이 없어서요."

 

"예, 제 차로 가십시다. 몇 시 출발입니까?"

 

"7시 50분쯤 출발하면 될 겁니다. 그 시각에 맞춰 교회로 가겠습니다."

 

새벽기도 끝나고 잔디에 잡초를 뽑다가 받은 전화라 시간이 그렇게 넉넉지 않았습니다. 부랴부랴 씻고 약속 시각에 맞춰 차에 시동을 걸어놓고 기다렸습니다. 정확한 시간에 박철희 권사님과 이선옥 권사님이 타나났습니다. 아이들 두 명도 동행했는데, 예진이와 예경이는 이선옥 권사님 외손녀들입니다.

 

보육원 목욕봉사는 우리 교회에서 오래된 사역의 하나입니다. 제가 부임하기 훨씬 전부터 해온 일이니까 아마 7,8년은 족히 되는 것 같습니다. 보육원으로 출발할 때의 생각은 권사님들이 아이들 목욕을 시킬 때, 나도 씻은 아이들을 돌보며 함께 있다가 올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 권사님이 굳이 그렇게 하실 필요가 없다며 그냥 돌아가시라는 것입니다. 올 차편은 또 이야기해 놓은 데가 있다면서요. 아마 주일 설교 준비로 목회자에게 바쁜 토요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 귀가 차편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저는 돌아왔습니다.

 

박철희 이선옥 권사님은 지금 촌음을 다투는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박철희 권사님은 방울 토마토 수확기이기 때문에 잠시도 쉴 틈이 없고, 이선옥 권사님은 포도 순 치는 시기라 몹시 바쁩니다. 농사는 그 시기를 놓치면 원하는 수확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보욕원 아이들과 한 약속이 중요하다며 시간을 내어 그들에게 달려가는 것입니다. 저는 출발 전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두 분 권사님을 직분자로 세워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바쁜 와중에서도 사랑 베풀기를 쉬지 않는 두 분을 기억해 주시기 원합니다. 봉사로 보내는 시간의 몇 갑절의 시간을 이분들을 위해서 예비해 주시고, 가꾸는 농산물도 잘 열매 맺어 좋은 가격으로 판매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보육원 아이들도 할머니의 따스한 사랑으로 아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가페적 사랑으로 돌보는 시간 될 수 있도록 함께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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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가 되자 봉사를 함께 가리로 한 윤경이가 재촉을 했습니다. 10시 30분까지 모이라고 했으니 나갈 시간이 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더고운 봉사단'에서 온 편지를 보니 '11시 40분 김천문화원 앞 집합'으로 되어 있습니다. '더고운 봉사단'은 김천 지역의 장애 비장애 학생들이 조직한 봉사단체입니다. 주로 소외계층을 찾아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매달 둘째 주 토요일 모여 봉사활동을 펼칩니다. 지난 달에는 경북도립노인요양병원에 가서 노환으로 몸이 불편한 분들과 함께 체조도 하고 식사도 도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좀 색다른 프로그램을 마련했습니다. 오후 1시부터 김천문화원 강당에서 한 공연이 있습니다. 우리 지역의 봉사 단체 '김천 와이즈맨'이 좋은 합창팀을 초청했습니다. 공연팀의 이름은 'God's Image'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뜻이니 크리스찬들의 그룹임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교포 2세들로 구성된 팀이라고 합니다. 중고등학생들이 주 멤버인데, 일 년에 한 번씩 우리나라에 와서 전국을 돌며 하나님께 찬양으로 영광을 돌리는 행사를 가진다고 합니다.

 

이 공연을 준비하는 일에 '더고운 봉사단'이 함께 한 것입니다. 우리 봉사단이 맡은 일은 문화원 주위를 청소하는 일, 공연 전단을 나눠주며 관객을 안내하는 일 또 안내 포스터를 요소요소에 붙이는 일 등을 맡았습니다. 또 수시로 보조할 일이 있으면 진행을 돕는 봉사를 했습니다. 소외계층을 찾아 돕는 여느 때와는 다른 색다른 봉사여서인지 아이들이 더 많이 모였습니다. 오늘 처음 보는 얼굴도 몇 명 있습니다. 우리는 12시 정각에 모여 간단한 봉사 전 행사를 치렀습니다. 인원을 조별로 점검하고, 오늘 할 일들을 안내받았으며 이어 봉사단장인 제가 인사말을 했습니다.

 

"봉사는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닙니다. 시간이 많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몸이 건강하다고 할 수 있는 것만도 아닙니다. 봉사는 착한 마음과 더불어 함께 살고자 하는 공동체 의식이 분명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더고운 봉사단'은 우리 김천 지역의 장애 비장애 학생들이 모여 조직한 단체입니다. 여러분들은 많은 사람들이  '놀토'라는 부르는 그 이름을 '봉토'로 바꾸는 일에 실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봉사의 시간을 보내고 저는 공연은 보지 못하고 먼저 돌아왔습니다. 오후 7시가 다 되어 윤경이가 왔습니다. 그는 오늘 학교 친구 한 명까지 데리고 봉사활동에 참여했습니다. 'God's Image'의 공연이 너무 좋았다는 것, 강당에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관중이 대만원을 이루었다는 것, 언니(현경)가 활동하고 있는 한일여고 크리스챤 동아리 '샬롬'이 찬조 출연해서 박수를 받았다는 것, 아는 분들을 몇 명 만났다는 것 등을 재잘거리며 보고했습니다.

 

봉사하는 토요일인 오늘, 우리 교회 여전도회의 봉사로, 또 '더고운 봉사단' 학생들의 봉사로 하루의 가치를 맘껏 높인 날이었음을 기뻐합니다. 저는 한 달에 두 번 있는 '소위 노는 토요일(놀토)을 '봉토'로 즐겨 부릅니다. '봉토'라는 말은 '봉사하는 토요일'을 줄인 말입니다.

2010.07.11 10:02 ⓒ 2010 OhmyNews
#놀토 #더고운 봉사단 #보육원 #GOD'S IMAGE #김천 와이즈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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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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