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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 여러 작물이 자라고 있다
▲ 텃밭 텃밭에 여러 작물이 자라고 있다
ⓒ 곽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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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올해로 13년 째 근교 텃밭을 가꾸는 도시농부다. 100평이 넘는 규모라서 텃밭치고는 면적이 꽤 넓은 편이다. 처음에는 텃밭 일부에 네 두둑 정도만 작물을 심어 가꾸다가 점점 작물을 심는 면적이 늘어나 이제는 텃밭 전체, 100여 평에 달한다. 은퇴 이후 여윳시간이 많아져서 지금은 미니 관리기까지 구입해 작물을 키우며 농사 짓는 재미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사실 나는 농촌에서 나고 자랐지만 농사짓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 어릴 때 부모님이 밭농사를 하셨는데, 밭에서 가꾸는 주작물이 보리와 고구마였다. 보리와 고구마를 같은 밭에서 번갈아 가며 재배하는 이모작이었다.

그때는 틈만 나면 부모님을 따라다니면서 농사일을 많이 거들어야 했다. 겨울에도 보리밟기를 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어린 마음에 부모님이 힘들게 농사지으시는 것을 보고, 또 농사를 거들어 드리는 것도 힘들어서 나는 크면 농사는 짓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까지 했다.

그랬던 내가 농사를 짓겠다니, 처음에는 텃밭 가꿀 마음이 그렇게 내키지 않았다. 대충 농사짓는 흉내라도 내보자는 생각으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참고해 몇 종류의 채소를 가꿔 봤다. 그런데 채소 씨앗을 뿌리고, 또는 어린 모종을 심어서 가꾸다 보니,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씨앗에서 새싹이 돋아나고, 어린 모종들이 점점 커가는 과정을 보면서 작물과 소통하고 자연과 교감하는 듯한 소소한 재미가 생겼다. 내 손길이 좀 더 갈수록 작물들은 내 정성에 답하듯이 생기가 돌았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더니... 그 말이 맞는 거 같다. 작물들을 가꾸고 돌보는 시간에는 잡념도 없어지고, 마음이 평온해져 여유 시간이 있을 때마다 텃밭에서 보냈다.

텃밭 가꾸기에 재미가 붙자, 농사 욕심이 생기고 재배 면적이 점점 늘어갔다. 면적이 늘어나면서 재미는 있는데 몸이 좀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육체적으로 힘이 드니까 과거에 부모님이 농사를 짓는다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업으로 하시는 농사라서 더욱 힘드셨을 것이다. 텃밭을 가꾸면서 농촌에서 평생 동안 농사일을 하시다가 돌아가신 부모님의 노고를 다시 돌이켜보는 계기가 됐다. 이것도 텃밭 농사를 통해 얻게 된 덤이라고나 할까.
 
텃밭에 가지와 고추가 열려 있다.
▲ 텃밭 열매 텃밭에 가지와 고추가 열려 있다.
ⓒ 곽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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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가꾸기의 즐거움은 작물을 가꾸는 즐거움만 있는 게 아니다. 뭐니 뭐니 해도 농사는 애써서 가꾼 농작물을 수확하는 즐거움이 크다. 이게 농사짓는 맛이다.

커가는 작물에 정성을 쏟고 그 작물이 결실을 맺어 수확하니 뿌듯하지 않을 수가 없다. 수확할 때는 온 가족이 참여하여 기쁜 마음으로 수확한다. 간혹 이웃이나 지인들도 동참하여 거든다. 내가 정성들여 키우고 수확한 채소를 가족들이 맛있게 먹어주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텃밭에서 거두어들인 수확물은 우리 가족만 먹는 것이 아니다.
 
텃밭에 고구마가 자라고 있다.
▲ 텃밭 고구마 텃밭에 고구마가 자라고 있다.
ⓒ 곽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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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서 나오는 수확물이 적지 않아 가까이에 사는 친척, 지인, 주변에 사는 이웃들에게도 조금씩 나눠 준다. 이들이 맛있게 먹고 고맙다고 인사를 주고받는 것도 흐뭇하다. 가끔은 아파트 관리실의 직원, 노인정 어르신들에게도 텃밭에서 나오는 감자, 옥수수, 고구마를 삶아 가져다 드린다. 마주칠 때마다 맛있게 먹었다고 해서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다.

친척이나 이웃, 어르신들까지 더 자주 얼굴을 보게 되고 친밀해지는 것 같아서 나누어 먹는 즐거움도 의외로 쏠쏠하다. 텃밭에서 나오는 수확물은 주변 사람들과 조금씩 나누어 먹기에는 적당한 양이라 아무런 부담이 없다.

은퇴를 한 내게는 이제 텃밭이 하나의 일터이자 놀이터가 됐다. 텃밭을 가꾸면서 정신적으로도 건강해지고, 몸을 움직여 일하니 무리만 하지 않으면 신체 건강에도 좋다.

텃밭은 내게 여러모로 주는 것이 많다. 작물을 가꾸고 수확하고 나누는 즐거움에다 주변 사람들과 친해지는 기회까지 제공하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내가 텃밭 농사를 통해 얻는 대가는 이런 소소한 즐거움이다. 이것은 다른 무엇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런 즐거움이 내가 텃밭 농사를 그만두지 않고 계속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나의 일상은 대부분 텃밭 농사로 채워져 있다.

태그:#텃밭, #텃밭즐거움,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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