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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오후 사드배치 반대 촛불집회에 나온 한 성주군민이 사드 미사일 모형을 머리에 쓰고 나왔다.
 지난 17일 오후 사드배치 반대 촛불집회에 나온 한 성주군민이 사드 미사일 모형을 머리에 쓰고 나왔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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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적 안목에서 보면 폭력적 시위의 효과가 강력하고, 평화적 시위의 효과는 나약할 것 같지만, 사실은 장기적 안목에서 보면 정반대다. 이는 '전략적 관계'에서 흔히 나타나는 '패러독스 현상' 때문이다. 어떤 '특정한 판'에서 매우 효과적인 전략이 그 전략을 지나치게 남용할 경우 일정한 임계점을 넘어서면, 기존의 판 자체가 '다른 판'으로 그 성격이 변경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1980년 대학신입생 시절, 나는 5.18 광주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고 휴교령이 떨어지기 직전까지 시국시위에 참가하며 "전두환은 물러가라!"를 외치곤 했다. 그 이후로 처음으로, 얼마 전 사드배치 결정 철회 촉구 집회에 참가했다. 5.18 당시는 사실 뭐가 뭔지도 몰랐지만, 최소한 군인들이 정권을 잡는다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고, 이 땅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생각에서 참여했다. 하지만, 결국 전두환은 폭력으로 정권을 찬탈했고 그 폭력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비폭력 저항은 사람의 마음을 무너뜨린다

지난 18일 저녁 정부가 사드 배치 예정지로 지목한 성주군에서 주민들이 6번째 사드 배치 반대 촛불집회를 벌였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이은정(34)씨와 신수빈(26)씨가 직접 만들어 온 머리띠를 쓴 채 촛불을 들고 있다.
 지난 18일 저녁 정부가 사드 배치 예정지로 지목한 성주군에서 주민들이 6번째 사드 배치 반대 촛불집회를 벌였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이은정(34)씨와 신수빈(26)씨가 직접 만들어 온 머리띠를 쓴 채 촛불을 들고 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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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6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사드배치 반대시위는 내가 생각해왔던 가장 이상적인 시위였다. 청계광장 집회에는 몇 명의 연사들이 나와 사드배치를 비난하는 짧은 연설을 하고, 사회자의 유도로 구호를 함께 외치기도 했고, 몇몇 팀들이 율동을 하기도 했고, 중간 중간 가수들이 나와 노래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서, 청계광장에서 출발하여 광화문까지 가두시위를 벌였다. 경찰들이 다수 동원되었으나 시위행위를 전혀 막지 않았고 교통정리를 해주는 역할만 했다. 광화문역 근처에 도착하여 마무리 집회를 했는데, 그 자리에는 성주에서 올라온 청년(여성)이 뜻을 함께 해준 집회참가자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함께 구호를 외치는 것을 마무리로 해서 집회가 해산되었다.

전철을 타고 인천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흐뭇했다. 아주 평화적인 시위였기에 아무런 물리적 충돌도 없었고, 뜻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오는 토요일(7.23)에도 집회가 있을 예정이라는데, 이렇게 평화적인 시위라면 또 참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계광장 집회 바로 전 날(7.15) 성주에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방문했던 황교안 총리가 봉변을 당했다. 달걀세례와 물병투척을 받았다고 한다. 나는 사드배치 절대반대론자이므로 주민들의 시위를 당연히 정당한 것으로 본다. 게다가 그 위험하다는 사드시설을 수용해야하는 당사자들이 아닌가!

하지만, 이건 아니다. 달걀도 다수가 한꺼번에 수차례 던진다면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실제로 나 자신이 맞아보지 않아서 그 위력은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물병투척은 너무 했다는 생각이다. 맞는 사람입장에서 보면 매우 위험한 것이다. 잘못 맞으면 죽지말란 법도 없다. 이런 행위는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성주시민들의 분노는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시위가 폭력적으로 치달으면 그들에게 득 될 것이 아무것도 없다. 뭐든지 다 그렇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적당한 선을 지킬 때에만 최대의 효과가 나는 법이다.

얼마전 나는 나의 메모장에 이렇게 기록한 적이 있다.

"폭력은 상대를 물리적으로 무너뜨리는 것이지만 비폭력 저항은 불의한 상대의 마음을 무너뜨리는 것이므로, 비폭력 저항은 장기적으로 보다 더 본질적이고 훨씬 더 강력한 투쟁수단이다." (2016.4.30)

사드논쟁이 전국을 휩쓸고 있는 요즈음, 인터넷 싸이트 곳곳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쌍욕이 난무한다. 어떤 포스팅을 보니, 사드찬성 시위를 하는 어떤 남자에 대한 글이 올라오고 (일베저장소에서 퍼온 글), 그 사람에게 욕을 퍼붓는 댓글이 수도 없이 달리고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 찬성론자는 어쨌거나 자기 소신이 있어 평화적 일인시위를 했던 것으로 보였다. 글쎄, 누구나 자기랑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마주대하면 언짢아지는 것은 인지상정이겠지만, 그렇다고 대뜸 욕을 퍼붓는 것은 아무래도 온당치 못한 것 같다. 민주사회에서 어떻게, 어떤 사안에 대해 100%의 찬성, 100%의 반대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건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체제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난 이런 댓글을 달았다.

"그냥... 생각은 다를 수 있다고 여기세요. 의견이 달라도 서로 욕은 하지 말아요 우리. 자기랑 생각이 다르다고 욕하면 우리도 저들과 똑같아 지는 겁니다.^^ 아무리 좋은 생각, 주의(ism)라고 하더라도 국민 모두가 100% 찬성하는 그 무엇이 있다면 그거 자체가 문제입니다. 민주주의에서 그런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자, 여러분 홧팅!"

또는,

"서로 다름을 용인하는 것, 하지만 궁극적으로 평화적인 절차(가령, 다수결)를 통해 가부(可否)를 결정하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의 절차가 아닌가요? 사드논쟁도 결국은 그런 방식을 통해서 해소되어야 한다고 생각이 됩니다만..."

"저는 철저한 사드반대론자입니다만,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을 통해서 대다수의 국민들이 사드찬성론으로 기운다면, 속으로는 섭섭해도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그 결정과정 자체가 비민주적이고, 불합리하고, 부당하다면 끝까지 투쟁할 것입니다!!"

성주 시민들께 드리는 연대의 말씀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성주 군민들이 지난 15일 오전 성주군청에 모여 결의대회를 갖고 있다.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성주 군민들이 지난 15일 오전 성주군청에 모여 결의대회를 갖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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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시민들이시여, 오늘 합법적, 평화적, 비폭력적 시위로 일관하여 주십시오!

저는 평화주의자이라서 폭력시위를 말리는 것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전략적 사고'에 의해 평화적 시위가 더욱 효과적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짧은 싸움이 아닙니다. 긴 싸움입니다. 

폭력시위의 성격이 날이 갈수록 짙어지게 되면, 반드시 공권력이 투입될 것입니다.

국가의 공권력이 투입되는 구실은 바로 성주지역 시위에서 나타나는 '폭력성'일 것입니다. 즉, 성주시민들의 '폭력성'을 빌미로 '국가폭력'이 사용될 것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감정을 자제하기 힘들어도,
폭력시위를 지양(止揚)하고 지속적으로 오직 평화집회로 일관하면,
전국민이 평화시위에 동참하기 위해 하나둘씩 성주시로 달려갈 날이 올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폭력시위(暴力示威)는 다른 지역의 국민들이 합류하러 달려갈 기회,
바로 전국민의 결집 기회를 빼앗아가는 악수(惡手)입니다.

지속적인 비폭력, 평화시위가 가장 강력한 수단입니다.

이 사실은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비폭력, 평화적 시위가 폭력적, 파괴적 시위보다 훨씬 더 강력한 무기입니다!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공권력의 폭력 유발 작전에 절대로 말려들지 마십시오!

오직, 합법적(合法的), 평화적(平和的), 비폭력적(非暴力的) 시위만이 궁극적 승리를 보장할 것입니다!

합법, 평화, 비폭력 시위에 대한 회의론자들께
합법적, 평화적, 비폭력적 시위를 강조하는 "공자님 같은" 나의 주장에 대해 페북으로 대화를 나눈 어떤 분은 내게 이렇게 반문했다.

"폭력은 정부가 먼저 시작한 것이며, 거기에 공권력까지. 비폭력? 가만히 앉아 있어라? 세월호를 잊으셨나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가장 본질은 대선부정선거, 선거쿠데타에 의해 학살되고 있는 국민입니다."

나는 지금도 전두환 쿠데타 당시 신입생으로서 겪었던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1980년 3, 4월쯤이었던 것 같다. 당시 모교 교정의 큰 운동장에서 대규모의 학생집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학생들끼리 가두진출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놓고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선배들이 차례로 연단에 올라 시국에 대한 성토를 번갈아가며 진행했다. 대부분의 연사들이 민주주의 압살을 목전에 두고 가두진출은 당연한 행동방향이라고 목놓아 외쳤다. 그런데, 한 선배가 연단에 올라서 이렇게 열변을 토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가두진출을 하면 결국 우린 전두환 일당의 쿠데타 세력에 의해 사회혼란을 일으킨 폭도의 누명을 쓰고, 결국은 역이용 당해 '(북괴의 남침을 목전에 두고 있는 대한민국의) 사회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쿠데타는 불가피하다'는 구실이 되고 말겁니다!"

그러자, 거의 모든 청중이 야유를 퍼부었고, 이곳저곳에서 욕설까지 튀어나왔고, 학생들은 결국 가두진출 시위를 했다. 나도 그 뒤를 따랐다. 하지만, 결과는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듯이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민주주의가 아니라) 사회혼란 수습을 명분으로 하는 전두환 주도의 쿠데타 정권탄생이었다. 이 순간 내가 왜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는 것일까? 정당한 시위라도 감정을 자제하고 이성적으로 계획성 있게 진행시키지 않으면 반드시 '폭력시위'를 구실로 정권을 강화시킬 세력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시 지금의 현실로 돌아와서 생각해 본다.

성주시의 시위대가 폭력을 사용하게 되면 국가의 더 큰 폭력에 제압당할 것이다. 따라서, 공권력이 개입할 구실을 주지 않을 필요가 있다. 정부측에서는 일부러 그러한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을 의도적으로 연출할 수도 있다. 이러한 패턴은 우리 정치사에서 수 없이 자주 되풀이 되어온 일이다. 정말 현명한 방식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또 당할게 뻔하다. 만일 사드반대여론이 압도적이어서 국민의 80~90%를 차지한다면 시위대가 폭력을 사용해도 역공당하지 않을 가능성은 어느 정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대체로 언급되는 여론조사의 결과는 찬반론이 비슷한 수준이다. 이런 경우, 폭력적으로 공권력에 대항하면 100% 지는 게임이다. 따라서, 특히 시위를 주도하는 이들은 극도로 자제하고, 반대론의 논리를 가다듬어 차근차근 유리한 여론을 형성해 나아가는 노력을 지식인들과 더불어 함께 필사적으로 기울이며, 합법적, 평화적, 비폭력 방식에 의한 장기적 저항을 진행시켜야 한다.




태그:#사드논쟁, #성주, #전략적 패러독스, #나약한 폭력, #강력한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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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자(국제정치 전공), 건국대학교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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