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전출납부도 무찌르지 못한 '지름신'

'알바' 생활 10년, 내가 번 돈은 어디로 갔을까

등록 2008.11.06 15:44수정 2008.11.06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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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비자금이 필요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놀고 싶은 것, 즐기고 싶은 것을 위해서는 '엄마가 모르는 돈'이 필요했다.


남들이 한 달에 한 번, 혹은 한 주에 한 번씩 받는다는 정기적인 용돈을 나는 이제껏 받아본 적이 없다. 대신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받았다. 그러다보니 늘 돈이 필요했다. 물론 엄마는 모르게.

그런 돈을 만질 기회는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중학생 시절, 학교 급식 식당에서 배식 도우미를 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당하게 수업시간 10분을 땡땡이 칠 수 있다는 것과 전교에서 제일 먼저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게 무척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요동치게 한 것은 '시급 2500원'. 한 달이면 5만원 정도였다. IQ(지능지수)보다 월등히 높은 내 JQ(잔머리지수)가 재빠르게 머리 회전을 시작했다. 근 10년 전인 당시 못난이 만두가 300원, 새콤달콤이 200원, 컵라면이 500원이었으니, 5만원은 내게 실로 큰 돈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내 나이 스물두 살이 될 때까지 근 10년에 걸친 나의 '알바' 전적은 화려하다. 워드 작성, 공장 생산직, 구두 밑창 뒤집기, 전단지 부착, 어린이집 보조, 사무실 보조, 교통량 조사, 편의점, 벽화 그리기, 유치원 교구제작 보조까지. 그런데, 그간 내가 번 그 많은(?) 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이 스무 살, 용돈은 생활비로 날아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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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필요했다. 엄마가 모르는. '지름신'과 함께 한 알바생활 10여년은 꽤 고달팠다. ⓒ 최은경


중·고등학교 때 '알바'비 개념은 필요한 돈 외에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쏠쏠한 '부수입' 정도였다. 그러나 스무 살 이후에는 어른이 됐다는 막연한 책임감이 느껴지면서 '알바'비는 자연 나의 일용할 양식이요, 빠듯한 '생활비'가 됐다.

기본적으로 내가 번 돈으로 생활하되 간간히 엄마의 지원을 받으며 2년을 보냈다. 그런데 정기적인 수입이 생긴 올해 초부터 엄마는 나에게 자금 지원 중단을 선언했다. 부수입이 생활비로 바뀐 것은 '즉시'였지만, 소비 습관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못했다. 덕분에 첫 달은 완벽하게 '마.이.너.스'였다.

평균 수입은 25만원. 꼬박꼬박 나가는 핸드폰 요금과 차비, 등록금 대출 이자만 해도 매달 13만원 이상이니, 내가 쓸 수 있는 돈은 12만원 정도였다. 그러나 생각지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으니 바로 새 학기 책값이 무려 18만원이나 된 것! 도저히 답이 나오질 않았다. 컵라면만 일주일 내내 먹어보기도 했고, 도시락도 싸들고 다녀도 봤다. 그래봤자 무의미한 허우적거림일 뿐이었다.

그렇게 대책 없이 반년이 흘렀다.

여름방학에는 한 달 만에 많은 돈을 벌었다. 그동안 해오던 주말 '알바' 외에 '알바'를 2개 더 늘렸다. 아침 일찍 일어나 의정부에서 서울 길음동까지 가야했고, 길음동에서 다시 남양주 진전읍으로 가야했다. 일을 대충 끝내면 다시 의정부로…. 매일 계속되는 막차 생활. 몸은 고되었지만 수입이 110만원이나 됐다.

그렇게 번 돈이었는데. 그 돈은 그동안 내가 저질러 놓은 마이너스를 메우는 게 고작이었다. 말 그대로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힘들 게 번 돈 쉽게 안 쓴다? 천만에...

쉽게 돈을 벌면 쉽게 쓴다고들 한다. 반대로 힘들 게 번 돈은 쉽게 쓰지 않는다고들 한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쉽게 벌고, 어렵게 벌고의 문제보다는 그 사람의 평소 소비 습관이 관건이다.

나의 경우가 딱 그렇다.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돈을 제외하고 한 달에 오로지 나에게 쓸 수 있는 돈은 12만원. 적은 돈은 아니지만 넉넉하지도 않았다. 한 번은 12만원 중 8만원을 하루 만에 홀라당 써버렸다.

지난 10월, 중간고사가 끝나던 날. 과제와 시험공부에 찌들었던 나에게 주는 작은 상이라며 서울 나들이를 나섰다. 가볍게 '아이쇼핑'에 나선 것이었는데, 이것이 화근이었다.

서점에 들러 책 세 권을 샀다. 세 권 가격은 4만2천원이었다. 서점을 빠져나오면서 눈에 띈 것은 아기자기한 디자인 문구를 파는 팬시점.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듯 냉큼 달려갔다. 디자인 문구는 예쁘고 신기하기는 한데, 사고 나면 막상 쓸 데는 없다. 그래도 일단 산다. 왜냐? 예쁘니까. 편지지 두 개와 포스트잇 하나를 샀다. 또 7천원을 썼다.

서점과 팬시점 두 곳에 들렀을 뿐인데 어느덧 저녁 시간. 밥을 먹으러 갔다. 오늘 출혈이 크다며 비교적 저렴한 음식점으로 갔다. 그래도 스파게티는 4900원.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번엔 친구 생일 선물을 사러 갔다. 딱히 정한 것 없이 무작정 길을 나선 터라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다.

화장품 가게를 시작으로 신발 가게, 모자 가게, 옷 가게, 팬시점, 액세서리 가게, 가방 가게까지. 이렇게 많은 곳을 돌아다니면 평소에 생각지도 않았던 것들이 급작스럽게 필요해진다. 화장품 가게에 들러서는 다 쓴 립글로즈가 생각나 5천 원짜리 립글로즈를 구입했다.

오후에 팬시점을 다녀왔어도 다른 가게에 들어가면 또 다른 것이 필요해진다. 펜 두 자루와 필통, 스티커, 색연필을 샀다. 4600원을 또 썼다. 친구의 생일 선물로는 모자와 수면 팩을 샀다. 이 두 개가 1만 5천원. 거기다가 차비를 포함하면….

하루도 아니고 반나절 만에 8만원을 썼다. 물론 계획에 없던 지출이었다. 덕분에 다음 달 월급을 받을 때까지 빚쟁이가 됐다.

취직해서 월급 받아도 부족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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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하던 금전출납부 열심히 기록해보았지만, 효과는 생각보다 적었다. ⓒ 김수진


많은 사람들이 올바른 소비습관 정착을 위해 용돈기입장이나 금전출납부 기록을 추천한다. 효과가 있을까? 아니다. '알바'비가 생활비가 된 그 무시무시한 첫 달이 지나고 나도 '지름신'을 '무찌르기' 위해 금전출납부를 썼다. 한 달. 두 달. 세 달. 3개월이 흘렀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내 경우엔 사용한 돈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벅찼고, 이를 기록하고 평가할 시간을 따로 내기는 더더욱 어려웠다. 덕분에 새로 장만했던 금전출납부는 무용지물이 됐다. 기록을 보고 반성하고, 계획하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다 시간 낭비고 자원 낭비일 뿐이다.

단지 엄마 '모르는' 용돈을 벌기 위해 시작했을 뿐인데, 이 놈의 '알바' 생활도 벌써 10여 년이 다 돼 간다. 지금은 용돈이 아닌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하고 있지만, 대학 졸업 후 취직해서 월급을 받아도 이렇게 돈이 부족할까. 졸업하기 전에 '쇼핑의 지혜'라도 배워야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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