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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세월호 참사 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세월호 생존자 중 한 명인 김동수씨(파란바지의 의인이라고도 불리는)와 함께 세월호 참사 10년을 기억하며, 416챌린지를 펼칩니다. 4.16km이상을 걷거나 뛰고난 뒤 sns 등에 #416챌린지 등의 태그와 함께 인증사진을 올려주셔서 함께 힘을 실어주시길 바랍니다.[편집자말]
김동수씨.
 김동수씨.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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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파란바지의 의인'이라 불리는 김동수씨와 나는 4.16 9주기를 추모하며 제주에서 41.6km를 달리기로 결정했다. 그날 몇 명이 함께 하든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추모와 애도의 달리기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더불어 그곳에 생존자가 살아있고, 그들이 고통 받고 있다는 것도 알리고 싶었다. 9년이 지났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현실을, 길 위를 달리는 우리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초보 러너였다. 불과 3~4개월의 연습만으로 갑자기 40km 이상을 달린다는 것이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마음 한켠에서는 김동수라는 사람이 홀로 41.6km를 외롭게 달리도록 두고 싶지는 않았다. 적어도 '당신 곁에는 당신을 지지하는 사람이 누군가 있어요'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싶었다.

왜냐하면 나를 비롯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는 세월호 참사 앞에서 김동수와 같은 희생자에게 갚아야 할 빚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참사 당시 그곳에서 우리를 대신해 사람을 구하고, 또 세월호 진상을 위해 애쓰며, 세월호의 기억을 분명히 가진 피해자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김동수씨가 아니었다면 누군가 짊어져야 할 사회적 책임과 운명을 그가 오롯이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참사의 기억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살고 있는 그

의인으로서, 영웅으로서 우리에게 존경받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 할 마땅한 그가, 세월호의 참사 기억에서 조금도 헤어나오지 못한 채 살고 있다. 국가는 그를 비롯한 세월호 참사 생존자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그들이 어떤 후유증을 안고 살고 있는지, 생존자 가족들이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지, 그래서 우리 국가와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떠한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에서 살아나왔다는 그 명백한 사실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오히려 피해자 스스로 피해사실을 재차 입증해야 하며, 그 입증과정에서 다시 트라우마가 반복되는 악순환이 계속 되고 있다.

그럼에도 국가는 피해자 지원 전에 생존 피해자에게 피해자임을 입증하길 강요하고 있다. 그간 치료받았던 진료증명, 재차 제주에서 서울의 병원까지 올라와 검사를 받아야 하며, 진술서를 작성해야 했다.

그동안 마음속에 꾹꾹 눌러왔던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또다시 그날 그 바다의 기억이 떠오르게 되고, 그렇게 발현된 놀란 마음은 또 몇날 며칠 계속 되기 일쑤다. 그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누군가는 술을 마시고, 누군가는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 숨기도 하며, 또 누군가는 숨 막히도록 달리기도 한다. 왜 하필 나였을까? 왜 하필 그 배였을까? 지난 10여 년 동안 수십 번도 더 되묻던 질문이다. 그러나 누구도 그 질문에 대답해주지 않았고, 그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그렇게 살아가야 할 뿐...

마라톤은 기본적으로 상대방과 신체를 부딪쳐 가며 치열한 경쟁을 통해 꺾어야 하는 운동종목이 아니다. 물론 엘리트 선수들의 경우 입상을 위해, 또는 신기록을 위해 경쟁하기도 하지만 그 경쟁마저도 몸을 부딪쳐 가며 쟁취하는 승리는 아니다. 오직 묵묵히 기나긴 장거리 레이스를 뛰는 동안 스스로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목표한 지점을 향해 약속한 속도를 유지하며 성과를 이뤄내는 종목이다.

실제 나 역시 사람들과 어울려 뭔가를 이뤄내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편에 속한다. 돌이켜 보면 나의 학창생활에도, 직장생활에도, 군 생활에도, 활동가 시절에도, 심지어 어쩌다 일하게 된 공무원 시절에도 조직 내에서 튀는 녀석, 혹은 조직에 녹아들지 못하는 구성원 취급을 받았던 것 같다.

어느 조직이든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상대방에게 시간과 정성을 들여 응대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비록 작은 조직이라도 상대방과의 적절한 관계와 정보 공유하기 위해서는 나 역시 그에 상응하는 정보를 공유해야 하는데 그러한 노력에 시간을 들이는 것이 매우 낭비처럼 느꼈던 것이다.

지금이라고 특별히 달라지지 않았지만 조직의 구성원에게 애를 쓰는 시간보다 업무와 업무 관련자에게 시간을 쓰는 것이 더 어울릴지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며 살았던 것이다. 그런 성격 탓에 상대방과 조화를 이루며 성과를 이뤄내는 단체종목과 같은 운동은 애초부터 잘 해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 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마라톤은 나와 같은 민감한 내향인에게는 더 없이 좋은 운동이라 할 수 있다(실제 나의 MBTI는 'INFJ'이다. 그것도 아주 부정적 성향이 강한).

그런데 김동수씨 역시 마찬가지다. 소위 '프로오지라퍼'라 불릴 만큼 오지랖이 넓은 김동수씨는 늘 예민하고 민감하며 일에 대한 책임감과 성취감이 매우 강한 사람이다. 김동수씨의 끝없는 책임감은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목격한 사실이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그 순간, 여전히 소방호스를 어깨에 짊어진 채 세월호 난간을 타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마지막까지 고군분투하던 그의 모습을 생중계로 확인한 바 있는 것이다. 그런 책임감의 발로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저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품이라고 하기에는 죽음의 순간 앞에서도 발현되는 책임 있는 모습을 설명할 수 없다.

오만가지 이유가 스치지만... 운동화 끈을 조여 맵니다

다시 달리기 이야기로 돌아오면, 세월호 참사 9주기에 41.6km를 달리기 위해 2023년 1월과 2월간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달렸다. 눈이 너무 많이 오거나, 바닥이 빙판길이라 뛰지 못하는 몇 일간을 제외하고 거의 매일 10km 이상을 달렸다. 그리고 중간중간 15km나 20km를 섞어 달려주고는 했다.

전문 트레이너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달리기 전용 앱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무작정 달렸다. 매일 아침 또는 저녁, 심지어 밤 12시가 가까운 시간이라도 반드시 달렸다. 거리가 얼마든 반드시 달려야 했다. 내 몸이 기억하도록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제 너는 매일 달려야 한다. 짧은 거리일 수도 있고, 긴 거리일 수도 있다. 얼마든지 달릴 수 있다'라고 내 몸에게 각인시켜줘야 했기 때문이다.
 
필자의 페이스북.  달리기는 끊임없는 지속과 반복의 연습이다. 당시 달리기 조보였던 필자는 더욱 더 달리기에 매진할 수 밖에 없었다.
 필자의 페이스북. 달리기는 끊임없는 지속과 반복의 연습이다. 당시 달리기 조보였던 필자는 더욱 더 달리기에 매진할 수 밖에 없었다.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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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각인이 멈춰지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매일 운동복과 런닝화 끈을 조여 맬 때 수도 없는 갈등을 한다.

'어제 15km를 달렸으니 오늘은 쉬어도 괜찮아', '다리가 이렇게 무거운데 달릴 수 있겠어?', '밖에 날씨를 봐, 이런 날씨에 달리는 건 무리야', '미세먼지가 심각하니까 오늘은 어쩔 수 없잖아', '밤이 늦었어. 지금은 자고 내일 달리자'...

런닝화 끈을 조이는 그 순간 수많은 포기의 이유가 지나간다. 아니, 포기의 이유를 찾는다고 하는 것이 솔직한 표현이다. 그러나, 그 유혹을 떨쳐 내고 나면 다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문을 여는 순간 나는 달릴 수 있다. 이미 출발선에 섰으니까 달리지 않을 이유는 없다. 숨이 턱밑까지 차올라도, 다리가 아파와도, 나는 출발한 이곳으로 어떻게든 돌아와야 한다. 한두 시간 달리는 동안 내 안의 수많은 포기와 극복이 또다시 도사리고 있지만 운동화 끈을 조여 맬 때의 유혹에 비길 것이 못된다.

결국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달려야 한다. 그리고 수많은 포기와 극복을 반복하며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왔을 때의 내 자신 안에서 스스로에게 쏟아지는 응원과 감사, 격려와 칭찬을 느낀다. 하루의 달리기를 포기하고 겪어야 하는 불편함, 미안함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도 감사한다. 그렇게 나에게 당당한 하루를 또 살아간다.

세월호 참사에서 김동수씨 역시 수도 없는 포기와 탈출의 유혹을 느꼈다고 한다. 세월호 충돌 당시 어깨를 다쳤고, 세월호 승객과 학생을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허리와 팔에도 부상을 입었고, 여전히 그 후유증을 치료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까지 줄을 놓지 않았다. 숨이 차오르고 달리는 것을 멈추고 싶은 유혹을 수십년간 수천, 수만번 겪고 이겨냈던, 스스로에게 엄격했던 책임감은 세월호에서 그렇게 누군가의 생명을 구한 선한 의지가 된 것이다. 우리는 그 선한 의지를 기억하고, 그 의인의 남은 삶이 아름다운 날이 되도록 함께 응원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것이 우리 대신 세월호 참사의 그날 기억을 안고 사는 김동수씨를 위한 우리의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적어도 우리는 당신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의인의 삶은 해피엔딩이어야해요.' 그래서 나 역시 중단 없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세월호 참사 9주기에 맞춰 내가 달릴 수 있는 최대의 거리를 달려보겠다는 다짐과 함께 런닝화의 끈을 조였다.

마지막으로 얼마 전 소셜미디어에 올렸던 나의 글을 통해 달리기에 대한 나의 마음을 대신하며 글을 마친다.
 
최근 매일 달리기를 한다.

짧게는 5km, 길게는, 20km, 평균 10km...

장거리 달리기는 매일 시험(?)에 들게 한다.

숨이 차고,
다리가 아파서
'오늘은 여기까지 뛸까?'
하는 마음이 몇 번이나 들고,
그럴 때마다
'걸어갈까?'
'이만하면 충분하겠지?'
란 생각이 유혹한다.

매일 포기하고픈 유혹을 경험하고,
매일 그 유혹을 떨쳐낸다.

달리기의 고통은 누군가의 고통을 더 가깝게 하고,
극복의 경험은 가치 있는 일에 대해 중단 없는 지속을 만든다.

그래서 난,
오늘도 달린다.

- 2023년 2월 12일 페이스북 -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변상철씨는 공익법률지원단체 '파이팅챈스' 소장입니다. 파이팅챈스는 국가폭력, 노동, 장애, 이주노동자, 군사망사건 등의 인권침해 사건을 주로 다루는 법률그룹입니다.


태그:#파이팅챈스, #FIGHTINGCH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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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억울한 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Fighting chance'라고 하는 공익법률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문두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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