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제품을 팔수록 손해를 보는 이상한 회사가 있다. 매출액 대비 원가율이 재작년에는 111%, 작년에는 129%로 점점 커졌다. 10년간 누적 적자가 440억 원이라고 한다. 일본 자동차 부품 기업인 '덴소(DENSO)'가 출자해 만든 '한국와이퍼' 이야기다. 한국와이퍼는 제품을 만들어 덴소코리아에 납품하고, 덴소코리아는 현대차에 납품해왔다. 

한국와이퍼가 적자를 보는 동안 덴소코리아는 돈을 벌었다. 아니, 덴소코리아도 일본 덴소 본사에 10년 동안 2400억 원을 기술사용료로 지불했다. 한마디로 외국 투자(외투) 자본이 돈을 쓸어갔다.

이윤을 뽑아 가더니, 지난 7월 덴소코리아는 갑자기 와이퍼 시스템을 청산한다고 밝혔다. 일방적 청산 통보에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은 결연하게 대응했다. 금속노조 경기지부 경기금속지역지회 한국와이퍼분회 최윤미 분회장과 이규선 경기지부 지부장은 고용안정 쟁취와 위장청산 철회 등을 요구하며 11월 7일부터 국회 앞에서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12월 13일, 농성장에서 최윤미 분회장을 만나 투쟁해 온 이야기를 들어봤다(인터뷰 뒤인 12월 20일 최윤미 분회장은 44일로 단식을 중단했고 이규선 지부장은 단식을 지속하고 있다 - 기자 주). 

"우리가 싸우는 상대는 외국 투자 자본 기업, 덴소"
 
12월 13일 단식 농성장 앞에서, 최윤미 분회장과 이규선 지부장
 12월 13일 단식 농성장 앞에서, 최윤미 분회장과 이규선 지부장
ⓒ 윤박

관련사진보기

 
인터뷰 날짜(13일) 기준 37일째 단식 투쟁 중인 최윤미 분회장은 많이 야위어 보였다.

"최근 혈액검사를 했는데 큰 문제는 없대요. 단식을 끝낼 만한 이유가 있어야지 끝내는 거잖아요. 그동안 여러 행동을 해왔지만, 아직까진 단식을 끝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네요. 힘들더라도 이어가겠다는 마음으로 농성하고 있습니다."

한국와이퍼는 일본 토요타 계열의 자동차부품 생산업체 덴소가 100% 지분을 가졌다. 이미 여러 사례가 있는 외국 투자 자본의 '먹튀', 이제는 바꿔야 한다고 역설한다.

"저희가 싸우는 대상은 외투 자본 기업입니다. 실질적 사용자인 일본 덴소 본사가 뒤에서 '기획 청산'이나 '고의 적자' 등을 기획했습니다. 9월 19일 MBC 보도를 시작으로 국정감사가 진행됐고, 그 결과로 한국와이퍼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이 이어졌죠.

하지만 한국와이퍼 사측을 처벌할지라도 저희 해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거예요. 덴소가 청산하겠다고 결정했기에, 덴소를 처벌하지 않으면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거죠. 한국와이퍼의 '외투 먹튀' '대량 해고'가 이슈가 된 이상 이 타이밍을 놓치면 고립된 싸움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단식을 결의하게 됐습니다."


언론보도나 국정감사 등을 통해 밝혀진 덴소의 내부 문건이 있다. 2020년 2월 12일 작성된 '한국와이퍼 안정공급방안'이다. 판매량을 점차 줄여 고의로 적자를 누적하며 대체 생산을 준비한다는 내용이다.

"문건을 보면 이미 현대차랑 일본 덴소 본사 그리고 덴소코리아가 같이 짰다는 걸 알 수 있어요. 한국와이퍼가 손실이 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계획적으로 만들었어요. 사실 그 전부터 정황을 느꼈었어요.

저희가 2018년에 노조를 설립한 계기가 회사가 수주를 자발적으로 끊은 사건이었거든요. 그 뒤에 실제로 물량이 줄어드는 게 보였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위기에 처하겠다 싶어서 고용안정 투쟁에 나서게 된 거죠. 2021년에 회사가 대체 생산을 계획하고 있는 내부 정황을 파악했어요. 아주 거세게, 거세게 투쟁을 했고 파업 투쟁의 결과로 꽤 높은 수준의 고용안정 협약서를 받았죠."


2021년 10월 15일 노사가 작성한 '한국와이퍼 2021년 고용안정 협약서'엔 최윤미 분회장과 한국와이퍼 대표의 서명이 선명하다. 덴소코리아 대표이사도 연대책임자로 서명했다.

"되레 저희에게 덴소코리아 사용자성 입증 근거 달라고... 조사해서 밝혀야죠"

"그런데 회사가 그걸 9개월 만에 위반했어요. 더욱 놀랍고 분노스러운 건 그들의 시나리오 속에 이 협약 역시 포함돼 있었다는 거예요. 애초부터 어길 작정이었던 거죠. 하지만 고용노동부에서는 고용안정 협약이 민사상의 효력일 뿐, 단체협약상의 효력은 없다고 얘기했죠.

말도 안 된다고 항의했어요. 이미 국정감사를 통해서 밝혀진 것은 덴소코리아가 한국와이퍼의 노사관계를 지배·개입해왔다는 점입니다. '덴소코리아를 사용자로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도대체 어느 만큼 증거가 필요하냐'고 문제 제기하면 노동부에서 나온 사람들조차 고개를 숙여요."


고용노동부는 이 건으로 특별근로감독을 했지만,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증명 책임을 노동조합에 떠밀었다.

"이미 문건으로 충분히 밝혀져, 누가 봐도 명백하게 알 수 있는 상황인데도 이에 대해서 고의로 눈을 감고 있다고 봅니다. 특별근로감독을 했는데 아직 결과가 안 나왔다며, 협약을 어긴 점에 대해서 회사를 압박할 생각은 안 하고 있어요. 오히려 저희한테 덴소코리아의 사용자성을 입증할 수 있는 근거를 더 달라고 해요. 자기들이 조사해서 밝혀야 할 일을 바로 여기, 농성장까지 찾아와서 증거를 대라고 했어요."

최윤미 분회장은 속속들이 밝혀지는 증거조차 외면하는 고용노동부의 행태를 꾸짖으며 소리 높였다.

"특별근로감독을 하게 된 원인이 부제소합의(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한 합의)를 전제로 한 희망퇴직 유도로 노조에 지배·개입한 부당노동행위 혐의예요. 조기 퇴직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특별근로감독의 결과를 기다리는 사이에 조기 퇴직 유도를 한 번 더, 2차 희망퇴직 공고를 낸 거예요. 

더 기가 막힌 것은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부당노동 행위를 한 번 하나 두 번 하나 처벌은 똑같다'고 한 것입니다. 이게 할 말입니까. 이번에 특별근로감독의 주체인 고용노동부 안산지청 벽에다가 '불법 행위 묵인·방조하는 노동부는 각성하라'라는 벽보를 붙였어요."


특별근로감독 외 소송을 준비하는지도 물었다.

"일단 협약을 안 지킬 게 너무 뻔해서, 고용협약서에 이를 위반할 시 조합원 1인당 1억 원씩을 지급한다는 내용을 넣었어요. 협약을 반드시 지키게끔 하려고 했거든요. 더 중요한 것은 '단협 위반, 청산 금지' 가처분 신청이었어요. 회사가 임의로 처분을 못 하게 만들어서 청산을 막겠다는 것이었죠.

신청이 기각됐지만 실망하지는 않아요. 법원 판결의 요는 해산 결의와 청산의 절차는 다르다는 것이죠. 해산 결의는 주주의 고유한 권한이지만, 대신 청산 절차는 사측이 진행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노동조합과 합의해야 하는 사항이 맞다는 거죠. 청산 절차에 따른 근로조건 모두 단체교섭의 대상이고, 단체협약상 정리해고는 노동조합과 합의해야 하는 사항입니다. 저희는 이를 근거로 해고 금지 가처분 신청을 다시 넣었어요."


"언니! 애써서 고마워!"라는 말
 
지역주민들과 인사하며 행진하는 한국와이퍼분회 조합원들.
 지역주민들과 인사하며 행진하는 한국와이퍼분회 조합원들.
ⓒ 최윤미 제공

관련사진보기

 
인터뷰 하는 중간중간, 천막에 조합원들이 계속 오가며 밝게 인사를 건넸다. "언니, 애써요. 고마워!" 점심 선전전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저희가 처음 투쟁을 시작할 때 254명의 조합원이 있었어요. 1차 조기 퇴직에서 24명, 최근 2차 조기 퇴직에서 8명이 나갔어요. 지금 222명이 흔들림 없이 투쟁하고 있어요. 주변에서 많이 얘기하길, 아주 밝고 신나 보인대요.

저희가 노조를 만들기 전에도 통상임금 소송에서 이겼을 때 5700만 원 정도를 마련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서 기부했었어요. 그렇다 보니 지역에서도 지지와 응원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희 기풍도 약간 그래요. 분회장이 단식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슬퍼하거나 아파하기보다는 현장을 지키면서 즐겁게 놀고 그래요. 그래서 회사가 기분 나쁘든지 말든지, 계속 게임하고 놀고 즐겁게 투쟁하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지금 한국와이퍼 조합원들의 투쟁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기억이 아니라 이후에 얼마든지 맞닥뜨릴 수 있는, 삶의 고통에서도 즐겁고 힘이 나는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그럼에도 외투 자본과의 싸움은 늘 어렵다.

"외투 자본 싸움에서 어려운 점은 계열사를 이용해 대체 생산으로 파업권을 무력화시키는 거예요. 한국와이퍼도 딱 그 문제에 걸려 있어요. 또 한국와이퍼의 가장 특이한 점은 덴소가 와이퍼 사업 부분만 분할 매각하는 과정입니다. 철수가 아니라 매각이고, 위장 청산으로 보는 것이에요. 외국 자본이 완전히 철수하는 과정은 아니기 때문에, 사회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해결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이미 외투 자본 노동자들이 76만 명에 육박해요. 미래에는 지금보다 더 늘어나면 늘어나지 줄지는 않을 거예요. 지금은 한국와이퍼분회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이지만,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이런 시스템을 바꾸는 데 계속 노력할 테니 많이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저희가) 밑거름 돼서 외투법 개정 흐름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싸워나가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말씀 꼭 드리고 싶어요. 저희 모토가 이거예요. '외투 자본의 놀이터, 이제는 바꿔야 해! 한국와이퍼를 계기로 바꿔보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윤박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선전위원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2023.1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외투_자본, #덴소_코리아, #한국_와이퍼, #먹튀_기업
댓글1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모든 노동자의 건강하게 일할 권리와 안녕한 삶을 쟁취하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