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우리는 왜...①] '한달 반 무보수 근무' 학교노예, 저도 그 중 한 명입니다

2015년 2월 9일, 부산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증축공사 현장에서 한 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했다. 2층에서 추락 방지용 안전망 설치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여러 언론이 이를 보도했다. 신세계 측이 사고 발생시각을 두고 여러 차례 말을 바꾸거나 거짓말을 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경찰이 출동하기도 전에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철제 시설물을 치워 현장 보존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백화점이 완공 된 후, 그의 유가족이 1인 시위를 하는 사진도 나왔다. 그의 죽음을 두고 원인과 의혹, 건설 현장의 안전사고를 꼬집는 기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그가 왜 건설현장에서 일하게 됐는지 말하는 이는 없었다. 그는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왜 건설현장에 출근 했나

2015년 8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 산업은행 앞에 모인 전국초등스포츠강사연합회와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등 구성원들이 초등스포츠강사 사업에 대한 정규예산 삭감을 규탄하고 대량해고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학교체육 활성화를 위한 초등스포츠강사 궐기대회'를 하고 있다.
 2015년 8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 산업은행 앞에 모인 전국초등스포츠강사연합회와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등 구성원들이 초등스포츠강사 사업에 대한 정규예산 삭감을 규탄하고 대량해고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학교체육 활성화를 위한 초등스포츠강사 궐기대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그는 비수도권 지역의 한 초등학교에서 스포츠강사로 일했다. 스포츠 강사는 초등학교에서 체육수업 보조업무를 맡는다. 학교체육진흥법은 초등학교에서 정규 체육수업 보조 및 학교스포츠클럽을 지도하는 체육전문강사를 스포츠강사로 정의했다. 하지만 스포츠강사들은 사실상 체육수업을 전담하고 있다고 말한다. 인라인스케이트부터 높이뛰기, 멀리뛰기, 음악줄넘기 등 전문적인 동작과 수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인 역시 초등학교의 체육수업을 도맡았다. 다만 그는 두 학교를 오갔다. 스포츠 강사는 일주일에 21시간 수업이 규정이다. 지역 초등학교 중엔 한 학년에 한 학급씩만 있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순회학교'라는 이름으로 두 학교 수업을 도맡기도 한다. 스포츠강사와 계약하는 당사자는 초등학교의 교장이지만 사실상 스포츠강사를 뽑고 배치하는 것은 교육청이다. 결국 두 학교를 '순회'하라는 교육청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다.

두 학교를 오가며 아이들을 가르쳤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재계약 불가' 통보였다. 또 다른 학교에서는 "그를 계속 고용하고 싶다"고 했지만, 두 학교를 합쳐 21시간을 수업해야 했던 그는 결국 재계약을 하지 못했다. 2015년 1월 31일은 그의 마지막 출근길이었다.

"힘이 없으니 할 수 있는 게 없어..."

일방적인 해직통보에 고인은 전국초등학교 스포츠강사 연합회를 찾았다. 그와 통화했다는 연합회 관계자는 "평소 말수가 거의 없고 조용한 분으로 알고 있는데, 한숨을 내쉬며 '좀 도와달라'고 했다"며 "너무도 절박하게 도움을 청했다"고 기억했다.

연합회는 스포츠강사를 추가로 구하는 초등학교가 없는지 동분서주하며 찾았다. 고인에게 나이 마흔이 다 되어 어렵사리 얻은 어린 아이가 있다는 상황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합회의 노력에도 고인은 결국 재계약을 할 수 없었다. 스포츠강사를 구한다던 학교가 그의 집에서 두 시간여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왕복 4시간은 도저히 안 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연합회 차원에서도 최선을 다했지만 더 어쩔 도리가 없었어요. 힘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추락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들은 게 마지막이에요."

연합회 관계자는 잠시 숨을 내쉬었다. 바로 말을 잇지 못한 그는 붉어진 눈시울을 감추려 고개를 젖혔다. "우리에게 힘이 있었다면, 무언가 조금이라도 개선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텐데..."라던 그는 "그일 이후로 가슴에 한이 서려 있다"고 말했다.

결국 계약이 만료된 고인은 건설현장을 찾았다. 그리고 2월 9일, 그의 생일날 사고가 났다.

"학교가 거절하면 버려지는 존재"

"학교가 안 쓰겠다고 하면 자연스럽게 계약이 해지되는 거죠. 5년을 일했든 10년을 일했든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어요. 이유는 만들어내기 마련이니까요. 평가점수를 낮게 줄 수도 있고, 더는 스포츠강사의 체육 수업이 필요 없다고 할 수도 있죠. 결국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그냥 쓰다 버려지는 거예요."

2010년 처음 스포츠강사 일을 시작한 오아무개씨는 여느 비정규직처럼 스포츠강사 역시 '눈칫밥'을 먹고 산다고 했다. 초등학교의 교장, 교감, 체육부장 등 보통 5명의 관리자가 매년 스포츠강사의 평가 권한을 쥐고 있으니 잘 보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스포츠강사로 일하는 김아무개씨 역시 학내 주차관리, 시설관리, 교장, 교감의 이삿짐 옮기기까지 다양한 일을 해왔다고 밝혔다. 텃밭을 가꾸는 교장의 호출에 주말에 나가 제초작업을 했다는 스포츠강사도 있다.

정권 입맛에 따라 늘리고 줄이고

민주노총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조합원들이 2013년 11월 12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초등학교 스포츠강사에 대한 대량해고 중단과 처우개선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민주노총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조합원들이 2013년 11월 12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초등학교 스포츠강사에 대한 대량해고 중단과 처우개선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사실 스포츠강사의 등장은 화려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초등학교 체육수업을 활성화하겠다며 스포츠강사제도를 도입했다. 경기지도자,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 보유자 또는 교원자격자와 선수생활을 했던 이들이 지원할 수 있었다. 첫해에 800여 명을 뽑았지만 2015년까지 2500여명까지 배치를 확대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실제로 정부의 지원을 받은 스포츠강사는 2013년 3800명까지 늘어났다.

"경쟁률이 20대 1이 될 정도로 인기가 좋았어요. 정부에서 관심을 두고 진행하는 사업이니 그냥 내버려두지는 않겠구나 싶었던 거죠. 교육청에서 1, 2차 면접도 보고 뽑았고요. 하지만 하루아침에 바뀌는 제도도 있더라고요. 그게 스포츠강사제도입니다."

7년 차 스포츠강사인 왕아무개씨 말처럼 이명박 정부 초기 국정과제로 채택, 환영받던 스포츠강사는 박근혜 정부에서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2014년 이후 예산은 점점 줄었다. 결국 스포츠 강사들은 잘려 나갔다. 2013년 3800여 명에 달했던 스포츠강사는 2017년 1952명이 됐다.

정부의 눈밖에 난 정책의 계약조건이 좋을 리 없다. 10년 동안 임금 인상은 2014년 5% 등 두 차례뿐이었다. 나머지 8년은 동결이었다. 동결된 임금은 올해 4인 가족 최저생계비인 월 175만 6547원에 못 미치는 월 150만 원가량이다.

그마저도 2월에는 한 푼도 받지 못한다. 스포츠강사의 계약은 3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이기 때문이다. 11개월 '쪼개기 계약'의 결과다. 2013년까지 '10개월' 계약에서 좋아진 게 '11개월 계약'이다. 결국 이들은 대리운전부터 식당 일까지 아르바이트로 한 달을 버틴다. 2월엔 출근을 할 수 없으니 정들며 가르친 학생들의 졸업식도 참석하지 못한다.

"체육 선생님은 왜 2월에 안 보여요?"

"'체육 선생님은 왜 2월에 안 보여요?' 학생들이 물으면 뭐라고 답할 말이 없더라고요. 그냥 웃고 마는데 씁쓸하죠. 뭐 선생님이 아닌 자격으로 학교를 찾아가 아이들의 졸업을 축하할 수는 있지만 또 그게 참 민망하잖아요. 1월까지 선생님이었다가 2월은 선생님이 아니고 또 3월은 선생님인 상황을 뭐라고 해야 할지..."

'2월에 없는 선생님'이라고 자신을 표현한 왕씨는 11개월 쪼개기 계약의 희망을 새로운 정권에서 찾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한 약속 때문이다. 



"이 자리에 학교 체육 강사 분들도 많이 오셨죠. 월 130만 원 정도 최저생계비 수준의 월급을 받고 있고, 그나마 11개월 비정규직입니다. 확실한 처우개선을 약속드립니다."

지난 4월 대한민국 체육대회에 참석한 당시 문재인 대선후보의 말이다. 김대환 스포츠강사는 약 10초가량인 이 영상을 보고 또 보며 그의 약속을 떠올린다. 김 강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초등스포츠강사 처우개선 약속이 반드시 이행될 거라 믿는다"며 "나라다운 나라에서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태그:#스포츠강사, #학교비정규직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