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명 '노란토끼'의 2단계를 발효한다"

[소설-2011 한일합방 6] 1.작전명 '노란토끼'...미도리 요시모토

등록 2008.12.12 08:59수정 2008.12.12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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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어요?”

 

미도리 요시모토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최구일에게 물었다.

 

“언제나처럼. 너하고 있으면 50이라는 내 나이를 잊는다니까.”

 

최구일은 조금 전의 섹스가 아직도 아쉬움에 남는 듯 미도리의 허리를 껴안아 침대로 다시 끌어들였다. 미도리는 몸을 돌려 최구일의 이마에 키스를 했다. 그리고 그를 밀어내며 침대를 빠져나갔다. 

 

“아 참 총장님. 언제나처럼 가방은 차 트렁크 안에 넣어뒀습니다. 말씀하신 금액보다 1억엔을 더 준비했습니다. 히데야끼 의원님께서는 요즘 한국 상황을 봤을 때 자금이 더 필요하실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자금 걱정은 절대 하시지 마시고, 필요할 때마다 바로 말씀하라고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미도리가 화장대 앞에서 화장을 고치면서 최구일에게 말했다.

 

“그래. 신경을 써줘서 감사드리다고 전해줘. 그건 그렇고 매번 느끼는 거지만 미도리의 한국어 발음은 완벽하군. 일본 사람이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아. 그게 내가 미도리에게 빠져든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긴 하지.”

 

‘내 몸이 아니고, 내 한국어가 유창하다는 이유로 날 좋아한다고. 미친 조센징 늙은이. 그래 이해해주마. 일국의 집권여당 사무총장께서 천박한 이유를 대면 안되겠지.’

 

미도리는 최일구의 말을 부러 못들은 척했다. 최일구를 쳐다보거나 그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자칫 비웃음이 터져 나올까 걱정해서다.

 

“하긴 미도리가 특이한 건 유창한 한국어 발음뿐은 아니지. 키도 크지. 다리는 사슴다리처럼 쭉 뻗고 곧은데다, 가슴도 풍만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순수 일본 사람 같지 않아. 혹시 조상 중 누가 서양사람 아냐?”

 

‘도대체 일본인은 다 키가 작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뭐지?’ 미도리는 최일구가 쓸데없는 말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좀 전의 섹스가 아직 성에 차지 않는 것 같았다. 다른 때 같았으면 못이기는 척 그의 욕심을 채워줬겠지만 오늘은 시간이 없었다. 일본에서 오늘 한국으로 들어온 가츠 팀장과의 약속이 한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지금 당장 오피스텔을 나가 약속장소로 간다고 해도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아뇨. 순수 일본인예요. 하긴 일본이야 한국처럼 단일 민족 국가가 아니니까 순수 일본인라고 말하는게 좀 우습긴 하네요. 참 강대수 전 대통령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들었는데. 그건 알고 계시죠?”

 

미도리는 화제를 돌렸다.

 

“요즘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고 보고 받았네. 하지만 다 늙어서 무슨 일을 하겠어. 어차피 이빨 빠진 호랑이야.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늙은 호랑이. 크게 신경쓸 일이 아니야.”

 

미도리는 최일구가 강대수를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런 최일구가 못마땅했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신분도 그렇고, 40년을 한국의 정치권의 중심에 살아온 것, 아직도 적지 않은 한국민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것, 해외에 수많은 인맥을 갖고 있는 것 등 강대수는 예전만큼은 못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그들이 무시할 수 없는 큰 힘을 가진 거목이었다.

 

더군다나 강대수의 몇몇 일본 내 지인들은 언제든지 그들의 계획에 직접적 차질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인물이었다. 분명 조심해야 한다. 하긴 그렇다고 최일구의 말대로 아주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최일구를 믿어서가 아니라, 일본에서도 강대수에 대한 준비를 철저하게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강대수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는 걸 보면 가츠 팀장이 급하게 한국으로 들어온 것도 강대수와 관련이 있을지도 몰랐다.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입니다. 한국측이 제대로 준비를 안 해놓은 상태에서 우리 군인들 주둔 시켰다가, 혹시 불상사라도 나면 안되니까요. 아, 이것 역시 제 의견이 아니고 히데야끼 의원님의 전언입니다. 그건 그렇고 전 지금 바로 나가봐야 됩니다. 오늘 일본 본사에서 사람이 오기로 되어 있어요. "

 

미도리는 화장을 마치고 바닥에 떨어진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뭐, 급한 일이 있나 보지? 하긴 요즘은 금융회사들이 바쁘긴 바쁠 때지.”

 

최일구의 말에 미도리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네. 요즘 그래도 경제가 조금 나아지니까, 우리 같은 회사들이 할 일이 부쩍 많아졌답니다.”

 

최일구는 미도리가 일본 제2금융 회사인 대동영 파이낸스의 한국지사 기획실장으로 일하고 있는 줄 알고 있었다. 일본 자민당 소속의 한일 의원 국제교류협회 회장인 히데야끼 의원과는 부모대부터 이어진 개인 친분이 있어 그저 중간에서 일을 돕고 있는 줄만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미도리는 일본 내각정보조사실 소속의 첩보원이었다. 그것도 육상자위대 특전작전군 일등육위 출신으로 살인면허까지 소지한 특급 스파이다. 대동영 파이낸스 한국지사 기획실장이라는 직책은 말 그대로 위장 신분에 불과했다.

 

미도리는 최일구가 지금까지 자신의 진짜 신분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것이 우습기만 했다. 그래도 일국의 국회의원쯤 되면 일본내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여자라고 해도 자신에게 몸까지 허락할 정도로 접근을 했으면 최일구 본인은 제쳐놓고라도 한국의 국정원에서 자신의 뒷조사 정도는 해야 했다.

 

하지만 최일구와 만난 지 1년이 다되어가는 지금까지 미도리는 최일구가 자신의 뒷조사를 하고 있다는 낌새를 채지 못했다. 최일구가 그런 조사를 했다면 자신이나 조사실에서 눈치를 못 챘을리는 없었다. 결국 최일구가 자신을 철썩같이 믿고 있다는 이야기밖에 안됐다.

 

“문 좀 잘 잠그고 나가주세요! 나름대로 아끼는 소중한 물건들이 많답니다. 한국은 치안이 좋지 않아서. 엊그저께도 아랫층 오피스텔 한곳이 털렸다고 하더군요. 그럼 또 뵙겠습니다. 총장님. 아니 달링.”

 

********************************************

 

미도리가 마포에 위치한 자신의 오피스텔을 빠져 나와 역삼동의 대동영 파이낸스 사무실에 도착한 건 한 시간이 지나서였다. 사무실 문을 들어서자 마자 ‘채연’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국인 직원이 일본에서 손님이 도착했다고 알려줬다. 미도리는 급히 자신의 방으로 들어섰다.

 

일본 내각정보실 한국 팀장인 가츠 마사오는 소파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었다. 그는 미도리가 들어왔는데도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미도리는 잠자코 가츠를 기다렸다. 몇분이나 지났을까. 마침내 가츠가 미도리와 시선을 마주쳤다.

 

“요시모토 일등 육위!”

 

가츠는 군시절 계급으로 미도리를 불렀다. 그는 미도리가 특전작전군에 있을 때부터의 직속 상관이었다. 가츠는 제대후 내각조사실에 근무하면서부터는 미도리를 이름으로 불렀다. 하지만 예외가 있었다. 중요한 명령을 하달할 때였다. 미도리는 자기도 모르게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강대수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작전명 ‘노란토끼’의 2단계를 발효한다.”

“하이.”

 

미도리는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고 생각했다.

2008.12.12 08:59 ⓒ 2008 OhmyNews
#소설 #한일합방 #미도리 요시모토 #노란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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