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쿄토에서 '다문화 공생 교육'을 찾는 그녀는?

[일본의 다문화 공생 현장을 찾아서②] 쿄토서 다문화 교육을 실천해 온 재일3세 손미행 씨

등록 2010.04.12 11:28수정 2010.04.1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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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나 '프랑스의 이민'을 테마로 쿄토의 중학 2학년에게의 수업중에서 프랑스나 일본의 이민 정책에 대해 생각한 것 등을 프랑스인의 강사가 이야기해 주었단다. ⓒ 손미행

 

나와 손미행씨는 유투브라는 동영상 사이트에서 처음 만났다. 내가 유투브에 올린 '오마이뉴스 재팬'관련 동영상을 본 그녀가 나에게 메일을 보낸 것은 지난해 7월초였지만, 내가 그 메일을 발견한 것은 8월말이 다 돼서였다.

 

그녀는 교토에 거주하고 있는데, NGO단체들과 협력해 교토시내 학교 등에서 다문화교육을 하고 있단다. 특히 한국에서의 실천에도 흥미가 있는데, 미래에 협력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없을까, 고민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녀는 덧붙여 9월에 한국에 갈 예정이니 직접 만나서 여러 가지 논의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해 9월엔 신종플루가 유행 중이어서 그녀가 한국에 들어오지 못했고, 자연스레 그녀와의 만남은 연기가 됐다.

 

지난 2월 일본 친정 갈 때, 어쩌다보니 오사카를 경유하게 됐고 한국에 돌아가기 전 날 급하게 그녀를 만났다. 하지만 그녀와 오랫동안 천천히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다. 11살 된 큰아들이 동경에서부터 3시간 가까이 신간선을 타고온 바람에 너무 피곤해 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우리가 이야기를 나눌 동안 가만히 있지 못했다. 더구나 그녀도 3살 된 큰아들을 남편 손에 맡겨놓고 나온 터였고, 둘째를 임신한 지도 몇 주 안 돼 힘겨워 보였다. 그래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로 근황만 묻고는 헤어지게 됐다.

 

내가 한국에 돌아온 후 꽤 시간이 지났지만, 그녀에게 다시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있어서 아래와 같은 메일 인터뷰를 해봤다.

 

재일 코리안으로서 공립 중학교 교사로 채용 된 계기로

 

- 지금, 주로 무엇을 목표로 해 어떠한 활동을 하고 있는지 알려주세요.

"6년 정도 리츠메이칸(立命館)대학의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연구를 해왔습니다. 작년의 12월에 박사 논문을 제출했으며 올해 3월에 간신히 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습니다. 4월 이후에는 일본 학술 진흥회의 PD(postdoctoral fellow:박사 연구원)로서 1년간 쿄토 대학에 소속됩니다.

 

박사 논문의 테마는 '일본과 한국의 중학교에 있어서의 '다문화 공생 교육'의 본연의 자세~평화 교육의 포괄적인 전개를 목표로 해서'입니다. 학교와 NGO나 지역, 학생이 협력해 평화 교육이나 다문화 공생 교육의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면 어떨까를 실천,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테마가 핵이 되면서 나의 여러가지 활동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APT(Asian People Together:쿄토YWCA의 다문화 공생 활동)로의 활동, 쿄토시 외국적(外國籍)시민 간담회 위원, 쿄토시 기본계획 심의회 위원 등도 겸임하면서, 학교에서의 교원이나 아이들 대상 인권 강연도 합니다."

 

- 그 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원래, 2000년부터 4년간 쿄토시의 공립 중학교의 영어의 교원에 채용되어 일했던 것이 계기입니다. 당시는 아직 쿄토시내의 공립 학교에서 외국적의 선생님이 있는 것 자체가 매우 드물고, 여러가지 학교에서 외국인이나 국제 이해를 테마로 강연 등 하게 되었습니다.

 

또, 학교에서 일하면서, 재일 코리안(재일 한국/조선인)에게의 편견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 하고나 외국인=금발머리에다가 영어를 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아이들의 의식도 신경이 쓰였습니다. 학교에서의 다문화 공생 교육 프로그램이나 평화 교육의 프로그램을 충실시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APT의 활동에 관련되거나 여러가지 단체에 얘기해 학교에서의 프로그램을 충실시키거나 그 때에 코디네이터를 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실천을 반복해 가는데 있어서 이론적인 배경등 더 배우고 싶게 되어, 2004년에 교원을 퇴직하고 대학원에 들어갔습니다."

 

- 일본에서 일반교육을 받고 왔지만, 한국에도 유학한 이유와 그 성과는?

"어렸을 적부터 영어 교실에 다니거나 어학을 배우는 것은 몹시 좋아했습니다. 한국어는 나에게 있어서는 어머니나 친척이 하는 말로, 나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도 일본에서 살고 있었으므로 불편도 없었습니다. 고교 정도가 되어 영어권의 유학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모친에게 걸려 오는 한국어의 전화나, 한국의 친척에게 놀러 갔을 때에, 역시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강해져, 대학은 오사카외국어 대학의 조선어과에 입학했습니다. 그 사이에 1년간 서울의 연세 대학의 어학당으로 배워왔고 졸업했습니다.

 

유학을 마친 뒤 친척과의 교류는 물론 가능하게 되어, 책을 번역하거나 할 수도 있게 됐습니다. 자기 자신의 폭이 넓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유학중에 만난 세계 각국의 친구들로부터도 많은 자극을 받았습니다. 물론 취직이나 연구 등, 그 후의 인생에서도 어학은 하나의 무기가 되었습니다. 현재에도 아이들에게 수업으로 '재일 코리안'을 테마로 이야기할 때라도 한국어의 어휘나 속담의 이야기를 조금 해 주면 매우 기뻐해요. 그런 결과를 통해서 유학해서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 일본에서 재일 코리안으로서 사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언제쯤부터 생각하게 되었어요?

"역시 취직이나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하는 고교 이후 정도였을까? 예를 들면, 이 직업은 국적 조항이 있으니까 다른 전문이나 길에서 가능한 것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한다든가 하게 되지요. 그러한 경험을 반복할 때에 일본에서 살아가는 자신이라든지, 자신이 일본에 있게 된 역사의 흐름이라든지, 받아 온 것이라든지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들을 소중히하고 싶다는 생각도 강해진 것 같습니다."

 

- 부모님의 교육 방침은?(가정에서의 언어의 사용 등)

"부모님은 제가 일본에서 태어났고 자라는 과정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거나 하는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름을 일본식에'미유키'(美幸)라고 붙였으므로, 한국식에 읽으면 '미행'이라고 하는 것은 꽤 위화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어머니가 부산 출신의 1세라는 것도 있어서, 한국의 문화(음식이나 행사)와 일본의 문화의 섞여 있는 안에서 자랐고, 코리안(재일)인 것을 숨기는 일도 없었습니다. 어릴 적엔 일본명을 사용했지만 (한국사람이라는 것을)별로 숨기고 있을 생각은 없었습니다. 친척이 모이면 한국어로 이야기하고 한국으로부터 전화도 걸려 오는 환경입니다. 단지 중학생 이후, 민단이나 대학의 써클 등에서 무료의 한국어 강좌 등이 있으면, 아버지가 나에게 권해 주었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말을 배우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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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미행 씨와 가족 올해 3살이 된 아들과 남편과 같이 그녀가 사는 쿄토에서. ⓒ 손미행

 

다문화 라는 경계 없이 서로의 존재성을 인정해야

 

- 일본과 한국의 다문화 공생 정책을 비교 해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일본은 우선은 지역의 대처가 있고 그것이 지방 자치체의 대처로 발전합니다. 그리고 근년국의 레벨로서 총무청 등의 지침에 간 경위가 있습니다. 한국은 비교적 톱 다운식(관 주도형:官主導型)이 강한 듯한 생각이 듭니다. 그러므로 일본측이 보면 한국의 시책의 진행되는 방법은 꽤 빨리, 일본은 스피드에 늦는 듯하지만, 그 근본의 과정을 보면 일본측이 확실히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일본에 있어서의 재일 코리안의 해방운동으로부터, 일본계 브라질인등의 문제에의 대응의 확대 등).

 

단지 한국의 강점은 CM나 관청의 광고 효과도 있어서 '다문화 사회'라는 말 자체가 비교적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된 것은 큰 성과일지도 모릅니다. 일본에서는 지방 참정권도 포함하고 외국인에게 참정권 부여하면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의견이 뿌리 깊으며 다문화 사회로 변해가는 것에 우려를 안고 있는 사람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 성장 과정에 있어서의 아이덴티티의 변화가 있었다면.

"고교때까지는 일본식의 이름과 한국식의 이름의 2개 있는 것이 나 답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생이 되고 조선어과에 다닌 적도 있어서 완전히 본명에 정착하면, 본명만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손미행'으로서 사는 것이 마음에 들고 있습니다.

 

아이덴티티에 대해서는 한국과 일본의 섞여 합해지고 있는 자신, 그레이인 자신이라고도 말할까요. 아이덴티티는 유동적으로 항상 자신은 변화하고 있는 도상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연령을 거듭하는 것에 따라, 문화적으로도 언어의 면에서도, 지식의 면에서도, 섞여 합해지는 자신이 풍부해져 가고 있는 듯합니다"

 

- 남편과의 만남, 결혼이나 육아를 통해서 생각하게 된 것이 있다면.

"남편과는 근무하고 있던 중학교의 교원으로서 만났습니다. 서로 남자이니까 여자이니까 라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습니다. 결혼 생활도, 육아도, 자신의 할 수 있는 것을 각각 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금년도는 박사 논문으로 너무 바빴을 때, 남편은 육아 휴가를 얻었습니다. 엄마들로 넘치는 보육원이나 아동센터 등에 아빠로서 스스로 들어가면서 교류하는 것은 매우 드물지만, 우리 부부에게 있어서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향후도 예를 들면 어느 쪽인지가 몸이 안좋게 되면 건강한 쪽이 일할 것이고, 육아 휴가도 차례로 얻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 여성이나 어머니의 입장으로서 차별을 느낀 것은?

"개인적으로 차별을 느꼈다고 하는 것보다도 일본의 제도(한국도?)그자체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경험은 있었습니다. 장남을 출산하고 육아 휴가를 얻고 싶은 때에, 나는 할 수 있으면 남편과 동시기에 얻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한쪽 부모가 집에 있다고 육아가 잘 할 수 있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육아 휴가의 기간 수입은 줄어도 느긋하게 육아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육아 휴가의 규정(각 회사라든지 공무원의 규정같은 것에) 한쪽 부모가 일하지 않으면 육아 휴가는 받지 못한다는 것이 있고, 매우 화낸 경험이 있습니다.

 

북유럽 제국(諸国)에서는 남녀가 동시에 휴가를 얻고, 육아 한다는 것은 당연이라고 들었던 적이 있었으므로 설마 일본에서 그런 규정이 있다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그 규정이 있는 한, 예를 들면 부모님 일하고 있다면 아이를 보육원에 맡기면 좋고, 더 보육 시설을 늘리려는 해결책 밖에 생각이 없는 현상은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 여성이나 어머니의 입장을 통해서, 보람을 느낄 때는.  

"남성도 같을 지도 모르지만, 얼마든지 넓은 인생(인간 관계)을 경험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가정, 지역, 아이의 보육원이나 학교, 직장, 자원봉사, 취미 등, 각각이 모두 다른 인간관계를 맺고 서로 지지하면서 서로 연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이나 한국의 다문화 사회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내 자신이 느끼고 있는 존재성의 감각, 문화가 섞여서 합쳐 있는 가운데의 자신, 그레이 존에 있는 자신, 유동적으로 항상 변화해 나가는 자신이라는 것을, 경계하거나 굳센 척하지 않고서 서로 인정하게 되면, 별로 다문화 배경을 가지는 사람이라는 경계(境界)없어도, 더 한사람 한사람이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내가 이 인터뷰를 요청한 이유는 10년 이상 한국에서 살면서 주변으로부터 '다문화 가정의 어머니는 어떤가' 등의 인터뷰를 많이 당하기 때문이었다.

 

11살 된 우리 아들이 사춘기가 가까워지면서 엄마가 일본인이란 사실을 숨기고 싶은 마음이 강하지는지, 새학기가 시작할 때 제출하는 조사서 특기란에 '일본어'라고 쓰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한일(韓日)가정으로서 자녀를 키운다는 것의 어려움을 느낀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우리 입장을 지금 바꿀 수는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재일 코리안으로서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그녀 말대로 나도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가족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우리사회가 그런 사회가 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문화뉴스(http://www.cyn.kr/)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0.04.12 11:28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문화뉴스(http://www.cyn.kr/)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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