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 내걸고 '당선'했는데 국민이 반대한다면?

[주장] 공약 대신 이미지 보고 투표한 '유권자'도 책임

등록 2008.06.04 18:10수정 2008.06.04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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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부터 '고소영' '강부자'로 비아냥을 산 내각이 능력마저 바닥을 드러낸 마당에 더 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고 본다. 내각이 총사퇴하는 것은 물론 당연히 청와대 비서진도 완벽히 물갈이해야 한다. -6월 4일자 중앙일보 사설-

 

문책 인사를 넘어 이명박 정부가 지금 진짜 출발한다는 자세에서 정말 일할 수 있는 인물로 새 판을 짜야 한다. 허명(虛名)과 인연(因緣)에 집착해서 국민의 손가락질을 불러온 전날의 실수를 다시는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6월 4일 자 조선일보 사설-

 

하강을 거듭하던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이 급기야 10%대로 떨어졌다. 정운천 장관의 '고시연기+ 미국측에 30개월 수입 자제요청' 발표에도 촛불시위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고, 보수의 한 축이던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도 촛불 대열에 가세했다. 우호적이던 보수언론들마저도 속속 내각총사퇴 등의 강도높은 쇄신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50%에 가까운 득표율이 임기 시작과 동시에 절반이하로 뚝 떨어진 기현상은 당사자인 우리들뿐 아니라 외신들마저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누구보다 놀라워하고 당황스러워 할 사람은 다름 아닌 대통령 자신일 것이다.  

 

여론을 믿지 않은 대통령

 

지난달 초, 교복입은 여학생들이 주축이 돼 촛불시위가 시작됐을 때 여당과 보수언론은 하나같이 좌파에 의한 배후설을 주장했다. 시위 참가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쇠고기 문제가 국민의 공분을 일으키는 지경에 이를 때까지도 한동안 이 배후설은 끊이지 않고 터져나왔다.  

 

주지하다시피, '좌파 선동'은 보수 우익의 오랜 수사였다. 국민들이 뜻을 모으고 일어날 때마다 그들은 어김없이 이 '배후설'을 이용해 간단히 여론을 무마하려는 시도를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의 배후설은 예전의 그것과는 다소 상이한 뉘앙스가 느껴진다.

 

예전의 배후설이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기만술이었다면, 이번의 배후설은 정말로 배후를 의심하는, 나름의 확신을 갖고 내뱉은 말이었음이 감지된다. 언론과 여론이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복지부동이던 그들이 최근에 와서야 배후설을 급거 취소하며  우왕좌왕 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들은 애초에 언론에서 다루는 여론을 믿지 않았고, 믿지 않았기 때문에 무시로 일관했던 것이다. 왜 그들은 국민들의 외침을 들으려 하지 않았던 것일까?

 

촛불 원인은 정부에 대한 총제적 불만

 

지난 3일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이 '제18대 국회의원 당선 축하 리셉션'에서 한 말이 문제가 되고 있다. 그는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쇠고기만의 문제로 참가하는 게 아니다. 실직하고 일자리가 없어서 거리를 헤매고 있는 젊은이들, 어려운 서민들, 어려운 중소기업자 대표 등이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네티즌들은 이상득 의원이 촛불시위 참가자들을 폄하했다며 거세게 항의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 의원의 정국 분석은 비교적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네티즌들의 말대로 그가 촛불시위 참가자들을 폄하했을지는 몰라도 촛불시위가 이명박 정부의 총체적인 국정혼란에 대한 규탄 성격을 띠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5월 초 촛불집회가 시작됐을 때 진중권 교수 또한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이것은 단지 쇠고기 문제 때문은 아니다. 고소영·강부자내각, 영어몰입교육, 대운하, 의료·공기업 민영화 등 여러 문제가 쌓여있다가 폭발한 것이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촛불집회의 계기가 되었던 청소년들의 참여가 입시자율화, 0교시 부활, 일제고사 등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불만에서 어느 정도 기인한 것이 사실이고, 최근 집회에서 쇠고기 문제 대신 이명박 정부를 직접 겨냥한 구호가 터져나오고 있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배후설의 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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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9일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직후 이명박 대통령이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 윤대근

지난 12월 19일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직후 이명박 대통령이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 윤대근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지탄을 받는 정책의 상당수는 그의 후보시절의 공약이거나 적극추진 의사를 밝힌 것들이었다. 인사파동과 쇠고기문제는 그렇다 쳐도,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 의료· 공기업 민영화, 대운하, 자율과 경쟁 위주의 입시정책, 감세, 친미성향, 영어몰입교육까지, 하나같이 매체를 통해 누누이 접한 사항이다. 이런 공약을 내걸고 그는 역대 최다 득표차로 당선되었다.

 

이명박 정부의 혼란은 여기서 출발한다. 그 많은 도덕성에 대한 의혹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그를 당선시켰다. 그것은 그의 정책들, 나아가서 '경쟁을 통한 발전'이라는 그의 정치적 기조를 지지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국민들이 자신의 정책을 하나 둘 반대하기 시작하고 지지율이 곤두박질치자 그는 여론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분명 자신을 지지했던 사람들인데 이제 와서 갑자기 등을 돌리는 현상은 누군가의 선동이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추측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정부가 '배후설'을 주장한 배후는 이와 같은 득표율과 지지율의 극명한 괴리에 있었던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야당과 여론을 존중해 쇠고기 재협상을 벌이고 내각을 전원 교체한다고 해도, 그에겐 더 이상 남은 장사 밑천이 없다. 국민들이 그의 대선 공약을 전반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마당에 그가 펼 수 있는 정책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셈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생각과 반대되는 '좌파적인' 정책을 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남은 임기를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보낼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는, 말 그대로 진퇴양난에 빠진 것이 지금 대통령이 처한 현실이다. 사상 초유의 '얼리 덕' 현상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선거 문화부터 바꿔야

 

득표율과 지지율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이런 아이러니의 원인은 바로 '이미지'만을 좆는 삐뚤어진 선거문화에 있다.

 

지난 97년에 시작된 대선 TV토론은 '준비된 대통령'이란 밝고 강한 이미지를 호소한 김대중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5년 후에는 드라마틱한 인생사와 서민 이미지를 갖춘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렇듯 우리의 선거는 정책은 실종되고 오직 이미지로 승부하는 기형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지난 대선도 이런 '승리 공식'을 철저히 따른 선거였다. 이명박 후보는 '국밥'과 '거친 손'을 이용한 서민적이고 근면한 이미지를 내세워 당선되었고, 다른 후보들도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가슴을 울리는 광고 카피에 표운을 거는 선거전력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이제 그런 정책 검증없는 이미지 선거의 부작용이 오늘날 길거리에서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혼란의 책임 소재를 규명하려 애쓰고 있지만, 그 책임은 엄밀히 말해서 투표를 제대로 하지 않은 유권자 자신들에게 있다.

 

정책을 꼼꼼히 따지지 않고 행하는 무책임한 투표는 유권자 자신은 물론, 사회 전체적으로 막대한 손해를 끼친다는 사실을 유권자 스스로 뼈저리게 깨달아야 할 시점이다.

2008.06.04 18:10 ⓒ 2008 OhmyNews
#배후설 #탄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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