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탑방녀와 반지하남, 너희 무슨 관계니?

[서평] '처절한' 자취 경험담 <대한민국 20대, 자취의 달인>

등록 2009.09.27 13:17수정 2009.09.27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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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상종. 최근 계속되는 장관 등 고위 공무원들의 임명 청문회를 볼때마다 떠오르는 사자성어다. 국무총리 내정자부터 대법관까지 위장전입을 안한 사람이 없다.

도대체 현행법을 몇 개씩이나 어긴 전력이 있는 법무부 장관 임명자를 무슨 수로 도와줄까 싶지만 여당 국회의원들은 미리 약속이나 한듯 내정자들을 감싸고 우회적으로 옹호한다. 무엇이 그들을 한결 같이 '끈끈한' 모습으로 만든 걸까.


통성명 없이도 여당 장관과 여당 국회의원 사이 만큼이나 공감대가 저절로 형성되는 사람들이 또 있다. '새로운 세계'를 찾아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한 20대가 바로 그들이다. 오늘 소개할 책은 독립을 꿈꾸지만 손에 쥔 돈은 없는 '88만원 세대'들의 처절한 독립생활 적응기, <대한민국 20대, 자취의 달인>(김귀현·이유하 지음, 에쎄 펴냄)이다. <오마이뉴스>에 연재됐던 기사에 내용을 더해 책으로 탄생했다.

그의 '리얼다큐', 그녀의 '판타지'스러운 자취 이야기

"시장에서 산 두부 한 모를 오래 보관하는 방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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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20대, 자취의 달인 ⓒ 에쎄

위 물음에 대한 정답은 '물 속에 두부를 잠기도록 넣어서 냉장고에 밀봉 보관한다'이다. 이렇게 하면 냉장고에 넣어도 이틀이면 '맛이 가기'시작하는 두부를 비교적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다. '1인분 찌개에 항상 신선한 두부를 넣어 먹고 싶다'는 필자의 본능적 욕구가 빚어낸, 웬만한 주부들은 알지만 독신남들은 잘 모르는 '체험, 삶의 현장'이다.

26세 '옥탑방녀(이유하)'와 29세 '반지하남(김귀현)'의 생활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책은 곳곳에 이런 본능적 욕구의 흔적이 묻어있다. 그 본능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물론 엄연히 남녀의 차이가 있고 옥탑방과 반지하의 사정이 다르지만 기본적인 희망 사항은 판박이. '잘 먹고', '따뜻하고 볕 드는 집에서', '폼나게' 살고 싶다는 거다.


'반지하남'의 지상 목표는 말 그대로 지상 위에 있는 전세집을 얻는 것이다. 반지하집으로 독립을 선언한 지 며칠 만에 뚜렷한 목표를 정한 그. 목표에 가까이 다가가려면 돈을 '획기적으로' 더 모아야 한다. 안 그래도 '저질 체력'인 '반지하남'은 신용카드를 싹둑 자르고 '절약'이라는 가시밭길을 질주하기 시작한다. 

변변히 할 줄 아는 요리도 없고 평소 육식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나는 자취생 '반지하남'이 '잘 먹기'위해 선택한 것은 회사 선배에게 저녁 빌붙기. 옷은 회사 유니폼을 적극 활용하고, 날이 아무리 추워도 보일러 없이 전기장판으로 버티기, 쓰레기 봉투 살 돈이 아까워 음식물 쓰레기는 잘게 썰어 변기로 해결하기, 대규모 후배들이 모이는 술자리는 절대 가지 않기 등의 방법을 선택한다.

그러나 그렇게 알뜰살뜰 모은 돈으로 올인한 펀드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반토막. 마음과 몸은 다르지 않다고 했던가. 허무한 펀드 수익률이 마음에 미친 여파는 '반지하남'의 외모까지 변화시킨다. 짙은 눈썹에 뽀얀 피부. 나름 '한국형 꽃미남 형'이었던 얼굴은 반지하 독립생활 동안 동남아 순회 여행을 다녀도 현지인들이 바가지를 씌우지 않는 '현지형' 얼굴이 되었다.

'반지하남'의 에피소드가 처절한 '리얼 다큐멘터리'라면 '옥탑방녀'의 이야기는 '판타지'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주거환경부터가 그렇다. 보고 있으면 사명대사의 일화가 떠오르는 그녀의 옥탑방. 여름에는 고기가 익을 정도로 덥고 겨울에는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춥다. 주거환경만큼이나 생활도 범상치 않다. 그녀만의 '네버랜드'인 광활한 옥탑방에서 '옥탑방녀'는 난데없이 폭발한 보일러 뚜껑에 뺨을 강타 당하기도 하고, 순식간에 빈집털이범으로 몰리기도 한다.

'옥탑방녀 판타지'의 정점은 자신의 생활 속 '삽질'을 '그래도 뭔가 의미있는 것'으로 합리화시키는 그녀의 능력에서 나온다. 작가를 꿈꾸는 씩씩한 그녀. 웬만한 실수들은 마음의 상처없이 스스로 치료해 버린다. '보일러가 터져서 수리비 55만원 나온' 일 같은 '대사건'들은 난데없이 따뜻한 중저음의 택시기사 아저씨가 등장해 "아가씨, 조금만 고생하면 될 꺼야"라며 위로해준다.

결국 항상 몸은 고되지만 '내일은 더 나을 거야'라고 다짐하는 그녀. 소박하고 막연한 기대로 마무리되는 '옥탑방녀'의 이야기는 언제나 해피엔딩인 셈이다. 

배고픈 청춘들이여, 힘을 내자

'배고프면 먹고 싶고, 배부르면 눕고 싶어진다'고 했던가. 사실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다. 얼마 전 직장을 옮긴 '반지하남'은 꿈에 그리던 '화장실 말고도 집안에 볕이 드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의 새 집은 천장 네 귀퉁이가 모두 직각인, '따뜻한 남쪽나라' 제주도의 '오피스텔'이다.

반지하에서 오피스텔로, '신데렐라'급 쾌거를 이뤄낸 '반지하남'. 예전의 간절한 소망은 이미 기억에서 사라졌는지 '사납게 몰아치는 제주도 해풍' 운운하며 투덜거리지만 그 모습이 결코 밉지 않다. 그것은 아마 그가 치열한 생활을 바탕으로 온몸으로 꿈을 꾸는 20대이기 때문이 아닐까.

'위장전입'의 노하우도 없고 '다운계약서'가 뭔지도 모르지만 그저 좀더 좋은 환경을 얻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공감대를 느낄 수 있는 사람들. 오늘도 반지하에서, 옥탑방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멋진 20대들의 '삽질'을 응원해본다. 파이팅!

대한민국 20대, 자취의 달인 - 반지하와 옥탑방에서도 잘 살기

김귀현.이유하 지음,
에쎄, 2009


#자취의 달인 #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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