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K연쇄살인] 평양 거리를 쏘다니는 사이코패스

김갑수 통일추리소설 BK연쇄살인사건 (40회) 사이코패스

등록 2009.11.23 09:57수정 2009.11.2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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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인민보안성에서도 전과자들의 지문이 관리되고 있었다. 그리고 유전자는 국가안전보위부에서 따로 보관·관리하는데 언제든지 조회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관리되는 유전자가 주로 사상· 정치범 위주여서 이번에 분석된 유전자가 보관되어 있지는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예상대로 북한 전과자들의 자료 중에서 이번에 채취한 지문이나 유전자와 일치하는 것은 없었다.

"다음으로 후배가 할 일이 있어."
"말씀하십시오."
"우리는 지금껏 해방 후 남한에서 우익분자들의 테러가 심했던 것으로 알고 있잖아?"
"일전에 말씀하신 염동진의 <백의사> 같은 것이 대표적이었죠."
"마찬가지로 북한에서는 소련파 좌익분자들의 테러가 무서웠었다는 거지."

김인철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얼마든지 가능한 추리입니다만 자료가 남아 있을 것 같지는 않군요."
"남한에는 골수 친미, 다시 말해 서재필 같은 숭미(崇美) 세력이 있었듯이, 북한에도 골수 친소 즉 숭소(崇蘇) 세력이 분명히 존재했을 거야."

"그들이 각각 미국과 소련을 믿고 설쳐대면서 테러를 했다는 말씀이군요?"
"바로 그거야. 북한이라고 안두희 같은 자가 왜 없었겠어? 남한에서는 정적을 제거할 때 좌익분자라고 몰아붙였듯이, 북한에서는 자본주의자 또는 제국주의자로 몰아붙였을 거란 말이야."

"당연한 추리입니다."
"김일성이 박헌영을 숙청했을 때에도 미 제국주의의 스파이 혐의를 씌웠다고 하잖아?"
"그렇습니다."


"이승만에게는 분단에 반대한 김구나 숭미주의자 서재필이 모두 정적(政敵)이었듯이, 김일성에게는 분단 반대파 박헌영이나 숭소파가 모두 정적이었을 거야. 나는 김일성이라고 해서, 친일 청산 문제를 제외한다면, 이승만보다 도덕적으로 낫다고 보지는 않아."
"그게 바로 회색, 즉 여운형이의 노선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그렇다고 내가 여운형을 좋아한다고는 생각하지 말아 줘. 다만 나는 이승만이 김구는 죽였지만 서재필은 함부로 할 수 없었듯이, 김일성도 박헌영을 죽였지만 숭소파들은 제거하기가 어려웠을 거라는 말이지."
"미국과 소련에 대한 도전 행위로 비쳤을 테니까요."

"아무튼 이번 사건의 범인은 숭미파와 숭소파 그리고 그들을 추종하는 폭력 세력을 민족 화해와 통일을 방해하는 자들로 간주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어."
"남한 피살자들과 북한 피살자들의 면모를 보면 그렇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후배가 북한 숭소파에 대해 연구를 좀 해 줘. 아마 이곳 김일성대학 도서관 같은 데에는 자료가 남아 있을 거야. 아울러 현 시점에서 남한과 북한은 서로에 대해 어떤 오해를 하고 있는지도 연구해 봐. 남한은 북한의 골수 공산주의자들을 북한의 전부로 보고 적대시하고 있지나 않은지, 그리고 북한은 남한의 수구꼴통들을 남한의 전부로 보고 적대시하는 것은 아니지."

"범인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보자는 것이로군요?"
"바로 그것이지. 알아 줘서 고마워."

김인철은 입을 굳게 다물고 창밖을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저도 전폭 동의합니다."

김인철이 김일성대학 도서관에 가 있는 동안 조수경은 평양 거리를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그녀는 전차를 타고 '광복거리'와 '붉은거리'를 지나갔다. 사실 그녀는 거리 구경보다는 사건에 대해 골몰하고 있었다. 다른 범인들은 범행 후 은신했을지 몰라도 여자 둘을 죽인 범인은 평양 거리를 쏘다니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수경의 생각으로 그는 분명히 조직의 규칙을 위반한 이탈자였다.

또한 그는 여자를 보고 성욕에 자신을 주체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는 이를테면 연쇄살인범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살인의 쾌감을 잊지 못할 터였다. 만약 며칠 내로 범인을 잡지 못한다면 평양의 여성 한 두 명이 또다시 그의 희생양이 될 거라는 예감이 치밀어 올랐다.

- 연쇄살인은 진화한다.

평양역에서 전차를 갈아탄 그녀는 통일거리에 있는 시장에 가서 슬리퍼 등의 소모품을 구입했다. 그녀는 문수거리에 이르러 놀이공원 앞을 지났다. 회전그네가 숲 너머에서 돌아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사이코패스

수경, 살인마가 평양 거리를 쏘다니고 있을 거라는 수경의 추정은 정확했어. 살인을 저지른 지 채 열흘도 안 되어, 살인마는 인민배우를 죽이고 강간했던 순간의 환상에 사로잡히기 시작했지. 하지만 그는 평양에서는 함부로 범행을 할 수 없었어. 살인마는 놀이공원의 여자 어린이들을 보고 군침을 삼켰지만, 보는 눈이 많아 범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는 발길을 돌려야 했지. 게다가 평양에는 도처에 인민보안원들이 깔려 있기도 하고.

사건은 평양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한적한 시골에서 발생했지. 평안남도는 북한의 수도권으로서 공업과 농업이 동시에 발달한 지역이지. 그래서 평안남도의 농촌은 남자건 여자건 할 일이 많지. 북한의 어린이들은 구역별로 모여 여럿이 함께 학교에 오가는데 그것은 평양 같은 도시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한적한 농촌에서는 어린이 혼자, 또는 형제가 함께 학교에 오가는 수가 많은데 범인은 바로 그것을 노렸던 것 같아.

여름방학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늦은 오후, 아직 땡볕 더위가 식지 않은 무렵이었어. 평안남도 온천군 신영면, 유명한 고분 강신총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인민학교 5학년인 민숙이가 실종되는 사고가 발생했지. 민숙이는 착하고 명랑해서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어.

민숙이는 방과 후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귀가해야 했어. 왜냐하면 민숙이의 집은 학교에서 한 시간 반이나 걸리는 먼 데에 있었거든. 민숙이의 부모는 농장에서 양계 일을 했는데, 일을 마친 후에야 민숙이를 데리러 올 수가 있었지. 그래서 민숙이는 부모가 트럭을 가지고 데리러 올 때까지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어.

함께 놀아 주던 친구들이 집에 가고 친구 정옥이와 둘이 남게 된 민숙이는 양계장에 전화를 했어. 민숙이의 부모는 한창 일을 마무리하고 있었는데, 이제 10분쯤 후면 학교로 출발할 수 있다고 말했어. 민숙이는 더 기다리다가 정옥이와 함께 학교에서 나왔어. 같이 있어 주는 정옥이에게 미안했기 때문이지. 민숙이는 부모의 트럭을 마중하기로 한 것이었어. 민숙이는 6,7백 미터 정도를 걸은 후 정옥이와 헤어졌지. 6시 50분경이었어. 그것은 살아 있는 민숙이를 본 마지막 순간이기도 했지.

한편 민숙이의 부모는 마음이 급했어. 일이 생각보다 길어졌기 때문이지. 그래서 민숙이의 아빠는 남아서 마저 일을 하고 엄마가 트럭으로 민숙이를 데리러 가기로 했어. 시동을 거는 민숙의 엄마는 어린 것이 텅 빈 학교에 혼자 남아있을 것을 생각하고 마음이 급했지. 엄마는 일을 빨리 끝내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어. 그래서 평소보다 차를 빨리 몰았겠지. 때문에 마주 오는 딸의 모습을 놓쳤을 거야.

학교에 간 엄마는 민숙이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왔던 길을 되돌아갔지. 하지만 1km 정도를 갔는데도 민숙이의 모습은 없었어. 그때가 7시 5분, 단 15분 사이에 민숙이는 사라져 버린 것이지. 불안해진 엄마는 트럭으로 몇 차례 왔다 갔다 해 보다가 날이 어두워져서야 인민보안소에 실종 신고를 했지. 보안요원들과 주민들은 민숙이의 이름을 부르며 인근 전답과 야산을 찾아 헤맸지만 끝내 민숙이는 나타나지 않았어.

다음 날에는 지원 나온 보안요원들과 주민 수십 명이 민숙이를 찾으러 나섰지. 남들과 달리 조금 한가한 마음으로 야산 둔덕을 돌아보던 주민 박씨는 눈 아래 무덤 주변의 광경에 소스라치게 놀랐어. 햇볕이 내려 쪼이는 무덤 위 한가운데에 벌거벗겨진 여자 아이가 두 팔을 십자가처럼 펼치고 누워 있었던 거야. 박씨는 어찔했던 정신을 수습하고는 소리를 질렀지.

"여기다!"

그곳은 도로에서 불과 250m밖에 떨어지지 않은 지점이었어. 인민보안성에 있다가 연락을 받은 수경은 김인철, 유천일, 안동준과 함께 현장으로 달려갔겠지.
#사이코패스 #평양 #평안남도 #놀이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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