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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사건은 큰 두 고리가 있는데 하나는 (최순실이) 대통령을 팔아 국정농단을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경유착입니다. 삼성이나 기업들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행위를 축소해서 보려는 사람들이 많은데 저는 그렇게 안 봤어요."

정경유착. 박근혜 게이트를 3개월여 집중 수사한 박영수 특별검사는 지난 3월 6일 수사결과 발표에서 사태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로 이 단어를 꼽았다. 최근 20여 년 동안 정권마다 대형 게이트가 터지는 걸 봐 왔던 한국 국민들에게는 공기처럼 익숙한 표현이다. 그는 일이 이렇게 된 데는 최순실씨 못지않게 권력에 결탁해 손쉽게 이권을 얻으려 했던 기업들의 의지가 큰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특검은 수사 기간 내내 가장 많은 뇌물을 공여한 삼성그룹을 조사하는 데 상당한 자원을 동원했다. 그리고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씨와 공모해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를 돕는 대가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총 433억 원의 뇌물을 받거나 받기로 약속했다고 판단했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 필요했던 정부권력

삼성그룹의 핵심은 삼성전자다. 주식 총액도 수백조 원에 달하는 데다 외국인 지분율이 50%를 웃돈다. 삼성 총수 일가는 이 지점이 고민이었다.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하는데 이재용 부회장의 지분율은 0.59%로 미미하기 때문이다. 삼성은 2000년대 초부터 이 문제를 해결하고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승계 과정을 순차적으로 밟아왔다.

2015년 7월에 있었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이 고민을 한방에 해소해주는 것이었다. 이 부회장은 자신이 최대주주로 있는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합병을 성사시키고 사명을 삼성물산으로 바꾸는 이색적인 방법을 썼다. 그는 이 합병으로 그룹 내 순환지배구조의 중추 역할을 하는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가 되었을 뿐 아니라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전자, 삼성SDI 등 그룹 내 핵심 계열사들에 대한 지배권도 안정적으로 가져왔다.

문제는 합병 과정이 석연치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 삼성물산의 기업가치가 훨씬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양 회사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1:0.35의 비율로 합병했다. 제일모직 주식의 가치가 삼성물산 주식의 가치보다 세 배가량 더 높다고 본 것이다.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공단은 합병안 통과를 좌우할 수 있는 위치였지만 상당한 손해를 감수하면서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특검은 삼성 측이 이 합병을 성사시켜달라는 청탁을 넣었고, 종국에는 박근혜 대통령 및 청와대 관계자들의 조직적인 도움을 받아서 이뤄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특검 수사결과에 따르면 삼성은 합병 성사 이후에도 이재용 부회장의 그룹 승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대통령 독대 등 기회를 통해 추가로 청탁을 넣었다.

특검은 이번 수사에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건뿐만 아니라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중간금융지주회사 설립 ▲순환출자 해소물량 축소 ▲투자유치 및 환경규제 관련 지원 등 요구들을 모두 청탁이라고 규정했다.

뇌물보다 컸던 삼성의 이익

삼성가 승계 과정에서 지불한 막대한 뇌물은 사회와 국민이 고스란히 치러내게된다.
 삼성가 승계 과정에서 지불한 막대한 뇌물은 사회와 국민이 고스란히 치러내게된다.
ⓒ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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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이 청탁의 대가로 총 433억 2800만 원을 지급하기로 약속했고, 그중 298억 2535만 원이 실제로 건네졌다. 우선 최순실씨의 딸인 정유라씨에 대한 승마 관련 지원액이 77억 9735만 원이다. 특검은 최씨가 전적으로 지배하는 독일 소재 유령회사 '코어스포츠'에 말 구입비, 훈련 용역비 등의 명목으로 삼성 측이 이 돈을 지급했다고 밝혔다.

삼성이 미르·K스포츠재단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지원한 220억 2800만 원 역시 경영권 승계 관련 청탁의 대가에 포함된다. 특검은 수사결과 발표에서 "이재용, 최지성, 장충기가 공모하여 뇌물을 공여했으며 최순실과 박 대통령은 공모하여 이들에게 뇌물을 수수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사회에서 정경유착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정부의 방침이 기업에 그만큼 큰 이익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삼성은 이번 청탁으로 298억 원을 지출했지만, 그와 비교할 수 없는 이익을 얻었다. 경영권 승계를 분리하고 봐도 그렇다.

특검이 지난 2월 28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기소한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의 공소장을 보면, 이 합병으로 이 부회장을 비롯한 제일모직 대주주들은 최소 8549억 원 상당의 재산상 수익을 봤다. 반면 국민연금공단은 최소 1388억 원의 손해를 본 것으로 추산했다. 결국, 삼성가 승계 과정에서 누군가 감당해야 했던 손해를 사회와 국민이 치러낸 셈이다.

삼성은 이같은 혐의들을 모두 부인하고 있다. 미르·K스포츠재단 등으로 수백억 원을 출연하긴 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을 위시한 정부의 강력한 강요 때문이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최순실씨 연관 회사에서 발견된 삼성전자와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간 후원계약서를 보면 납득하기 힘든 주장이다.

이 계약서에서 삼성 측은 영재센터에 '후원할 수 있는 독점적 권리'를 요구한다. 삼성은 본 계약서에 이같은 내용을 넣고 후원계약서의 별첨 문서에 "센터는 계약기간 중 삼성전자 및 삼성전자 자회사와 경쟁 관계에 있는 국내외 회사와의 후원계약을 체결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넣었다. 비선 실세인 최순실씨와 박근혜 대통령으로 연결되는 통로인 영재센터에 대한 후원을 일종의 '권리'로 파악했다는 것이다.

특검은 수사 기간 제약 문제로 삼성만 집중적으로 수사했다. 그러나 관련자 수사와 재판 진행 중 드러난 사실들에 따르면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대기업 중 상당수가 삼성처럼 뇌물공여 혐의로 엮일 가능성이 높다. 기업에서 자체적으로는 마련할 수 없는 이권을 얻기 위해 대통령이 설립을 주도한 재단에 돈을 낸 정황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특검으로부터 수사 자료를 넘겨받은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현재 CJ·SK·롯데를 우선 수사대상으로 정한 상태다. 특수본은 각 기업에 3~4명씩의 검사를 배치해 박영수 특검팀에서 넘겨받은 수사기록 검토에 돌입했다.

만연한 재벌과 정권의 유착관계

최태원 SK 회장은 2015년 10월 미르재단에 85억 원, 12월 K스포츠재단에 43억 원을 설립자금으로 출연한 뒤 그 대가로 특별사면 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 혐의로 구속수감 중이었다. 최 회장의 수감기간 중 SK그룹을 운영했던 김창근 당시 SK수펙스추구협의장은 2015년 7월 박 전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에서 최 회장의 사면을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은 독대 한 달 뒤에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다.

청탁을 뒷받침하는 정황도 넘쳐난다. 특검이 확보한 최태원 회장과 김영태 SK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위원장의 지난 2015년 8월 10일 대화 녹취록에는 "왕 회장이 귀국을 결정했다. 숙제가 있다"는 발언이 있다. '왕 회장'은 박 전 대통령을, '귀국'은 최 회장의 광복절 특사를, '숙제'는 재단출연금 지원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검찰도 관련 증거를 가지고 있다. 김 의장은 특사를 목전에 둔 8월 13일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에게 "하늘같은 이 은혜를 잊지 않고 산업보국에 앞장서겠다. 최태원 회장과 모든 SK 식구들 대신해서 사면복권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낸 바 있다.

최 회장은 사면복권 이후 2016년 2월에 있었던 박 전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에서도 면세점 인가 관련 추가 청탁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SK는 2015년 11월 면세점 특허권 재승인 심사에서 탈락하며 사업권을 잃었다. 그러나 정부는 최 회장의 독대 이후 갑자기 대기업 3곳에 면세점 사업권을 추가로 주겠다고 공고를 낸 바 있다.

검찰은 이와 관련해 지난해 11월에 SK수펙스추구협의회, 기획재정부, 관세청 등을 압수수색했고 면세점 인허가 담당 관세청 직원 2명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한 상태다. 특검에서 수사를 인계받은 이후에는 지난 16일 김창근 전 의장, 김영태 전 위원장, 이형희 SK브로드밴드 대표이사를 등 이 회사 전·현직 고위임원 3명을 소환해 조사했다.

CJ에 대한 수사도 이재현 회장에 대한 특별사면 건이 핵심이다. CJ가 지난해 1월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K컬쳐밸리)에 1조 4000억 원을 지원키로 하는 등 박근혜 정부의 문화창조 사업에 협조한 대가로 이 회장의 특사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광복절 특사로 최 회장과 함께 풀려난 후 미르·K스포츠재단에 13억 원을 출연했다.

롯데는 면세점 사업자로 선정되기 위해 미르·K스포츠재단에 45억 원을 출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롯데는 2015년 11월 면세점 특허 심사에서 탈락했으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해 3월 14일 박 대통령을 독대한 뒤 같은해 12월 면세점 사업자로 추가 선정됐다. 특히 롯데는 K스포츠재단에 70억 원을 추가로 냈다가 검찰이 롯데를 압수수색하기 전에 70억 원을 돌려받는 이상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동환님은 월간<참여사회> 편집위원을 맡고 있습니다.이 글은 월간<참여사회>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삼성, #뇌물, #국민연금,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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