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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양숙 여사,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왼쪽), 사위 곽상언 변호사가 23일 오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엄수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2주기 추도식에서 참배하고 있다.
 권양숙 여사,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왼쪽), 사위 곽상언 변호사가 23일 오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엄수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2주기 추도식에서 참배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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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2년이 지났다. 광화문에서 시작해 시청을 지나 서울역까지 만장의 행렬이 뒤따랐다. 사람이 정말 많았는데 텅 빈 것 같았다. 일면식도 없는 분이었다. TV 화면으로만 마주했던, 힘 있는 목소리나 솔직한 표현이 좋아서, 그분의 말이라면 믿음이 갔다. 내 믿음 이전에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믿음이 모아졌고, 내가 끌리는 것 이전에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대통령까지 올랐던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식 날이었다. 

장례기간 봉하마을에도 갔다. 마을 입구부터, 분양객 행렬을 따라 길 줄을 천천히 따라갔다. 수많은 사람의 행렬은 서울에서의 만장 행렬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작은 마을, 논, 구불구불한 길, 볼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낯선 작은 시골 동네. 끝없이 이어지는 노란 리본들. 이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구나, 생각했다. 

장례 기간 내내 분명 슬픈데 눈물은 나지 않았다. 드디어 분향소 바로 앞 줄에 섰을 때, 안내하는 이의 구령에 따라 인사를 하고 꽃을 놓을 때, 눈물이 흘렀다. 많은 사람의 눈물과 울먹이는 목소리가 당황스러웠는데, 그 앞에 서니 마음이 흔들렸고 눈이 흔들렸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마을을 뒤덮은 온통 노랑의 리본과 흰 옷, 검은 정장이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고 생각했다. 선명한 노란색이 슬픔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날 이상하게 마을에서 꽃을 본 기억은 없다. 분명 푸른 산이 둘러싸고 있었을 텐데, 삭막한 잿빛 기억으로 남아있다.  

퇴임 후 몇 번이나 그분을 만나러 가고 싶었다. 연일 뉴스에 보도되는 방문객들의 소식을 흐뭇하게 보던 중이었다. 언론의 과한 보도 경쟁과 저변의 나쁜 의도에도 뉴스를 통해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나쁘지 않았다. 언젠가는 우리도 가서 사람들과 한 목소리로 대통령님을 집 밖으로 나오게 하고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러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진을 같이 찍고 싶었는데, 우리가 찍은 사진은 실물이 아닌 조형물로 남은 그분 옆에서 찍은 사진뿐이었다. 이후로 수없이 많은 사진을 그렇게 함께 찍었고, 아직도 그분과의 친밀감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여전히 그가 이 세상에 없다는 내 안의 상실감도 부정하고 싶다.

전시회와 추모 자리에 가면 그분의 힘 있는 목소리가 나온다. 익살스러운 표정, 자연스러운 일상도 나온다. 한 인간의 내면에 저렇게 다양한 모습이 존재한다는 것이 놀라운데, 하물며 그는 이나라 가장 높은 위치에 올랐던 정치인이 아니었던가. 그런 사람에게서 나오는 소탈한 모습조차 그분의 평범함을 비범함으로 바꿔 놓는다.

'세상에 저런 사람이 한 사람은 있어야 하는데...' 돌아서 나오는 순간 늘 드는 생각이다. 세상에 유일한 한 사람, 대체 불가능한 사람. 저마다 자신의 티를 적당히 감추고 포장하고 사는 세상에서, 그렇지 않은 사람이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이제 그 사람은 없다.

가장 보통의 사람
 
노무현 서거 12주기 추모 전시회, '사람사는 세상전' 전시 작품
 노무현 서거 12주기 추모 전시회, "사람사는 세상전" 전시 작품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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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서거 12주기 추모 전시회, '사람사는 세상전' 전시실 내부
 노무현 서거 12주기 추모 전시회, "사람사는 세상전" 전시실 내부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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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노무현 대통령은 '가장 보통의 사람'이다. 어떤 집단의 전형성을 말하는 것처럼 인간의 전형성의 기준을 정한다면 바로 그분이다. '인간의 전형', 인간에 대한 기대를 너무 높이 잡아 버렸다. 이제 전형적 인간은 없고 예외만 가득한 세상이다. 
  
착하게 산다는 것
- 깊이 들어가 보니 나만 착하게 산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간접적으로 나쁜 일을 바로 잡는 일. (노무현 <성공과 좌절> 중)

나는 정치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의 삶이 정치와 동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정치를 알아가면서 정치인들의 거짓말이 그런가 보다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 저 정도 거짓말은 할 수 있겠지, 저 정도의 나쁜 짓은, 세상에 흠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들 대신 그들의 부정을 합리화한다. 
 
그동안 제가 살아온 경험을 통하여 정치가 이루어지는 이치에 관해 시민들이 알면 좋을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무슨 거창한 주장이나 논리가 아니라 지난 이야기로 하는 것입니다.(노무현, <성공과 좌절> 중)

그분의 말대로 지난 이야기로 알면 좋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면, 지금 정치에 대해 조금은 이해가 넓어졌을까. 불의에 분노하다 지치지 않고, 나만 소외되는 것에 억울해하지 않고, 이러한 정치밖에 못 하는 나라에 자조하지 않고.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말이 참 좋다. '사람답게 대우를 받는, 사람 노릇을 하는, 그러자면 사람과 돈과 시장의 주인 노릇을 하는, 그런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노무현, <성공과 좌절> 중)', 이 풀이도 좋다. 사람답게 대우는 받고 있는가, 사람 노릇을 하고 있는가, 사람과 돈과 시장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가, 의문을 품지만.

남쪽으로 여행을 갈 때마다 마지막은 늘 봉하마을에서 마무리한다. 공식적으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는 아니었고 여전히 아니지만, 나는 떠난 노무현 대통령을 기억하고 그의 말을 기억하는 혼자만의 노사모가 되었다. 때문에 해마다 그분을 추모하는 여러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올해도 인사동에서 진행하는 노무현 서거 12주기 추모행사에 참여했다. 마루아트센터에서 진행하는 '사람사는 세상전'이었다. 그곳에서 받을 사람이 없는 편지도 썼다. 오래 못 본 사람에게 쓰는 편지처럼 길게 이어졌다. 당신의 죽음이 여전히 안타깝고 많이 그립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썼다. 

태그:#사람사는세상전, #추모 전시, #마루아트센터, #봉하마을, #노무현 서거 12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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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사람 사는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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