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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나라냐?"라는 피켓은 촛불과 태극기 양쪽 모두 나왔다. '나라'의 의미가 서로 간에 천양지차라는 이야기다. 태극기 노인들에게 '나라'는 어떤 것일까? 자아 정체성과 콤플렉스가 형성되는 유년기와 청년기에 그들의 '나라'는 아예 없거나(일제), 남들 덕에 찾았지만 위태롭고 혼란스럽다가(해방정국의 좌우 갈등), 동존상잔의 전쟁마저 겪고서는(한국 전쟁), 결국 반쪽으로 갈라졌다.

와중에 뒤흔들리고 찢겨진 것은 나라만이 아니었다. 국민 개개인과 친족과 지역공동체의 생명과 관계, 재산, 미래가 온통 뒤흔들렸고, 그들은 요행히 살아남았다. 그 과정에서 남한 정부가 그들의 나라로 정해졌지만, 분단 이후 정권과 사회와 국민은 계속 혼란스러웠다. 그 혼란을 제압한 군사독재정권은 '국가안보'와 '경제성장'을 최고의 가치로 선동하고, 악용하며 국민들을 '다스렸'고, 그 '다스림'에 거역하는 사람들은 숨고 밀리고 제거되었다.

좌우갈등의 혼돈 시절에 국민들은 각자의 계층과 입장과 나이와 직업과 지역에 따라 다양한 경험(피해와 가해, 혹은 그 뒤엉킴)과 기억과 해석을 겪었다. 하지만 이후 독재정권은 국민들의 기억과 해석을 철저하게 통제했다. 국가(제도 교육, 언론과 미디어, 공공 행사 등)에 의해 선별되고, 강요·강제되고, 왜곡된 기억은 개인 고유의 다양하고 이질적인 기억과 해석을 억압하고 왜곡시키고 삭제했다.

해방 공간의 집단 기억은 편향적으로 왜곡·정리되었고, 공산주의에 대한 미움과 분노의 발언만이 가능했고 지지되었다. 국가가 허용한 기억만, 국가가 허용한 해석으로 확성(擴聲)되었다. 국민들은 살기 위해 의심 없이 복창했고, 자기 합리화를 위해 믿어버렸으며, 증명하기 위해 떠벌렸다. 집안 건사를 위해 자식들을 단속했지만, 자식들이 커가면서 결국 싸움이 되거나 자식들이 나서서 '그 얘기'는 피했다.

왜곡된 기억, 뒤섞인 서사

그들은 외친다 여기 우리가 있다! 내 속을 알아다오!
 그들은 외친다 여기 우리가 있다! 내 속을 알아다오!
ⓒ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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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하위계층 노인들의 생애구술을 듣다보면, 맥락상 가해자가 국군이나 미군이던 서사가 결국에는 '빨X이 새X들' 깔때기로 빠져버리거나, 태평양 전쟁과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이 뒤섞여 있고, 4·19혁명과 5·16군사정변이 구분 없이 뒤섞여 있는 등, 기억과 해석이 뒤엉킨 경우가 많다. 기억력이나 못 배움의 탓도 있지만, 고유의 기억과 강제된 기억이 뒤엉킨 것으로도 해석된다.

국가가 허용한 집단기억과 전체주의 속에서, 극우 반공주의는 집단 정체성과 콤플렉스가 되어 개인과 공동체의 내면에 깊게 뿌리박혔다. 위태로워서 더 뭉치고 떠받들어야 하는 국가 혹은 '대통령 각하'는 작금의 태극기 광장에서는 '마마'로까지 퇴행했다.

극우 반공주의의 핑계이자 명분인 분단은 여전히 한반도의 원죄이며, 분단을 악용한 남북한 정권은 샴쌍둥이다. 자고로 극우는 강력한 지도자를 열망하고, 순종하는 국민은 강한 지도자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다양한 목소리가 거리와 광장에 넘칠 때마다 많은 노인들 입에서 "우리나라는 독재자가 나와야 한다"는 말이 튀어나왔고, 이는 박정희와 그 시절 자신에 관한 추억과 자긍심을 항변하는 말이다. 그들에게는 그 때가 찬란한 시절이었다.

1987년 6월항쟁과 정권교체로 만들어진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은 보수 노인들에겐 정치와 경제의 몰락기다. 1997년 IMF 외환위기로 시작되어 2008년 금융위기로 끝난 '그들의 잃어버린 10년'에, '좌파 정권이 경제도 망가뜨린'거다. 지금의 8090세대는 그 시기에 노인이 되어 가정과 사회에서 퇴출당하기 시작했다.

이어진 신자유주의 각자도생과 IT와 디지털의 속도와 효율성 속에서, 노인들의 부적응과 소외와 불안은 가속화되었다. 소위 '고령사회'와 허술한 사회  안전망으로, 노인세대는 이제 가장 큰 '문제 집단'으로 취급되고 있다. '죽지 않아서 문제다'로 요약되는 소위 '노인문제'는 노인들이 가는 곳마다 대대적으로 왈가왈부되고 있다.

장수(長壽)는 개인에게도 국가에게도 재앙이 되었다. 그런 속에서 준댔다 안 준댔다, 줬다가 뺐다가 한 '20만 원'(기초노령연금)에 대해 절대다수의 빈곤 노인들은 '박근혜 덕'으로 감사해 하고 있다. 가난했던 젊은 시절 그들을 먹고살게 해준 박정희와, 다 늙은 지금 자식도 못 주는 20만 원을 매달 꼬박꼬박 통장에 넣어주는 박근혜는, 그들이 애정하는 '조국'이다.

종묘공원에서 태극기 광장으로

2010년 이전까지만 해도 종묘공원은 노인들의 문화 공간이었다. 아코디언과 트럼펫 연주가 흘러 나오고 춤과 노래도 어우러졌다. 한쪽에선 바둑과 장기에 몰두하고, 다른 쪽에선 어김없이 열띤 정치 연설과 응원이 벌어졌다. 많을 때는 삼천 명 정도가 모여서 놀다 돌아갔다. 때때로 노동자들도 그들 옆에서 싸웠다.

정부가 고성방가와 음주가무를 막겠다며 종묘공원 '성역화 사업'을 펼쳐 노인들을 밀어낸 게 2008년 즈음부터다. 박근혜 탄핵 정국 와중에 나는 일삼아 종묘공원을 찾았다. 종로통 쪽 입구에서 종묘까지 널따란 중앙로를 만들어 공원을 좌우 두 구역으로 갈랐다. 잔디와 화초와 나무들이 차지한 녹지 공간엔 울타리와 푯말들이 '출입금지'를 경고한다.

대한문 앞 노동자들도 그렇게 당했다. 좁은 산책로를 따라 벤치들이 있지만, 젊은 커플이나 가족 단위 나들이객들이 차지했다. 종로성당 쪽 공원 끝에 가서야 바둑과 장기를 두느라 모인 수십 명의 노인들이 있을 뿐이다. 을씨년스런 날씨에 오후 네 시가 막 지난 때여서 더 적었을 거다. 공원 관리동 담벼락 아래 여남은 명 노인들이, 곧 없어질 볕 꼬리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종묘공원 노인들은 사라진 왕조의 성역화를 이유로 공원에서 밀려났고, 태극기 광장의 노인들은 단종 복위에 목숨 거는 사육신을 자처하며 퇴행했다. 밀려남과 퇴행은 같다. 나아가거나 버틸 힘이 없어서다. 그 많던 종묘공원의 노인들은 어디로 갔을까? 일터와 가족과 도시와 속도에서 밀려난 노인들 중 일부는 수도권 전철 끝 춘천과 온양을 다녀오고, 일부는 오백원 동전을 모으러 새벽부터 짤짤이 순례를 돈다.

일부는 새벽 쓰레질(노인공공근로)로 월 20만 원을 벌고, 일부는 새벽부터 골목과 상가를 돌며 폐휴지를 모은다. 일부는 경로당과 노인복지관에 다니고, 더 늙어 못 쓰게 되면 요양원과 방에 갇힌다. 요양원으로 밀려나기 전에 잠을 자다가 죽는 것이, 대부분 노인의 가장 큰 바람이다. 자식과 국가를 건사하고 일군 그들을, 자식도 국가도 '비용' 취급만 한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나왔고, 우리도 그들처럼 늙는다.

그들 중 일부가 태극기 광장을 채웠다. 밀리고 밀리다 존재를 아우성치러 나왔다. 탄핵을 명분 삼아 모여, 다 밀려난 자신들의 가치와 문화와 체득과 기억과 해석을 끄집어내어 아우성쳤다. 일부는 계엄령까지 외치고 '마마님'까지 찾으며 극단적이 되었다. 모든 인정투쟁의 원인은 박탈이다. 동력은 박탈감이고, 과정은 막무가내며, 누구는 극단적이 된다. 모든 밀려난 존재들의 악다구니는, 내 속을 좀 알아달라는 거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최현숙님은 구술생애사 <할배의 탄생> 저자입니다. 그는 사회문화적 중하위 계층 사람들의 '평생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대화하며, 이를 글로 쓰는 구술생애사 작가입니다. 이 글은 노인들의 생애구술 채록과, 박근혜 탄핵 정국 중 태극기 집회 현장과 노인들을 관찰, 채록, 채증한 것을 필자가 해석한 글입니다. 이 글은 월간 <참여사회>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노인, #노인빈곤, #애국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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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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