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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5일 촬영한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송죽동 일대 모습. 이곳에는 다세대 주택이 많아, 전세사기 사건이 빈번한 곳 가운데 하나다.
 지난 1월 25일 촬영한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송죽동 일대 모습. 이곳에는 다세대 주택이 많아, 전세사기 사건이 빈번한 곳 가운데 하나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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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권이) 제 앞으로 된 집이 몇 채인지도 몰랐고, (설계자) 최○○에게 물어보니, 본인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2400조직' 일당 중 한 명인 김아무개씨의 법정 증언이다. '2400조직'은 휴대전화 뒷번호 2400을 쓰는 4명의 일당으로, 현재까지 알려지기로는 최대 규모인 전국 빌라·오피스텔 3493채를 소유한 '무갭투자' 전세사기단이다.

일당 4명 가운데 '설계자' 최아무개씨, '명의대여 바지사장' 권아무개씨(최씨의 선배)·박아무개씨(최씨의 처제)는 사기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이들과 손발을 맞춘 혐의를 받고 있는 분양대행사 관계자들도 같은 신세다.

반면, 2400 일당 중에서 유일하게 김씨는 "최씨 지시대로 한 것뿐"이라고 주장하며 구속과 공소제기를 피했다. 김씨는 일당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은 1000채 가량을 소유하고 있어, 피해자들은 김씨 역시 적극 가담한 공범으로 의심하고 있다. 그런 김씨가 지난 14일 오후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에서 열린 최씨·권씨·박씨 재판에 증인으로 나선 것이다.

"도장 찍고 주급 250만 원 받았다"
  
김씨 증언에 따르면, 최씨와 권씨는 경제 사정이 어려웠던 김씨를 '명의대여 바지사장'으로 불러들였다. 김씨는 신용카드 대금을 1000만 원 가량 연체한 상태였다. 김씨와 알던 사이인 권씨가 '아르바이트'를 제안했다. 김씨의 말이다.

"권씨는 최씨가 800억 원대 자산가로, 대기업 재정관리팀 소속으로 수천억 원을 굴린다고 했다. '최씨가 신용 문제를 정리해주고 일정표를 보내주면 가서 도장만 찍고 오면 된다. 그러면 잘 먹고 잘살 수 있다'고 했다. 코로나로 힘들어서 알바한다는 생각으로 응했다."

곧 뒷 번호가 2400번인 휴대전화로 연락이 왔다. 최씨였다. 그는 김씨에게 주민등록등·초본, 가족관계증명서, 인감도장·증명서 등을 요구했다. 많은 금액을 이체할 수 있는 계좌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이후 카카오톡으로 일정표와 연락처가 왔다. 그렇게 알바가 시작됐다. 2021년 1월의 일이다.

"(최씨가) 카카오톡으로 어디 부동산으로 가라고 하면서 연락처를 줬다. 부동산 앞에 도착해 전화하면, 부동산 관계자가 신분증과 도장 확인한 후 계약서에 도장 찍고 가라고 했다. 제가 직접 (전세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경우도 거의 없고, 대부분 부동산 관계자들이 도장을 찍었다."

매주 김씨 계좌에 돈이 꽂혔다. 주급은 250만 원 내외였다. 하지만 돈 잔치는 계속 이어질 수 없었다. 6월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내놓으라면서 김씨 집을 찾아왔다. 세무서에서도 세금을 내라는 연락을 해왔다.

김씨는 "제 앞으로 (소유권이 있는) 집이 몇 채인지도 몰랐다. 최○○에게 물어보니 본인도 모른다고 했다"면서 "나중에 제가 소유하고 있는 집이 1000채가 넘고, 주택임대사업자로 등록된 사실을 알았다"라고 말았다.

곧 김씨와 최씨의 관계는 막장으로 치달았다. 김씨는 지인을 동원해 최씨를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최씨로부터 돈을 받아냈다. 그러면서도 결국 최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그 과정에 중간 역할을 하던 김씨의 지인이 돈을 챙겨 달아나는 일이 있었고, 전세사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김씨는 돈을 챙겨 달아난 지인을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피해자들 "김씨, 연락 두절에 전세보증금 안 돌려줘... 처벌 받아야"

김씨는 이날 재판에서 "최씨 지시대로 했을 뿐"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피고인들의 변호인이 "부동산 거래 구조를 알고 가담한 것 아니냐"는 취지로 묻자, 김씨는 "전혀 몰랐다. 이걸 알고 누가하겠나. 집이 몇 채인데, 변호사님도 알고도 하시겠습니까?"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씨는 경찰 조사 때 "부동산 거래 구조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명의를 빌려준 대가로 주급을 받았다. 잘못한 것을 인정한다"라고 말한 사실이 곧 드러났다. 판사는 "증언의 신빙성이 떨어진다", "불리하다고 해서 이상한 얘기를 하면 안된다"라고 지적했다.

2400조직 전세사기의 피해자 유지민(가명)씨는 이날 법정을 찾았다. 그는 "김씨는 지난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겠다고 했는데, 현재 연락 두절이다. 김씨를 보기 위해 법정을 찾았다"라고 방청 이유를 밝혔다. 

그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김씨를 두고 "성인이 어디에 쓰이는지도 모르면서 명의를 빌려주고 서류를 떼어주고 도장을 주는 게 말이 안 된다. 황당하고 이해가 안 간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유씨는 직접 김씨를 고소했다. 그는 "김씨가 불구속 상태인 것은 김씨가 2021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해서 아직 피해자가 많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세계약 만기가 돌아온 피해자 가운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은 사람은 없다"라고 말했다. "피해자가 1000명이 넘는데 남 탓만 하고 죄가 없다고 주장하니까 어이없다. 김씨가 합당한 처벌을 받기를 원한다"라고 밝혔다.

이날 법정에서 판사와 검사는 김씨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의사나 능력이 있는지 물었다. 김씨의 대답은 "없다"였다.

태그:#전세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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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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