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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천' 할머니. 1949년 1월 군인과 경찰이 무장대를 토벌한다는 명분아래 주민들을 학살하던 시기에 경찰의 총에 턱을 잃은 진아영 할머니를 두고 붙여진 호칭이다.

진아영 할머니가 턱을 잃은 시기는 이승만 정권이 제주도를 대토별하던 시기로 미군이 작성한 보고서에는 1948년 10월부터 1949년 3월까지 1만5000명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25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할머니가 턱을 잃고 50년 동안 살았던 한 집터가 있는 곳인 한림읍 월령리에서는 할머니의 영면을 기원하는 의례인 위령굿(巫祭)이 열렸다.
 
위령제단에 올려진 진아영 할머니의 생전 모습과 함께 저승길에 입고 갔으면 하며 관계자들이 준비한 옷감
▲ 무명천 진아영 할머니 위령제단에 올려진 진아영 할머니의 생전 모습과 함께 저승길에 입고 갔으면 하며 관계자들이 준비한 옷감
ⓒ 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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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인류무형문화유산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71호인 제주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가 주최·주관하고 문화재청, 한국문화재단, 제주특별자치도, (사)무명천진아영할머니삶터보존회(이사장 양창용), 제주주민자치연대(대표 박애순), 월령리마을회(리장 강한철)가 후원하는 '찾아가는 제주4.3 위령제'인 무명천 진아영 할머니 추모 위령굿이 제주 올레길 14번 선인장자생지 입구인 월령리 해변공연장에서 열렸다.

국가무형문화재 제71호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예능보유자인 김윤수는 제주4.3항쟁으로 "제주 지역 공동체는 파괴되고 엄청난 물질적 피해를 입었으며, 무엇보다 깊은 상처로 남아있는 참혹한 인명피해를 가져왔다"며 "암흑처럼 어두웠던 제주의 아픔을 도민과 함께 제주4.3의 아픈 기억을 치유하고자 해마다 '찾아가는 4.3위령제'를 진행하고 있다"고 무명천 진아영할머니를 위한 추모 위령굿의 취지를 설명했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보전회가 진행하는 찾아가는 제주4.3위령제의 위령 굿
▲ 찾아가는 제주4.3위령제 제주칠머리당영등굿보전회가 진행하는 찾아가는 제주4.3위령제의 위령 굿
ⓒ 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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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아영 할머니의 사촌 진위현씨는 이렇게 말했다.

"경찰이 쏜 총에 턱을 맞아 턱이 없어져 버렸지. 내가 가 봤는데 걸레로 상처를 싼 채 눕혀 있었어. 죽은 사람을 왜 눕혀놨는지 하며 생각했는데 살아있었어. 근데 턱이 없었져서 차라리 죽는게 나았었지. 어려운 시절이어서 그냥 내버려 두어도, 살이 썩어 가면서도 모진게 생명이라 살아나더라..."

할머니는 어렵게 목숨을 건졌으나 아래턱을 잃어 말도 제대로 못하는 삶을 55년 동안 살다가 2004년에 한 많은 삶을 마감했다.

아랫턱을 잃어버린 할머니는 하얀 무명천으로 가려서 살다보니 할머니의 이름보다는 아픈 상처를 감췄던 무명천 할머니로 불렸다. 아랫 턱이 없으면 음식을 씹을 수가 없고, 음식을 씹지 못하면 밥을 먹을 수가 없으며, 영양분을 공고로 섭취할 수가 없어 영양실조와 위장병 등 건강은 더 나빠질 수 밖에 없었다. 남들이 턱 없는 모습을 보고 놀랄 것을 의식해 다른 사람과 식사도 같이 할 수 없었고, 집에서 문을 굳게 닫고 늘 혼자 식사를 해야 하는 고통스런 삶을 살다 갔다.

아픈 할머니는 병원비를 벌기 위해 해안가에서 나는 톳이나 동네에서 많이 나는 선인장 열매인 백년초를 따다가 팔아서 읍내에 있는 병원을 다니며 생활을 하다 골다공증 등 여러 가지 질병의 합병증으로 2004년에 눈을 감았다.

무명천 할머니는 4.3 당시 희생된 여러 후유 장애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알려지고 있다.

원혼을 달래는 굿의 첫 순서로 초감제는 진아영할머니와 같은 마을에서 성장한 고덕유 심방이 집전을 하였고, 연유닦음을 통해 굿을 하게 된 연유를 신에게 고하면서 할머니의 고통스런 삶을 눈물로 풀어 나갔다.

두 번째 무제(巫祭)는 죽은 영혼의 울음이자 죽은 자에게 죽어서 억울한 심정을 이야기하는데, 할머니가 생전에 못 다한 말들을 심방의 입을 통해 풀어 놓으므로써 맺힌 한을 풀고 이승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저승의 발걸음을 가벼이 갈 수 있도록 하는 영게올림 의례에서는 참석자들도 눈물을 훔쳤다.
  
진아영할머니를 잘 알고 있는 고덕유 심방이 죽은 망자의 억울함과 살아 생전에 하고픈 말들을 풀어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심방의 영게울림 진아영할머니를 잘 알고 있는 고덕유 심방이 죽은 망자의 억울함과 살아 생전에 하고픈 말들을 풀어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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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함을 가지고 죽은 자들은 말이 없고, 후유장애인들은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후손들은 정부를 상대로 재판을 통해 억울함을 조금씩 풀고 있으나 가해 국가인 미국과 가해자들의 집단인 재향군인회와 경우회 등 극우세력들은 제주의 집단 학살에 대해 빨갱이 토벌이라며 정당함을 주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를 위해 희생된 자들을 위한 공간인 현충원에 똬리를 틀어 국가로 부터 예우를 받고 있는 현실이다.

문화운동가인 한진오씨는 "문화예술인들이 억울함을 풀기 위해 해마다 돌아다니며 위령제를 봉행하고 있는데 가해자들의 참석으로 사과와 용서를 통해 상생이 되는 위령제가 되는 날을 기약해 본다"며 가해자들의 진정어린 사과와 피해자들의 용서를 통해 화해와 상생이 되는 역사로 태어나길 제안하였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보전회는 내년에도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들을 위한 "찾아가는 제주4.3위령제"를 진행할 예정이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조사된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제주4.3은 "미국군사정부 시기인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 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과 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한반도 남쪽만의 단독정부 수립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규정한다. 정부는 2021년 말 기준으로 1만4533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태그:#무명천 할머니, #4.3위령제, #칠모리당굿, #진아영 할머니, #삶터 보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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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에 보장된 정의의 실현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실천하는 시민들의 다양한 노력이 지속될 때 가능하리라 믿는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토대이며,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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