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온 아이가 별로 가듯, 작가 또한 별로 돌아가다

[만화읽기] 숨진 <드래곤볼>의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를 기리며

등록 2024.03.11 10:10수정 2024.03.1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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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볼 슈퍼 22권 겉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

 

<드래곤볼 슈퍼 22>(토요타로·토리야마 아키라/유유리 옮김, 서울문화사, 2024)이 한글판으로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24년 3월 1일에,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 님이 흙으로 돌아갑니다. 1955년에 태어나 2024년까지 그림꽃에 불꽃을 태운 삶길입니다. 일본판은 스물석걸음까지 밑글을 대고 그림결을 손보았다는데, 그 뒤로 더 나올는지, 아니면 이제 멈출는지 지켜봐야겠습니다.


<드래곤볼> 이야기는 손오공이 마지막(이라고 하지만 언제나 이어지는) 싸움판을 마치고서 하늘을 날다가, 너무 졸려 하품을 하고는 미르(용) 등을 타고서 잠드는 대목에서 끝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손오공은 스스로 '넷째 구슬'이 되어 몸을 벗고서 사라집니다.
 
"아니, 우리는 이미 육체를 한계까지 단련했다. 우리는 놈들과 별 차이 없는 수준까지 연마했어." "뭐? 정말?" "하지만 힘을 사용하는 방법이 달라. 우리는 아직 힘을 사용할 때 낭비가 너무 많다." (14쪽)

여태 나온 <드래곤볼 슈퍼>는 그 뒷이야기나 곁이야기라고 할 만합니다. <드래곤볼>은 지구 푸른별을 바탕으로 이웃별하고 얽힌 실타래를 짚는 얼거리라면, <드래곤볼 슈퍼>는 '푸른별을 품은 누리'하고 '온별을 품은 누리'가 만나는 길목을 짚는 얼거리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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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아이큐점프 별책부록. 별책부록으로 드래곤볼을 보여주었다. ⓒ 서울문화사

 
우주에 푸른별만 있다고 여긴다면, 그야말로 한참 바보이거나 눈감은 삶이겠지요. 생각해 봐요. 푸른별에 깃든 사람은 개미가 걷는 소리를 못 듣고, 코끼리가 쿵쿵 찧는 소리라든지 고래가 헤엄치는 소리를 쉬 알아채지 못 합니다. 푸른별도 언제나 스스로 돌고 해를 빙그르르 도는데, 이 별이 돌면서 내는 소리를 못 듣습니다. 고작 이곳에 있는 빛줄기(가시광선) 테두리만 보거나 느낄 줄 알지만, 막상 이곳 빛줄기조차 두루 못 읽고, 조금만 떨어진 곳에서 나는 소리는 아예 느끼지도 못 하기 일쑤입니다.

<드래곤볼>에 늘 나옵니다만, 손오공을 비롯한 사람들이 움직이거나 주먹을 날릴 적에 '거의 모두'라 할 사람들은 그걸 하나도 못 보고 못 느낍니다. 대단히 빠르니까요. 눈을 깜짝 하는 사이에도 주먹을 숱하게 주고받지만, 이를 알아볼 줄 아는 눈은 드물어요. 푸른별 사람은 언뜻 보면 하찮다 싶을 못난이라 할 테지만, 곰곰이 보면 '싸우는 재주'는 뒤떨어지더라도, 이 별을 사랑하는 마음은 온누리와 온별누리에서 으뜸이라 여길 만합니다.

푸른별은 싸움별이 아닌 사랑별입니다. 손오공은 왜 푸른별을 지키고 싶을까요? 바로 이곳에서 사랑을 처음으로 배우고 느끼고 보았고 알았거든요. 아무리 빼어난 솜씨라 하더라도 사랑에 앞설 수 없습니다. 사랑이 없는 채 주먹힘만 내세우거나 돈과 이름을 거머쥐려는 얼뜬 무리를 박살내되, 목숨을 빼앗고 싶지 않은 손오공입니다. 손오공은 꼭두로 몹쓸 마음을 먹은 녀석조차도 '살려'서, 이이가 '스스로' 사랑을 보고 깨달아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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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에 나온 <드래곤볼> 다섯째 겉그림. ⓒ 서울문화사

  
"레드리본군을 없애 달라고 빌면!" "……." "그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나 보네요. 그럼 신룡에게 최고 장로님처럼 피콜로 씨의 잠재 능력을 끌어올려 달라고 하는 건 어떨까요?" (24쪽)

"아무리 적이라지만, 어린이를 유괴하는 건 찬성 못 하겠는데." "과학자가 쓸데없이 참견하지 말아 주겠나?" (48쪽)
 
손오공하고 단짝동무로 어울리는 베지터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손오공이 누구보다도 훌륭히 싸우고 벼릴 수 있던 바탕을 찾는다면, 그가 처음 이 별에 떨어지던 날 갓난둥이를 거둔 할아버지가 물려준 사랑을 마음에 씨앗으로 심고서 늘 되새기는 숨결 때문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이러면서 동무를 반갑게 맞이하고, 이웃을 따스히 품습니다. 작은 숨붙이하고 나무를 아껴요.

<드래곤볼 슈퍼 22>은 베지터가 '마음닦기'를 하면서 거듭나는 줄거리를 살짝 다룹니다. 베지터는 이미 앞서도 '마음빛'을 다스리는 길을 배웠습니다. 몸만 다그치듯 갈고닦을 적에는 허물을 못 벗는 줄 몸으로 깨달은 베지터인 터라, '마음빛'을 다스리면서 '첫째도 둘째도 막째도 아닌', 오직 '나는 누구인가?'를 스스로 묻는 길에 제대로 발을 담근다고 여길 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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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볼과 얽힌 곁이야기도 곧잘 나왔다. ⓒ 서울문화사

 
책을 보면, 별에서 온 아이가 별로 갑니다. 별을 바라보면서 그런 이야기를 짠 작가 또한 스르르 눈을 감고서 이제 별로 가게 되었습니다. 오래 싸운 손오공이 마침내 넷째 구슬로 녹아든 미르로 나아갔듯, 이제까지 바지런히 그림붓을 놀린 아재도 사르르 몸을 내려놓고서 풀꽃나무가 흐드러진 숲으로 날아갈 때입니다.
 
"하지만 우리 아빠는 많이 바쁜데 날 찾으러 와 줄까?" "당연하지! 이런 상황에서 오지 않으면 내가 반쯤 죽여놓을 테다." (60쪽)

"이봐, 2호. 저 녀석들, 정말로 악의 조직이겠지?" "당연하지, 무슨 소리야. 헤도 박사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잖아.""그렇지." (131쪽)

"넌 나쁜 녀석이 아니야. 멍청한 명령을 따르고 있을 뿐이지." (135쪽)

우리가 살아가는 이 별에 사랑이 있는 뜻을 곱씹을 일입니다. 사람은 풀꽃나무를 동무하고, 풀꽃나무는 사람을 이웃합니다. 사람은 멧새와 개구리와 풀벌레가 들려주는 노래로 활짝 웃고 춤춥니다. 멧새와 개구리와 풀벌레는 사람들한테 노래를 베풀면서 하늘과 땅 사이에서 빛납니다. 온꽃으로 피어나는 사랑이기에 빛입니다.

떠난 분을 기립니다. 즐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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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번역판 <드래곤볼> '원작' 마지막인 42권 겉그림. 지구를 바탕으로 펼치는 이야기는 여기서 처음으로 맺는다. ⓒ 서울문화사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글쓴이 누리집(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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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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