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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국무총리가 3일 오전?제주시 명림로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추념사를 대독하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3일 오전?제주시 명림로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추념사를 대독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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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3일 오후 3시 43분]

제75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이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을 위한 미국 방문 준비 등의 이유로 불참했고, 추념사만 보냈다. 이 추념사는 한덕수 총리가 대독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김기현 당 대표와 주호영 원내대표 모두 불참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제주에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여는 등 당 지도부가 총출동했다.

지난 대선 유세 당시 "윤석열 정부는 정말 다르구나,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믿고 보수 성향 현직 대통령의 첫 제주 4.3 추념식 참석을 기대했던 제주도민들은 실망한 기 색이 역력하다. 외교 준비 일정을 이유로 불참한 윤 대통령이 지난 1일 대구를 방문해 프로야구 개막전 시구에 나서고, 연이어 서문시장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제주 홀대론'이 나온다.

윤 대통령의 불참보다 더 '황당'한 일은 대통령 명의의 추념사다. 

추념사도 재탕? 지난해와 비슷한 추념사 
 
2022년 4월 3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 74회 4.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한 윤석열 당선인 옆에서 희생자 가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2년 4월 3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 74회 4.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한 윤석열 당선인 옆에서 희생자 가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인수위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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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한 희생자들을 국민과 함께 따뜻하게 보듬고 아픔을 나누는 일은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 2022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추념사

"무고한 4.3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그 유가족들의 아픔을 국민과 함께 어루만지는 일은 자유와 인권을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 2023년 한덕수 총리 대독 윤석열 대통령 추념사


지난해 윤석열 당선인은 "무고한 희생자들을 보듬고 아픔을 나누는 일은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당연한 의무"라고 말했다. 

올해 추념사를 보면 윤 대통령은 "무고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유가족의 아픔을 국민과 어루만지는 일은 자유와 인권을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당연한 의무"라고 했다. 

앞부분은 거의 비슷한 내용이고, 뒷부분의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당연한 의무"는 완전히 똑같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개념을 강조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특별히 할 말이 없어 지난해 추념사를 참조한 걸까?

2022년 추념사와 올해 추념사의 마지막 부분도 내용과 문구가 상당히 비슷하다. 2022년 윤 당선인은 "무고한 희생자의 넋을 국민과 함께 따뜻하게 보듬겠다는 약속, 잊지 않겠습니다. 다시 한 번, 희생자들의 안식을 기원하며, 유가족들에게도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라고 했다. 

올해 대독된 2023년 추념사에서 윤 대통령은 "무고한 4.3 희생자들의 넋을 국민과 함께 따뜻하게 보듬겠다는 저의 약속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라며 "희생자들의 안식을 기원하며, 유가족들에게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써놨다. 이 두 문장 사이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승화시켜 새로운 제주의 미래를 열어갈 수 있께 최선을 다하겠다"는 문장만 삽입됐다. 

'제주 번영'이 희생자 예우의 길이라고?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표석을 찾은 유족들이 참배하고 있다.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표석을 찾은 유족들이 참배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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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 세 번이나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제주도민들의 피해 사례를 하나하나 언급하며 완전한 해결을 위한 '4.3 특별법 개정안' 등 구체적 방안을 설명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추념사에는 이런 내용은 전혀 없었다.

윤 대통령의 추념사를 보면 "정부는 4.3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생존 희생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잊지 않고 보듬어 나갈 것"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했다. 4.3 특별법 개정안이나 희생자·유가족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 방안은 없다. 

그는 "희생자와 유가족을 진정으로 예우하는 길은 더 큰 번영을 이루는 것"이라고 발언했다. 그는 "제주를 자연, 문화, 그리고 역사와 함께 하는 격조 있는 문화 관광 지역, 청정의 자연과 첨단의 기술이 공존하는 대한민국의 보석 같은 곳으로 탈바꿈시키겠다고 약속드렸다"면서 제주를 "품격 있는 문화 관광 지역" "IT 기업과 반도체 설계기업 등 최고 수준의 디지털 기업이 활약"하는 곳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도 했다. 마치 선거유세장에서 나올법한 공약 같은 이야기를 늘어놨다.

국민의힘 최고위원과 극우단체의 4.3 왜곡 발언·현수막에 이어 4.3 당시 민간인 학살을 주도한 단체를 추종하는 '서북청년단'이 난입하는 등 제주 4.3 75주년을 맞는 제주의 민심은 처참한 상태다. 그와중에 '문화관광지역' '디지털 기업 지원' 등 느닷없는 지역 번영 약속은 제주도민의 입장에선 이해가 어려울 뿐더러 앞뒤 상황에도 맞지 않는 부적절한 추념사다. 

민주당이 같은 날 제주도에서 "4.3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와 희생자 신원 확인 유전자 감식을 지원하겠다"라고 밝힌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아래는 2022년과 2023년 윤석열 대통령의 추념사 전문이다. 

[2022년] 제74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추념사
 
2022년 4월 3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 74회 4.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한 윤석열 당선인이 추념사를 하고 있다.
 2022년 4월 3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 74회 4.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한 윤석열 당선인이 추념사를 하고 있다.
ⓒ 인수위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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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제주 4.3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
그리고 제주도민 여러분

우리는 4.3의 아픈 역사와
한 분, 한 분의 무고한 희생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억울하단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소중한 이들을 잃은 통한을 그리움으로 견뎌온
제주도민과 제주의 역사 앞에 숙연해집니다.

희생자들의 영전에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
고통의 세월을 함께하며
평화의 섬 제주를 일궈낸 유가족들께도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4.3의 아픔을 치유하고 상흔을 돌보는 것은
4.3을 기억하는 바로 우리의 책임이며,
화해와 상생, 그리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대한민국의 몫입니다.

4.3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온전한 명예 회복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생존 희생자들의 아픔과
힘든 시간을 이겨내 온 유가족들의 삶과 아픔도
국가가 책임 있게 어루만질 것입니다.

여러분,
무고한 희생자들을
국민과 함께 따뜻하게 보듬고 아픔을 나누는 일은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과거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는
74년이 지난 오늘 이 자리에서도 이어지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과거는 우리가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다는 믿음이
비극에서 평화로 나아간 4.3 역사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곳 제주 4.3 평화공원이 담고 있는
평화와 인권의 가치가 널리 퍼져나가
세계와 만날 수 있도록
새 정부에서도 노력하겠습니다.

제주도민 여러분,
지난 2월, 제가 이 곳을 찾았을 때 눈보라가 쳤습니다.
오늘 보니 제주 곳곳에 붉은 동백꽃이 만개했습니다.
완연한 봄이 온 것입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가슴에도
따뜻한 봄이 피어나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무고한 희생자의 넋을
국민과 함께 따뜻하게 보듬겠다는 약속,
잊지 않겠습니다.

다시 한 번, 희생자들의 안식을 기원하며,
유가족들에게도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2023년] 제75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 윤석열 대통령 추념사(국무총리 대독)

 
 한덕수 국무총리가 3일 오전 제주시 명림로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추념사를 대독하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3일 오전 제주시 명림로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추념사를 대독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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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제주 4.3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
그리고 제주도민 여러분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입니다.

무고한 4.3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그 유가족들의 아픔을
국민과 함께 어루만지는 일은 자유와 인권을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정부는 4.3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생존 희생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잊지 않고 보듬어 나갈 것입니다.

희생자와 유가족을 진정으로 예우하는 길은 자유와 인권이 꽃피는 대한민국을 만들고, 이곳 제주가 보편적 가치,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더 큰 번영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 책임이 저와 정부, 그리고 우리 국민에게 있습니다.

저는 제주를 자연, 문화, 그리고 역사와 함께 하는
격조 있는 문화 관광 지역, 청정의 자연과 첨단의 기술이 공존하는
대한민국의 보석 같은 곳으로 탈바꿈시키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인들이 견문을 넓힐 수 있는 품격 있는
문화 관광 지역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은 콘텐츠 시대입니다. IT 기업과 반도체 설계기업 등
최고 수준의 디지털 기업이 제주에서 활약하고, 세계의 인재들이
제주로 모여들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입니다.

제주 4.3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
그리고 제주도민 여러분

무고한 4.3 희생자들의 넋을 국민과 함께 따뜻하게 보듬겠다는
저의 약속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여러분께서 소중히 지켜온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승화시켜
새로운 제주의 미래를 여러분과 함께 열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희생자들의 안식을 기원하며, 유가족들에게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2023년 4월 3일
대한민국 대통령
윤석열

덧붙이는 글 | 독립미디어 '아이엠피터뉴스'에도 게재됐습니다.


태그:#제주 4.3 추념식, #윤석열, #제주 4.3평화공원,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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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언론 '아이엠피터뉴스'를 운영한다. 제주에 거주하며 육지를 오가며 취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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