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만 꿔도 괜찮은' 스웨덴 아이 하영이

[책읽기가 즐겁다 233] 이하영, 《열다섯 살 하영이의 스웨덴 학교 이야기》

등록 2008.12.31 16:18수정 2008.12.31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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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열다섯 살 하영이의 스웨덴 학교 이야기

- 글ㆍ사진 : 이하영

- 펴낸곳 : 양철북 (2008.10.27.)

- 책값 : 9800원

 

 (1) 한국이란 나라에서 학교라는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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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 양철북

겉그림 ⓒ 양철북

 카지노이든 도박장이든 가 본 일이 없습니다만, 사람들 이야기로는 이런 곳에는 시계와 거울과 창문이 없다고 합니다. ‘지금 내가 어디에서 무얼 얼마 동안 하고 있는가’를 잊도록 해야 도박에 흠뻑 빠져들면서 자기 모든 것(돈이든 집이든 집식구이든)을 내버리게 되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우리 나라 학교와 군대와 감옥을 헤아려 보면, 시계도 있고 거울도 있고 창문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 학교나 군대나 감옥, 여기에 회사와 관공서까지 더해 놓고 보면, 그 어느 곳에서도 ‘지금 내가 어디에서 무얼 얼마 동안 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끔 홀가분하게 풀어놓고 있지는 않은 듯합니다.

 

창문은 있어도 바깥을 내다볼 수 없습니다. 거울이 있어도 제 얼굴이든 몸매이든 제 마음대로 가꾸거나 꾸밀 수 없습니다. 하다못해 머리 길이조차 제 마음대로 간수하지 못하지요. 시계가 있으나 시간에 따라서 제 하고픈 일과 놀이를 즐길 수 없습니다. 있기는 있어도 시늉일 뿐이고, 외려 없을 때보다 답답하거나 꽉 막힌 데가 우리네 사회 얼거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 비록 한국에서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했지만 일등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을 돕지 않고 나 혼자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만으로 부족하면 때로는 교활한 방법을 써서 다른 사람이 열심히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법도 터득해야 했다 … 내가 일등을 함으로써 얻어지는 것들을 포기하고 나니 일은 훨씬 쉽게 풀렸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리고, 스웨덴어 때문에 여의치 않다면 다른 친구를 불러와 통역을 부탁했다 … ‘우리 모두 똑같이 잘하자’는 스웨덴 학교의 교육 방침은 한국 학생이나 부모님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발상일 것이다 ..  (52∼55쪽)

 

 텔레비전이 있는 옆지기 부모님 사는 일산집에 와 보면, 이곳 집식구들이 보는 텔레비전을 함께 보곤 합니다. 때때로 저 혼자서 텔레비전을 볼 때도 있습니다. 무슨무슨 케이블이다 해서 백 가지가 조금 못 되는 갖가지 풀그림이 스물네 시간 쉴새없이 흐릅니다. 텔레비전만 들여다보아도 하루 내내 지루하지는 않겠구나 싶으면서도, 1번부터 99번까지 한 칸씩 죽 움직여서 들여다보면, 어느 풀그림이든 거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연속극도 영화도 우스개도 노래도 다큐도 만화도 게임도 …… 비슷한 눈길과 어슷비슷한 줄거리와 겹치기 배우와 끝없이 다시 보여주는 풀그림입니다. 가짓수는 많지만 많은 가짓수만큼 다르다는 느낌이 없고, 수많은 풀그림을 볼 사람들도 모두 다른 사람들일 텐데 어떻게 모두들 똑같은 눈길로 똑같은 이야기를 즐기며 똑같은 생각을 하도록 하는 데에 그예 빠져들 수 있을까 놀랍다는 생각뿐입니다.

 

 어릴 적부터 길들기 때문일까요. 어릴 적부터 모두들 유치원에서 영어를 배우고 한자를 익히고 영어동요를 부르고 영어책을 펼치면서 크다가, 초등학교에 들고부터는 똑같은 교과서로 똑같은 수업에 똑같은 글짓기에 똑같은 시험에 똑같은 책걸상에 똑같은 음악 체육 미술에 똑같은 교과과정으로 똑같은 지식을 집어넣고 있으니, 생각도 마음도 넋도 얼도 매무새도 똑같이 맞춰져 버리고 말까요.

 

 제 어릴 적 국민학교에 다니던 일을 떠올려 봅니다. 1987년 10월 어느 날, 한가위와 주말이 겹치며 아주 오래도록 쉬는 때가 이어져 있었는데, 그때 우리 담임 되는 분께서는 ‘산수 깜지 50장’이라는 엄청난 숙제를 내어주었습니다. 뭐, 산수 숙제만 이만큼이었고, 다른 과목은 그 과목대로 다른 숙제가 한가득이었습니다.

 

그때나 이제나 다르지 않지만, 명절이라고 우리가 마음껏 놀 수 있지도 않은데(어느 집에서나 부모님을 거들며 명절 준비를 해야 하니까), 앞뒤로 빽빽히 ‘산수 깜지 50장’을 32절지도 16절지도 아닌 8절지에다가 해 오라고 하는 일은 한 마디로 폭력이었습니다. 이 폭력은 산수 깜지를 해 온 아홉 아이를 뺀 쉰한 아이한테는 ‘끝까지 산수 깜지를 다 마칠 때’까지 ‘안 해 온 장수만큼 매질을 받는’ 또다른 폭력으로 이어졌습니다.

 

담임 되는 분께서는 지치지도 않는지, 산수 깜지 숙제를 안 해 온 아이들 매질에다가, 일기를 안 쓴 아이들 매질에다가, 다른 숙제를 안 해 온 아이들 매질에다가, 아침에 학교에 늦은 아이들 매질에다가, 학교모자와 이름표를 안 차리고 온 아이들 매질에다가, 반장과 부반장이 적은 ‘떠든 아이 쪽지’에 적힌 아이들 매질에다가, 다달이 치르는 학력고사 점수 떨어진 아이들 ‘떨어진 점수만큼 휘두르는’ 매질에다가 …… 매질 매질 매질을 이어나갔습니다.

 

매질은 팔뚝이나 종아리에 때리는 회초리가 있지만, 엉덩이와 허벅지에 때리는 야구방망이가 있었고, 옆 반 교사한테 각목을 빌려 오기도 했고, 어느 반 교사한테 당구채를 빌려 오기도 했습니다. 교무실에 가 보면 출석부 있는 자리 옆으로 갖가지 몽둥이가 나란히 줄지워 서 있곤 했습니다.

 

 몽둥이 크기와 가짓수는 국민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가서도 달라지지 않았고, 대학교라는 곳에 잠깐 들어가서 보았을 때에는 몽둥이는 보이지 않았으나 선배 되는 분들께서는 후배 되는 우리들한테 얼차려나 주먹다짐으로 새로운 매질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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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렌투나 도서관 솔렌투나 도서관 안모습. 공부만 해야 하는 한국 도서관하고는 사뭇 다릅니다. ⓒ 이하영

▲ 솔렌투나 도서관 솔렌투나 도서관 안모습. 공부만 해야 하는 한국 도서관하고는 사뭇 다릅니다. ⓒ 이하영

 

.. 한국 학교에서는 예체능 수업이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내가 다닌 학교는 미술실이나 음악실이 따로 없었고, 피아노도 각 학년에 한 대밖에 없었다.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하고 리코더도 곧잘 연주했지만 하모니카, 멜로디언, 리듬악기처럼 몇 번 쓰고 처박아둘 것들을 계속 사야 했다. 크레파스와 물감, 붓 같은 것을 들고 다녀야 하고(스웨덴은 학교에서 모든 학용품과 준비물을 챙겨 준다), 일 주일에 한 번씩 수수깡이며 지점토, 색종이를 계속 사들여야 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미술 수업이 부담스럽고 싫었다.

 

내 침대 밑에는 언제나 쓰다 남은 미술 재료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선생님들은 툭하면 ‘과학 상상화’를 그리게 했다. 공상을 하거나 책 읽기는 좋아했지만, 그것을 그림으로 옮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결국 나는 몇 년 동안 똑같은 그림을 색깔과 구성만 조금씩 바꿔서 그려 왔다. 그러고도 교내 과학 상상화 그리기 대회에서 상을 받았으니 참 신기한 일이다. 체육 수업 역시 즐겁지만은 않았다. 땡볕에 운동장에 나가서 하는 달리기는 거의 고문에 가까웠다.

 

게다가 체육이 다른 수업 중간에 끼어 있어서 모두가 땀 냄새를 풀풀 풍기며 나머지 수업을 듣는 것은 보통 괴로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대한민국의 평범한 중학생이라면 이런 불평불만은 쏙 들어갔을 것이다.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예체능 과목이 그리워질 만큼 공부에 시달려야 했을 테니 말이다 ..  (70∼71쪽)

 

 한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얼마나 넓은 땅이 있어야 하느냐는 말이 있습니다만, 우리 나라에서 제도권 학교를 다니던 열두 해 세월은, 한 사람이 제도권 학교를 벗어날 때까지 얼마나 매질에 시달려야 하느냐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두드려맞고 욕지꺼리를 듣고 선생들 잔심부름을 해야 하고 선물(또는 돈봉투)을 갖다 바쳐야 하고 방위성금과 공과금과 폐품과 평화의댐성금과 국군위문편지와 학교발전기금과 무어무어를 가지고 학교에 가야 ‘학생 딱지를 떼고 사회인이 될’ 수 있는지 까마득했습니다.

 

죄수가 아님에도 왼쪽 가슴에 이름표를 늘 달고 다니도록 하고, 북녘나라처럼 독재가 아니라고 하지만 학교배지를 언제나 이름표 위에 달고 다니며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다가, 학교가 끝난 뒤 운동장에서 놀면 불량학생 대접을 받아야 하고, 교내 시험을 치러 몇 손가락 등수에 들면 무슨 잘못을 저지르건 가볍게 풀려날 수 있으며, 골마루에서 선생한테 인사를 안 하면 뺨따귀나 주먹이 날아오는 일이 왜 ‘학교’라는 데에서 이루어지는지 알 노릇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느낍니다. 이렇게 어릴 적부터 우리들을 묶어 놓고 푸릇푸릇할 때에조차 생각을 가두어 놓아야, 나라나 정치나 지역에서 뭔가 하나를 시키기에 좋을 뿐더러 정치와 행정을 붙잡은 이들이 잘못을 저지르고 뒷돈을 챙겨도 우리 스스로 아뭇소리 안 하게 되는 사회 틀거리가 만들어지게 되더군요.

 

나날이 정치를 못미더워 하면서 우리 스스로 투표권을 버리도록 하는 가운데, ‘이 정치인이나 저 정치인이나 다 똑같지 뭐’ 하고 생각하도록 이끌어요. 우리 스스로 우리 마음밭을 살찌울 책을 찾아서 읽는 버릇을 익히지 못하게 했으니, 우리 스스로 세상을 꿰뚫어보는 눈은 기르지 못하게 되면서 우리가 겪은 그대로 우리 아이들이 똑같은 길을 걷도록 하고 맙니다.

 

.. 한국에 있을 때 동네 도서관은 지대가 너무 높은 곳에 있어 자주 가기 힘들었고, 미국에서는 운전을 하지 않고는 갈 방법이 없어서 자주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스웨덴 도서관은 아파트 세탁실 가는 것만큼 편한 위치에 있어서 좋았다 … 혹시나 싶어 아동ㆍ청소년 도서를 담당하는 사서에게 물어 보았다. “한국어 책도 볼 수 있을까요?” 사서는 의외로 시원시원하게 10권에서 15권 정도를 들여놓고 편지를 보내겠다고 했다.

 

간단히 전화나 문자 메시지로 연락하면 될 것을 스웨덴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우편으로 대부분의 업무를 해결한다. 한국 책을 가져오겠다고 너무 쉽게 말해서 믿기가 어려웠는데, 얼마 뒤 책을 들여놓았으니 가져가라는 편지를 받았다. 정말 감동이었다. 스웨덴의 도서관 시설과 운영은 스웨덴이 복지국가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실감했을 만큼 훌륭했다 ..  (8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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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렌투나 도서관에서 한국책은 없으나, 하영이가 한국책을 볼 수 있겠느냐고 이야기하니, 오래 지나지 않아 열 권이 넘는 책을 갖춘 뒤 연락해 왔다고 합니다. ⓒ 이하영

▲ 솔렌투나 도서관에서 한국책은 없으나, 하영이가 한국책을 볼 수 있겠느냐고 이야기하니, 오래 지나지 않아 열 권이 넘는 책을 갖춘 뒤 연락해 왔다고 합니다. ⓒ 이하영

 

 우리 나라가 유럽 어느 나라들처럼 복지가 넉넉할 수 있으면 더없이 좋겠지만, 꼭 복지가 넉넉한 나라로 거듭나기만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다만, 학교는 학교 구실을, 사회는 사회 구실을 할 수만 있으면 하고 바랍니다. 학교는 한 사람이 차츰차츰 커 나가는 동안 몸과 마음에 익힐 힘과 깜냥과 슬기를 받아들이는 자리입니다. 높은학교에 들어갈 시험지식을 외우는 자리가 아닙니다. 햇볕 한 줄기 쬐지 못하도록 좁은 책걸상에 하루 내내 붙잡혀 지내야 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어릴 때나 풋풋할 때나 교과서 몇 가지와 참고서와 문제집 몇 가지로 우리 눈을 가득 채우게 하는 자리 또한 아닙니다. 날마다 쏟아지는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훌륭한 책이 얼마나 많은데, 왜 우리 아이들이 그 수많은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훌륭한 책이 아닌, 오로지 교과서 하나에만 매여서 자기 꿈과 뜻을 못 펼치게 가로막혀야 합니까.

 

.. 한국은 수업이 끝난 뒤에 그 자리에 앉아서 가만히 기다리면 선생님이 들어오지만, 여기서는 10분 동안 발에 땀이 나게 ‘교실 찾아 삼만리’를 해야 한다. 마치 대학처럼 자신이 들어야 하는 과목의 교실을 직접 찾아야 하는 것이다 … 스웨덴에서는 교과서를 학교에서 무료로 지급한다. 매년 새 교과서를 나눠 주는 것이 아니라 선배들이 쓰던 것을 물려받는다.

 

한 번 쓰고 버리기에는 종이의 질이나 인쇄 상태가 상당히 좋기 때문이다(백과사전 같은 미국의 교과서보다 좋은 것 같다). 예를 들어 내가 쓰는 수학 교과서는 320쪽짜리 올 컬러인데, 종이가 매끌매끌하고 질이 좋은 편이다. 이런 책을 한 번 사용하고 버리는 것은 자원 낭비이기 때문에 공책을 사용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  (182∼183쪽)

 

 (2) 우리 스스로 만드는 학교

 

 지난밤, 아기도 잠들고 옆지기네 식구들도 모두 잠든 때, 옆지기하고 나란히 앉아서 〈친절한 금자씨〉라는 영화를 텔레비전으로 봅니다. 잘 만든 영화라는 소리는 익히 들었지만 영화로 보기는 처음입니다. 보려고 본 영화는 아닌데, 용케 처음 흐를 때부터 보게 되어 내처 끝까지 봅니다.

 

 영화를 보며 줄거리를 헤아리는 동안, 이 영화는 그저 영화로만 담기는 이야기는 아니겠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다른 생각이 있어서라기보다 ‘요트’를 사고 싶어서 아이들을 꾀어 죽이고 돈을 뜯어냈다는 영어학원 강사 모습은, 오늘날 우리 나라 수많은 욕심쟁이 꾀쟁이 떼쟁이 심술쟁이 모습하고 다를 바 없습니다.

 

그 영어학원 강사 혼자서 잘못되거나 비뚤어졌기 때문에 그와 같은 짓을 저질렀을까 생각해 보면,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날 우리네 학교는 모든 아이들을 ‘〈친절한 금자씨〉에 나오는 영어학원 강사’ 마음이 되도록 길들이고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무엇엔가 억눌리고 찌들리고 꽉 막혀서 고리타분하면서 바보짓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멍청이가 되도록 하는.

 

.. 이제는 8시 30분에 등교해서 1시 30분에 하교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한국처럼 학교가 끝난 뒤에도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달리는 생활은 상상할 수도 없다. 요즘에는 너무 바쁘게 사는 것보다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사는 것이 훨씬 좋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쾌적한 도서관이나 햇볕이 좋은 공원 잔디밭에서 한가롭게 책을 읽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한국 친구들도 잠시 공부와 컴퓨터 게임을 잊고 경험해 보라고 꼭 권하고 싶다 ..  (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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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렌투나 도서관 스웨덴 도서관 책꽂이를 보면, 책이 다치지 않게끔 눌러 주는 장치도 깔끔하게 마련되어 있습니다. ⓒ 이하영

▲ 솔렌투나 도서관 스웨덴 도서관 책꽂이를 보면, 책이 다치지 않게끔 눌러 주는 장치도 깔끔하게 마련되어 있습니다. ⓒ 이하영

 

 영화에서 아이를 잃은 어버이들을 보면, 떵떵거리듯 잘살든 찢어지게 못살든, 당신들한테 소담스러운 한 가지는 당신들이 낳아서 기르던 아이들 ‘해맑게 웃던 싱그러운 모습’이었습니다. 당신 아이들이 지니고 있던 작은 물건 하나를 늘 간직하면서 떠나고 없는 아이를 떠올리고, 당신 아이를 죽인 영어학원 강사를 찢고 쑤시고 죽이기까지 했어도 아픔이 풀리지 않습니다. 풀릴 수 없었을 테지요. 누구라도 풀릴 수 없어요.

 

그러나, 그렇게 당신 아이들이 당신 품을 떠나기 앞서까지는, 당신들은, 아니 우리들은 깨닫거나 느끼지 못합니다. 우리가 우리 아이들을 사랑하고 믿고 아끼면서 돌보는 길은 ‘영어학원 따위에나, 또는 수많은 학원 따위에나, 또는 한국에서 손꼽히는 잘난 대학교 따위에나 보내는 일’이 아님을 깨닫지 못합니다.

 

 떠나고 없으니 비로소 ‘대학교에 못 가도 좋’고 ‘영어를 못해도 좋’으며 ‘돈 잘 버는 사람이 아니 되어’도 좋은 한편 ‘이름 날리는 사람이 안 되어’도 좋습니다. 그저 곁에만 있으면 좋은 아이입니다. 마냥 우리 둘레에 함께할 수 있으면 좋은 집식구입니다.

 

.. 이번 현장학습은 책상 앞에 앉아서 글만 읽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게 스톡홀름에 관해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한국의 친구들도 자신이 사는 지역을 돌아다니며 역사와 지리를 배우는 기회를 자주 가지면 좋을 것 같다(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서울 테마’ 같은 것이 없었다). 넓은 세계를 경험하고 배우는 것도 좋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나 마을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것도 아주 재미있고 유익한 일이다 ..  (138쪽)

 

 곰곰이 따지고 보면, 존 테일러 개토 님이나 이오덕 님처럼 깨인 분들이 말하듯, 나라나 정부가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어서 다스리기 좋도록 하고자 제도권 학교가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나라나 정부만 ‘바보 만들기’를 하지 않아요. 우리 스스로 나라와 정부가 ‘바보 만들기’를 하도록 돕습니다. 우리 스스로 나라와 정부가 ‘바보 만들기’를 해도 그저 따라가면서 낮은자리 사람을 밟고 올라서서 더 많은 돈과 힘과 이름을 누리고자 합니다.

 

 법과 제도가 뒤틀려 있기도 합니다만, 뒤틀려 있는 법과 제도를 고치지 않는 사람은 다름아닌 우리들이에요. 교육악법이 태어나고 방송악법이 태어나도록 한 사람은 바로 우리들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잘못해서 태어나려는 나쁜법이 아닙니다. 이명박 정부가 못난이라서 국가보안법을 안 없앨 뿐 아니라 더 끔찍한 법을 만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길들고 있으니, 우리 스스로 이 뒤틀린 틀거리에서 잇속을 챙기면서 제 밥그릇만 튼튼하면 된다고 여기고 있으니, 더 나빠집니다. 참된 길을 걷고자 애쓰지 않으면서 사회와 나라와 문화와 경제와 교육이 참되게 나아가기를 꿈꿀 수 없어요.

 

.. 나는 스웨덴에 온 이후로 또래 친구들보다 선생님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더 즐거웠다.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학생이 일방적으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사람 대 사람으로 존중하는 점에서 보면 그것은 확실하다 … 스웨덴의 시험 문제나 교과서의 문제 중 특이한 점 하나는 하나같이 서술형이라는 것이다. 심지어는 수학마저도 그렇다.

 

‘왜?’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 곳이 없다. 단답형으로 대답할 수 있는 문제는 거의 없다(나는 여태까지 본 시험에서 객관식을 본 적이 없다). 교과 과정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어야 생각하고 분석하고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 숙제나 시험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매번 숙제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그것은 정해진 시간 동안 억지로 끝내야 하는 지긋지긋한 골칫거리가 아니라, 나만의 개성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  (154∼159쪽)

 

 아직까지 우리 나라 구석구석 ‘새마을운동 깃발’이 펄럭입니다. 지난달이었나, 인천에서는 ‘전국 새마을운동 대회’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독재자 박씨는 새마을운동으로 온나라를 휘어감으면서 ‘잘살아 보세’ 하는 노래를 퍼뜨렸지만, ‘잘살기’가 무엇인지를 말하지 않으면서 사람들 전통문화를 깡그리 짓밟고 없앴습니다.

 

새로 가르쳐야 한다면서 새마을연수원을 짓고 사람들한테 새마을교육을 시켰지만, 새로 배운 사람이 늘어날수록 ‘서로돕기’와 ‘어깨동무’는 나날이 자취를 감추고 ‘혼자하기’와 ‘홀로놀기’만 자꾸자꾸 퍼져나갔습니다.

 

영어를 더 많이 가르치고 영어마을을 큰돈 들여 짓고 모든 회사 모든 시험에 영어 지식을 따지며 가게와 관공서 간판과 서류에 영어가 함께 적히고 있으나, 이렇게 한다고 ‘세계화’가 이루어질까 궁금합니다.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숱한 장사가 판치고 있을 뿐임을 느끼면서 자기부터, 또 자기 아이들한테 껍데기 가르침이 아닌 알맹이 가르침을 베푸는 분이 몹시 드뭅니다. 한국에서 살아남자면 어쩔 수 없다지만, 어쩔 수 없다기보다 우리 삶터를 더 나은 길로 고쳐 나가고픈 마음이 없기 때문이 아니랴 싶습니다.

 

.. 억지로 스웨덴의 교육 방식을 찬미할 생각은 없다. 또한 한국의 현실적인 교육 환경을 모조리 부정하며, 스웨덴의 교육 현실과 대입하여 우격다짐으로 트집 잡을 생각도 없다. 다만 내가 느끼기에 스웨덴의 교육 방식이 보다 인간적이고, 그런 교육을 받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이기에 오랫동안 건강한 복지국가가 유지되는 게 아닐까 생각할 뿐이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그 꿈이 무엇이든 나의 꿈을 존중할 것이다.

 

돈을 많이 벌고 떵떵거릴 수 있는 직업이 아니라고 침 튀겨 가며 말리지도 않을 것이다. 선생님들은 날 도와주고, 친구들은 날 응원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2년 뒤 내 적성과 능력, 그리고 소질에 맞는 진로를 정하는 데 아무런 망설임이 없을 것이다 ..  (1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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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렌투나 도서관 도서관 한쪽 자리에는 '심심한 사람은 뜨개질을 하면서 쉬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고 합니다. ⓒ 히아영

▲ 솔렌투나 도서관 도서관 한쪽 자리에는 '심심한 사람은 뜨개질을 하면서 쉬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고 합니다. ⓒ 히아영

 

 한손에 평화를 든다면, 다른 한손에 전쟁을 들 수 없습니다. 한손에 군대를 두면서 다른 한손에 사랑이나 믿음을 둘 수 없습니다. 군대와 사랑은 다른 세상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평화는 전쟁무기로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손에 제도권입시만 떠받치는 한국 교육이니, 다른 한손에는 매질과 끝없는 학원 교육이 올려집니다. 한손에 돈을 들면 다른 한손에는 이웃사랑이 아닌 이기주의가 올려집니다. 한손에 권력을 들면 다른 한손에는 이웃나눔이 아닌 소비물질만능이 올려집니다.

 

 (3) 《열다섯 살 하영이의 스웨덴 학교 이야기》를 읽으며

 

 아버지 일 때문에 스웨덴에 옮겨 살면서 학교를 다니는 열다섯 하영이가 쓴 《열다섯 살 하영이의 스웨덴 학교 이야기》를 읽습니다. 하영이는 스스로 바라면서 미국 학교도 다녀 보고 스웨덴 학교도 다녀 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일터 때문에 ‘한 학교를 오래 못 다니고 여러 학교로 옮겨 다니는’ 이 땅 많은 아이들처럼, ‘한 나라 학교를 내처 다니지 못하고 여러 나라 학교를 옮겨 다니’게 되었어요.

 

 이렇게 세 나라 학교를 다니면서, 지식이 아닌 몸으로 저마다 다른 모습을 느낍니다. 꼭 어느 한쪽이 좋거나 훌륭하다기보다, 학교에서 무엇인가 배우며 무럭무럭 자라는 자기 삶을 돌아볼 때, 자기는 어디에서 무엇을 배우면 좋은가를 저절로 깨닫습니다.

 

.. 학생들이 직접 참여해서 불도 붙이고 음식도 만들어 먹는 일은 좋은 체험인 것 같다. 한국에서는 위험하다고 손도 대지 못하게 할 불과 칼을 직접 다루게 하는 것은 학생들이 다쳐도 상관없다는 뜻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신뢰감을 보여줌으로써 자립심을 키우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숲도 마찬가지다.

 

도심에 이런 숲이 남아 있는 것이 신기했다. 한국 같았으면 주택가 한가운데에 있는 이런 숲 따위는 싹 밀어버리고 높은 건물을 지었을지도 모른다. 스트레스 받을 때 상쾌한 곳에 와서 뒹굴다 가면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을 텐데…… ..  (35쪽)

 

 숲 하나 없이 아파트만 가득한 우리 나라입니다. 서울도 부산도 제주도 춘천도 대전도 익산도 매한가지입니다. 손바닥 만한 나무그늘 있는 쉼터란 없고, 길을 거닐다가 다리쉼을 할 걸상 하나 마련되어 있지 않기로는 어디를 가든 똑같습니다. 아이들은 몸으로 자연을 느낄 수 없습니다. 자연을 다루는 책은 많아 책을 펼치면 자연이 넘실넘실 한다지만, 초등학교를 마치고 나면 마땅한 청소년책이 없어서 더는 자연을 느끼지도 문학을 느끼지도 따스한 사람품을 느끼지도 못합니다.

 

이렇게 중고등학생 때를 거치고 대학교를 다녀 회사원이 된다면, 먼 뒷날 제 어버이와 같이 아이를 낳아 기를 때에는 어찌 될까요. 제 어버이가 했듯 책으로만 자연을 보여주거나 가르치되 초등학교 마치면 ‘이제부터는 대학입시만 바라봐!’ 하며 윽박지를는지요. ‘대학, 이 가운데 일류대학만 가면 그만이야!’ 하고 가르칠는지요. 세상 수많은 일거리와 놀이감을 아이 스스로 받아들이고 즐기며 누릴 수 있게 하지 못하면서, 재미없고 따분한 사람이 되도록 할는지요.

 

.. [하영] 한국 경찰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는지요?

 

[스웨덴 경찰 카레] 솔직히 말하면 잘 모릅니다. 당신이 말한 대로 길거리에서 언제든지 경찰들을 볼 수 있다면, 그런 멋진 모습을 꼭 한 번 보고 싶기는 합니다. 각 국가의 정책에 따라 다를 것이고, 그 나라의 범죄율이나 기타 많은 기준들이 있겠지만, 원칙적으로 경찰이 쉽게 눈에 띄는 것을 꼭 좋다고만 말하기는 어렵군요.

 

스웨덴 사람이 한국에 가면 자칫 범죄가 많은 국가라고 오해할 수도 있지 않겠어요? 스웨덴의 방식이 다 옳다고 할 수는 없게씨만, 원칙적으로는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는 있으나, 경찰이 눈에 뜨이지 않아서 느끼는 불안감보다 내 주변에 항상 경찰들이 보이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더 클 수도 있을 겁니다.

 

[하영] 만약 한국 경찰에서 초청하면 한국 경찰을 보고 싶은지요?

 

[스웨덴 경찰 카레] 당연히 그렇습니다. 당신이 말한 것처럼 정말 경찰에 전화를 걸면 어김없이 3분 이내에 도착하는지 꼭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 (웃음) 내가 가 보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지만, 한국 경찰을 스웨덴으로 초청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군요. 한국 경찰들이 볼 때 스웨덴 경찰들은 전부 일을 하지 않는 것처럼 비칠 수 있으니까요. (웃음) ..  (2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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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 깃발 우리 나라 곳곳에는 아직도 '새마을 깃발'이 펄럭입니다. 사회도 교육도 문화도, 우리는 아직도 독재 찌끄러기를 털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 최종규

▲ 새마을 깃발 우리 나라 곳곳에는 아직도 '새마을 깃발'이 펄럭입니다. 사회도 교육도 문화도, 우리는 아직도 독재 찌끄러기를 털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 최종규

 어쩌면 하영이는 어버이를 잘 만나서, 한국땅 얄궂은 제도권 교육에서 벗어나면서 아름답고 멋진 스웨덴 교육을 받는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스웨덴 교육이 훌륭하고 아이들 삶을 널리 헤아려 준다고 하더라도, 이런 교육을 받아먹는 아이 마음이 넉넉하면서 살가워야 고이 받아먹을 수 있습니다.

 

빈가슴한테는 제도권 교육이나 스웨덴 교육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열린가슴한테는 고단한 제도권 교육에서도 빛줄기를 찾으면서 살 길을 열고 이웃과 동무를 찾을 테지만, 닫힌가슴한테는 스웨덴 학교에서도 혼자살기만 하면서 엇나가기 마련입니다.

 

 다만, 우리 스스로 우리 제도권 교육이 어떤 모습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앞으로도 이 모양 이 꼴로 우리 아이들을 억누르거나 괴롭혀야 하는지를 느껴야 합니다. 언제까지 ‘대학바라기’만 하면서 아이들을 들볶으려 하는지 되새겨야 합니다.

 

아이들이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지 생각해야 하고, 아이들이 무슨 일을 하기를 바라는지 곱씹어야 하며, 아이들이 어떤 보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가 되뇌어야 합니다. 하루하루 쑥쑥 크는 이 땅 모든 아이들을 생각하며, 우리 아이를 비롯해 이웃 아이들이 아름답게 자랄 수 있는 배움터 삶터 쉼터 나눔터가 되도록 우리 터전을 가꾸어야 합니다.

 

 하영이가 스웨덴살이를 글로 적어 띄워 놓는 블로그 이름은 “꿈만 꿔도 괜찮아(http://blog.hani.co.kr/leehayoung)”입니다. 이 나라와 이웃나라 아이들 모두 “꿈만 꿔도 괜찮”을 수 있어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blog.hani.co.kr/leehayoung (이하영 블로그 : 꿈만 꿔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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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 하영이의 스웨덴 학교 이야기 - 창의.다양.여유를 배운다

이하영 지음,
양철북, 2008


#교육책 #책읽기 #스웨덴 #이하영 #스웨덴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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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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