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한 해 묵은 아름다운 그림책

[그림책이 좋다 71] Wilfrid S.Bronson, < Starlings >

등록 2009.11.11 10:57수정 2009.11.11 10:57
0
원고료로 응원

- 책이름 : Starlings

- 글ㆍ그림 : Wilfrid S.Bronson

- 펴낸곳 : Harcourt, Brace & World (1948)

 

 (1) 자연이 없는 삶

 

 좋은 그림책이란 따로 있지 않다고 느낍니다. 다만, 우리를 즐겁게 하는 그림책과 우리를 조금도 즐겁게 하지 못하는 그림책이 있다고 느낍니다.

 

 우리를 즐겁게 하는 그림책 가운데에는 살며시 웃음짓게 하는 그림책이 있고, 하염없이 눈물짓게 하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맑고 밝은 마음밭을 일구어 주는 그림책이 있으며, 너르고 깊은 마음결이 되도록 북돋우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이와 달리, 짜증만 가득 안기는 그림책이 있으며, 지루하거나 따분한 그림책이 있습니다. 무슨 소리인지 알아먹을 길이 없는 그림책이 있는 가운데, 우리 눈을 버리고 우리 마음을 어지럽히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도무지 왜 만들었는지 알쏭달쏭한 얼치기 그림책마저 있습니다.

 

a

그림책 < Starlings > 겉모습. ⓒ 최종규

그림책 < Starlings > 겉모습. ⓒ 최종규

 

 저는 그림책을 고를 때에 '내 마음에 드느냐'를 먼저 따집니다. '그림이 괜찮으냐'를 다음으로 따집니다. '이야기가 재미있느냐'를 곧이어 따집니다. '줄거리를 어떻게 엮었는가'를 뒤이어 따집니다. 그러고 나서 '그렇다면 돈 주고 살 만하느냐'를 곰곰이 따집니다.

 

 어느 그림책은 이도 저도 따지기 앞서 '이 책은 사 놓고 봐야 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그림책은 이모저모 따졌을 때에 퍽 괜찮기는 하나 '그렇지만 사고 싶지는 않은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참마음을 담은 그림책은 짜임새가 조금 엉성하더라도 눈물방울이 똑 떨어지면서 품에 꼬옥 안기 마련이고, 참마음을 담지 않은 그림책은 빛깔이 곱고 짜임새가 빼어나더라도 눈물은커녕 웃음 한 조각 불러일으키지 못합니다.

 

 다들 한목소리로 '먹고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드높이기 때문일까요.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아무 그림책이나 대충 엮어서 내놓아도 된다고 여기고 있을까요. 글 한 줄과 그림 한 점에 좀더 마음을 쏟지 않아도 괜찮을까요. 어설피 글쓰기를 배우고 가르쳐도 되고, 어설피 그림그리기를 이끌고 내보여도 되는가요.

 

a

찌르레기 한삶을 통째로 잘 보여주는 재미나고 살가운 그림책입니다. ⓒ 최종규

찌르레기 한삶을 통째로 잘 보여주는 재미나고 살가운 그림책입니다. ⓒ 최종규

 

 우리 옆지기는 박새를 모릅니다. 콩새 또한 모릅니다. 어치는 알 노릇이 없습니다. 부엉이와 소쩍새를 가릴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꾀꼬리는 아예 못 알아볼 테지요. 딱따구리 크기가 얼마나 되는가는 헤아리지 못할 테고요. 마땅한 노릇입니다만, 마땅하게도 어느 누구도 이런 흐름을 살피지 않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만날 수 있는 새는 비둘기와 참새와 까치뿐인데, 비둘기와 참새와 까치가 어떻게 살아가고 어떤 모습인가를 꼼꼼히 들여다보면서 글이나 그림으로 담아낼 수 있을 만한 사람이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어린이 그림책에서 새를 다루는 사람은 퍽 많고, 어린이 그림책에서 새 그림은 빠지지 않습니다. 도시에서 무슨 새를 보았다고? 시골이라 해서 새를 더 많이 볼 수 있는 줄 알아? 시골이라고 뻐꾸기를 보거나 뜸북새를 볼 수 있다구? 개똥지빠뀌를 텔레비전이 아닌 두 눈으로 볼 수 있나? 후투티나 종달새를 맨눈으로 바라본 적이 있을 줄 아나?

 

 말 그대로 자연이 사라지는 우리 나라입니다. 자연이 없는 도시에 살면서 아이들한테 자연 이야기 담은 그림책을 잔뜩 사들여서 앵기는 어버이가 있는 우리 나라입니다. 정작 아이들한테 자연을 선사할 생각은 없이, 자연 이야기를 담은 글책과 그림책만 가득가득 베풀어 줍니다. 아이들은 들판과 내와 산에서 뛰놀지 못하고, 오로지 방구석에 갇힌 채 책이라고 하는 감옥에 갇힙니다. 아이들 옷은 흙이 묻지 않고 오직 자동차 배기가스 시커먼 때만 잔뜩 묻습니다. 아이들은 맨땅을 디디며 온갖 곳에서 저절로 자라는 풀과 나무를 느끼지 못하는 채 경비원 아저씨가 가지치기 하는 나무를 멀거니 가끔 들여다볼 뿐입니다.

 

 '강남 갔던 제비' 이야기는 얼어죽을(?) 소리처럼 되었습니다. 요사이에 제비가 몇 마리나 남았습니까. '두 모습 박쥐' 이야기 또한 맞아죽을(?) 소리처럼 되었습니다. 요즈음 어디메에 박쥐가 삽니꺼. 땅강아지 없고 소똥구리 없으며 풀무치 날지 않는 이 땅에 무슨 제비요 박쥐입니꺼. 비둘기에 이어 갈매기한테까지 새우깡을 먹이고 있는 이 나라 사람들한테서 무슨 새가 있고 새 이야기가 있으며 새 그림이 있겠습니꺼.

 

a

그림책은 생각힘을 바탕으로 엮어내기 마련입니다. ⓒ 최종규

그림책은 생각힘을 바탕으로 엮어내기 마련입니다. ⓒ 최종규

 

 (2) 책이 없는 삶

 

 저는 어릴 적에 책이 없는 삶을 보냈습니다. 어릴 적 이야기를 동무들하고 나누어 보면, 그래도 우리 집에는 책이 좀 있었다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국민학교 교사였고 월부 전집 몇 가지 갖추고 있었거든요. 뭐, 이 전집은 우리 형한테 읽히려고 사 둔 책이요 저 보라고 사 둔 책은 아닙니다. 어쩌면 부모님 마음은 형이 먼저 읽고 동생 나중 읽으면 된다는 생각이었겠지요.

 

 아무튼, 이러구러 저는 책이 없는 삶을 보냈습니다. 아니, 굳이 책이 없어도 되었습니다. 아니, 책이 없기를 바라며 놀았습니다. 어릴 적 저한테 책은 참으로 끔찍했습니다. '책 = 독후감 숙제'였거든요. '독후감 숙제 안 했으면 = 몽둥이찜질'이었거든요.

 

 1982년부터 1987년까지 다닌 국민학교에서 무슨 독후감 숙제가 그리도 많았는지, 아마 주마다 한 번씩은 내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주에는 과학 독후감이라면 다음주는 반공 독후감이고 그 다음주는 동화책 독후감이며 그 다음주는 동시집 독후감입니다. 뒤이어 충효 독후감이고 잇달아 새마을 독후감이며 거듭거듭 호국 독후감입니다. 그치지 않는 독후감 숙제 때문에 쩔쩔매는 막내아들을 안쓰럽게 여긴 어머니는 가끔 독후감 숙제를 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제가 한 독후감 숙제는 그냥 '몽둥이찜질에서 벗어나는' 테두리였고, 어머니가 해 준 독후감 숙제는 '최우수상까지는 아니나 우수상 탈 만큼'이 되었습니다. 원고지 다섯 장을 채워야 하는 독후감 숙제인데, 제 글씨는 삐뚤빼뚤이나 어머니 글씨는 다소곳하고 정갈했습니다. 누가 보아도 '내가 안 한' 독후감 숙제이건만, 저만 이렇게 어머니가 해 주지 않고 다른 동무들도 으레 어머니가 많이 해 주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르나, '어머니가 해 준 숙제임을 뻔히 알면'서도 으레 상을 주곤 했습니다.

 

a

오른쪽 위쪽에는 '움직그림'을 하나씩 넣으며 더 재미나게 보도록 해 줍니다. ⓒ 최종규

오른쪽 위쪽에는 '움직그림'을 하나씩 넣으며 더 재미나게 보도록 해 줍니다. ⓒ 최종규

 

 그런데 독후감 숙제야 한 주에 한 번이지, 다른 숙제는 날마다 산더미였습니다. 천재 국민학생이 아니고서는 하루 만에 끝낼 수 없도록 많았습니다. 모범생 동무조차 집에서 숙제만 하면 밖에서 십 분조차 고무줄 놀이를 못한다며 울상이었어요. 그래서 모범생 아이마저 '잠깐이나마 동무들하고 고무줄놀이를 하거나 어울리고' 싶어 학교에서 아침이나 쉬는 시간에 밀린 숙제를 하며 같이 뛰놀았습니다. 십 분은 남자여자 따로 레슬링이나 고무줄을 한다면 다음 십 분은 같이 오재미를 하거나 잡기를 하거나 오징어를 하고, 또 다음 십 분은 남자여자 따로 놀고, 또 다음 십 분은 같이 공을 차거나 야구를 하고.

 

 그야말로 책이 깃들 수 없는 나날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책하고 안 사귀는 삶이었습니다. 이제 와 돌아보면 '그 어린 날 책 좀 읽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할 법도 하지만, '그 어린 날 책 좀 안 읽은 일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왜 그 어린 나날에 책을 읽혀야 하겠습니까. 제아무리 뛰어난 작품일지라도, 제아무리 훌륭한 동화요 동시라 할지라도, 굳이 우리 아이들을 책상 앞에 얌전히 앉혀 놓고 책을 줄줄 읽혀야 하겠습니까. 이마에 땀 줄줄 흐르며 흙먼지에서 뒹굴고 놀도록 해야 하겠습니까.

 

 요즈음 초등학교를 들여다보면, 낮밥때만큼은 운동장이 북적북적입니다. 학교 공부 끝난 뒤에도 바글바글입니다. 모두들 신나게 뛰노느라 바쁩니다. 학원에 바쁘고 뭐에 바쁘다던 그 아이들이 맞느냐 싶습니다. 그러나 운동장에서 서로 어울려 놀기도 잠깐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딱히 놀이가 없습니다. 지난날 우리가 했듯이 수십 수백 가지 놀이를 신나게 즐기지 못합니다. 기껏 공을 차거나 줄넘기를 할 뿐입니다. 아이들 뛰노는 운동장에는 빈터가 없어 돌멩이로 금을 긋고 놀 수 없습니다. 인조잔디를 깔거나 우레탄을 박아 그냥 '뛰기'만 할 수 있습니다.

 

a

찌르레기가 너무 많아, 미국 정부에서는 사냥꾼을 불러모아 끝도 없이 잡도록 하기도 했답니다. ⓒ 최종규

찌르레기가 너무 많아, 미국 정부에서는 사냥꾼을 불러모아 끝도 없이 잡도록 하기도 했답니다. ⓒ 최종규

 

 그리고 이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마치기 무섭게 책하고 뚝 끊어집니다. 요사이 어버이들은 초등학생 아이들 '어린이책'만 갖다 안기지, 중학생 아이들 '청소년책'은 갖다 안기지 않습니다. 중학교 2∼3학년까지는 똑같이 어린이책을 보아야 하고, 중학교 3년부터 고등학교 3년까지(때로는 초등 5∼6년부터 청소년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아이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청소년책을 볼 무렵인데, 어버이 가운데 이러한 나이 나눔을 제대로 짚는 분은 몹시 드뭅니다. 기껏 아이들한테 책을 읽힌다고 해 보았자, 열두 살까지요, 열세 살부터는 책이 없습니다. 어버이들은 아이들한테 '너희들은 열세 살부터는 책을 보면 안 돼. 왜냐고? 열세 살부터는 대학입시를 준비해야 하거든.' 하면서 못을 박아 버립니다. 책 없고 동무 없고 삶 없는 입시지옥에 아이들을 몰아세웁니다. 책이고 동무고 삶이고 아랑곳하지 말라며, 더욱이 빨래고 밥이고 청소고 아이들 스스로 하도록 한 가지조차 가르치지 않으면서 오로지 교과서와 참고서만 들여다보도록 닦아세웁니다.

 

 자, 이런 이 나라 어느 구석에서 사람이 살 수 있겠습니까. 아니, 이런 나라에서 사람을 키우거나 가르친다는 뜻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사람은커녕 참새 한 마리조차 살아남을 수 없는 이 터전 이 나라 이 겨레는 무엇을 바라보면서 치닫고 있는가요.

 

a

찌르레기 날갯짓을 다 다른 모습 다 다른 몸짓으로 보여줍니다. 오늘날 한국 자연생태 그림책 화가 가운데 이렇게 그릴 줄 아는 분은 아직 한 사람조차 없습니다. ⓒ 최종규

찌르레기 날갯짓을 다 다른 모습 다 다른 몸짓으로 보여줍니다. 오늘날 한국 자연생태 그림책 화가 가운데 이렇게 그릴 줄 아는 분은 아직 한 사람조차 없습니다. ⓒ 최종규

 

 (3) 예순 해 묵은 찌르레기 그림책

 

 <Starlings>는 1948년에 미국에서 나온 그림책입니다. 연필로 그림을 그려 넣은 새 이야기 그림책으로, 이 책 하나에 나오는 찌르레기 숫자는 수천을 넘나듭니다. 첫 쪽부터 마지막 쪽까지 수도 없이 줄줄줄 찌르레기가 날아다닙니다. 지치지 않고 갖가지 모습 찌르레기가 나오며, 1/3쯤부터는 책 오른쪽 위에 '쪽마다 달라지는 움직그림'을 넣습니다. 어릴 때 이런 그림놀이를 해 본 분이 꽤 있을 텐데, 교과서 한쪽 귀퉁이에 그림을 하나씩 넣으며 쪽마다 달리해 놓으면, 나중에 휘리릭 넘길 때 움직이는 그림처럼 됩니다. <Starlings>는 '지식 그림책'이나 '생태환경 그림책'이 아닌 말 그대로 '찌르레기란 어떤 새인가?'를 보여주고 있는 그림책인데, 아주 자연스럽게 '찌르레기 지식'과 '들새가 살아갈 터전을 지키는 일'을 알려줍니다. 이러면서 '새는 어떻게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는가'를 기초공학에 따라 보여주기까지 합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넣은 윌프리드 브론손이라는 분은 이 '찌르레기' 그림책 말고도 고양이와 코요테와 거북이와 메뚜기와 갖가지 '자연 벗' 그림책을 그렸다고 하는데, 무척 꼼꼼하고 빈틈이 보이지 않는 데다가 재미있고 살갑도록 그림을 그리면서 수많은 책을 엮어냈다고 하니 참으로 놀랍습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멋진 그림책을 하나도 아닌 열 몇 가지를(이 책 뒤쪽에 소개되기로는) 그려낼 수 있었을까요.

 

 아무래도 오늘날 우리들로서는 이만 한 그림책이라든지 이 그림책 발가락만큼에라도 가 닿을 그림책을 혼자힘으로 엮어내기란 꿈 같은 노릇이 아닐까 싶은데, 오늘날 그림쟁이들이 솜씨가 늘고 재주가 높아졌다 하여도 이만 한 그림책을 낼 수 없는 까닭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윌프리드 브론손 님이 살던 그무렵(이 책이 나왔을 때를 돌아본다면 1940년대)하고 2000년대는 너무 다릅니다. 오늘날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찌르레기는 그리 흔한 새가 아닙'니다. 수십만 수백만 마리 찌르레기떼를 볼 수 있는 터전은 없습니다. 1930∼40년대까지 미국에서는 '찌르레기가 너무 넘쳐나'서 '찌르레기 사냥을 정부에서 부추기며 숫자를 줄여 달라'고까지 했다는데(이런 이야기를 그림으로 익살맞게 비꼬아 그려 넣기도 합니다), 2009년을 살고 있는 우리 세상에서는 참새를 수십 마리나 수백 마리 보기조차 힘듭니다. 비둘기가 떼지어 수십 수백 마리 날아다니는 모습이라도 구경할 수 있을까요?

 

a

찌르레기가 좋아하는 먹이를 크기에 따라 앙증맞게 그려 넣기도 합니다. ⓒ 최종규

찌르레기가 좋아하는 먹이를 크기에 따라 앙증맞게 그려 넣기도 합니다. ⓒ 최종규

 

 우리 나라에서 더러더러 제비나 황조롱이나 황새 그림책이 나오기도 하지만, 하나같이 '사진 자료를 보고 그렸다'는 느낌이지, 살아숨쉬는 새가 훨훨 펄펄 하늘하늘 싱싱 날아다니는 모습을 늘 곁에서 오래오래 지켜보면서 싱싱하고 힘차게 그려냈다는 느낌이 아닙니다. 펄떡펄떡 살아 있고, 힘차게 살아가는 들새 이웃이 없으니, 이제는 제아무리 솜씨와 재주가 대단하다 하여도 '두 눈으로 보는 새'가 아닌 '사진으로 보는 새'밖에 없으며, 이에 따라 <Starlings>는 1948년 이 그림책으로 끝이라 할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쉽지는 않습니다. 이 같은 그림책을 미국에서든 유럽에서든, 또 일본이나 우리 나라에서든 새롭게 그려내기 어려운 우리 모습이라 할지라도 서운하지는 않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모두들 더 많은 도시 물질문명을 누리며 지내는 삶에 익숙해 있을 뿐 아니라, 도시 물질문명을 덜거나 버리거나 줄이거나 멈추는 데에는 마음을 두지 않고 있으니까요. 다만, 안타깝고 안쓰럽습니다. 이와 같은 그림책 하나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고, 어떤 눈물과 웃음이 스며 있으며, 어떤 삶자락과 눈썰미와 마음결이 묻어 있는가를 끌어안을 가슴이 오늘 우리 이웃한테서는 찾아보기 몹시 힘들기 때문에 조금은 서글픕니다.

 

 더 낫다 싶을 그림책을 새로 그려내야 하지는 않습니다. 1940년대 느낌하고는 또 다를 2000년대 느낌을 베풀 그림책이 새삼스레 나와야 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두 즈믄 해 앞서 나온 책 하나로도 온누리 수십 억 사람한테 넉넉한걸요. 더 빼어난 <목민심서>가 새로 나와도 좋으나, 1800년대 <목민심서>를 요사이 우리 말로 옮긴 책으로도 좋습니다. 꼭 새로운 책 새로운 그림 새로운 이야기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옛책에서나 새책에서나 속내를 읽는 눈길과 가슴은 있어야 합니다. 아름다움을 알아채고 즐기고 누리며 나누는 마음결과 생각밭은 있어야 합니다. 사랑과 믿음을 함께하며 스스럼없이 서로서로 길동무와 이슬떨이가 되어 돕고 도움받으며 웃고 우는 삶은 있어야 합니다.

 

 그림책 <Starlings>는 이냥저냥 '생태환경 세밀화 그림책'으로 묶어 놓을 수 없는 책입니다. 빼어난 소묘와 관찰력이 돋보인다 하는 작품으로 매어 놓을 수 없는 책입니다. 그림 하나마다 사랑을 실었고, 이야기 한 자락마다 믿음을 넣었습니다. 이 그림책에는 틈틈이 '수백 수천 마리가 떼지어 날아다니는' 찌르레기 모둠그림을 담고 있는데, 이 모둠그림을 살피면 어떤 찌르레기도 똑같이 안 생겼고 똑같이 날갯짓하지 않습니다.

 

 

 자그마치 예순 해를 더 묵은 이 그림책을 이제 와서 굳이 들추어 내어 이야기하는 까닭은, 그림 하나에 무엇을 담고 그림책 하나로 누구하고 어떤 생각과 마음을 나누면 좋은가 하는 대목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그림책을 사랑하는 어린이나 어버이를 비롯하여,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모든 작가, 여기에 그림책을 엮는 책쟁이와 그림책을 말하는 비평가들 모두, 세월 더께가 아닌 세월 나이테를 읽어내며 가슴에 담아 우리 삶터를 우리 손으로 우리 슬기를 빛내어 우리 깜냥껏 알뜰살뜰 일굴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그림책은 사랑입니다. 밑바탕에 사랑을 깔고 있어야 하고, 온통 사랑으로 가득해야 합니다. 그림책은 믿음입니다. 이야기바탕에 믿음을 다져 놓아야 하고, 곳곳에 믿음을 심어야 합니다. 그림책은 나눔입니다. 그림바탕에 따순 손길이 배어 있어야 하고, 어느 쪽을 펼치든 싱그럽고 해맑은 손자국이 깊이 서려 있어야 합니다. 이 세 가지 바탕을 놓치고 있다면, 이는 그림책이 아니라 그림장난입니다. 그림으로 나누는 책이 아니라 돈벌이에 마음을 사로잡힌 헛짓입니다. 알차고 아름답게 엮어냈기에 사랑받기도 하고 널리 팔릴 수 있어야지, 처음부터 더 많은 사랑을 받거나 더 많이 팔리기를 바란다면, 부디 주식투자를 하시고 그림책 엮거나 쓰기나 읽기에는 손을 떼어 주십사 하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9.11.11 10:57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그림책 #STARLINGS #찌르레기 #어린이책 #책읽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모임서 눈총 받던 우리 부부, 요즘엔 '인싸' 됐습니다
  2. 2 카페 문 닫는 이상순, 언론도 외면한 제주도 '연세'의 실체
  3. 3 생생하게 부활한 노무현의 진면모... 이런 대통령은 없었다
  4. 4 "개도 만 원짜리 물고 다닌다"던 동네... 충격적인 현재
  5. 5 "4월부터 압록강을 타고 흐르는 것... 장관이에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