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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이 28일 암은 개인의 질병이 아니라는 외쳤다.
 노동자들이 28일 암은 개인의 질병이 아니라는 외쳤다.
ⓒ 신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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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냥 아픈 겁니까. 아닙니다. 암에 걸린 건 이유가 있습니다. 포르말린을 취급하다 혈액암에 걸리고 200도 넘는 대형 솥으로 튀김하다가 폐암에 걸립니다. 오늘부터 '이유있는 암' 직업성·환경성 암환자를 찾기 시작할 것입니다."

암은 개인의 질병이 아니라는 외침이 울려 퍼졌다. 직업성·환경성암환자찾기119(아래 직업성암119)와 민주노총 산하 보건의료·플랜트건설·학교비정규직·화학섬유 노동자들이 28일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전국 직업성 암환자 찾기 운동' 선포식을 했다. 노동, 환경, 소비자, 여성 등 97개 단체가 연명하며 전국 직업성암 전수조사를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직업성암119는 5월 26일, 대규모 집단산재를 신청하겠다고도 했다.

"암의 원인, 일터에서 찾자"

안태진 보건의료노조 정책부장은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80%는 여성"이라며 "지난해 3만여 명의 보건의료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결과, 직업성 암에 걸린 사람은 179명이었다. 그런데 이 중 9명이 산재를 신청했다. 암을 개인적 질병으로 여기는 탓"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터와 암을 연관짓기보다 유전이나 개인의 스트레스에서 발병 원인을 찾는 탓에 직업성 암을 산업재해(아래 산재)로 신청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어 "암에 걸렸다고 개인이 퇴사하거나 휴직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면서 "보건의료 노동자의 건강권을 사수하기 위해 전국에서 일하는 간호사·조무사·병원 청소노동자 등이 있는 현장을 찾아다니겠다"라고 밝혔다.

학교 급식실 16년 차 조리실무사인 박화자 학교비정규직노조 경기지부 수석부지부장은 "처음 중학교 급식실에서 일했을 때 1800인분의 밥을 조리사 15명이 했다"라며 입을 뗐다. 이어 "조리실에서 230도 이상에서 기름을 동반한 튀김을 할 때 지방 등이 분해되면서 미세먼지와 1급 발암물질인 벤젠, 포름알데히드 등의 휘발성 유기 화합물이 섞여 있는 물질이 발생한다. 환기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라며 조리실의 환경을 설명했다.

이로 인해 "조리실무사들이 폐암, 폐결핵, 백혈병 등 다양한 암에 노출됐다"고 강조한 그는 "급식실에서 일하다 폐암으로 사망한 노동자와 뇌출혈로 쓰러진 노동자, 락스로 청소하다 쓰러진 노동자에 대한 천식과 결막염이 산재로 인정됐다. 폐암에서 백혈병까지 급식실의 산재는 끝이 없다"라고 힘을 줬다.

앞서 지난 2월, 12년 넘게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다가 폐암으로 숨진 학교 조리실무사가 산재를 인정받았다. 근로복지공단은 폐암의 위험도를 증가시킬 수 있는 고온의 조리과정에서 발생하는 '조리흄'에 노출된 것이 폐암 발생의 원인이 됐다고 판단했다. 조리실무사의 직업성 암이 산재로 인정된 첫 사례다

이 조리실무사가 일한 급식실은 1년 넘게 주방 내 환기를 위한 시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산재여부를 알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해당 조리실무사는  2017년 4월 28일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 1년 가까이 투병하다 2018년 4월 4일 사망했다.

"노동자 포함해 조사하라"
 
직업성·환경성암환자찾기119(아래 직업성암119는 28일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전국 직업성 암환자 찾기 운동' 선포식을 가졌다.
 직업성·환경성암환자찾기119(아래 직업성암119는 28일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전국 직업성 암환자 찾기 운동" 선포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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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 25일 포스코를 비롯한 철강제조업체 종사자를 대상으로 직업성 암과 관련한 집단 역학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힌 가운데, 이상원 플랜트건설노조 위원장은 "플랜트건설 노동자가 조사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앞서 포스코 노동자들은 직업성 암 문제를 공론화 했다. 직업성암119는 지난해(2020년) 12월과 올해 2월 폐암·폐섬유증 등에 걸린 포스코 퇴직 노동자 13명(하청노동자 3명 포함)의 산재를 신청했다. 이 중 3명이 산재 승인을 받았고, 나머지는 조사 중이다.

이상원 위원장은 "울산·포항에서 화학단지 등 대규모 공사의 전문직 노동자인 우리의 현주소를 제대로 밝혀내야 한다"라면서 "포항제철소·광양제철소에서 노동자들은 여전히 최악의 환경에서 일하며 하루하루 죽어 나가고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말대로 제철소는 직업성 암 발생률이 매우 높은 사업장으로 꼽혀왔다. 코크스를 생산하는 코크스 공장에서는 코크스오븐배출물질(C.O.E)과 결정형유리규산(석영), 벤젠과 같은 다양한 발암물질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위원장은 "이러한 발암물질로 인한 폐암과 백혈병, 혈액암 등은 제철소에서 발생 가능한 가장 흔한 직업성암"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직업성 암'을 명시하며 암과 업무와의 상당 인과관계가 있으면 보상을 하도록 규정했다. ▲ 석면에 노출돼 발생한 폐암·후두암 ▲ 스프레이나 이와 유사한 형태의 도장 업무에 종사해 발생한 폐암 또는 방광암 ▲ 목재 분진에 노출돼 발생한 비인두암 또는 코안·코곁굴암 등이 여기에 속한다.

직업성암119는 "법에서 산재기준을 마련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산재를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라고 주장했다. 2018년 국제노동기구(ILO) 발표에 따르면, 세계 평균 질병산재사망자는 87%다. 산재사망자 비율은 14%다. 유럽은 95% 이상이 질병에 의한 산재사망자다.

우리나라의 2018년 암 유병자 수는 200만 명 정도를 상회한다. 세계보건기구(WHO) 등 전문가들은 연간 전체암 중 4% 정도를 직업성암으로 추정한다. 직업성암119는 "우리나라에서 평균 1년간 산재로 인정받은 암 환자는 205명 정도다. 비율로 치면 턱없이 낮다"라고 강조했다.

화학물질을 제조·취급하는 화학섬유연맹의 이해강 수도권본부 수석부본부장은 "고무·타이어·튜브 공장에서 접착제를 사용하고 플라스틱 공장에서는 라텍스·합성고무·폴리스틸렌을 제조한다. 모두 혈액암의 원인이 될 수 있다"면서 "직물 제조와 염색작업은 비강암을 유발할 수 있고, 염화비닐을 취급하는 플라스틱 성형 직군에서는 간암에 걸릴 수 있다"라고 작업환경을 설명했다.

이어 "드러나지 않은 암환자가 더 많으리라 생각한다. 오늘 선포식을 시작으로 화학섬유연맹 노동자의 암을 조사하며, 산재로 인정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이겠다"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직업성암119는 '암도 산재다. 직업성암으로 인정하라'는 선언문을 낭독했다. 이들은 ▲ 전국 직업성암 전수조사와 산업재해인정 ▲ 병원을 통한 직업성 암환자 감시체계 전면도입 ▲ 직업성암 추정의 원칙 법제화, 적용기준확대 ▲ 발암물질 노출노동자를 위한 건강관리카드 제도확대 ▲ 노동자 알권리 보장을 위한 산업기술보호법 전면개정 등을 요구했다.

태그:#산재, #직업성 암,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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