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그걸 시행에 옮겨야겠소!"

[소설-2011 한일합방 10] 1.작전명 '노란토끼'...광주 중편

등록 2008.12.19 11:01수정 2008.12.1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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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구에게 전해!"

 

가츠가 자신이 묵고 있는 서울의 호텔 방에서 미도리에게 서류봉투 하나를 넘겨줬다.

 

"제가 봐도 되죠?"

가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도리는 서류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북한 통일전선 사업부 광주 해방 계획'

 

미도리는 문서 첫 장에 제목만으로도 이 문서에 담긴 내용이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미도리는 빠르게 문서의 내용을 확인해 갔다. 문서의 작성자는 일본 내각조사실로 되어 있었다.

 

"광주 쪽은 잘 되가나 보죠?"

미도리가 문서를 서류봉투에 다시 넣으며 가츠에게 물었다.

 

미도리는 광주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이 실행에 옮겨져 가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가츠와 본부에서 그리고 있는 큰 그림만 대략 짐작하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광주에 내려가 있는 사냥개에 대해서는 군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그는 최전선에서 활동하면서도 작전에 실패한 적도, 정체가 발각된 적도 없는 그런 자였다.

 

"예상보다 더 쉽게 될 것 같아. 원래 그쪽 놈들이 반골기질이 있는데다 신 같이 떠받들던 강대수가 쓰러졌으니 앉아서 가만히 있을 거라고는 생각 안 했지만 그 동안 쌓인 게 많았는지 우리 예상보다 더 빠르게 움직여주고 있어."

"유혈사태까지 가능하겠어요?"

 

"그러니까 최일구를 잘 꼬드겨봐. 겁을 팍팍 주라고. 그날 시위대 중 한 놈만 쓰러지면, 불이 붙을 거야. 광주 쪽 경찰 놈들 믿지 말라고 해. 아. 물론 방금 봤겠지만 이런 내용도 서류에 들어있어."

"그런데 이걸 믿을까요?"

 

"조센징들이 좀 덜 떨어졌잖아. 특히 정치하는 놈들은 더더구나 어리석지. 일본 내각조사실 정보라면 믿을 거야. 뭐, 사실 안 믿어도, 지 놈들 국면 전환을 위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줄 확률도 높고."

 

"하긴. 지금 어떻게든 국면 전환 하려고 머리들을 싸매고 있으니. 안 그래도 그쪽에서는 북한 쪽으로 뒤집어 씌우려고 하더군요. 우리가 벌인 일이라곤 짐작도 못하고 있고, 보이는 그대로 100% 우익단체 쪽 짓이라고 하면 자기네들한테 정치적 부담이 많으니까요."

 

"한마디로 병신들이지. 그러니 지들 나라 뺏기는 것도 모르지."

미도리는 가츠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지금 나가볼게요. 안 그래도 오늘 만나기로 되어 있네요."

미도리는 서류봉투를 가방 안에 단단히 챙기고, 호텔 방을 빠져 나갔다.

 

4월 7일. 전남대 본관 건물에 위치한 회의실에는 광주와 전라남도 지역 대학 학생회 간부들과 민간단체 대표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고 있었다. 열흘 남짓 남은 '한일 방위조약 반대 및 민주수호 범국민 대회'를 위한 준비모임이었다. 제일 야당인 민생당과 노동당 소속 국회의원과 지구당 위원장 몇몇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자 자 다들 모이신 것 같은데 그럼 시작들 하시죠."

 

민생연합 의장인 백완수가 회의실에 모인 30여명의 사람들을 둘러보고 말했다. 강대수의 최측근인 백완수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대회장으로 추대된 상태였다.

 

"그날 집회에 모일 인원을 대충은 추산해둬야 하는데, 어느 정도 집계는 됐나요?"

백완수가 전남대 학생회장인 김찬정에게 시선을 돌렸다.

 

"20만 정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광주에서 12~13만, 타 지역에서 6~8만이 모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로 봐서 이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습니다. 20만은 저희가 계산한 최소 인원입니다. 아시다시피 각 단체에서 동원될 인원에 과거 유사한 집회 때 기록을 참조해 자발적으로 모일 사람들을 추산해 더한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저희 예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일 확률이 높습니다."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김찬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20만이면 수년 전 서울에서 열린 촛불 집회 이후론 최다 규모였다. 더군다나 지방인 광주에서 열리는 집회임을 감안하면 현 정권에 충분히 경각심을 줄만한 숫자였다. 집행부는 광주 집회에 이어 가까운 시일 내에 서울 집회를 계획하고 있었다. 광주에서 이정도 인원이 동원되면, 서울에서는 100만이 넘게 모일 수도 있었다.

 

"경찰 쪽은 어떤가요? 뭐, 평화적인 집회가 가능할 것 같습니까?"

"집회장소 외곽에서 질서유지만 하기로 이야기 됐소. 물론 우리가 집회를 평화적으로 이끈다는 전제하에서요. 광주경찰청장은 믿어도 될만한 사람이니까 크게 걱정은 안 해도 될 겁니다."

백완수의 질문에 광주가 지역구인 민생당의 장일지 의원이 대답했다.

 

장일지의 말대로 광주에서는 과거에도 시위대에 대한 평화적 집회 보장이 철저하게 이뤄지곤 했다. 어떤 경우 상층부에 의해 강경진압 명령이 내려져도 일선 경찰들에 의해 암묵적으로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윤보일 전 대통령은 굳이 오시겠다고 합니까? 제 생각에는 광주집회에는 참석 안 하시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말씀을 드렸는데, 뜻을 굽히시지 않더이다. 참가하실거요. 강대수 선생님 쓰러진 데에는 자신의 책임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광주에 와서 사람들한테 무릎 끓고 사과라도 하지 않으면 못 견디겠다고."

장일지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우리끼리라도 경호계획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전 대통령에게 배정된 정부쪽 경호원들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강대수 선생님 때도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습니다. 구심점이 필요한 이때 윤보일 전 대통령한테 마저 만의 하나 무슨 일이 생기면 안됩니다."

 

백완수의 말에 모두가 수긍하는 눈치였다. 백완수는 회의를 계속 해나갔다.

 

비슷한 시각 사냥개는 광주 충장로의 한 나이트 클럽에 있었다. 대낮이라 종업원들 말고는 텅 비어 있는 홀에는 40대 초반의 건장한 체격의 사내가 사냥개를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그의 이름은 황창우. 광주 지역 최대 폭력조직인 '광주 중앙파'의 보스였다.

 

"그랑께. 이번 집회 때 사람들을 보호해달라 이거지라?"

 

"네. 평화적으로 끝날 거로 생각하지만, 만에 하나를 몰라서 부탁드리는 겁니다. 혹 과격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자제도 좀 시켜주시고, 경찰들이 도를 넘으면 이것도 좀 막아주시고."

 

"그라지라. 안 그라도 나가 애들 데리고 이번 집회에 참가할라고 했소. 중요한 임무까지 맡겨주시니 거절할 이유가 없지라. 천하의 못된 놈들. 우리 선상님을 그래불다니. 나가 생각 같아서는 이 한목숨 죽을지언정 청와대라도 습격해불고 싶소이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아들도 요즘 분이 넘쳐 잠을 다 못자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희 쪽이 이런 부탁 드리는 거는 알려져서는 안됩니다. 아시겠죠? 제가 이곳에 온 것 조차 우리들만 아는 비밀입니다. 밑에 직원들도 알아서는 안됩니다."

 

"그건 걱정을 마시오. 원래 우리 같은 건달들 하는 일이 그런건께. 말 안하도 다 알고 있지라. 그랑께 선상님들한테도 걱정 말라고 전해주소."

황창우는 자기 앞에 앉아 있는 사냥개를 이번 집회를 준비하고 있는 범국민 대회 쪽의 사람으로 철떡같이 믿고 있었다.

 

이근삼 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에서 최일구가 건넨 서류를 읽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빠르게 굳어져 갔다. 서류는 미도리가 최일구에게 넘겨준 바로 그것이었다. 집무실에는 최일구외에 여당 대표인 김화태 의원과 최요삼 국가 정보원장, 이희태 경찰청장이 자리를 함께 하고 있었다.

 

"국정원은 도대체 뭘 하고 있길래 이런 사실을 아직까지 모르고 있단 말이오?"

이근삼이 최요삼에게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

 

“죄송합니다. 북한 놈들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정보는 입수했는데, 그 정도로 치밀하게 계획중인 줄은 몰랐습니다.”

최요삼이 면목없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나마 제가 일본 쪽에서 구체적인 정보를 넘겨받아서 다행입니다. 자칫하면 큰 일 날 뻔 했습니다."

최일구는 귀중한 정보를 가져온 것이 자신이라는 걸 강조했다.

 

"하여튼 미리 알았으니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오. 국정원은 여기 서류에 나와있는 간첩 놈들을 추적해 하루 빨리 잡아들이시오. 그리고 이 청장. 광주쪽 집회는 이미 허가가 났지요?"

이근삼이 이번에는 이희태에게 질문을 던졌다.

 

"예. 딱히 막을 명분이 없어서."

 

"민주국가에서 집회 한다는데 하게 해야지. 다만 불순분자들이 못된 짓거리를 하지 않도록 철저히 경계하시오. 폭력시위로 변질될 기미가 보이면 수단방법 가리지 말고 강경하게 대처하고. 우리끼리 하는 말이지만 광주야 안그래도 '빨갱이'들 판 아닌가. 특히나 조심해야 돼. 이 정보대로라면 북한놈들까지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으니 자칫 감당못할 반정부 폭동이라도 날 수 있어. 그리고 광주 경찰청에만 맡기지 말고, 본청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시오. 광주 경찰청장, 지금까지 그냥 두고 봤지만 그 놈 역시 좌파 아닌가? 광주 경찰청놈들한테 맡겨놨다간 북한 놈들 준동하는 걸 제대로 못 막을 거야."

 

"안 그래도 그럴 생각입니다. 본청에서 대규모로 시위진압대를 파견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눈치 보지 말고 과감하게 대처하시오. 국회의원이고 재야단체 대표고 가리지 마. 아니 전 대통령이라고 해도 도를 넘으면 현장에서 잡아들이시오. 법치국가니까 상대 가리지 말고 법대로 하란 말이야. 알았소?"

 

"알겠습니다."

 

"최 총장만 남고 모두 나가보시오."

 

최일구를 제외한 모두가 이근삼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을 나갔다. 모두가 나간 것을 확인하고 이근삼은 손짓으로 최일구에게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 올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최대한 낮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아무래도 그걸 시행에 옮겨야겠소. 그게 가장 확실한 방법 같아."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아마 광주가 그 기회를 줄 것 같습니다."

 

두사람은 굳이 소곤거릴 필요가 없는 말을 주고 받았다. 누군가 큰 소리로 이들의 대화를 듣는다 해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는 소리였다.

2008.12.19 11:01 ⓒ 2008 OhmyNews
#소설 #한일합방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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