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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내 삶을, 우리의 삶을, 전 세계인들의 삶을 덮친 지 1년 6개월여가 흘렀습니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아득함 속에서 매일 매일 고군분투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의료진인데요. 그들은 1년여 넘는 시간 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요? <오마이뉴스>는 보건의료노조가 조합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코로나와 싸운 1년 우리들의 땀과 눈물' 수기집 공모 응모작 중 몇 편을 게재합니다. [편집자말]
지난 16일 오후 서울역에 설치된 선별검사소에서 의료진이 냉풍기에 열을 식히고 있다.
 지난 16일 오후 서울역에 설치된 선별검사소에서 의료진이 냉풍기에 열을 식히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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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발생 이전의 세상은 다시 오지 않는다."

코로나19는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최초 발생하여, 국내에서도 2020년 1월 20일 첫 확진자가 나왔다. 세계가 주목했던 K-방역과 국민들의 높은 시민의식, 방역지침 준수 속에서도 확진자는 크게 늘어만 갔다.

지난해 4월 11일 중앙방역대책본부 권준욱 부본부장은 정례브리핑에서 "코로나19 발생 이전의 세상은 다시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당시에는 코로나19의 명칭이 정확히 명명되지 않아 우한바이러스, 우한감염증 등 다양하게 불리고 있었다. 또한 여타 매체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백신과 치료제 등이 개발되기 직전이라고 했기 때문에, 나는 코로나19를 우리 곁에서 잠시 머물다 낯설게 지나갈 감염증 정도로 생각했다. 때문에 브리핑을 들었을 때의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잔잔한 일상생활 위에 코로나19가 모래알처럼 촘촘히 내려앉았고, 이전의 세상은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달라졌다. 

나는 바쁜 병원 생활 속에서도 2주에 한 번, 적어도 3주에 한 번은 꼭 경남 진주 본가에 가곤 했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꼬박 1년째 가지 못하고 있다. 매번 걸려오는 할머니의 보고 싶다는 전화에 손녀인 나는 "마스크 꼭 써라. 경로당 가지마라" 잔소리만 하는 불효자가 되어 있었다.

수술실 간호사인 내게 가장 크게 다가온 건

퇴근 후 몸이 시리게 아프고 두꺼운 이불을 덮어도 몸이 떨렸던 어느날, 열이 40도를 넘어 밤 10시가 넘어 방문한 응급실에서 생각지도 못한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이후 치료도 받지 못한 채 그대로 집으로 와 휴대폰만 붙잡고 가슴 졸이며 결과만 기다렸던 날도 있었다.

하지만 수술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나에게 가장 크게 다가온 건 '코로나19 확진 환자를 수술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감염관리실에서는 코로나 확진 또는 의심환자에 대한 수술 지침이 내려왔고, 모든 수술실 간호사는 이 지침을 숙지해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응급상황에 철저히 대비했다. 

코로나19라는 이름이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던 순간부터 수술실에서는 수도 없이 '코로나19 의심환자' 수술을 진행했다. 늘 겪어왔던 응급상황이었고 같은 수술명이었으나 '코로나19 의심환자'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수술방 준비, 보호구 착용, 수술 진행 방향, 수술 후 정리까지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어느 날엔가는 수술을 진행하고 있는 환자가 코로나19 확진이 의심된다는 전화를 받은 뒤 수술방에 있던 의료진이 모두 격리 조치되는 일도 있었고, 또 하루는 납품을 받기 위해 5분 남짓 만났던 의료기업체직원이 확진자였다는 연락을 받고 수술실 간호사가 자가격리되는 일도 있었다. 우리는 처음 겪는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서 신체적·정신적으로 무척 큰 스트레스와 중압감에 시달렸다.

단 하루 만에 기적같은 일이

지난 4월 어느날, 출산을 앞둔 만삭의 산모가 코로나 확진을 받고 부산대학교병원 국가 격리 음압병동으로 입원했다. 코로나19 확진 환자의 분만은 본 원에선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의료진은 산모와 논의 후 5월 6일 오전 8시 유도분만을 하기로 했다. 불시의 상황에 대비하여 제왕절개 수술 준비도 함께 진행했다. 

나는 우리 병원에서의 첫 코로나 확진자 수술에 소독간호사로 지원했다. 그동안 코로나19 의심 환자들을 수술하면서 언젠가 코로나19 확진자를 수술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1년을 보내왔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어느 날에 갑작스럽게 두려움을 맞닥뜨리는 것보다는 내가 먼저 두려움을 향해 걸어가면, 두려움은 작아지고 잘 해낼 수 있다는 용기가 생길 것 같았기 때문에 지원을 했다.

코로나19 확진 산모의 수술은 환자가 입원한 음압 격리병동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나는 수술 준비를 위해 미리 음압 격리병동을 방문하였다. 그곳에서 처음 느낀 감정은 안타까움이었다. 이제 갓 사회의 첫발을 뗀 신규 간호사 선생님부터 베테랑 간호사 선생님들까지 모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이제 막 코로나 확진 환자를 보고 레벨D 보호구를 환복한 뒤 샤워 후 간호사실로 돌아온 선생님은 채 말리지 못한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음에도, 간호기록을 남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반대편 격리실에선 한 간호사 선생님께서 레벨D 보호 장구를 착용하고 필요한 물품을 유리벽에 마카로 적고 있었다. 레벨D 보호 장구를 착용하면 의사소통이 어렵고 다시 간호사실로 나와 물품을 가지고 재착용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종종 이렇게 의사소통을 한다고 하셨다. 우리 병원이 거점전담병원으로 지정된 후 간호사 선생님들은 이렇듯 온몸으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D-day', 어제와 같은 해가 밝았고 나는 상기된 마음으로 출근했다. 몇 번이고 확인해봤을 수술 준비물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을 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날 유도분만 전 마지막으로 실시한 코로나19 검사 결과 음성이 떴다는 전화였다. 따라서 환자는 당일 예정된 유도분만을 시행하지 않고, 6일 한 번 더 코로나19검사를 한 후 결과가 음성으로 나오면 퇴원 조치 후 입원 전 다니던 병원에서 분만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생각지도 못 한 너무나 반가운 전화였다. 환자에게, 환자 가족에게도, 그리고 축복 속에 태어나 5월의 살랑이는 봄바람을 만나게 될 아기에게도 더 없이 반가운 소식이었다. 아기가 태어나 처음 볼 세상의 모습이 레벨D를 입은 의료진에서 사랑으로 가득찬 엄마의 가슴팍으로 변했고, 시험과 긴장으로 가득 찼을 나의 하루는 동료들에게 환자의 회복을 전하는 밝은 하루로 바뀌었다. 상상도 못했던 기적과 같은 일에 다들 한 줄기의 희망을 느낀 것도 잠시, 의료진들은 새로운 코로나19 확진 환자를 만났고, 다시 레벨D 보호 장구를 착용했다.

극단적 노동 강도와 상대적 박탈감
 
수도권 사회적거리두기 4단계가 시작된 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공영주차장에 추가로 설치된 코로나19 선별검사소에서 의료진이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수도권 사회적거리두기 4단계가 시작된 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공영주차장에 추가로 설치된 코로나19 선별검사소에서 의료진이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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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이어진 코로나19의 확산 속에 그동안 최전선에서 싸워온 인력이 극단적 노동 강도와 상대적 박탈감에 상처를 입고 현장을 떠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무엇보다 파견 인력이 들어온다 해도 코로나19 환자에 대한 교육과 훈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많아 현장의 인력난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 및 정신건강과 관련한 행동의 필요성'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세계 각국에서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불안과 우울증, 불면증 등 심리적 문제를 호소하는 의료진이 급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WHO는 의료진을 정신건강 취약계층으로 분류했다.

또한 계명대동산병원 신경과 연구팀이 코로나19 대응팀에 대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의료진의 23.8%는 우울감을 의심할 수 있었고, 35.64%는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불안감이 있었으며, 25.74%는 수면의 질이 떨어졌다고 했다. 또 의료진 중 의사와 간호사 집단을 비교한 결과 간호사가 우울, 불안, 수면의 질 저하가 더 심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진이 쓰러지기 시작하면 지난하게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국민은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의료진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리며 '#덕분에'를 외친다. 하지만 의료진은 엄지발가락이다. 가장 힘든 곳에서 그리고 가장 아래에서 세상이 무너지지 않게 떠받치고 있는 엄지발가락이다. 시인 김경미님은 말했다. 사람의 엄지발가락은 직립보행을 할 수 있게 지탱하는,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최고의 신체 부분이라고 말이다. 

이제는 병원 차원을 넘어서 국가 차원에서 의료진들을 위한 대책을 고심하여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한시적인 파견 인력이 아닌 전문성을 가진 인력을 충원해줘야 한다. 그래야만 의료진들이 극단적인 노동 강도에서 벗어나 보다 안정된 상태에서 근무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정신적 소진' 상태에 있는 의료진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방향의 심리치료와 정서적 지지도 필요하다.

우리 병원이 가지고 있는 심각한 문제는 바로 비정규직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유일한 국립대병원이라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발표를 한 지도 4년이나 지났다. 현재 전국 모든 국립병원은 직접고용으로 전환 합의하였으나, 부산대병원은 아직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간접 고용된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환자의 생명과 안전과 환경에 직접 투입되어 일하고 있다. 병원 구성원으로서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동료임에도 그들은 매일 고용불안과 최저임금에 시달리며 불공정, 불평등, 불합리 속에서 지내고 있다.

메르스 사태 때 겪은 것처럼, 노동자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없으면 병원 내 감염 차단이나 안전에 문제가 생긴다. 137번째 메르스 환자는 삼성 서울병원에서 메르스 환자 이송 업무를 한 간접고용 병원 노동자였다. 143번째 환자는 당시 대청병원에서 IT 업무를 보던 노동자였는데, 이 노동자는 파견직이라는 이유로 적절한 보호 장구를 제공 받지 못했다. 장기화되어가는 코로나 사태 속에서 노동자의 신체적 정신적 안정과 안전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교육부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며 당연한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코로나 이전의 세상은 오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가 종식되었다는 재난본부의 문자를 언제 받을지 알 수 없으며, 얼마나 많은 코로나19 확진자의 수술 가방을 챙겨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나아가야할 길이 있다. 누군가는 수없이 많은 레벨D 보호 장구를 입으며, 누군가는 수술 가방을 챙기며, 누군가는 정규직으로 전환되어 안전한 환경 속에 최선을 다하며, 누군가는 마스크를 잘 쓰며, 또 누군가가 전해줄 반가운 소식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고은 작가의 '길'이라는 시가 있다.
 
길이 없다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숨 막히며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길이 없으면 만들며 간다.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여기서부터 역사이다

(중략)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그리하여
길을 만들며 간다.
길이 있다.
수많은 내일이 완벽하게 오고 있는 길이 있다.

우리는 늘 그랬듯 나아가야 할 길이 있으며, 우리가 걸어간 길에 의해 우리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부산대학교병원 의료진입니다.


태그:#코로나, #보건의료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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