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아버지를 위해 미래에서 아들이 왔다!

[신간] 히가시노 게이고 <도키오>

등록 2008.11.05 08:49수정 2008.11.05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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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말이죠, 당신의 아들이라고요. 미래에서 온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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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키오> 겉표지 ⓒ 창해

▲ <도키오> 겉표지 ⓒ 창해

생전 처음보는 소년이 어느날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나서 이런 말을 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처음에는 정신이 이상한 사람 취급하면서 무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소년이 본인만이 알 수 있는 과거와 개인적인 비밀을 모두 알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리고 심각한 태도로 미래에서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한다면 더욱 더 그렇다.

 

SF 영화의 한장면 같지만 미혼의 남녀라면 한번쯤 이런 가정을 해보아도 재미있을 것이다. 자신을 속속들이 알고있는 소년이 어느날 나타나서 아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때부터 자기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잔소리도 한다. 그런 버릇을 못 고치니까 이성한테 차이는 거에요, 돈이 전부가 아니잖아요, 앞으로 10년 후에 이 나라에 커다란 위기가 닥칠거에요, 그때를 대비해야 한다구요 등.

 

그러면 이 아들(?)과는 어떤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을까. 대놓고 무시하기에는 이 소년이 너무 진지하다. 그렇다고 갑자기 나타난 소년과 부모의 인연을 맺을 수도 없다. 눈치빠른 사람은 미래를 예측하는 듯한 소년을 이용해서 한밑천 잡으려고도 할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2002년 작품 <도키오>에서 이런 상황을 설정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워낙 독특한 소재들을 많이 다룬다. 그 중 <도키오>의 아이디어야말로 흥미롭다. 시간을 거슬러서 미래에서 온 자신의 아들. 이 두 사람은 아마도 현실에서 티격태격하면서 온갖 코믹한 장면을 만들어낼 것이다. 마치 재미있는 시트콤처럼.

 

23살 아버지, 17살의 아들을 만나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추리소설로 잔뼈가 굵은 작가인 만큼, <도키오>에서도 커다란 사건과 음모를 작품의 한 축으로 설정해 놓았다. 때는 1979년 일본, 주인공 미야모토 다쿠미는 23세의 백수건달이다. 제대로 된 학력도 없고 취직하는 곳마다 6개월을 넘기지 못한다.

 

자신에게 맞는 직장이 없다고 불평하고 세상은 공정하지 못하다며 투덜댄다. 그러면서도 한탕의 꿈을 버리지 못한다. 크게 일을 한판 벌여서 억만장자가 되려는 몽상을 품고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의 곁에는 부모도 친척도 없지만 애정으로 그를 지켜보는 연인 치즈루가 있다.

 

새로운 직장을 또다시 때려치우고 공원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던 어느날, 그의 앞에 17세 소년 도키오가 나타난다. 그는 다쿠미의 친척뻘 되는 사람이라면서, 다쿠미의 모든 것을 아는 듯한 말과 행동으로 다쿠미를 자극한다. 다쿠미는 도키오를 경계하고 화를 내면서도 함부로 쫓아내지는 못한다. 이 소년의 눈빛에서 진지함이 느껴지고, 함께 있으면 왠지 알 수 없는 익숙함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두 남자는 동거를 시작한다. 돈이 없어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식빵 부스러기를 모아서 케첩을 발라먹는다. 다쿠미는 그래도 성실하게 일하려는 생각이 없다. 도키오가 잔소리를 해도 요지부동이고 치즈루가 부탁해도 소용이 없다. "시시한 일은 안 해! 크게 한판 벌여볼거야!"라고 말하면서.

 

지친 치즈루는 결국 다쿠미를 떠나고 이때부터 이상한 일이 시작된다. 검은 양복 차림의 남자들이 다쿠미의 집을 찾아와서 치즈루의 행방을 물으며 협박하고, 처음 보는 사람이 협상을 제안한다. 걱정과 분노로 초조해진 다쿠미는 도키오와 함께 치즈루를 찾아 나서고, 그 가운데에서 정체 모를 집단의 음모와 마주치는데….

 

사건과 인물을 조화시키는 히가시노 게이고

 

미래에서 온 아들이라는 설정도 독특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독자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호기심을 갖는 동안, 작가는 독자의 시선을 기이한 사건으로 인도한다. 독자가 사건에만 몰입하지 않도록 중간중간 부자관계의 변화를 부각시킨다. 이야기의 두 축인 사건의 긴장감과 인간관계의 갈등을 적절히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범죄와 인간을 뒤섞는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작풍(作風)이 <도키오>에서도 여전하다.

 

실제로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어떨까. 사람들은 지루한 일상을 변화시킬 만한 사건을 한번쯤은 상상해본다. 그렇다면 이런 일이야말로 지축이 흔들리는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형편없는 아버지를 도와주기 위해서, 오죽 답답했으면 미래에서 시간의 벽을 뚫고 현실로 내려왔을까.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흐른다는 패러다임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이런 것도 꽤나 재미있는 상상이 될 것이다. 다쿠미는 계속 도키오를 의심하지만 그 덕분에 다쿠미도 조금씩 진지해져간다. 물론 좋은 방향으로.

 

도키오의 정체가 무엇이건 간에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좋은 방향으로 변해가는 사람을 바라본다는 것은 흐뭇한 일이다.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노력하면 미래를 조금씩 변화시킬 수는 있다. 도키오도 거기에 희망을 걸고 미래에서 왔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도키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오근영 옮김. 창해 펴냄.

2008.11.05 08:49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도키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오근영 옮김. 창해 펴냄.

도키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오근영 옮김,
창해, 2008


#도키오 #히가시노 게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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