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술집서 술이나 팔아라"
 진상고객보다 무서운 건 '생활비'

[기획 - 20·30대 in 2009 ④] 워킹 푸어, '주독야경' 편의점 야간 알바들

등록 2009.04.06 09:50수정 2009.04.06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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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시간의 편의점. ⓒ 김수진


어둠이 내린 밤 11시, 길가에 죽 늘어선 많은 상점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가게 문을 닫는 시각. 이은정(23·가명·여)씨는 문 닫은 가게들을 지나쳐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한 24시간 편의점으로 들어선다. 이씨는 이 편의점에서 4년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알바생'이다.


올해 초 대학을 졸업한 이은정씨는 대학에 입학할 때부터 이 편의점에서 주말 야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중간 중간 잠시 아르바이트를 쉬기도 했지만, 4년 동안 일을 안 해 본 시간대가 없다.

주말 야심한 밤, 편의점에 출근한 이씨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유제품이나 김밥 정리다.  물품 정리가 끝나면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는데 새벽 3시까지는 손님이 많은 편이라 계산대에서 떠날 수가 없다고.

손님이 뜸해지는 새벽 3시 이후부터는 매장 청소를 시작한다. 쓸고 닦고 쓰레기봉투를 밖에 내놓고 대걸레질도 한다. 대걸레질한 바닥이 마르면 과자나 라면, 음료수, 담배 등을 진열한다. 새벽 5시가 되면 정산을 시작하고 오전 8시가 넘어 오전 아르바이트생이 오면 이씨의 하루 일과가 끝나는 것이다.

취객, 외로움, 수면부족... 편의점 야간 알바의 '삼중고'

TV만 틀면 험한 이야기가 주르륵 쏟아지는 요즘 같은 세상에, 여성이 새벽 시간대에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쉽지만 않을 것도 같은데….


"새벽시간에는 대부분 손님들이 술에 취해 있어요. 보통은 필요한 물건만 사서 가는데 종종 여자 알바생이라고 괜히 말장난이나 시비를 걸기도 해요. 또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분들이 있어요. 남자 알바생이었다면 하지 않을 것 같은 말도 서슴없이 해요. 한 번은 어떤 손님이 '돈도 안 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냐'며 '차라리 술집에 가서 술을 팔아라'라고 말해서 충격을 받았어요."

이은정씨는 야간 아르바이트의 단점으로 불규칙한 생활패턴을 들었다. 그는 "차라리 계속 낮과 밤이 바뀌는 거라면 좀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며 "주말만 하다 보니, 평일과 주말에 잠자는 시간이 뒤죽박죽 돼서 피곤하다"고 말했다. 이어 "금요일 밤에 시작하니까 낮에 할 일을 하고 토요일 아침까지 꼬박 밤을 샌다"며 "퇴근해서 눈 좀 붙였다가 다시 밤에 출근해서 일요일 아침에 일이 끝나면 월요일부터는 또 정상 생활을 해야 하니까 저녁까지 깨어 있다가 잠을 잔다"고 말했다.

같은 편의점에서 평일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김우진(23·가명·남)씨도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의 단점으로 '취객 상대'를 꼽았다. 김씨는 "손님 중 95%가 술에 취해 있는데, 그 중 종종 진상들이 나타난다"며 "재밌는 것은 불경기일수록 질이 떨어진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모두 삶에 대해 불만족스럽고 예민해져 있는 상태잖나, 그렇다보니 사소한 일도 큰 일로 번지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김씨는 이외에도 '외로움'과 '수면부족'을 야간 아르바이트의 단점으로 꼽았다. 그는 "긴 밤 동안 편의점에 갇혀서 홀로 외로이 지내야 한다"며 "진열돼 있는 물건과 대화를 시도할 정도의 고독감이 찾아오곤 한다(웃음)"고 말했다. 이어 "내 경우 학교를 다니면서 일을 하기 때문에 낮과 밤 모두 깨어 있어야 한다"며 "그래서 잠을 줄일 수밖에 없고 (그것이) 학교 생활 소홀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고백했다.

가지각색 손님들... 시비 걸다 차도에 누워버리는 이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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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한 편의점. ⓒ 오마이뉴스 권우성


현재 대학에 재학 중인 김우진씨는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공부하고 싶었던 인문학을 접고 취업이 잘 된다는 전문대를 택했다. 평일 야간에는 편의점에서 일하고 주말 오전에는 다른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그. 이곳에서 일한 지는 1년 됐지만, 예전에 한 편의점을 합치면 경력 3년차인 베테랑이다.

김씨가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택한 이유는 경제적 상황 때문이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차비며 식비, 학자금 대출 이자, 핸드폰 요금 등 돈 들어갈 곳이 수두룩했고 집안 형편도 좋지 않았다고. 그는 낮에는 공부할 수 있고 밤에는 돈을 벌 수 있는 편의점 야간 알바가 자신에겐 "제격"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도 지금 돌아가는 경제상황을 보고 있자니, 심란한 듯했다.

"취직을 하는 것보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더 낫겠다 싶을 때가 있어요. 매일 일하기는 하지만 어정쩡한 회사 월급만큼은 되거든요. 혼자 일하는 것이니, 회사 안에서 인간관계 때문에 고민할 필요도 없고요. 물론 장기적으로 바라본다면 취업하는 것이 낫겠지만 당장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요새는 (내가) '일하는 빈곤층' 뭐 이런 게 아닐까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11시부터 8시까지, 길고 긴 시간동안 일을 하다보면 손으로 꼽을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에피소드가 생겼을 것 같기도 한데. 김씨는 최근 들어 살기가 힘들다며 한탄하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한 번은 술에 취한 손님이 편의점으로 들어와 시비를 걸더니 마음대로 안 되자, 차도로 나가 길에 누워버렸다고 한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찔"하단다. 술 취한 연인들의 과격한 애정표현도 그다지 달갑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이외에도 택시비 인출하러 편의점에 들어온 손님이 택시기사 몰래 다른 문으로 도망을 나가는 웃지 못할 일들도 벌어진다고.

허락하는 한, 취직하더라도 알바 계속할 것

어떤 일이든 장단이 있기 마련,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의 장점을 묻자, 이은정씨와 김우진씨는 입을 모아 "손님이 없을 때 자기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우진씨는 "손님이 없을 때 점장 묵인 하에 책을 보거나 공부를 할 수 있다"며 "피곤하기는 하지만 이런 점에서 주유소나 PC방 아르바이트에 비해선 괜찮은 편"이라고 말했다.

이은정씨도 "야간엔 조금 여유시간이 생긴다, 그 때 공부를 한다거나 책을 읽는 등 개인적인 일을 틈틈이 할 수 있어 좋다"며 "나는 새벽 동틀 무렵 푸르스름한 하늘빛을 좋아한다, 그때 마시는 공기는 정말 상쾌하다"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이은정씨와 김우진씨에게 야간 아르바이트의 하루를 전해들은 것만으로도 내 몸이 피곤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들은 허락하는 한 계속,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정씨는 "취업을 하게 돼도 계속 할 생각이다, 일주일 내내 하는 것이 아니라 주말에만 하는 것이니, 부담도 덜 된다"며 "용돈벌이로 하고 싶다, 몸이 따라줄 때까지 끝까지 할 것"이라고 당차게 말했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계속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할 것이라는 김우진씨는 "취업이 잘 돼서 직장만 다녀도 괜찮은 정도의 소득을 올린다면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겠지만, 탐탁지 않으면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투잡을 생각하고 있다"며 "아르바이트의 장점은 투잡도 가능하다는 것이다,(웃음) 그래도 그 전에 나라 경제가 잘 풀렸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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