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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기후위기와 자본주의, 노동자 건강권 등 의제의 문제를 얘기하면 공감을 얻기 힘든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중앙에서 '노동 중심 산업전환을 위한 노·정협의'를 목표로 삼았다면, 지부와 지회 단위에서는 중앙의 목표에 부합하며, 현장의 사정을 고려해 세부적인 의제를 발굴하여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러나 이를 위한 토론이 잘 되고 있지는 않다. 현상 유지만도 벅찬 현장의 상황이, 노동자가 공장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큰 담장이 되어 버렸다.

현장에서는 사업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매우 크다. 올해 전북지부 사업으로 현장 부품사의 실태조사를 진행 중인데, 회사가 유지되는 게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위태로운 하청 사업장들이 많다.

이러한 사업장의 위축이 노조 투쟁의 위축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많은 사업장의 임금이 최저임금 적용으로 바뀌어, 그해의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순간 임금이 정해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매년 하던 임금 투쟁이 줄어드니 다른 투쟁들도 위축되고 있다. 복수노조 문제 역시 심각하다. 복수노조 사업장에 있는 금속노조는 대부분 소수노조이고 전임자조차 없는 곳이 많아 활동에 제약이 많다. 연대 투쟁이나 회의로 개인 연월차를 전부 소진하는 간부가 상당수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1~2년 된 이야기도 아니다. 이렇게 공장 안에 갇힌 노동자를 사회문제와 자본의 공세에 지지 않는 주체적 인물이 되도록 하기 위해선 무엇인 필요할까. 조직적인 성찰과 고민이 필요해 보였다.
 
2021년 5월, 금속노조 전북지부에서 "상용차 고용, 산업위기에 대한 금속노조의 제안"을 주제로 전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2021년 5월, 금속노조 전북지부에서 "상용차 고용, 산업위기에 대한 금속노조의 제안"을 주제로 전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금속노조 전북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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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전환 대응을 위한 상용차대책위 활동과 고민

금속노조는 산업전환 대응을 위한 연구와 활동에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다. 중대형 상용차(사업에 사용되는 자동차)의 95% 이상을 생산하는 전북에서는 2020년 발생한 생산절벽으로 인한 위기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완성차 공장인 타타대우상용차와 현대차 전주공장위원회가 손잡고 상용차 위기 대응과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위한 금속 전북 대책위를 만들었다. 완성차 2개사가 먼저 참여했고, 부품사 대변을 위해 금속노조 전북지부가 이후 합류했다.

대책위 활동하면서 느꼈던 난점은, 산업 연구나 고용에 대한 실태조사가 전무했다는 점이다. 이에 상용차 역사를 처음으로 정리하고, 고용의 흐름과 자동차산업 정책에서 상용차정책의 부재, 물류와 대중교통의 공공성에 대한 국회토론회를 비롯, 금속노조/지역 차원 토론회 등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요점은 고용이었다. 조합원 교육도 진행했고, 정책담당자와 주기적인 회의를 하였음에도 온실가스 절감보다 산업전환으로 고용의 문제가 발생 되는 것과, 세계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에만 주된 공감을 얻었다. 기후위기에 대한 토론은 거의 없었고,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생산을 줄여야 한다'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완성차 공장에서는 처음에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전환 시 고용이 크게 줄어들 것이란 예상이 우세했다. 그러나 지금은 완성차 공장에서는 고용이 크게 줄어들지는 않는다는 주장이 대세다. 생산량이 늘어나며 지금은 완성차 노동조합이 자기 공장에 전기차량 생산 유치를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내연기관 부품사 노동자들인데, 정작 이들에 대한 대책은 전무하다. 열악한 환경의 부품사일수록 아무 준비 없이 내연기관의 퇴장과 함께 폐업만을 기다리고 있다. 칼자루는 사측이 쥐고 있는 상황에서, 내연기관 부품사의 산업전환은 노정교섭과 원청과의 사회적대화로 풀 수밖에 없는 문제라 생각하고 있다. 협력업체, 하청업체 사측은 의지가 없으니 지방정부와 원청이 나서야 한다. 시 단위를 중심으로 부품사 산업전환에 대한 지원책을 만들라고 투쟁하고 있다.

산업전환 과정에서 빠진 부품사 공장 노동자들... 이들 위한 대책은 전무

현대차는 미래차, 친환경 전기차로의 전환을 이야기하면서, 대중교통에 대해 하늘을 나는 UAM(도심형 항공 모빌리티)과 무인자율주행 기술이 도입된 PBV(다목적 모빌리티 차량)를 제시하고 있다. 날아다니는 자동차라니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들이 말하는 미래에 대중교통은 모두 사유화된 자동차를 기반으로 한다. 미래 대중교통의 대안을 사기업이 만들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트럭, 버스 등을 생산하는 상용자동차 공장은 교통 공공성과 특히 밀접히 연결되어있다. 현재 많은 마을버스에는 저상버스가 없다. 도입하라는 투쟁 끝에 버스 생산 공장에서 생산까지 가능하게 됐지만, 지자체들에서 도입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비슷한 문제가 '전기차'로 전환하는 과정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소방차, 스쿨버스, 앰뷸런스, 저상버스 등 공익목적 차량 전기화는 누가,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 개발 후 어떻게 도입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은, 하늘을 나는 차를 만들겠다는 현대차도, 정부도 내지 않는다. 돈이 되든 안 되든 공익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개발을 먼저 하기 위한 별도의 연구가 필요하다.

한편, 활동을 하며 기후위기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던 것을 돌아보게 됐다.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에서 출발했어야 했는데, 자본이 선제시한 산업전환에 맞선 고용유지에서 출발했다. 앞으로 우리가 고민하면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다.

한노보연 연속 책 세미나에도 참여하면서 가장 크게 공감했던 부분은 자본주의의 무한성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친환경 전기차'를 대량생산 할 때 발생하는 채굴 문제도 같은 맥락이다.

전기차 생산을 계속 늘리면서 리튬이나 코발트 등 금속을 무분별하게 채굴한다면, 채굴환경의 악화, 가격 인하를 위한 노동착취도 지속될 것이다. '전기차=친환경'이 아닌 것이다. 무엇보다도 환경의 변화가 눈으로 보일 정도로 진행 중인 것을 보며, 더 이상의 성장은 지구의 파괴, 인류의 멸종과 연결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금속노조는 단협에 산업전환 조항을 넣기 위해 몇 년 전부터 기후위기 교육을 했다. 조합원 의무교육 교안과 동영상 교보재도 만들어 배포했다. 하지만 고용을 뛰어넘는 의제로 투쟁을 하기 위해 무엇이 더 필요한지, 아직 공백인 부분도 있다.

자본의 산업전환 선제시와 무한 생산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본다. 노조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바꾸는 게 핵심이 아니라, 기후위기에 노동자들이 대응하자'로 생각을 바꾸는 게 필요하다.

탈성장 등 노동계를 관통할만한 의제들을 정제해서 요구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으로도 그러한 토론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주축이 돼 이어갔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유준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후원회원이자 금속노조 전북지부장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9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자동차_산업전환, #기후정의=노동자 건강, #기후위기, #금속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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