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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된 영화 <다음 소희>(정주리 감독, 배두나·김시은 주연)는 2017년 LGU+ 고객센터에서 현장실습으로 일하다가 사망한 고 홍수연씨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제도의 문제와 실적 중심의 노동현장이 어떻게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지 잘 보여줍니다.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은 많은 사람들이 <다음 소희>를 통해 실업계 교육현장과 콜센터 노동현장의 문제점에 관심을 가지길 바라며 관련 글을 3회 연재합니다. [기자말]
영화 <다음 소희> 스틸컷
 영화 <다음 소희> 스틸컷
ⓒ 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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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내내 2017년에 했던 활동이 떠올라 아쉬웠고 답답했다. 영화의 배경이 된 기업체에 파견하는 형태의 현장실습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고, 현장실습을 나간 청소년, 청년들이 여전히 차별받고 다치고 죽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음 소희>는 2017년 LGU+ 콜센터 현장실습생 고 홍수연씨의 사망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당시에 나는 대책회의 활동을 하면서 홍수연씨의 아버지 홍순성씨를 처음 만났다. 청소년노동인권단체들만이 아니라 여러 시민사회단체단체들이 모여 <산업체파견 현장실습 중단과 청소년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대책회의>를 꾸렸다.

대책회의는 서울 용산에 있는 LGU+ 본사에 가서 문화제도 열고 집회도 하고, 국가인권위에 진정도 했다. 업체에 파견하는 형태의 현장실습은 꼭 없애자고 다짐하며 노력했지만 없애지 못하고 몇 개의 사항만 조금 개선됐다. 여전히 영화의 대사처럼 직업계고 학교는 회사에 값싼 인력을 대주는 인력파견업체다.
 
지극히 사실적인 현장실습제도 재현
 
2017년<산업체파견 현장실습 중단과 청소년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대책회의>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에 취업률 게시와 서약서가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국가인권위에 진정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 2017년 당시 대책회의에서 한 인권위 진정기자회견 2017년<산업체파견 현장실습 중단과 청소년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대책회의>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에 취업률 게시와 서약서가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국가인권위에 진정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 대책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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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너무나 사실적으로 현장실습제도를 다루고 있다. 감독이 얼마나 꼼꼼히 조사하고 각본을 썼는지 느껴졌다. 현장실습제도는 국가가 만든 것이지만, 교육부도 노동부도 현장실습을 나간 학생이 겪는 부당함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 오유진 형사(배두나)의 대사처럼 학교는 기업에 값싼 인력을 공급해주는 인력파견소의 역할을 할 뿐이다.
 
더 끔찍한 것은 이것이 개별 사건이나 개별학교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취업률에 따라 학교가 받는 지원금이 달라지는 현실에서 선생님들은 부당한 업무나 괴롭힘을 하는 회사에서 나와 학교로 돌아오려는 학생들을 막아선다. 돌아갈 곳이 없는, 기대가 없는 일터에서, 아무도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 현실이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기업체 파견 현장제도의 문제이기에 소희의 죽음은 구조적 살인이다. 영화에서 오유진 형사가 찾아간 학교 교무실 칠판에 빼곡이 적힌 취업률을 비춰줄 때 소름이 돋았다. 학생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숫자들….
 
'현장실습'이라는 명칭 때문에 사람들은 인권운동진영이 비판하는 현장실습제도를 오해하곤 한다. 무엇인가를 배우려면 현장실습이 필요하지 않냐고. 현장실습이니 기업체에 나가면 무엇인가를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중심일 것이라고 오해하지만 영화에서처럼 실습, 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일찍 취업시키는 형태다. 그리고 현장실습생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다. 이렇게 학생들은 학습권도 침해받고 노동권도 침해받는다. 그래서 헷갈리지 않도록 현장실습 앞에 '산업체 파견형'이라고 분명히 해야 한다.
 
편견에 갇히지 않은 인물 묘사와 애도가능성

 
이 영화의 또 다른 미덕은 산업체파견형 현장실습제도의 구조적 문제를 사실적으로 그리면서도 피해자인 소희(김시은)를 입체적으로 그린 것이다. 영화에서 소희는 불의를 보면 참지 않는 성격이다. 친구와 간 술집에서 비청소년 남성과 싸우기도 하고, 회사의 상사에게도 부당함에 대해 항의하는 똑부러지는 성격이다. 술도 잘 마시고 춤을 즐겨하는 청소년이다. 다시 말해 감독은 소희를 '순수한 피해자'로 그리지 않았다. 착하고 고분고분한 희생자만을 피해자로 인정하는 편견이 가득한 현실에서 편견 없이 소희를 그렸다. 배우 김시은의 연기도 매력적이다.
 
또한 영화는 애도와 진실추구의 관계가 무엇인지도 생각하게 한다. 오유진 형사는 소희의 흔적을 쫓으면서 그녀가 어떤 감정을 갖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를 고민한다. 소희가 춤을 췄던 공간에서도, 소희가 마지막으로 술을 마시며 보고 느꼈을 햇빛의 따스함과 쓸쓸함을 생각한다. 오유진 형사는 객관적 증거를 찾는 것만이 아니라 소희가 경험하고 느꼈을 것들에 대해 사유한다. 애도란 죽은이와 산자의 대화다. 그러하기에 진실에 한 발 더 다가가고 아팠고 수많은 책임자들을 찾아가 울부짖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세상에 저런 형사가 어딨어? 저런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영화를 함께 보던 또 다른 CJ 현장실습생인 고 김동준의 어머니 강석경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 오유진 형사처럼 애도하고 진실을 파헤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사실 영화에서 오 형사가 했던 일들은 유족이나 동료 또는 활동가들이 한 일이다. 국가공무원들이 하지 않기에 산재가 발생하면 그 일을 유족들이 하는 경우가 많다. 일일이 증거를 찾고 관련자를 만나 항의한다.
 
영화는 현장실습제도만이 아니라 통신사 콜센터 노동자들이 '해지방어' 부서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부당한 업무지시로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또한 하청업체 노동자가 죽으면 원청인 회사가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도… 실제 영화의 모티브가 된 통신사 콜센터는 홍수연씨가 죽기 이전에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을 정도로 과도한 업무방식을 유지했다.
 
"힘든 일을 하고 존중받으면 좋을 텐데 그런 일을 한다고 더 무시해. 아무도 신경을 안 써. 그러면 더 혼자가 돼."
 
영화의 대사처럼 괴롭힘과 차별은 비정규직에게 일상이다. 여기에 여성이거나 나이가 어릴 경우에 차별은 복합적이고 심해진다. 2018년 10월부터 감정노동자보호법이 시행됐지만, 여전히 많은 콜센터노동자들은 휴식시간이나 유급병가 등을 사용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영화의 리얼리티가 주는 감동, 사회변화로 이어지길
 
2월 7일 시사회에서 소희역을 한 배우 김시은 씨와 유가족 홍순성씨를 비롯한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 성원들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 다음소희 시사회에서 만나 배우와 다시는 사람들 2월 7일 시사회에서 소희역을 한 배우 김시은 씨와 유가족 홍순성씨를 비롯한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 성원들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 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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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각본과 감독의 연출만이 아니라 배우들의 열연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노동계만이 아니라 여러 정당에서도 단체관람을 하고 있다. 좋은 소식이다. 영화의 리얼리티가 주는 감동의 파고가 점점 높아지는 것 같아 다행이다.
 
그에 비해 작년 11월 국회에서 결의한 <직업계고등학교의 안전한 현장실습 확보와 정부(공공기관) 현장실습 활성화를 위한 국회 결의안>은 실망스럽다. 국회가 학교에서 하는 현장실습과 기업체에 파견하는 현장실습을 구분할 줄 모르는 게 아니라면 '안전'과 '활성화'가 병기가 가능한가. 안전보다는 기업의 요구에 더 부응하는 것으로 보여 안타깝다.
 
그럼에도 나는 소망을 택해 본다. 영화 <도가니>가 우리 사회에 장애인성폭력 문제를 환기시켰던 것처럼 말이다. 영화 <다음소희>를 많은 사람들이 보고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제도를 바꾸는 힘이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정말 현실에서 다음 소희가 없는 세상으로 나아가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명숙은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의 상임활동가이자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 활동가이다. 사회에서 밀려나고 쫓겨난 사람들의 곁에서 함께 목소리 내고 기록하기를 즐겨 한다.


태그:#다음소희, # 홍수연을기억합니다, #죽음의현장실습제도, #죽음의현장실습제도_이제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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