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가 은퇴하기 전에 근무했던 고등학교에서는 매년 선생님들이 학생들과 함께 텃밭 가꾸기 활동을 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학교의 특색사업 중 하나로 교육청에 사업 신청서를 제출하고, 예산 지원을 받아 운영해 오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도 텃밭을 가꾸고 있는데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텃밭 가꾸기가 교육적인 의미도 크겠다 싶어, 재직 중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면서 참여했다. 은퇴한 이후에도 후배 동료 교사들이나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서 학교 사정은 잘 알고 있으며 발전적인 모습을 지속적으로 지켜본다.  

최근에도 학교에 재직할 때 텃밭을 같이 했던 후배 교사로부터 텃밭 운영과 '사랑의 김장나누기' 행사를 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학교 홈페이지에도 텃밭 관련 사진과 소식이 올라와 있었다.

학교 뒤 텃밭, 학생들 함께 커가는 공간
 
학교 텃밭에서 학생들이 비닐 멀칭을 하고 지주대를 세우고 있다. 사진은 텃밭을 같이 했던 후배 교사가 찍은 것.
 학교 텃밭에서 학생들이 비닐 멀칭을 하고 지주대를 세우고 있다. 사진은 텃밭을 같이 했던 후배 교사가 찍은 것.
ⓒ 배진호

관련사진보기


텃밭은 학교 별관 뒤에 있는 빈 공간을 활용한다. 봄이 되면 텃밭에 사용할 퇴비를 구입하고, 지주대와 비닐 등 채소를 가꾸는 데 필요한 물품을 준비한단다. 봄날이 따뜻해지기 시작하면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어울려 비닐 멀칭(표면을 덮어주는 일)을 하고, 지주대를 세우며 본격적으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텃밭에 가꿀 작물을 선정해서 씨를 뿌리고 모종을 구입하여 심는다. 수시로 작물에 물을 주면서 불필요한 곁순을 따주고 햇빛이나 공기가 잘 통하도록 묵은 잎을 제거하는 등 노력을 쏟는다. 잘 자라지 않거나 병이 든 채소는 원인이 무엇일까 찾아보면서 작물에 대한 정보를 알아간다.
 
선생님과 학생들이 가꾼 학교 텃밭에서 채소들이 자라고 있다.
 선생님과 학생들이 가꾼 학교 텃밭에서 채소들이 자라고 있다.
ⓒ 배진호

관련사진보기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학생들은, 작물이 심기만 하면 그냥 자라는 게 아니라 가꾸는 사람의 정성과 땀이 들어가야 풍성한 수확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상추, 오이, 가지, 고추, 방울토마토 등 각종 채소들이 자라는 걸 보면서 아이들은 농산물의 생산과정과 농업인들의 수고로움을 자연스럽게 체득한다.

채소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어 가꾸는 동안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작물을 매개로 소통하면서 한마음이 된다.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라기보다 작물을 공동으로 가꾸는 농부의 애틋한 마음이 되는 것이다. 학생들도 친구들끼리 한층 더 가까워지고 마음으로 다가가는 기회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텃밭이 자연스럽게 인성교육의 장소가 되는 이유다.

재배부터 김장까지 모두 학생들의 손으로 
 
학교 텃밭에서 선생님과 학생들이 심어 놓은 김장용 배추가 잘 자라고 있다.
 학교 텃밭에서 선생님과 학생들이 심어 놓은 김장용 배추가 잘 자라고 있다.
ⓒ 배진호

관련사진보기

 
학교 텃밭에서 한 학생이 자신이 가꾸는 상추를 사랑스럽게 손으로 감싸고 있다.
 학교 텃밭에서 한 학생이 자신이 가꾸는 상추를 사랑스럽게 손으로 감싸고 있다.
ⓒ 배진호

관련사진보기

 
봄에 심은 채소의 수확이 끝나면 선생님과 학생들은 8월 말쯤에 거름을 뿌리고 삽과 호미 같은 농기구로 땅을 갈아서 배추 심을 채비를 한다. 9월 초순경에 김장할 배추의 모종을 구입하여 넉넉하게 심는다. 특히 배추 모종은 다른 작물보다 더 신경써서 돌보고 가꾼다. 물을 충분히 주어 수분을 공급하고 배추가 자라는 상태에 따라 웃거름을 조절해서 준다. 이 때 배추벌레도 잡아주면서 배추가 무럭무럭 자라도록 정성을 쏟는다.

이렇게 정성을 가득 들이는 이유는, 이 배추가 연말마다 연례행사처럼 진행하는 '사랑의 김장 나누기' 활동에 사용할 김장 배추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배추들은 사랑의 김장으로 변신할 때를 기다린다. 올해도 어김없이 '사랑의 김장 나누기'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텃밭에서 수확한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양념을 버무려서 김장할 준비가 되었다. 드디어 김장을 담그기로 한 지난달 23일. 선생님과 학생들은 학교 안에 함께 모여 앞치마를 두르고 고무장갑을 끼고 김장 담글 준비를 완벽하게 갖춘다. 김장 담그기가 시작되자, 절인 배추 속에 양념이 잘 배이도록 치대면서 사랑도 가득 담는다. 김장을 담그는 표정들이 다들 신나고 즐거워 보인다.
 
선생님과 학생들이 어우러져 즐겁게 김장을 담그고 있다.
 선생님과 학생들이 어우러져 즐겁게 김장을 담그고 있다.
ⓒ 배진호

관련사진보기


그렇게 양념이 잘 배인 배추가 한 포기, 두 포기, 세 포기... 김치가 쌓여 비닐로 포장이 되고 상자에 담긴다. 이렇게 완성된 사랑의 김장 김치는 학교 인근에 사시는 독거노인들에게 학생들의 사랑스런 마음과 함께 전달되었다.

이렇게 해서 이제 일 년 동안의 텃밭 가꾸기는 끝이 났다. 텃밭에서 아이들의 손길이 닿은 채소들이 성장하는 동안 아이들 몸과 마음도 많이 성장했을 것이다. 텃밭에서 채소를 기르기 위해 퇴비를 뿌려서 땅을 고르고,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고 지지대를 세우고, 작물들이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고 돌보면서 느끼는 점이 많지 않았을까.

학생들이 선생님과 함께 배추를 직접 심어서 가꾸고 수확하여 김장을 담그고, 그 김장을 외롭고 쓸쓸하게 홀로 지내는 어르신들에게 전달하는 그 과정 모두가 사랑의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텃밭 가꾸기는 아이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잔잔한 깨달음과 울림으로 남아 살아가면서 한번씩 꺼내보는 추억이 될 것이다.

태그:#학교텃밭, #김장담그기, #학교텃밭가꾸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람들의 삶과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가끔 글로 표현합니다. 작은 관심과 배려가 살맛나는 따뜻한 세상을 만듭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