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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형부로부터 성폭행당해 낳은 3살 아들을 발로 차 숨지게 한 20대 여성이 징역 4년을 확정 받았다.
 2017년 7월, 형부로부터 성폭행당해 낳은 3살 아들을 발로 차 숨지게 한 20대 여성이 징역 4년을 확정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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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형부로부터 성폭행당해 낳은 3살 아들을 발로 차 숨지게 한 20대 여성이 징역 4년을 확정 받았다(관련 기사).

언니는 몸이 아프고 조카는 어렸다. 이제 겨우 스무 살, 은주(가명)는 조카를 돌보고 언니 병구완을 위해 언니 집으로 왔다. 그러나 형부는 은주를 상습 성폭행했다. 불행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은주는 형부의 아이를 셋이나 낳게 된 것이다. 언니는 병석에 누워있고 은주는 형부의 아이를 셋이나 낳게 됐다.

은주는 어느 날 유난히 보채는 세 살 난 막내 아이를 발로 걷어차게 된다. 아이는 사망. 스물여덟 어린 나이 은주는 살인 범죄로 구속되었다. 자식을 죽인 범죄자이자 동시에 성폭행의 피해자였다. 무엇보다 그녀는 스스로를 방어할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방어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었다. 은주도 은주의 언니도. 법은 냉철했지만 우리는 정말 그녀를 단죄할 자격 있을까.

은주가 아픈 언니와 조카를 보살피기 위해 언니 집으로 온 것은 20대 초반. 예쁜 옷 입고, 맛난 것 먹고, 엄마나 가족한테 투정부릴 나이. 대학을 다니거나, 받는 월급이나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제 몫을 삶을 즐길 나이다. 그러나 은주의 20대는 병든 언니를 보살피고, 조카를 키우고, 형부에게 성폭행 당하고 그 뒤 5년 사이에 세 명의 아이를 낳고 기른다. 형부는 아이들을 학대했다. 인간다운 삶과는 멀었다. 아무도 은주를 도와주지 못했다. 그녀는 어디에도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 결국 큰 범죄를 저지르고서야 세상에 나왔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그녀의 하루를 상상해본다. 아침에 일어나 청소, 아이들 밥 먹이기, 아픈 언니 보살피기, 형부의 성적 물리적 학대... 하지만 휴일에 밖을 나가면 단란하게 친구끼리 연인끼리 웃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보았을 것이다.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미래를 생각해보는 것이 무엇인지, 왜 그녀에게는 허락되지 않았을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서글픈 분노는 가장 약한 개체로 향하게 된다. 아이에 대한 폭력. 이제 겨우 스물여덟에 아이를 죽인 비정한 엄마가 되고 만다.

은주의 부모는 어디에 있었을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을까. 혹은 안 계신 걸까.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자기 방어력이 없는 상태'라고 은주와 은주 언니의 상태를 말하고 있다. 은주의 친척은? 지인은 아무도 없는 것이었을까. 그녀는 자신의 캄캄한 현실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걸까. 안타까움에서 주변 사람들을 소환해본다. 그러나 가족이 없고 친인척이 없고 지인이 없는 사람은 무방비 상태로 범법행위에 노출되는 것이 맞는가.

누군가 손을 내밀어주었다면

겨울 따스한 창가의 차한잔 . 언젠가 그녀의 삶에 허락될 수 있기를
 겨울 따스한 창가의 차한잔 . 언젠가 그녀의 삶에 허락될 수 있기를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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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비극은 장애를 가진 여성, 저소득 가정, 장애와 신체적 질병을 동시에 가진 여성, 아동학대 등에 우리 사회는 속수무책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억울한 일이 있으면 경찰서에 가서 신고하면 돼요' 라는 것은 일반 상식이지만, 누구나 상식에 손이 닿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힘없는 여성을 조금이라도 배려하는 사회라면 어땠을까. 성폭력은 중대범죄이고 언제든 우리 사회가 손을 내밀어줄 수 있다는 공익광고는 왜 한 번도 없나? 가족 간 성폭력 때 사회가 도움 줄 수 있다는 시그널은 어디에도 없나? 그 한 번의 범죄가 한 번의 아픔으로 끝나지 않고 사람의 일생을 지배하는 괴로움인데 우리 사회의 손길은 부족하고 부족하다.

2017년 7월 신문기사는 형부는 8년 9개월 징역형을, 은주는 4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나온다. 그러면 아픈 언니는? 아직 어린 3명의 아이는 누가 돌보나? 지역사회는 이 끔찍한 상황에 대해 어떤 보호조치를 했나? 장애를 가진 사람이든, 덜 배운 사람이든, 누구나 인간답게 살 권리,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지켜지고 있나?

형 집행이 그대로 진행됐다면 은주는 2018년 겨울, 스물아홉, 일상적인 부분이 부족한 그녀가 차가운 감옥에서 지내고 있을 것이다. 아이를 죽인 여자라고 비난받으면서. 이 무거운 짐, 누가 그녀를 보호하고 위로해 줄 수 있나. 서른둘, 만기출소 후 사회에 나왔을 때 아이들은 어디서 자라고 있을까, 그녀는 다시 아이들을 만나고 키우고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 왜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나. 지금도 그때도 그녀는 홀로 서있게 되는 걸까.

덧붙이는 글 |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그러나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졌다면 막을 수 있었던 비극에 대해 기록 남기고자 합니다.



태그:#김포형부성폭행, #친족성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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