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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29일의 촛불.
 지난해 10월 29일의 촛불.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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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촛불을 든 지 1주년이 됐다. 연인원 2000만 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바쁜 일상을 뒤로 하고 광장으로 나섰다.

세월호 참사, 백남기 농민의 국가폭력에 의한 타살, 개성공단 폐쇄,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밀실야합, 국정교과서의 강행, 사드배치, 블랙리스트 등의 연이은 패정(悖政)에 대한 울분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도화선으로 폭발한 것이지만, 그 심층에는 극악한 노동배제와 탄압, 장기불황과 경제위기, 실업 증대, 언론통제 등 이 나라를 '헬조선'으로 전락시키고 민주주의를 형해화한 데 대한 분노가 자리한다.

모두가 더불어 행복하고 평등한 새로운 대한민국에 대한 염원이 빛이 되어 인도하였다. 신념에 따르고 조직에 충실한 아날로그 세대와 공감에 이끌리고 유목민이고자 하는 디지털 세대가 함께 어깨동무를 하였다. 그리하여 폭력 없이, 그 어떤 이도 피 흘리는 일이 없이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정권교체까지 이루었다. 세계가 놀랐고 찬사를 보냈다.

피 없는 혁명을 달성한 것인가

2017년 3월 10일 오전 서울 안국동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수 많은 시민들이 헌법재판소 전원일치로 박근혜 대통령 파면이 선고되자 눈물을 흘리며 환호하고 있다.
 2017년 3월 10일 오전 서울 안국동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수 많은 시민들이 헌법재판소 전원일치로 박근혜 대통령 파면이 선고되자 눈물을 흘리며 환호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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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우리는 '피 없는 혁명'을 달성할 것인가. 민주주의의 목적은 왕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왕이 되는 것이다. 박근혜는 물러났지만, 자본-국가-보수언론-종교권력층-사법부-어용 전문가 및 지식인 집단으로 이루어진 지배동맹체는 견고하다. 집권여당은 유무형으로 이들과 얽혀 있으며, 자유한국당과 조·중·동을 중심으로 한 수구세력은 보수적인 개혁조차 '종북'으로 매도하며 방해하고 있다. 신고리 원전 공론위에서 잘 드러나듯 숙의 민주주의를 수용하고 있지만 아직은 너무도 미미하다. 참여민주주의는 말만 무성하다.

무엇보다도 구체제(앙시엥 레짐)를 해체하고 새 체제로 전환하지 못하였다. 촛불에 모인 시민들이 대통령의 탄핵 다음으로 열망한 것이 불평등의 해소였다. 하지만 1% 대 99%의 사회를 만든 신자유주의 체제는 순탄하게 작동하고 있다. 1단계 탄핵, 2단계 정권교체로 나아갔지만, 3단계 사회대개혁이나 4단계 새로운 민주공화국 건설을 향한 진전은 요원하며, 촛불이 요청한 사회대개혁 가운데 입법화한 것은 아직 하나도 없다.

적폐 청산도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지만 그 강도나 속도는 국민의 기대와 괴리가 크다. 이명박·박근혜와 마름과 하수인 구실을 한 이들이 저지른 온갖 실정과 악행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철저한 진상규명과 심판까지는 가야 할 길이 멀다. 더구나, 그 주범인 재벌과 미국에 맞서지 않고서는 적폐청산은 '꼬리 자르기'나 시늉에 그칠 우려가 큰데, 문재인 정권은 재벌과는 일찌감치 화해의 길을 텄고 미국에 대해서는 기이할 정도로 저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2013년 12월 22일,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하기 위해 민주노총이 입주한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건물에 경찰이 투입됐을 당시 모습.
 지난 2013년 12월 22일,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하기 위해 민주노총이 입주한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건물에 경찰이 투입됐을 당시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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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근혜' 정권에서 가장 배제되고 탄압을 받고 희생당한 이들은 노동자다. 그 중에서도 같은 일을 하고도 절반의 월급을 받으며 노동조합이든 법이든 보호할 울타리마저 없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은 고초를 이루 필설로 언급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쌍용자동차에서 잘 볼 수 있듯이 자본은 조작까지 하면서 대량해고를 단행하고 그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워 부당한 이득을 취하였다.

이에 저항하면 자본과 국가가 연합하여 법을 어기면서까지 물리적, 제도적, 구조적, 문화적 폭력 등 온갖 폭력을 가하였다. 새로운 정권도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노사정위는 아직 민주노총이 참여할 만한 여건을 마련하지 않았으며 재벌에 대한 태도는 저자세이고 신자유주의 체제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노동이 존중을 받는 사회를 이루고 모든 정책과 일상에서 노동중심이 정립되지 않는 한 혁명 또한 요원하다.

촛불 이후 광장은 푸르던 잎들이 모두 조락한 숲보다 더 을씨년스럽다. 주권자로 각성한 시민들이 대통령을 몰아내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자고 연대했지만 시민사회로 조직되지는 못하였다. 광장은 크게 열리거나 긴밀하게 엮이지 않았다. 진보정당의 대통령 후보의 득표율은 별로 오르지 않았으며,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의 가입률도 의미를 가질 만큼 나아지지 않았다. 자신들이 진정한 주인이 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에는 정작 나서지 않은 채 이를 정치인이나 정권에 위임해버렸다.

필자도 불교계 대표로 퇴진행동에 들어가 운영위원과 정책기획팀의 일원으로 운영위원회의, 대표자회의, 정책기획팀회의, 내부 워크숍에서 발언하거나 발표를 하고 몇몇 진보단체의 대표급들로 모임을 만들어 조금이라도 더 높은 단계로 운동을 고양시키려 했지만 역량 부족을 절감할 뿐이었다. 각 부문별로 촛불이 타올라야 한다는 생각으로 불교계의 적폐를 청산하고자 10차례의 촛불법회와 두 차례의 불자결집대회를 주도하였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탄핵인용)된 지난 3월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주최 ‘촛불 승리! 제20차 범국민행동의 날’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참석자들이 탄핵인용을 축하하며 촛불 파도타기를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탄핵인용)된 지난 3월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주최 ‘촛불 승리! 제20차 범국민행동의 날’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참석자들이 탄핵인용을 축하하며 촛불 파도타기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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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앞으로 노동자 민중, 시민사회, 정권의 행보에 따라 촛불은 혁명이 될 수도, '87년 체제의 조금은 진전된 반복'이 될 수도 있다. 6월 항쟁의 가장 큰 한계는 그 주체가 권력을 잡지 못했다는 것과 노동 중심을 상실하였다는 점이다. 가장 큰 성과는 그것이 30년의 '시간의 주름'을 거쳐서 촛불로 타올랐다는 것이다. 항쟁의 주체들이 기득권으로부터 권력을 빼앗을 때, 모든 적폐를 청산하고 사회대개혁을 완수할 때, 신자유주의를 해체하고 노동 중심의 평등한 공화국을 건설할 때 촛불은 혁명의 들불이 될 것이다.

우선 시민, 노동자, 정권이 패러다임의 전환을 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양적 발전보다 삶의 질, GDP보다 국민의 행복지수, 경쟁보다 협력, 개발보다 공존,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을 지향하는 대한민국으로 전환한다. 이제 우리나라의 무역량보다 이 땅의 강과 숲에 얼마나 다양한 생명들이 살고 있는지, GDP보다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이 얼마나 미소를 짓고 있는지, 국부를 늘리기보다 얼마나 가난한 이들에게 공평하게 분배되고 있는지, 기업 이윤을 늘리기보다 얼마나 노동자들이 행복하게 자기실현으로서 노동을 하는지, 뛰어난 인재를 길러내기보다 못난 놈들이 얼마나 자신의 숨은 능력을 드러내는지, 내기하고 겨루기보다 얼마나 모두 함께 모여 신나게 마당에서 노는 지에 초점을 맞추어 국가를 경영하고 정책을 구사해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시민사회를 조직하는 것이다. 촛불에서 주권자로 각성한 시민이 있었지만 시민사회의 조직화나 정치적 주체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민들은 일터와 마을과 학교에 공론장으로서 광장을 건설한다. 그곳에서 "성찰이 없는 과거는 미래가 된다"라는 생각으로 국가의 차원에서 자기가 소속한 집단의 차원에 이르기까지 적폐를 조사하고 이를 청산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한다.

모든 갑들은 권력을 부리지 말고 아랫사람을 섬기고 모든 을들은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것을 삶의 지표로 삼고 실천하고 그럴 수 있도록 제도화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부합하는 민주공화국으로서 대한민국을 상상하고 이를 가치로, 헌법을 포함한 제도로, 시스템으로, 삶과 문화로 실천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실천한다.

곳곳에 자치적인 '시민위원회'를 조직하여 아래로부터 협치를 통하여 권력을 견제하고 정책을 결정하고 가치를 분배하는 데 참여하는 정치적 주체로 나선다. 대의민주제에 참여민주제와 숙의민주제를 종합하되, 단순히 정책 결정과 가치의 분배에만 숙의하고 참여하지만 않는다. 국정원, 검찰 등의 국가 권력 기관 내에 이를 견제하는 시민위원회 구성을 요청하며, 국회를 양원제로 하여 시민의회가 한 축을 형성하도록 헌법을 개정한다.     

노동자들은 분열을 극복하고 굳건하게 연대하여 비정규직과 정리해고의 철폐, 공공성의 확보를 중심으로 신자유주의 해체 운동을 선도한다. 노동자와 시민이 연대하여 시민의회나 시민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최상이지만, 진보정당을 매개로 노동중심을 구현한다. 반신자유주의와 반자본주의로 지표와 전선을 명확히 하고 계급적 성격을 확고히 하되, 탈핵 등 생태와 복지와 사회정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결합한다. 금융과 토지, 공장을 포함한 모든 생산수단, 주택, 교육, 의료의 공공화, 노동이 진정한 자기실현인 사회, 노동이 자본을 통제하는 세상을 향한 굳건한 목표 아래 모든 정파와 갈등을 녹여낸다.

정권과 기득권이 온갖 적폐를 청산하고 검찰개혁, 재벌개혁, 언론개혁, 경제개혁, 교육개혁을 인적 차원과 제도적 차원에서 수행하도록 계속 촛불은 타올라야 하며, 이를 새로운 프레임에 결합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프레임이란 '신자유주의 해체, 일하는 사람들의 평등 사회, 시민주권, 생태복지국가, 한반도 평화체제를 지향하는 민주공화국'이다. 

문재인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지난 5월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로텐더홀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취임사에는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5년 전 메시지가 그대로 담겼다.
 문재인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지난 5월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로텐더홀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취임사에는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5년 전 메시지가 그대로 담겼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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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권의 실패는 반동을 부를 것이며 촛불 또한 미완의 혁명으로 귀결될 것이기에, 이 정권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적폐청산을 위해 미국과 재벌에 맞서겠다는 결기부터 갖되 현명하게 외교와 협상, 개혁의 입법화를 추진한다.

'낙수효과'는 이미 실패로 판정되었고 장기침체의 가장 큰 원인이 불평등, 소비둔화, 이윤율 저하에 있는 만큼, 정보·나노·문화·환경·로봇 산업 등 한국인이 강점을 가졌으면서도 4차 산업혁명의 흐름에 부합하는 산업국가로 재편하고 '분수효과'에 초점을 맞추어 서민의 소득을 올려 소비를 진작하고 경제를 살리는 혁신을 한다.

당장 6자회담을 추진하여 북한의 핵과 평화협정을 맞바꾸어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한다. 곳곳에 광장을 활성화하고 국민에게 주권을 돌려줄 방안들을 최대한으로 모색한다. 무엇보다도 구조적이고 태생적 한계를 넘어서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고 노동중심을 구현하고 공공성을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한다. 정치공학적인 입장을 배제하고 민주공화국을 건설할 수 있도록 개헌을 한다.

역사의 기관차라지만 혁명은 늦게 올 수도, 빨리 올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저항의 동력 없이는 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 방향은 과거의 영광이 아니라 민주공화국과 한반도평화체제를 향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도흠님은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입니다.



태그:#촛불, #문재인, #박근혜, #촛불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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