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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경 산청간디학교 교사.
 최보경 산청간디학교 교사.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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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1월 14일 오전 11시 25분]

"무죄 선고 이후, 그 폭력의 당사자인 국가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조직의 사과는 없었다. 사실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정부와 그 기관들이 진솔한 사과 한마디만이라도 한다면 저는 용서할 수 있다."
 
공안기관으로부터 10년간 민간인 사찰을 당하고 8년간 재판 끝에 지난 2015년 3월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던 최보경 교사(간디학교)가 한 말이다.
 
그는 2008년 2월 24일 집과 학교를 압수수색 당한 뒤 긴 법정 투쟁 끝에 무죄를 선고 받았지만, 고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가 압수수색을 당했던 날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기 하루 전날이었다.
 
최보경 교사는 1심뿐만 아니라 항소심, 대법원 상고심 모두 무죄를 받았다. 이때 그를 변론했던 변호사가 이석태 헌법재판소 재판관이다.
 
그는 자신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던 국가권력의 사과를 지금도 바라고 있다. 그는 국가보안법 사건 담당자인 국가정보원 직원과 경찰관, 검사의 이름을 실명으로 기록해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그런데 자신 사건에 관여했던 한 경찰관 출신이 그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최 교사는 "몇 해 전 어떤 분이 찾아와 자신이 압수수색 당시 경찰이었다며 '선생님 사건으로 직을 그만 두었다'는 말씀을 하셨을 때 큰 위로와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최 교사는 자신이 무죄를 받은 뒤에도 국가보안법 폐지 목소리를 줄곧 내고 있다. 그는 2021년에는 혼자서 '국가보안법 폐지 선전물'을 달고 자전거로 간디학교를 출발해 국회와 헌법재판소까지 달리기도 했다.
 
국가정보원과 경찰은 지난 11월과 12월 창원, 진주, 서울, 제주의 통일-진보단체 활동가들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였다. 최근 보수언론들이 '창원 간첩단 사건'으로 보도하고 있는 가운데, 최 교사는 지난 12일 경남도청 정문에서 열린 '정권위기탈출용 공안탄압저지 국가보안법폐지 경남대책위' 기자회견에 함께 하기도 했다.
 
최 교사는 "정신 바짝 차리고 맞서야 한다"며 "여기서 주저앉으면 그 고통은 치유되지 않기 때문이다. 진실을 위해서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13일 최 교사와 나눈 대화 내용이다.
 
- 최근 보수언론에서 '창원 간첩단 사건'이라고 보도한 것에 대해 드는 생각은?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국가보안법은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모태로 여순사건을 거치며 이승만 정권에서 독재 권력 유지와 강화를 위해 헌법을 짓밟은 악법 중의 악법이다. 민주주의와 통일을 가로막고 인권을 억압하고 있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특히 부도덕한 권력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여론을 호도하고 국면 전환을 위해 조작 사건들을 양산해 왔던 게 사실이다.
 
이번 소위 '창원 간첩단 사건'은 윤석열 정권이 '10·29 이태원 압사 참사' 등 여러 사안을 덮고 국면을 전환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본다. 권력에 아부하는 일부 보수언론들이 민주주의와 자주통일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 온 사람들을 압살하려는 참으로 부도덕한 행위이고, 참된 언론이라면 이래서는 안 된다고 본다."
 
- 지난해 말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압수수색을 당했던 (진주)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아는지?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가 아는 그분들은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아파하고 통일과 민주주의의 길을 가기 위해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양심대로 살아온 사람들이다.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 속에서 함께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이기도 하다. 양심대로 살아온 이들에게 간첩단이라니 말이 되느냐?
 
집과 학교 교무실을 국가보안법 압수수색 당해 본 저로서는 이분들과 가족이 얼마나 놀라고 고통 속에 있을지 마치 저의 일처럼 느껴진다. 생명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무력감과 고통은 당사자가 아니면 감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이로 인한 트라우마는 이후 살아가는 내내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맞서야 한다. 왜냐하면, 여기서 주저앉으면 그 고통은 치유되지 않기 때문이다. 진실을 위해서 싸워야 한다. 힘들겠지만 부디 힘내시라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국가보안법 사건 1심 재판 때인 2011년 창원지방법원 진주의원 법정 앞에서 함께 한 최보경 교사와 이석태 변호사(현 헌법재판관).
 국가보안법 사건 1심 재판 때인 2011년 창원지방법원 진주의원 법정 앞에서 함께 한 최보경 교사와 이석태 변호사(현 헌법재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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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사건과 관련해, 10년간 사찰과 8년간 재판을 받는 동안 어떤 고통이 있었는지?
 
"저는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기 전날인 2월 24일 집과 학교에 압수수색을 당했다. 재판 과정에서 검찰이 제시한 증거 기록을 통해 10년간 사찰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제자들과 함께한 5.18 역사기행을 비롯하여 각종 교육 활동, 수업을 위해 만든 교재, 전교조와 산청진보연합 활동하는 과정에서 만든 각종 자료 등을 이적 행위, 이적표현물이라 하였다.
 
제가 교사로 살아온 모든 것을 부정하고, 빨갱이로 낙인찍었다. 그 모멸감은 그 어떤 표현으로도 할 수가 없다. 어린 두 딸과 가족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또 어찌 다 말하겠느냐? 대안 교육의 시초인 간디학교에 폐를 끼친다는 생각에 얼마나 죄송하고 민망했는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수업 시간과 교육 활동 중에 끊임없는 자기 검열을 하는 저를 보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국가보안법은 사람의 인성을 파괴하는 악법이다."
 
- 그동안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8년에 가까운 재판은 참으로 긴 세월이었다. 머릿속은 언제나 국가보안법과 재판으로 가득 차 있었고 이로 인한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는 지금도 꿈속에서도 나타났다. 그런데도 제가 용기를 잃지 않고 싸울 수 있었던 힘은 저와 함께 싸워 준 제자들이었다. 자발적으로 대책위를 만들어 책자를 만들어 배포하고 각종 선전물을 만들어 전국을 돌며 탄원서를 받아 준 이들도 제자들이었다. 매주 목요일이면 무죄를 바라는 마음으로 흰옷을 입었고, 1심 판결 3년 동안 매일 점심 한 끼를 굶으며, 국가보안법 철폐와 무죄를 소망하는 단식릴레이를 진행하고 방명록을 남겼다.
 
또 매달 진주 도심으로 나와 문화제를 열어 그 부당함을 호소하였다. 이에 감동한 학부모와 교사, 시민들이 함께해주었고 모든 재판은 방청객들로 가득 찼다. 세월이 지난 지금 다시 당시를 떠올려 생각해 보면 만약 당시의 제자들이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의 제가 아닐 것이다."

- 힘든 일을 겪었음에도 왜 지금도 국가보안법 폐지 목소리를 내는지?
 
"제게는 큰 빚이 있다. 당시에 제자를 비롯하여 학부모, 시민들의 지지가 아니었다면 저는 스스로 제 인생을 파괴했을지 모른다. 지금 다시 교사로 살아가는 건 이분들이 제게 준 새 생명이다. 국가보안법이 없는 세상은 우리가 꿈꾸는 희망의 세상, 인권과 평화, 민주와 통일 세상이다.
 
저는 8년의 법정 투쟁 속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이후에도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은 여전히 넘쳐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는 피해자도 있지만, 법정을 찾아 자리를 채우는 것만으로도 조그만 힘이 될까 싶어 찾고 있다. 2021년에는 혼자서 국가보안법 폐지 선전물을 달고 자전거로 간디학교를 출발하여 국회와 헌법재판소까지 달리기도 했다. 우리는 모두 국가보안법의 잠재적, 직접적인 피해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 당시 제자, 학교 관계자들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의 저를 존재하게 한 이들은 제자들이었고 간디학교였다. 늘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을 함께 가지고 살고 있다. 당시에 단식하고 문화제하고 탄원서를 받던 제자들도 30대가 되었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제자들이 많다. 또 사회 곳곳에서 사랑과 자발성의 교육철학, 위대한 불복종의 철학을 실천하고 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이 자리를 통해 다시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 당시 사건으로 무죄를 받은 뒤 국정원이나 경찰, 검찰이 보인 태도?
 
"명백히 국가권력의 폭력이다. 무죄가 선고된 이후에도 그 폭력의 당사자인 국가와 국정원, 검찰, 경찰 조직의 사과는 없었다. 사실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정부와 그 기관들이 진솔한 사과 한마디만이라도 한다면 저는 용서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현실이 여전히 분단과 차별, 적대의식이 만연한 사회이기에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깨우침을 주고 있는 것 같다. 다만 몇 해 전 어떤 분이 찾아와 자신이 압수수색 당시 경찰이었다며 '선생님 사건으로 직을 그만 두었다'는 말씀을 하셨을 때 큰 위로와 감동을 받았다. 국가권력의 사과는 받지 못했지만, 그 이상으로 큰 감동이었다."
 
- 국가 차원의 사과가 있어야 하는 이유를 든다면?
 
"단순하다. 이는 국가권력의 폭력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법치국가에서 국가보안법의 문제와 무리한 적용에 대한 사법부의 심판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과거 수많은 조작 사건들에 대한 재심이 진행되었고 국가폭력에 의한 조작 사건으로 진실이 밝혀졌다. 더불어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사과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국가 스스로 국가보안법 같은 시대의 악법을 없애는 길에 먼저 나서야 할 것이다. 국가보안법 폐지, 이것이야말로 국가가 존재해야 할 이유이다."
 
- 한 마디로 국가보안법은 어떤 법이라고 생각하는지?
 
"국가보안법은 악이다. 시대와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려는 세력의 수단이며 도구에 불과하다."
 
- 당시 사건으로 지금도 힘든 점이 있는지?
 
"대법원의 최종 무죄 선고로 길었던 법정 싸움은 마무리되었지만 그날의 기억과 고통은 여전하다. 아마 평생을 두고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다. 무죄 선고 이후 긴장이 풀린 탓인지, 스트레스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질병을 얻었고 3년 전에는 난치성 희귀병을 얻어 학기 중에 담임을 못하게 되었다. 이후 1년을 병휴직하며 투병 생활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다행히 병은 더 악화하지 않고 관리되어 다시 복직했다. 이 모든 게 응원하고 지지해주신 여러분들 덕분이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더불어 많은 분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국가보안법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021년 6월, '집에서 국회, 헌법재판소까지 국가보안법에 맞서 전국을 달린 씽씽이' 활동을 벌인 최보경 교사.
 2021년 6월, '집에서 국회, 헌법재판소까지 국가보안법에 맞서 전국을 달린 씽씽이' 활동을 벌인 최보경 교사.
ⓒ 최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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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최보경 교사, #국가보안법, #국가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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