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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5월부터 해외 작가의 생가와 도서관 및 서점들을 탐방하고 있습니다. 7월 30일 방문한 LA 헌팅턴 라이브러리의 여정을 나눕니다.[기자말]
미국 LA 다운타운에서 차로 20여 분이면 갈 수 있는 샌 마리노의 '헌팅턴도서관'은 책만 열람할 수 있는 일반 공공도서관은 아니다. 부지면적이 25만여 평에 달하는 이곳의 성격은 영문명 'The Huntington Library, Art Museum, and Botanical Gardens(헌팅턴 도서관, 미술관, 식물원)'이 정확히 요약해 주고 있다. 도서관, 미술관, 식물원의 세 가지 기능이 복합된 곳이다.

방문객의 대부분은 식물원을 즐기기 위함이다. 유럽미술품과 미국미술품을 전시한 두 개의 미술관도 각각의 컬렉션들이 충분히 매혹적이다. 그러나 오늘 나의 관심은 도서관에 있다. 이곳의 대표이름이 라이브러리인 이유를, 이 도서관이 얼마나 귀하고 방대한 자료를 확보하고 있는지를 알고 나면 수긍하게 된다.

희귀 자료 1천만 점 이상
 
희귀 도서를 비롯한 연구가치를 지닌 원고, 프린트, 사진, 지도 등 1천1백만 점 이상의 컬렉션을 보유한 연구도서관, 헌팅턴 라이브러리
 희귀 도서를 비롯한 연구가치를 지닌 원고, 프린트, 사진, 지도 등 1천1백만 점 이상의 컬렉션을 보유한 연구도서관, 헌팅턴 라이브러리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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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1455년 구텐베르크 성서 등 도서 포함 각종 희귀 자료 1천1백만 점 이상을 소장하고 있다. 그 자료들은 지금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 자료의 열람은 연구원, 학자 등 학술적 연구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만 허락되므로 일반 방문객들은 그 방대함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내화와 내진 설계된 도서관 지하와 멍거 리서치 센터(Munger Research Center)는 이 방대한 자료로 가득하다. 이곳은 인문학, 미술사 및 관련 학문분야의 연구원들이 컬렉션의 희귀 서적, 역사적 문서, 원고, 사진 및 기타 기록 자료의 원본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접점 센터이다. 이 자료에 접근할 ID를 받기 위해서는 센터의 규칙 및 규정을 확인하고 신원확인과 더불어 소속과 연구 목적을 제출해야 한다.

매년 30여 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2000명 이상의 연구원들이 직접 방문하거나 온라인으로 이 자료들에 접근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각 분야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자료를 밖으로 반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도서관에만 학자들로 구성된 16명의 큐레이터를 비롯해 70명이 넘는 직원들이 자료들을 장기 보존할 수 있도록 관리하고 디지털화해서 접근성을 높이도록 하고 있다.

1919년 헨리 E. 헌팅턴에 의해 설립되어 1928년에 일반에 공개된 이 도서관에서 일반 방문객이 볼 수 있는 것은 도서관 메인 홀에 엄선되어 전시된 150여 점 자료들이다. 세계에 대한 지식과 인식을 변화시킨 값진 책과 자료들이다. 필사, 그림, 초기의 인쇄 방식으로 남아 있는 책들은 아름답고 정교하고 기발하다. 이곳의 책과 문서를 통해 오래전 유럽사회 다양한 계층 사람들의 경험에 접근할 수 있다.
 
헌팅턴 라이브러리의 메인 홀(Library Main Hall) 전시실
 헌팅턴 라이브러리의 메인 홀(Library Main Hall) 전시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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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메인홀 전시실에서 그 방대한 지식의 문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마침내 닿은 흥분을 맛볼 수 있다. 제프리 초서의 문학 걸작인 '캔터베리 이야기'의 1400년경 채식필사본 엘즈미어 초서, 1455년 간행된 송아지 피지 '구텐베르크 성서', 1639년 북미에서 간행된 윌리엄 셰익스피어 희곡 퍼스트 폴리오 판본,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1854년 '월든(Walden)' 초고를 비롯한 링컨대통령의 남북전쟁에 관한 1863년 친서, 헤르난 코르테스의 1524년 신세계 지도, 밀턴의 '실락원' 1667년 초판본, 1776년 '미국독립선언문' 등 중요 인물들의 원본 원고들과 편지들을 접할 수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의 1854년  '월든(Walden)' 초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의 1854년 '월든(Walden)'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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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들 책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이 도서관의 가장 오래된 인쇄도서는 중국 불경이다. 송나라 시대인 1085년에 인쇄된 중국불교경전이 전시 중이다. 이는 불교경전 자체에 대한 연구와 보급뿐만 아니라 목판인쇄술에 대한 연구대상이 된다.
 
현재 전시 중인 1085년에 목판으로 인쇄된 중국불교경전
 현재 전시 중인 1085년에 목판으로 인쇄된 중국불교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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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유럽인들이 식민지를 건설하고 제국을 확장해 가는데 필수적인 도구가 되었던 지도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지도들은 아메리카대륙 해안선에 대한 계측이 이루어지고 지도에 반영되었으며 판화로 인쇄되어 전파되고 그것이 항법의 발전을 가져온 과정의 시대속으로 들어가는 징검다리가 된다.

1455년 간행된 송아지 가죽본 '구텐베르크 성서'를 접하고 비로소 인쇄혁명이 어떻게 유럽사회를 획기적으로 바꾸었는지, 더불어 구텐베르크 성서의 인쇄가 가져온 혁명을 통해, 1377년 제작 직지심경으로 입증된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 인쇄술이 얼마나 위대한 발명이었는지를 체감하게 된다.

나는 이 귀한 자료들이 어떻게 오늘날까지 살아남았고 어떻게 이 도서관에서 오늘 내가 대면할 수 있게 되었는지, 관련한 이 책들의 여정도 궁금했다. 이는 기꺼이 시간을 허락해 준 도슨트 샌드러 메이더(Sandra Mader)씨에 의해 해소될 수 있었다. 이 지역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도서관을 맡았던 83세 샌드러씨는 은퇴 뒤 2011년부터 이곳에서 봉사하고 계신 63년 경력 사서이다.

전시된 원본 책에는 안식월이 있다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Chaucer's Canterbury Tales)의 엘즈미어(Ellesmere) 원고 사본. 원본은 현재 서고에서 안식월을 보내고 있다. 올 8월에 원본으로 교체된다.
▲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Chaucer's Canterbury Tales)의 엘즈미어(Ellesmere) 원고 사본. 원본은 현재 서고에서 안식월을 보내고 있다. 올 8월에 원본으로 교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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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캔터베리 이야기'의 필사본을 접하는 감동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엘즈미어 초서'는 영어와 영문학의 역사에서 소중한 '캔터베리 이야기'의 가장 완전하고 잘 보존된 책입니다. 페이지 전반에 걸쳐 정교하고 호화로운 삽화로 채식된 필사책이죠. 하지만 이것은 지금 이 전시실에 전시된 것 중에서 유일하게 진본이 아닌 것입니다. 송아지가죽 원고에 쓰인 240쪽의 원본은 너무나 귀한 자료이지만 한 부 밖에 없기 때문에 계속 빛에 노출되어 전시될 경우 책에 무리를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시 18개월마다 6개월씩 안식월을 둡니다.

지금은 안식월 기간이죠. 이 책의 진본을 보기 위해서는 안식월이 끝나는 8월에 다시 오셔야 합니다. 지금 전시된 사본은 1995년에 이 자료를 디지털화해서 원본과 동일하게 만든 250개의 사본 중의 하나입니다. 채식을 비롯한 모든 장식도 원본 원고와 마찬가지로 금으로 치장되었습니다."

- 원본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서 안식월을 두는 정책에 대해 수긍이 됩니다.
"원본은 제본이 굳지 않도록 보존담당자가 3개월마다 한 번씩 모든 페이지를 넘겨줍니다."

- 이 도서관에 왜 그렇게 많은 직원이 필요한지 이유를 조금은 알겠군요.
"그들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입니다. 이 책만 이 전시실의 유일한 사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다른 것들은 이 도서관에서 한 부 이상 소장하고 있기 때문에 원본을 그대로 전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퍼스트 폴리오 판본'은 4권의 원본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대로 바꾸어줄 수 있고요. 저쪽의 '미국의 새들'이라는 귀중한 책도 4권이 있습니다."

- 그럼 '구텐베르크 성서'도 동일한 원본 판본이 더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구텐베르크 성서는 2권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그래서 한 권씩 교대로 전시를 하죠. 지금 보시는 것은 첫 번째 책이고 두 번째 책은 지하의 서고에서 안식을 취하고 있죠."
 
요한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로 인쇄한 첫 번째 판본인 '구텐베르크 성서'. 현존하는 송아지 가죽본 12책 중의 하나이다. 2책중의 첫번째 책 진본
▲ 구텐베르크 성서. 요한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로 인쇄한 첫 번째 판본인 '구텐베르크 성서'. 현존하는 송아지 가죽본 12책 중의 하나이다. 2책중의 첫번째 책 진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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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성서는 요한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로 인쇄한 첫 번째 판본인 거죠?
"맞습니다. 1455년 독일 마인츠에서 200부 미만으로 제작되었다고 해요. 그중에서 송아지 가죽본 12책과 종이 인쇄본 36책을 통틀어 48부만 세상에 살아남아서 전해지고 있어요. 이곳의 가죽본 성서는 처음 가죽에 인쇄한 36책 중 현존하는 12책 중의 하나입니다. 금속주조활자를 사용한 이 성서본은 지식이 전파되는 방식에 혁명을 불러일으켰죠. 손으로 써서 복사본을 만들던 그전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와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어요.

옆 전시실에서 전시 중인 중국불경은 시대가 앞선 멋진 인쇄물이지만 글자를 조합할 수 있는 조판방식이 아니라 목판이죠. 이 성서는 한 장의 가죽, 비폴륨(bifolium) 한 면에 2페이지씩 총 4페이지를 활자 위에 놓고 눌러서 인쇄를 했죠. 이 인쇄본은 애초에 이전의 필사본처럼 화려한 삽화나 채식이 아니라 글자만 인쇄되었습니다. 나중에 이니셜(채색된 머리글자)과 붉은 글씨가 추가되었습니다."

- 이 전시장 위층의 서가는 무엇입니까?
"이 도서관이 1100만 종이 넘는 컬렉션의 일부를 둔 곳입니다. 이곳은 거대한 연구도서관입니다. 우리는 지금 지하에 소장된 수많은 책들의 위를 걷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허팅턴(도서관)을 '도서관들의 도서관(a library of libraries)'이라고 부르죠. 허팅턴씨가 가장 큰 비중을 두었던 것은 자료들의 수집이었습니다. 허팅턴은 철도와 부동산 등으로 벌어들인 박대한 부를 후대를 위해 이런 선물로 남기고 싶어 했습니다."
  
철도산업, 전기와 가스 등 도시 인프라 투자 및 로스앤젤레스 주변 지역을 포함한 남부 캘리포니아의 방대한 토지를 취득하고 개발하는 부동산 투자로 큰 돈을 쥔 헨리 E. 헌팅턴은 자신의 재산을 방대한 희귀도서 및 자료 컬렉션에 활용해 연구도서관을 설립하는 방식으로 사회에 환원했다.
 철도산업, 전기와 가스 등 도시 인프라 투자 및 로스앤젤레스 주변 지역을 포함한 남부 캘리포니아의 방대한 토지를 취득하고 개발하는 부동산 투자로 큰 돈을 쥔 헨리 E. 헌팅턴은 자신의 재산을 방대한 희귀도서 및 자료 컬렉션에 활용해 연구도서관을 설립하는 방식으로 사회에 환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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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로 어떤 주제로 컬렉션을 했습니까?
"대부분은 영국과 미국과 같은 영어권의 세계 역사와 문학입니다. 그러나 그는 미국의 많은 지역을 오갔기 때문에 스페인어,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자료들도 관심을 두었습니다. 과학과 의학에 관한 역사 분야 또한 방대합니다."

-그 시대 부자들은 비슷한 컬렉션에 몰두했군요. 경쟁자이기도 했겠습니다?
"그들은 책에 관한 것에 배우는 같은 소셜그룹의 일원이었습니다. 글로리어 클럽(Grolier Club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한 프랑스 도서 애호가이자 도서 수집가인 Jean Grolier 이름을 딴 뉴욕에 위치한 개인적인 서지 애호가 클럽)이 그것입니다. 그들은 이 클럽에서 정기적으로 만났고 이 모임을 통해 학자들로부터 책과 컬렉션에 대해 배웠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 수집품에 대한 경쟁도 치열했을 것 같은데요?
"물론이죠. 당시 뉴욕과 런던에서 경매가 있었고 허팅턴씨는 두 곳 모두에 경매 대리인들을 보냈죠. 그가 구텐베르크 성서를 살 때 그는 JP모건이 이미 송아지 가죽본과 종이본 두 가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경매 경합이 붙었죠.

그때 카네기 측은 4만 9천달러를 제시했고 허팅턴 측은 5만 달러를 불렀습니다. 그래서 저 성서가 이곳에 있게 된 거죠. 이것은 1911년 경매에서 있었던 일이고 한 권의 책에 대해 지불된 가장 많은 돈이었습니다. 이전까지는 가장 비싸게 지불한 돈이 2만 5천달러였습니다. 그러니까 그전의 2배를 제시한 거죠. 당신이 짐작한 것처럼 글로리어 클럽사람들은 우호적인 경쟁자였습니다."

- 그들 비즈니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네요.
"그들은 모두 사업가들이었고, 책 수집에 있어서도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공격적이었죠. 하지만 이것은 다행입니다. 그들이 이 책들에 투자하지 않았다면 이 책들에 무슨 일이 있었을지 확답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떤 개인 소장자에게 들어가서 사라졌을 수도 있죠. 적어도 지금 이 책들은 모든 학자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안전하게 보존되고 있잖아요."
  
일반인들의 인기있는 나들이 장소가 된 허팅턴 정원 중의 하나인 중국정원
▲ 중국정원 일반인들의 인기있는 나들이 장소가 된 허팅턴 정원 중의 하나인 중국정원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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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 재단(Ford Foundation) 회장 대런 워커가 언젠가 인문학과 예술의 역할을 '민주주의의 산소'라고 한 말에 공감한다. 그 말이 이 도서관이 왜 여전히 자료의 컬렉션에 열중하고 있는지, 우리가 왜 계속 독서와 예술에 관심을 놓지 않아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태그:#헌팅턴도서관, #헨리에드워즈헌팅턴, #캔터베리이야기, #구텐베르크성서, #사막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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