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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부터였을까? 유진(가명)이는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것도 하루도 빠짐없이.

보통 급식시설이 갖춰진 학교는 점심시간이 돼서야 학생들의 가장 활기찬 모습을 볼 수 있다. 육상 종목이 약한 대한민국이 세계를 제패하는 방법은 100m 결승 지점에 급식시설을 설치하는 것이지 않을까? 이런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학생들의 달리기는 장애물을 개의치 않는다. 무조건 뛰어넘어 식판을 먼저 잡는 것이 목표다. 아마 많은 친구들이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유진이는 점심시간이 20분이 지나도, 30분이 지나도 도서관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렇다고 책을 읽는 것도 아니었다. 1학년들이 다 빠져나가는 시간이 훨씬 지나도 유진이는 도서관 한켠 책상에 앉아 우두망찰하고 있다.

평상시 수업시간에도 조용하던 유진이의 이름을 알게된 것도 2학기 시작된 뒤였다. 수업시간에도 의욕적이지는 않았다. 꿈을 탐구하는 자유학기제 수업을 같이하는데, 꿈도 정해진 게 없었고, 생각해보려는 의지도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수업시간을 방해하거나 말을 안 듣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유진이가 도서관에 오기 시작했다. 유진이에게 다가갔다.

"유진아, 밥 안 먹어?"
"네. 밥 먹기 싫어요."
"왜?"
"모르겠어요. 그냥요."

"안 돼. 얼른 가서 밥 먹어."


첫날은 그렇게 밥을 먹으러 갔다. 다음날에 유진이가 또 왔다. 매일처럼 유진이가 왔다. 어느 순간 유진이에게 강제로 밥을 먹이는 것도 자율권을 빼앗는 느낌이 들었다. 그냥 유진이의 선택에 맡겼다. 가급적 밥을 먹는 쪽으로 이야기했지만.

"유진아. 그런데 밥을 안 먹고 어떻게 버티냐?"
"아침도 먹고, 저녁도 조금 먹어요."
"다이어트 하는 거야?"
"아니오. 다이어트가 아니라 그냥 밥 먹기가 싫어요."


한 달, 도서관에 와서 책도 읽지 않고 계속 나에게 말을 걸었다.

"선생님, 저 오늘도 밥 안 먹을 거예요."
"그런데... 도서관에는 왜 맨날 와?"
"그냥 선생님 보고 싶어서요."


단순한 나는 단박에 기분이 좋아져 유진이에게 떡을 권했는데, 떡도 먹지 않았다. 사탕, 초콜릿도 받아주지 않은 유진이는 오로지 대화만 받아줬다. 그렇다고 유진이가 왕따도 학교생활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항상 친구들과 같이 도서관에 왔다가 친구들을 밥 먹이러 보내고 혼자 남아 나에게 계속 말을 붙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출장을 다녀왔다. 출장이라는 안내문을 붙이고 문을 굳게 잠갔다. 문을 몇 번 흔들어 완벽하게 잠긴 것을 확인하고 출장을 갔다. 다음날 아침 유진이가 찾아왔다.

"선생님, 어제 어디 가셨어요? 선생님 없어서 점심시간에 떠돌아다녔잖아요."
"어... 미안~~. 출장 다녀왔어. 다음부터는 점심시간에 출장 안 가도록 해볼게."
"네. 이따 점심시간에 봬요."


매일같이 오던 존재를 생각지도 않고 출장 가버린 나, 유진이가 그토록 가벼운 존재였나? 아무래도 직업병이다. 책으로 연결되지 않아서 아주 가까운 유대감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 달 넘게 찾아온 유진이에게 책 한 권 같이 읽자고 하지 않은 나, 왜 그랬을까?

윌리엄 캄쾀바. <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
 윌리엄 캄쾀바. <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
ⓒ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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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이에게 책 한 권 같이 읽자고 했다. 아프리카 소년, 열네살 캄쾀바의 꿈에 대한 이야기, <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을 권했다. 밥을 먹고자 하는 의욕, 꿈이 없는 유진이에게 아프리카 말라 위에서 쓰레기와 고철로 전기를 만들어냈다는 캄쾀바의 이야기를 유진이와 함께 읽었다.

자유학기제 '꿈은 Memoro' 수업을 함께 했던 유진이는 꿈이 없었다. 한 달에 걸쳐 책을 읽어낸 유진이는 단박에 꿈을 정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가끔 점심에 밥을 먹으러 갔고, 도서관에 오면 책을 읽어보려고 했다. 그런 유진이를 보면서 사서교사인 나는 또 배운다.

덧붙이는 글 | 청소년문화연대 킥킥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사서교사,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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