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정 말기 로마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신간] 로버트 해리스 <임페리움>

등록 2008.11.08 12:44수정 2008.11.08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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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페리움> 겉표지 ⓒ 랜덤하우스

키케로, 폼페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로마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번 쯤은 이들의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키케로는 로마의 정치인이자 변론가로 '변호사의 아버지'로 불리운다.

'위대한 폼페이우스'는 천부적인 군사적 재능으로 스페인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이후에는 동방을 제패했다. 카이사르는 독일의 역사학자 몸젠이 '로마의 유일한 창조적 천재'로 극찬한 인물이다.


이 세 명은 로마가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넘어가던 격변기를 살았던 동시대의 인물들이다. 단순하게 그 시대를 살았던 것이 아니라 그 변화의 중심에 서있던 인물들이기도 하다. 당시에 이들은 때로는 힘을 합치고 때로는 질시하고 대립하면서 그 시대를 헤쳐 갔을 것이다.

이들의 실제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로버트 해리스는 2006년 작품 <임페리움>에서 이 거인들의 모습을 소설로 보여주고 있다. 역사책이 들려주는 딱딱한 이야기가 아니라, 말하고 행동하며 감정을 터뜨리고 절망하는 생생한 장면을 그리고 있다.

키케로는 어떻게 권력에 다가갔을까

<임페리움>의 주인공은 키케로, 작중 화자는 36년간 키케로 밑에서 일했던 티로다. 티로는 자신이 개발한 속기술로 키케로의 수많은 연설과 변론을 모두 받아적고, 그를 바탕으로 키케로의 일생을 저술하기도 했다.

'임페리움'은 라틴어로 '권력'이라는 뜻이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처럼 키케로도 권력을 추구한다. 하지만 키케로는 돈도 없고 후원자도 없다. 군복무 경험이 없기 때문에 따르는 군사들도 없다. 그가 태어난 집안은 명문가도 아니다. 소위 말해서 '돈도 없고 빽도 없는' 키케로가 믿을 구석이라고는 오직 자신의 재능뿐이다.


그래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아테네, 로도스로 여행하면서 스승에게 연설과 웅변의 기술을 배우고 익혔다. 조약돌이 깔린 바닷가에서 파도의 굉음을 뚫고 연설하는 연습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만만하게 로마로 돌아오지만 여전히 그는 빈털터리다. 출세의 첫단계인 원로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정액 이상의 돈이 있어야 하는데 그에게는 그 정도의 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다.

키케로는 돈과 결혼하는 수단을 택한다. 많은 재산을 가진 17세 소녀 테렌티아와 결혼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결국 원로원에 입성하는 데 성공한다. 권력을 향해서 첫걸음을 내딛은 셈이다. 키케로의 부인 테렌티아는 강한 여장부 스타일로 키케로와 종종 싸우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정확한 조언을 해준다.

<임페리움>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야심만만한 키케로는 원로원 의원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조영관, 법무관을 거쳐서 집정관까지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로마사회는 그에게 녹록하지 않다. 그 자리를 탐내는 명문가의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기 때문이다. 키케로는 힘을 가진 사람과 협력하고 때로는 그들을 원색적으로 공격하면서 집정관을 향해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간다.

로버트 해리스의 새로운 역사소설

작가 로버트 해리스는 팩션(Fact+Fiction)의 거장이다. 이전 작품들인 <당신들의 조국>, <이니그마>, <아크엔젤>을 보면 사실과 허구를 뒤섞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그의 솜씨를 볼 수 있다. 예전 작품들이 역사와 미스터리를 결합시킨 전형적인 히스토리 팩션이라면, 그런 성향은 2003년 작품인 <폼페이>부터 조금씩 변해간다.

<폼페이>와 <임페리움>은 미스터리의 요소를 제거하고 당시 인물과 시대상황을 복원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래서인지 <임페리움>을 읽다보면 2000년 전 로마의 풍경이 그려진다. 한겨울의 암울하고 우중충한 도시 로마. 먹을 것이 부족해 모퉁이마다 거지들이 즐비하고, 도랑에는 밤 사이에 죽은 시체도 있다.

한여름에는 시체 썩는 냄새와 생활쓰레기의 악취가 여름바람에 섞여서 불어온다. 투기장에서는 벌거벗은 죄수가 목검 하나만을 들고 사자와 싸우다가 갈갈이 찢겨서 죽고, 로마의 귀족들은 그 광경을 보면서 좋다고 웃으며 손뼉을 친다.

이런 로마는 키케로에게 관념상의 이상향이 아니라 부패의 강 위에 세워진 영광의 도시다. 이 도시에서 권력을 놓고 싸웠던 인물들의 모습도 흥미롭다. 타고난 군인이자 사령관인 폼페이우스는 대화보다 남에게 명령하는 것이 익숙하다. 난봉꾼인 멋쟁이 카이사르는 자신이 로마에서 제일 똑똑한줄 안다.

이런 카이사르를 보면서 키케로는 '남의 아내를 빼앗는 인간이 세상에서 빼앗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라고 걱정한다. 엄청난 부를 쌓아올린 크라수스는 군대의 지휘자가 되어서 화려한 전공을 세우고 싶어한다.

<임페리움>은 키케로를 주인공으로 한 역사소설 3부작 중에서 1편에 해당한다. 공화정 로마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화려한 인물들의 운명을 작가가 어떻게 그려낼지 궁금해진다. <임페리움>을 읽고나면 나머지 두편도 자연스럽게 기대하게 된다.

덧붙이는 글 | <임페리움> 로버트 해리스 지음 / 조영학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덧붙이는 글 <임페리움> 로버트 해리스 지음 / 조영학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임페리움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4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2008


#임페리움 #로버트 해리스 #팩션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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